누군가 부부는 얼굴 보는 것도 지겹다고 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까지 붙어 있는 사이, 늘 같은 일상을 반복하지만 매일 다른 하루하루. 부부가 함께 요리를 하고 물건을 만들고 책을 보는 곳들. 지지고 볶고 투닥거리는 동안, 그럼에도 피어나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 동네 잡화점
부부웍스
소박하고 개성 있는
처음엔 컴퓨터 수리점 앞, 한 평짜리 구두수선 자리에서 놀이처럼 시작했어요. 그러다 컴퓨터 수리점으로 자리를 옮기고 몇 해가 지나도록 한 골목만 지키고 있네요. 부부웍스는 저희 부부가 도쿄 여행을 떠났을 때 우연히 발견한 작고 소박한 상점들의 느낌이 담긴 공간이에요. 성격이 아주 다른 두 사람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고 고치면서 완성했죠. 작가들과의 협업으로 물건을 들이지만 일부는 직접 만들기도 하면서 꾸리고 있어요.
남해의 한편에는
남해로 내려오기 전까지는 상점과 집이 가까워서 일과 생활의 분리가 점점 어려워졌어요. 부부웍스 공간에 애정을 쏟는 동안 그만큼 집은 안식을 기대하기 어려운 공간이 된 거죠. 진짜 나의 취향들을 막상 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며 지쳐가던 중이었어요. 그렇게 자연과 가까운 곳을 찾다가 남해와 인연이 닿게 됐죠. 건축이나 설계에 대한 지식도 없이 제가 며칠 밤새워 계획한 집이라, 살림집은 근사하다기보다 단순히 제 바람만을 담은 공간에 가까워요. 새롭게 짓고 있는 ‘끽다생활’이라는 이름의 별채 공간도 전문가들과 고민해가며 천천히 계획하고 있어요. 작지만 저희 부부에게 그랬듯이, 차茶 마시는 동안의 위안을 경험하실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게으른 오후
수원과 남해를 오가며 생활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어요. 수원의 공간을 정리하고 남해에 도착하면 늦은 밤이 되는데, 그시간에 바로 잠들기가 싫을 만큼 남해에서의 시간은 애틋하죠. 차를 마시고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보면서 마루에서 잠드는, 천천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남편은 틈 나는 대로 잡초를 뽑고 나무에 물을 주기만 해도 즐거워해요. 저는 대부분 찻자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킨츠기나 옻칠 작업을 하고요.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묵묵히 한길을 걸어오신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요. 노포에 대한 로망도 있고요. 시간을 두고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이 좋아요. 8년 된 부부웍스도 남해의 끽다생활도 온갖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받아내어 낡을 수밖에 없는 곳이에요. 저희 부부와 함께 자연스레 나이 들어 가겠죠. 자연스러운 색과 촉감의 기물 속에서 차 한잔, 바다를 마주하고 농로를 걷는 짧은 산책으로 위안을 얻는 시간이 찾아오길 바라요.
A. 경기 수원시 팔달구 중부대로 239번길 48 H. boubouworks.com O. 화-토요일 12:00-20:00, 월·일요일 휴무
느린 식사를 하는 곳
나영밀작업실
시간을 들인 음식들
나영밀은 느린 음식을 만드는 곳이에요. 조미료나 통조림 같은 제품이 아니라 자연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한 음식이 많아요. 식사 후 속이 편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최대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요리하고 있어요.
잃어버린, 나를 위한 산책
오랫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둔 후에 거제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어쩌다 전업주부가 되어 처음엔 무척 답답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식사도 간단히 때우게 되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우울해지더라고요. 많이 울었어요.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만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스스로 일을 만들기로 했어요. 아침엔 산으로 산책을, 점심엔 손님에게 내어주 듯 차려 먹기로 한 거죠. 그렇게 점점 저자신을 다시 찾아간 것 같아요. 남편이 잘 먹어줘서 요리하는게 재미있기도 했고요.
거제도, 이름 없는 곳들
거제에는 작고 이름 없는 바닷가가 많아요. 유명하지 않아 숨겨진 아름다운 곳들이 있죠. 입구도 찾기 힘든 숲길을 들어서면 편백나무가 우거져 있어요. 아늑하고 편안한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요. 저희는 이런 장소가 좋아요. 시간이 나면 양손에 커피랑 접이식 의자를 챙겨 그냥 나가죠. 마음에 드는 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아무것도 부럽지 않은 멋진 하루를 보낼 수 있어요.
두 사람의 부엌
저는 항상 마음이 바쁜 사람이에요. 반대로 남편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향을 가진 편이고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식당 운영을 하다 보니 정말 많이 다투게 됐어요. 그동안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거죠. 12년을 지켜본 사람인데 제가 알던 사람이 아니더라고요(웃음). 어쩌면 부부가 함께 주방에서 일한다는 건 서로를 돌아보는 시간인지도 몰라요.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또 상대는 나를 얼마나 이해해 주는지 깨달아 가는 시간이죠.
같이 있는 오늘
나영밀은 늘 둘이 함께 요리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서로 지지대가 되어 따뜻한 식사를 만드는 곳으로요. 동네 어르신들이 저희가 부부인지 오누이인지 많이 물어보는데요. 점점 닮아간다는 뜻이겠죠(웃음)?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을 나누며 나이 들고 싶어요.
A. 경남 거제시 옥포대첩로6길 43 1층 H. instagram.com/nym_workroom O. 월요일·목-일요일 11:00-21:00 (브레이크 타임 15:00-17:30), 화-수요일 휴무 (자세한 일정은 인스타그램 참고)
작품이 모여드는 서점
고스트북스
체스를 두는 부부
안녕하세요, 고스트북스의 김인철, 류은지입니다. 때는 2014년, 류은지 작가는 대구에서 ‘진메이킹 클래스’라는 책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진로에 고민이 많던 저(김인철)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에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고, 류은지 님을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되었어요(웃음). 저의 적극적인 대시가 이어지다 결국 사랑의 열매를 맺었죠. 깊은 고민 끝에 둘 다 공통으로 좋아하는 ‘책’이라는 매체를 다루면 시너지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책방을 열기로 했어요. 저희 부부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살면서 책방 운영과 함께 자전거를 타는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어요. 요즘은 같이 체스를 두기도 해요. 둘 다 이제 시작해서 잘하는 건 아니지만 못하는 애들끼리 하는 싸움이 더 재밌잖아요? 하하. 서로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고스트북스라는 이름
오랜 시간 자신만의 시간을 들여 작업을 이어가던 창작자는 어느 날 작업실을 나와 긴 시간 공들여 만든 무언가를 세상에 발표합니다. 저희는 그 모습이 마치 유령 같다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를 감추다가 작품을 발표하는 순간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 그런 창작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했고 그렇게 고스트북스가 탄생하게 되었어요. 열심히 만들어진 무언가가 이곳에 모여 있죠.
우리가 남이가!
고스트북스는 주로 독립출판물이나 일반 단행본은 물론,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해외 출판물도 들여와 소개하고 있어요. 저희만의 기준으로 주제나 테마가 흥미로우면 입고하는 편인데요.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대구에도 개인 작업을 통해 독립출판을 하시는 분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거나 ‘우리가 남이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고스트북스가 위치한 대구 지역 내의 문화적 다양성을 항상 기대하고 있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체스를 두고
주변의 다양한 창작가, 서점 운영자분들과 함께 늙어가는 상상을 해요. 지금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요.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그들과 늘 함께할 수 있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요? 저희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도 지금처럼 잘 유지하고 싶어요. 20년, 30년이 지나도 함께 자전거를 타고 체스를 두고 싶어요. 그땐 지금보다 실력이 조금은 늘어 있지 않을까요?
A. 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212, 3층 H. ghostbooks.kr O. 월요일·수-일요일 13:00-20:00, 화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