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귀는 밤

전진희 — 뮤지션

깜깜한 방에서 희미한 불빛에 의존해 더듬더듬 [Breathing] 앨범을 찾아 재생하는 것을 좋아한다. 전진희의 음악은 어쩐지 밤을 닮았다. 단지 잠잠하고 고요해서만은 아닐 테다. 진짜 이유가 무얼까, 생각하는데 우연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러니까, 전진희가 밤과 잠을 닮았다는 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란 거지?

항상 꿈을 꿔요.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꾸죠.
하루에 서너 개씩 꾸는데, 대체로 악몽이고,
매일매일 새벽 5시에 깨고….
그런 삶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괴롭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아져요.

“나쁜 꿈으로 눈 뜨는 새벽 다섯 시 시린 눈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이번 호 주제어가 ‘잠’인데, 계속 이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요즘 잘 자고 있어요? 

솔직히 얘기하면… 잘 못 자고 있어요. 7월에 앨범이 나왔는데 작업이 끝나면 ‘후폭풍’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오거든요. 한창 작업에 매진할 땐 모르다가 앨범이 나오고, 공연도 하고, 약간 소강상태에 접어드니까 그제야 올라오는 체력적인 힘듦과 정신적인 지침 같은 건데요. 그런 시기가 닥치니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 한창 작업 중일 땐 매일매일 피곤하니까 오히려 잘 잤는데 작업이 마무리되니까 잘 못 자는 기간이 찾아왔어요. 

 

노랫말처럼 나쁜 꿈으로 눈뜨는 건 아닌지…. 

다행히 요즘엔 평소랑 다르게 나쁜 꿈은 안 꾸고 있어요. 안 꿨다기보단 잠을 계속 설친 건데요, 얼마 전에 강아지가 아팠거든요. 계속 간호하다 잠들고, 간호하다 잠들고, 하니까 오히려 꿈꿀 겨를도 없이 얕게 자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다행히 많이 회복돼서 경과를 보는 단계예요. (옆에서 강아지가 낑낑거린다.) 네 얘기 하는 줄 아는 거야(웃음)? 

 

참 착하고 순한 친구예요. 소개해 주실래요? 

제가 사랑하는 강아지 ‘모모’예요. 귀엽고 나이가 많고. 벌써 열세 살이 됐어요. 사람들이 모모만 보면 사랑에 빠져요. 사람을 보면 눈을 빤히 쳐다보고 있거든요(웃음). 모모는 새끼일 때 만났는데, 얼굴이 넙데데해서 모모라는 이름이 딱 떠올랐어요. 

 

모모, 오늘 계속 부르게 될 것 같아요(웃음). 2021년 [summer,night]를 낸 이후부터일까요, 진희 씨 음악에 여름을 소환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겨울 뮤지션인 줄 알았는데 여름도 접수했다.”는 리뷰도 왕왕 눈에 띄고요. 

[summer,night]를 발매한 이후로 그런 반응이 부쩍 많아진 것 같아요. 한동안 여러 인터뷰에서 여름이 사실은 비수기라고 이야기해 왔거든요. 저뿐만이 아니라 느리고 여백 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은 상대적으로 여름에 활동이 적어져요. 날씨가 더우면 기분이 업되는 음악을 듣고 싶잖아요. 그래서 불러주는 데도 상대적으로 적어서 여름엔 되도록 조용히 지냈는데요. 어느 날 문득 ‘내 음악을 여름에도 듣고 싶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낸 게 [summer,night]였어요. 다행히 이 앨범이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 반응이 부쩍 많아진 것 같아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종종 하셨지요. 

일단 체력적으로 많이 지치고 무기력해져서 여름은 ‘보낸다’는 인상보단 ‘버틴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매 여름이 그랬죠. 그러다 딱 이맘때쯤 여름에 서운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면 ‘여름 갔어? 언제 갔지?’ 하게 돼서요. 매미 소리도 하루아침에 뚝 끊기고요. 너무 시끄러워서 밉던 매미가 어느 순간 싹 사라지면 아쉽고 서운해져요. 그게 여름이 주는 특별한 감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겪을 땐 되게 괴로운데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일이 많다 보니까 자꾸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곡도 쓰게 된 거죠. 

 

그럼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예요? 

딱 지금이요. 늦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이때가 참 좋아요. 하늘도 예쁘고 햇살 색감도 조금 달라지잖아요. 아주 쨍한 여름과는 좀 다른 빛깔이라 지금은 어디에 눈을 둬도 다 예뻐 보여요. 

 

“쨍한 햇빛과 살아있는 것 같은 나뭇잎의 색, 비 내린 후의 하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의 색은 여름에만 볼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죠. 그 말이 참 좋았어요. 이번 여름에 목격한 새로운 장면 있어요? 

한창 3집을 준비하면서 ‘장마철에 들어도 좋은 앨범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근데 이번 여름에 비가 유독 많이 왔잖아요. 비 내리는 걸 계속 생각하며 작업하다 보니 비 오는 날이 점점 더 좋아지더라고요. 물론 폭우로 안타까운 상황도 많았지만… 음악 작업하면서는 비 내리는 여름을 좀더 좋아하게 됐어요. 기억에도 많이 남게 됐고요.

저는 등만 대면 자는 편인데, 어쩌다 한 번씩 잠이 안 올 때면 음악부터 찾아서 듣거든요. 그럴 때 듣는 게 [Breathing]이에요. 피아노 연주곡으로만 이루어진 앨범이어서 편안해지더라고요. 이 앨범에 “호흡처럼 자유로운 소리를 내고 싶다.”는 소개 글이 있죠. 저한테 호흡은 꼭 해야 하는 거고, 규칙적인 행동이어서 그런지 자유롭다니까 생소한 느낌이에요. 

포니테일 머리를 묶고 달리면 기분 좋은 흔들림이 생기잖아요, 근데 그 걸음을 멈추면 머리의 흔들림도 멈춰요. 호흡도 똑같은 것 같아요. 호흡이 멈추면 끝이 나잖아요. 자유로움 속에서 계속 호흡하는 거니까 규칙도 생길 수 있다고 봐요. 

 

아, 그 자유라는 건 내 호흡을 내가 관장한다는 데서 오는 거로군요. 

맞아요. 호흡은 사람의 심정에 따라 바뀌어요. 긴장했을 때 호흡과 편안할 때 호흡, 행복할 때와 슬플 때 호흡은 다르잖아요. 그럴 때 일종의 흐름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잠이 안 올 땐 누워서 호흡에 집중해요.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면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거예요. 몇 년 전에 불안 장애가 심하게 온 적이 있어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저한테 “할 수 있는 건 호흡밖에 없다.”고 하셨거든요. 너무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 할 수 있는 호흡법을 알려 주셨어요. 길게 내쉬고, 길게 들이마시는 것의 반복이죠. 사람이 긴장하면 호흡을 잘 못한대요. 거기서 오는 극도의 불안감도 있는데, 그걸 해소하기 위해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 호흡법을 하면 실제로도 잠이 잘 와요? 

잠이 잘 온다기보단 잠들려고 노력하는 거죠. 안 하는 거보단 물론 나아요. ‘내가 지금 많이 긴장되어 있구나. 뭔가에 정신적으로 몰려 있구나.’ 싶을 때 호흡을 상기하면 조금 나아져요. 

 

불안하다는 건 끊임없이 뭔가가 움직이는 일 같아요. 온 세포가 바들바들 떨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서요. 가만히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아서 휴식이 절실해져요. 

맞아요. 불안 장애가 심할 때는 휴식은 생각도 못 했어요. 그래서 병원도 다니고, 상담도 받고, 여러 노력을 했는데 선생님이 “진희 씨 몸이 타고 있어요.” 하시는 거예요. 사람이 걷거나, 달리거나, 뭔가 활동을 해야 에너지도 분출되고 감정도 바깥으로 뻗어 나가는 건데 불안감이 너무 끝까지 차 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꾸 흘러넘쳐서 몸이 타는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걸 체험하고 나니까 다시는 겪고 싶지 않더라고요. 

 

많이 힘들었겠어요. 불안을 잠재우는 휴식법을 좀 알게 됐어요? 

전혀요. 시간이 해결해 줬어요. 한 번 경험하고 나니까 다시 그런 불안이 찾아오면 ‘진희야, 그거 아니야.’ 하고 저 스스로 말하게 되고, 다독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그 정도가 조금씩, 조금씩 옅어져요. 

 

뮤지션 강아솔 씨랑 나눈 대담 인터뷰 참 좋았는데 거기서 “내가 쓰는 곡들은 곡을 시작하게 만든 이야기가 있다.”고 하시잖아요. 요즘 마음에 둔 이야기 있어요? 

3집 작업할 때부터 줄곧 생각한 건데 모모를 보면서 존재가 꺼져가는 과정에 관해 자꾸 생각하게 됐어요. 안쓰럽고 슬픈데,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동물의 시간은 인간에 비해 정말 짧잖아요. 근데 시간만 다를 뿐 결국 사람도 똑같은 것 같아요. 그런 걸 자꾸 생각하게 돼요. 

 

요즘 화두는 생과 사로군요. 

(웃음) 너무 거창한걸요. 그렇지만 분명히 그런 부분인 것 같아요. 무언가 사라져가는 과정을 볼 때마다 자꾸 생각하게 돼요.

그간 음악으로 기록해 온 것들을 “대부분의 이야기가 미움이다. 혹은 분노 상처 버림받았던 아픈 일들이었다.”고 하셨는데, 소화하고 휘발하면 좋을 감정을 음악으로 기록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취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느낀 감정들을 풀어낼 방법이 음악밖에 없더라고요. 취미를 만들고 싶어서 계속 고민하는 중인데요. 여태 없던 게 갑자기 생길 리도 없고, 애써 찾아보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감정을 풀 창구는 계속 음악뿐이어서 자연스럽게 피아노로, 음악으로 기록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음악으로 감정을 풀어내는 거네요. 

그래서 제 노래 가사를 보면 일기 같기도 하고… 좀 사적인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잖아요. 특히 1, 2집. 저도 그렇게 들리도록 표현해 왔던 것 같아요. 

 

일기장에 기록하는 일은 저한텐 모아놓는다는 의미거든요. 해소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남겨두는 느낌이 강해요. 그래서 오히려 좋았던 걸 더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정말요? 저는 나쁜 얘기밖에 안 쓰는데(웃음). 그런 감정을 기록해 두면 다시 한번 비슷한 감정이 찾아왔을 때 펼쳐보게 돼요. 처음 겪는 감정은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도 있고, 이전에 이겨내려고 노력해 봤다는 데서 느끼는 위로도 있어요. 그때보다 더 잘, 더 빠르게 헤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전보다 나아졌다는 걸 느끼는 것도 좋아요. ‘한 번 빠져나온 감정이니까, 이번에도 그럴 수 있겠지.’ 하면서 위안 삼는 것 같아요. 

 

과거가 현재에 도움을 주는군요. 

네. ‘그랬었지.’라고 생각하면서 ‘또 괜찮아질 거야.’라고 믿는 거죠. 그 당시엔 물론 죽을 것 같았지만 결국 지나갈 걸 아니까요. 

 

경험하지 않은 것들로 음악을 만들기도 해요? 

아니요. 그렇겐 못 해요. 

 

경험이 중요하겠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내가 항상 큰일을 당해야만 가사가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좌절도 많이 했어요. ‘그럼 도대체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도 들고, 행복감을 느끼는 와중에도 이면에 남은 불안감에 집중하게 됐죠. 음악을 만드는 이상 계속 나쁜 감정을 마주하게 되니까 ‘저주받은 인생 아니야?’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그땐 지금보다 여러모로 어렸던 것 같아요. 지금은 상대적으로 주변을 넓게 보고 있어요. 꼭 미움과 불안이 아니어도 곡 쓸 소재는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특히 3집을 만들면서요. 

 

가장 최근에 만든 곡이 궁금해지네요. 

‘노랫말’이에요. 그거야말로 지금의 저, 현재 상태를 담아낸 가사죠.

고작 짧은 노랫말 안에 내 마음 담을 수 있나요
불행 속에 싹 틔운 작은 빛 하나 살아 있어요
작은 희망 놓치지 않으려 웅크렸던 나의 밤들도
비 갠 하늘 위 구름처럼 멀리, 멀리 보여요
난 왜 노래하는지 그럴 수밖에 없는지
보잘것없는 내 삶에 넌 왜 찾아왔는지
서툰 마음을 눌러 담아 오늘을 그리다 보면
살아 있다고 여기에 있다고
사랑이 있다고

— 전진희, ‘노랫말’

여러 인터뷰를 읽으면서 ‘이야기가 곡이 되는 순간’을 기록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데모를 더 좋아지게 만드는 일련의 작업보다 데모가 되던 순간을 다시 불러오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랄까요. 

맞아요. 음악이 더 좋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이 되던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 음악이 하나의 이야기, 감정, 순간에서 출발하다 보니까 그날 느낀 감정이나 공기가 음악에 영향을 많이 미치거든요. 그 덕분에 이런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거니까요. 그래서 그때의 기분, 곡을 만들던 당시의 뉘앙스, 분위기에 집착하게 돼요. 예전에는 앨범을 발매했는데도 날것의 데모가 더 좋다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 분명히 어설픈데 뭔가 자꾸 눈물이 나고, 자꾸 손이 가고…. 좋은 스튜디오에서 애써 녹음했는데 왜 데모가 더 좋게 들릴까 고민했는데 그게 그 당시의 뉘앙스 때문인 걸 느꼈어요. 그래서 데모보다 뉘앙스가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데모보다 앨범이 생생해질 순 없을까요? 

음… 그러고 싶어서 매번 노력하는데 그보다 생생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걸 계속 붙들어 두려고 하면 녹음할 때도 분명히 시너지가 생긴다고 믿어요. 데모를 생각하지 않고, 그때 기분을 외면한 채 녹음하는 거랑은 분명히 다를 테니까요. 

 

그럼 데모가 가장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믿는 편이에요. 어설프고, 틀리기도 하고, 음도 나가서 듣기 싫은 부분은 분명히 있는데 이 곡을 내가 왜 만들었는지, 데모를 들으면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가장 완벽한 건 데모가 아닐까… 싶은 거죠.

진희 씨한텐 경험이 참 중요하군요. 잠 이야기를 좀더 해볼게요. 혹시 잠버릇 있어요?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아! 선물 받은 바디필로우를 꼭 안고 자요. 그게 있으면 몸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에요. 자기 전에, 자고 일어나면 꼭 따뜻한 물을 한 잔씩 마시고요. 

 

수면에 도움이 되나요? 

된다고 믿는 거죠. 

 

요즘엔 꿈을 잘 안 꾸신다고 했는데 이전엔 어땠어요? 

항상 꿈을 꿔요.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꾸죠. 최근이 예외 상황인 건데, 보통은 하루에 서너 개씩 꾸는 편이에요. ‘사소한 이야기’가 그 경험에서 나온 노래죠. 잘 때마다 엄청난 양의 꿈을 꾸고, 대체로 악몽이고, 매일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고…. 그런 삶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괴롭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요. 옛날에는 악몽을 꾸고 나면 괴로워했는데 매일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나쁜 꿈으로 눈 뜨는 새벽 다섯 시
시린 눈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분주한 아침의 불빛들 가운데
난 어떤 사람이었나 생각해요
따뜻한 물 한 컵에 거는
희망 따위가 과연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난 고작 이런 사람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대는 모른 척해 줘요
오 제발 날 가엽게 여기지 말아 줘요
이건 사소한 이야기일 뿐이죠

— ‘사소한 이야기’ 중에서

꿈이 주로 악몽이에요? 

완전 악몽이에요. 

 

현실에 기반한…? 

네. 현실에서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다 나오고, 현실의 감정도 그대로 반영돼요. 혹은 과거에 제가 느낀 감정, 해결하지 못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요. 

 

흥미로워요. 제 꿈엔 사람이 잘 안 나와요. 나오더라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오는 경우가 더 많고요. 

정말 부럽네요. 

 

한때는 꿈에서만 보는 사람도 있었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꿈만 꿨다 하면 나오더라고요. 과거에 어떻게든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요. 

꼭 영화 같아요. 저는 항상 아는 사람이고 무조건 현실과 이어져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못 했다면 꿈에서 끊임없이 얘기하죠. 상대방 표정까지 생생하게 생각나요. 실감 나게요. 

 

보통은 깨고 나면 잊어버리는데 그러지도 않는군요. 

너무 생생해서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돼요. 

 

이런…. 피곤할 것 같아요. 

너무 피곤해요. 꿈에서도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니까요. 꿈속에서 많이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해요. 반대로 굉장히 행복할 때도 있죠. 근데 그 감정이 너무 생생하니까 깨고 나서 ‘꿈이 맞나?’ 싶을 때도 많아요. 상대방 꿈에도 제가 나오고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고요(웃음). 

 

꿈이 이렇게나 현실의 연장 같다면 단잠을 잤다고 생각할 일이 많지 않겠어요. 

거의 없죠. 너무 피곤하고, 너무 피곤하고, 너무 피곤하고…. 잘 때도 현실이 계속 이어져 있는 기분이에요. 오늘 만난 사람을 꿈에서도 만나고, 내일 만날 사람을 꿈에서 또 만나고…. 

 

이번 앨범 소개에 이런 문장이 있더라고요. “이전 그녀의 음악들은 마치 짙은 밤을 적시는 습한 고백이자 아련하고 그리운 아쉬움이었다면 이번 노래들은 자다 깬 어느 여름의 새벽 뜨거운 한낮의 사랑 후 후회와 부끄러움을 머금고 식혀진 대지 같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밤에서 새벽으로 건너왔다는 느낌도 들어요. 

아, 좋은 문장에 좋은 해석이에요. 너무 좋네요. 그 문장은 평론가님이 써주신 건데 저도 그 대목을 특히 좋아해요. 이번 앨범이 마냥 가라앉고 마냥 슬프기만 한 음악은 아니길 바랐어요.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담기도 하고, 분노가 담긴 그리움을 풀어내기도 했죠. 그런 감정은 꿈에서 느낀 거기도 하고요. 미처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도 고스란히 담기길 바랐는데 그걸 잘 캐치해 주셨어요. 

 

방금 이야기한 ‘분노가 담긴 그리움’은 어떤 감정이에요? 

이별했을 때 기분이요. 너무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생겨서 헤어지는 거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고,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고…. 그런 게 분노가 담긴 그리움 아닐까요. 

 

슬프네요. 음… 슬퍼요. 

그렇죠? 

 

진희 씨는 본질을 항상 ‘피아노’라고 이야기해요. 근데 자주 듣는 음악은 얼터너티브한 음악이라고요. 요즘은 어떤 음악 자주 들어요? 

여전히 밴드 음악이나 앰비언트 음악들 좋아해요. 근데, 저는 그런 음악이 피아노곡이랑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비슷한 결이 있다고 생각해서 자꾸 모아놓게 되고, 듣게 되더라고요. 

 

잠이 안 올 때 음악을 듣기도 해요? 

가사에 기댈 수 있는 음악을 자주 들어요. 한 곡을 밤새도록 틀어놓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최면에 걸리는 느낌도 들고(웃음). 

 

새롭네요. 저는 노랫말에 집중하는 편이라 잠이 안 올 때 가사 있는 곡을 들으면 오히려 못 자게 되더라고요. 

아, 잠을 자려고 듣는 건 아니에요. 잠이 안 오니까 다른 걸 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 거죠.

 

아, 그럼 진희 씨한테 자장가 역할을 해주는 음악은 없나요? 

네, 없어요. 음악을 하니까 어떤 음악을 들어도 자꾸 뭔가가 들리거든요. 정서적인 것도 그렇고, 기술적인 것도 그렇고요. 저도 모르게 골똘히 음악에 집중하게 돼요. 그러니까 아무리 편안한 음악이어도 음악적으로 듣게 되니까 잠을 전혀 잘 수가 없죠. 그래서 요가원에 가면 힘들어요. 

 

왜요? 

요가 선생님이 몸이 편안해지는 음악을 틀어주시는데 그런 음악조차 ‘코드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이런 악기를 썼구나.’ 하고 계속 생각하게 되거든요. 특히 선생님이 선곡을 되게 잘하셔서 몸을 완전히 이완하는 사바아사나 할 때도 계속 생각을 하게 돼요. 요가 끝나면 선생님한테 “아까 틀어주신 곡 뭐예요?” 하고 묻기도 하고(웃음). 그래서 음악보다는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게 긴장을 푸는 데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새소리 같은 거요? 

맞아요. 그런 소리는 정말 편안하게 들려요. 사람들은 앰뷸런스가 지나가거나 경적이 들리면 집중이 흐트러진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환경 음이 좋더라고요. 소음을 좋아한다고 할 순 없지만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는 소리는 좋아해요. 데모를 녹음할 때도 그런 소리가 좋아서 일부러 들리게 하는 경우도 있고요. [Breathing] 앨범에는 음성 메모를 그대로 넣은 곡도 있어요. 코로나19 때여서 사람들 기침하는 소리도 들어가 있죠. 처음 그 앨범이 나왔을 땐 민원도 많았어요. “잡음이 들어갔어요. 제대로 발매된 게 맞나요?” 하면서(웃음). 맞다고 설명하는 데 시간을 꽤 들였죠. 

 

피아노가 본질이라고 하면 진희 씨 그 자체일 것 같은데 또 어떤 면에선 전문적으로,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해요. 진희 씨한테 피아노는 무엇이에요? 

사실 다른 악기도 많이 해보려고 했어요. 기타를 너무 좋아하고, 기타리스트에 동경도 크고, 기타가 만들어 내는 사운드도 엄청 좋아하거든요. 근데 제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한 악기가 하필 피아노였던 거예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수단이 된 거죠. 다른 악기로 넘어가 보려고 해도 이미 자연스러워져 있어서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기타를 만지다가도 다시 피아노로 돌아오게 되니까 제 본질인가 보다 하게 돼요. 

 

처음 피아노랑 어떻게 만나게 됐어요? 

네 살 때 부모님께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이야기했대요. 그래서 피아노를 사주셨는데, 학원에 다닌 건 아니고 계속 혼자 치고 놀았나 봐요. 그러다 예닐곱 살쯤 됐을 때 티브이에서 나오는 곡들을 제가 따라 쳤다고 하더라고요. ‘애국가’가 들리면 멜로디를 따라 치고(웃음). 만약 제 아이가 그랬다면 “신동이야!” 하고 영재 교육이라도 시켰을 것 같은데 저희 부모님은 그냥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같이 노래 부르시고 그랬대요(웃음). 

 

피아노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느낀 순간도 있겠어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집에선 항상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고, 피아노가 필요한 자리에 있으면 꼭 반주는 제가 했어요. 교회라든지, 음악 시간이라든지.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행위가 너무 좋아서 자꾸 보여주고 싶고, 저를 표현하더라도 꼭 피아노로 하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모든 곡이 피아노에서 출발할 것 같은데 의외로 가사를 먼저 쓰신다고요. 

저도 신기해요(웃음). 그런 흐름이 신기해서 시작한 게 사운드 클라우드에 매달 올리게 된 피아노 연주곡 ‘Breathing’ 시리즈였어요. 그 녹음 파일들이 모여서 [Breathing]이 된 거고요. 제 본질은 피아노라고 이야기하고 다녔고, 피아노 뒤에 숨어서 표현하는 게 저한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데 왜 자꾸 노래 곡을 쓰고 있는지, 가사를 먼저 생각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본질을 찾아가 보자는 생각에 시작한 게 Breathing 시리즈인 거죠. 근데 지금은… 다 같은 것 같아요. 피아노 연주곡도, 가사가 있는 곡도요. 저는 결국 음악을 하고 싶은 거예요. 피아노를 치고 싶었다기보다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 그럼 지금 진희 씨의 본질은 뭐예요? 

어… 제 본질이요? 글쎄요. 음…. 저는 표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 수단이 피아노일 수도, 노래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음악일 때 가장 편한 사람. 

 

녹음하실 때 불을 끄고 스튜디오를 어둡게 만든 상태로 건반을 안 보고 녹음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정말 피아노랑 한 몸이구나, 생각했는데…. 

저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연주하고 표현하는 게 좋아요. 자유를 느껴야 소리에 집중하게 되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일부러 더 눈을 감고, 일부러 불을 끄고, 일부러 안 보이게 만들고 소리에 집중하는 거예요. 

 

깜깜할 때 집중이 더 잘되는 편이에요? 

네. 그래서 예전에는 강박적으로 깜깜하게 만들고 녹음하곤 했는데 요즘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집중할 수 있어요. 나름대로 기술이 생긴 거죠. 그래서 전처럼 무조건 깜깜하게 해두진 않지만, 어쨌든 조도가 낮으면 집중이 잘돼요. 

 

그럼 작업할 때도 밤이 조금 더 편한가요? 

예전에는 ‘난 밤에 만드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언제든 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마음만 먹으면 집중할 수 있으니까, 언제든 밤으로 만들 수 있는 거죠. 

 

근사한 말이에요. 자꾸 곱씹게 되네요. 우리는 누구나 밤에 잠을 자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 

적막하니까요. 해가 뜨면 모든 게 소생해요. 움직임이 보이고, 소리가 들려오고. 그런데 밤이 되면 모든 게 잠잠해지잖아요. 우리의 리듬도 거기 맞춰지는 게 아닐까요? 

 

문득 진희 씨 침실이 궁금해지는데요(웃음). 

아무것도 없어요. 작은 방에 침대 딱 하나만 있죠. 침대에선 잠만 자요. 물론 휴대폰도 좀 하고요(웃음). 작업하는 방과는 완전히 분리해 둬요. 

 

잠은 쉼의 일종일 텐데, 꿈이 진희 씨의 쉼을 방해하잖아요. 진희 씨의 휴식이 궁금해지네요. 

음… 걷는 거요. 요즘은 시간이 생기면 계속 걸어요. 많이 걸으려고 해요. 나무랑 하늘 같은 풍경이 보이면 좀더 쉬는 느낌이 들어서 자주 산책하려고 해요. 그렇다고 등산이나 하이킹을 좋아하진 않아요. 그런 에너지는 없거든요(웃음). 제 동선 가까이 있는 자연, 그걸 보는 게 저한텐 쉼이에요. 

 

쉰다는 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나아갈 힘을 만드는 거요.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아요?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자도 잔 것 같지 않을 때. 

꿈을 계속 꿀 때. 그럴 땐 정말 방법이 없어요.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수밖에. 되게 위험한 것 같아요. 그런 상황. 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뭐라도 하고 싶은데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약에 의존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따듯한 물을 마시면서, 핫팩을 항상 곁에 두고 온기를 빌려 ‘지나가겠지.’ 하고 생각해요.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존하게 돼요. 못 쉬고 있다고 느낄 땐 따듯한 것에 기대서 릴렉스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덥혀줘요. 

 

몸이 쉬면 정신도 쉰다고 생각해요? 

아뇨, 둘은 다르죠. 근래에 모처럼 쉰다고 느낀 게 도쿄 여행이었는데, 현실에서 멀어지니까 비로소 쉬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여행지에서 열심히 걷고, 맛집 찾으러 바삐 움직였는데도 마음과 정신은 쉬는 느낌인 거예요. 그때 ‘나 진짜 쉬고 있구나.’ 싶었어요. 최근 들어 처음으로 한 생각이었죠. 쉰다는 건 조용한 데서 잠을 자거나 편안히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행위가 충전을 하게 하는 행위인 건 맞지만 제 본업에서 멀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게 진짜 휴식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어요. 

 

좋았을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하는 여행. 

정말 좋았어요. 몸 상태가 최상이 아니었는데도 걷는 내내 붕붕 뜨는 느낌도 들었고요. 한국에서는 맛있는 걸 먹어도 작업이나 스케줄 생각 때문에 고뇌의 연속처럼 느껴졌는데 여행지에서는 맛집 하나만 생각하면서 다니니까 과정도 재미있고 기분도 좀 이상하더라고요. 비행기 타고 잠깐 옆 나라에 왔을 뿐인데 모든 게 너무 달라서요. 

 

다행이네요, 진심으로 다행이에요. 저도 줄곧 여행 가고 싶다고 생각 중인데 ‘내가 지금 떠날 상황이 되나.’ 싶어서 생각만 하고 있거든요. 근데 지금 결심했어요. 다녀와야겠어요(웃음). 

다녀오세요. 마음이 그렇다면 꼭 다녀오세요(웃음). 저도 여행 당일 아침에 비행기 타러 가면서도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앨범 낸다고 돈도 다 썼는데 무슨 여행이지?’ 싶었는데 안 갔다면… 지금도 쉬었다는 느낌을 제대로 못 받고 있을지도 몰라요.

적절한 타이밍에 쉬어주는 건 꼭 필요한 일 같아요. 진희 씨에게 휴식이 절실했던 순간도 있죠. 큰 병일지도 몰라서 수술한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몸이 좀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악성일 확률이 높고 하시더라고요. 바로 대학병원으로 전원해 줘서 검사를 받았는데 심상치 않다는 거예요. 이 분야에서 가장 잘한다는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공격적으로 진료 보시고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하니까 덜컥 겁이 났어요. 얼른 적출해서 검사해봐야 한다고 해서 수술 날짜를 잡았는데 그때가 [Breathing] 녹음 사흘 전이었거든요. 정말 하기 싫었어요. 내가 큰 병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무섭고 힘든데, 녹음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연습도 안 하고 누워서 울기만 했어요. 근데 취소할 수는 없으니까 겨우 일어나서 퉁퉁 부은 눈으로 녹음실에 갔는데요. 다들 녹음 결과물이 너무 좋다는 거예요. 평소에 엄청 준비하고 연습해서 녹음한 것보다 더 좋다는 반응이었죠. 저는 모든 걸 체념하고 연주한 건데. 그래서 그럼 그냥 내자고 했어요. 그러고 발매 준비를 하는데 다행히 제 몸도 괜찮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조금만 늦게 검진 받았어도 큰 병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괜찮다는 소식을 듣기까지 두 달 동안 정말… 천국과 지옥을 오갔어요. 


마음고생 심했겠어요. 건강에 이상 신호가 생기면 그제서야 ‘좀더 몸을 아낄걸.’ 하고 생각하게 되죠. 

맞아요. 근데 쉬고 싶어도 맘대로 되지 않잖아요. 물리적인 시간도 그렇고, 아무리 자고 싶어도 악몽이 계속되면 잘 수 없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고요. 그래서 마음을 단련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만일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정신과 마음이 조금이라도 씩씩한 게 나으니까요.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하고 좋은 걸 먹어도 찾아올 것들은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요새는 그런 고민도 많이 해요. 


앞서 이야기한 생과 사 화두의 연장이로군요. 답이 나왔어요?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결국에는 체력이겠죠. 기본 체력을 쌓아놓는 게 중요해요. 큰 병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미친 사람처럼 슬퍼하고 불안해했거든요. 근데,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쇠약해지거나 병에 걸릴 수 있어요. 큰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습관을 들이려고 해요. 사소한 이야기라고 여기려 노력하다 보면 그래도 조금은 힘이 되지 않을까 싶은 거죠. 


진희 씨가 힘을 받는 존재 중 하나가 동료 뮤지션 같아요. 각별히 생각한다는 인상을 자주 받았어요. 

저는 뭐든 혼자서는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감사하게도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친구가 되어주었고, 그게 너무 큰 힘이 돼요. 객관적인 감각과 시선으로 저를 바라봐 주는 게 좋아요. 그런 걸 나눠 받았을 때의 힘이 너무너무 크거든요. 함께 작업하는 스태프나 세션들, 저는 그 사람들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들일 때 이런 음악이 나올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 게 너무 소중해요. 


최근에 용기가 되거나 힘을 받은 일이 있나요? 

3집 만들면서 너무 많은 힘을 받아서 하나만 꼽기가 어려운데(웃음)… 음… 아! 이영훈 씨 이야기를 해볼게요. 저랑 영훈 씨 사이에 미묘한 문제가 생겨서 2년 정도 안 보고 지낸 시간이 있었어요. 다퉜다기보다는 오해가 커져서 ‘안 보고 살아야겠다.’고 서로 마음을 먹었던 건데요. 


2년이나요? 너무 긴걸요. 

맞아요. 그 긴 시간 꽤 힘들었어요. 영훈 씨도 그랬겠죠. 절친한 음악 친구였는데 한순간 안 보고 지내려니까 마음이 많이 힘들더라고요. 근데 시간이 지나서 다행히 사과하고, 화해하고, 오해도 풀었어요. 3집 만들 때도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죠. 영훈 씨는 계산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뭔가를 재거나 따지지 않고, 소중하다고 느끼는 걸 더 소중하게 여겨주고 아낌없이 도와주는데요. 이번에 같이 작업하면서 ‘이런 사람이었지.’ 하고 새롭게 느끼면서 정말 고마워지더라고요. 2년이란 시간이 부끄러워지기도 했고요. 큰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꼭 남기고 싶어요. 


2년의 공백을 두고 다시 가까워지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귀한 인연이네요. 이번 호 주제어에 어울리는 음악을 한 곡 추천받고 싶어요. 잠 그리고 쉼. 떠오르는 음악 있어요? 

여행 갈 때, 혹은 밤에 혼자 무언가를 끼적일 때, 혹은 적막한 순간을 채우기 위해 틀어놓는 음악이 있는데요. 사카모토 류이치와 타에코 오누키의 [UTAU]예요. 라디오나 인터뷰에서 자주 이야기한 앨범인데, 수백 번을 들은 음악이라 이번에도 소개하고 싶어요. 이 앨범을 들으면 별다른 생각이 잘 안 끼어들어요. 음악적으로 훌륭해서일 수도 있지만, 왜인지 모르게 코드가 어떻고, 연주가 어떻고… 하는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고요. 이 앨범의 후일담을 들어보니 이들도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담으려고 많이 노력했대요. 그런 정성이 앨범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피아노와 목소리만 있는 앨범인데 제가 일본어 노랫말이 있는 음악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근데도 이 앨범을 자꾸 듣게 되는 건 언어조차도 들리지 않고 너무너무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에요. 두 사람의 호흡만을 생각하게 되죠. 


저도 오늘 밤에 들어봐야겠어요. 

UTAU(歌う)가 일본어로 ‘노래하다’, ‘지저귀다’라는 의미래요. 앨범명도 어쩜 이렇게 멋질까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을 물어보려고 했는데, 더불어 어떻게 쉴 건지도 들어보고 싶어요. 

3집 활동이 시작되면서 한 달 스케줄이 벌써 꽉 찼어요. 오늘 일정 표를 쫙 보는데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행복한데… 미치겠는 거예요(웃음). 결국 제가 다 증명해 보여야 하는 일들이니까요. 얼마 전에 모모가 아팠어서 당분간은 모모랑 같이 있는 시간을 의무적으로 만들어 두려고 해요. 꽉 채워 무리하는 한이 있어도 일주일에 이틀은 온전히 모모와 보내려고요. 아무 생각도, 걱정도 없이 모모랑 둘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시간을 만들어 두고 싶어요. 그게 저한텐 쉼이거든요. 


진희 씨, 모모를 쓰다듬을 때 정말 편해 보여요. 그 모습 카메라에 담아도 돼요? 

너무 좋죠.

[UTAU] 앨범이 재생되는 1시간 39분 동안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스무 개 곡이 흐르고 나니 자연스레 전진희 1집 [피아노와 목소리]가 떠오른다. 아름다운 소리를 잇따라 들으며 잠깐 눈을 감는다. 고운 음악 사이를 마음껏 부유하는 게 얼마나 귀한지 생각하면서 까무룩 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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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