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새우고

고소하고 고운 일

자매가 나란히 선 작은 부엌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흡사 메주 향 같아서 들여다보니, 연한 빛깔에 검은 씨눈을 가진 완두콩이 솥 가득 끓고 있었다. 한쪽에는 검은깨와 들깨로 빚은 반죽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업이 이뤄지는 동안 자매가 내어준 차를 마시며 토종 벼의 종류를 정리해놓은 글을 읽었다. 토종 벼는 크게 찰벼와 메벼로 나뉘는데, 그 안에서만 수십 개로 분류되며, 저마다 고유의 맛과 향을 지녔다고 했다. 매일 먹는 밥을 떠올렸다. 그 쌀의 종류가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궁금한 적이 있던가. 아쉽게도 없다. 그게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대신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토종’은 말 그대로 땅과 씨앗을 뜻한다. 대량 생산을 위한 유전자 변형, 장기 보존을 위한 방부제와 화학 처리를 지양하고,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품종을 전통 방식대로 일군 ‘토종 작물’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백모란, 백수련 자매는 삼 년 전부터 전남 순천에서 농사를 짓는 외할머니의 햇곡식과 전국 곳곳의 토종 작물을 공수해 잼과 간식류를 만들어왔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고, 제품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자부심과 책임감도 커진다고 말한다. 곡물을 다루는 작업은 투박하지만 정직하기 때문이다. 꼬투리와 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리고, 다시 거두어 오랜 시간 볶아내야 비로소 완성되는 준비 과정만 해도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이는 브랜드 이름을 ‘지새우고’라고 지은 이유이기도 하다. 농작물을 재배하며 지나는 숱한 밤과 절기들, 재료가 제품으로 완성되는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지새우고의 작업은 요리를 넘어 하나의 ‘태도’에 가깝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은 각성과 연대로 이어진다. 우리 작물을 생산하는 농부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일을 기꺼이 분담하여 건강한 먹을거리를 선보이는 것이다.

곡물로 만든 잼이 이렇게 부드럽고 맛있군요.

모란 첨가물이나 응고제 없이 시간의 힘으로만 졸였어요. 기존의 잼보다 단맛은 덜하지만 빵이나 크래커, 떡에 올려 담백하게 즐길 수 있어요. 잼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할머니 댁에서 온 것들이에요. 크래커를 만들 때 필요한 토종 밀과 그라놀라에 들어가는 토종 쌀은 지역 농가에서 직거래로 받아오고 있어요. 버터나 오일, 향신료처럼 외국산을 써야 한다면 우리와 뜻이 맞는 공정무역 상품을 찾아서 공수하고요. 

토종 작물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떤 점이 더 좋은가요.

수련 ‘좋다’라는 기준은 상대적인 것 같아요. 저희가 믿는 건 오래전부터 이 땅에 있던 작물들, 자생적인 힘을 갖고 환경에 적응해온 씨앗의 힘이에요. 망고나 리치도 맛있지만,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과일이 제일 맛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 체질과 환경에 잘 맞는 작물이 있으니, 그것을 보존하고 되도록 자주 사용하려는 거죠. 어릴 적엔 할머니의 식재료와 시중에서 파는 것이 모양이 달라서 이상했어요. 더 못생겨서 농사를 잘 못 지으신 건가 했거든요(웃음). 알고 보니 예전부터 내려오는 방식으로 키운 토종 작물이었던 거죠. 그 희소성과 가치를 전하고 싶어요. 

곡물 잼을 처음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수련 할머니께서 만드신 조청이 정말 맛있어요. 오래된 가마솥에 장작불을 때서 고아내는데 곡물의 진한 단맛이 살아있거든요. 이 기특한 단맛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처음에는 조청 브랜드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맛을 재현하기엔 여건이 부족해서 조청을 재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요. 보리의 싹을 틔운 엿기름을 푹 고아 만든 게 조청이라면, 곡물들을 이국적인 재료와 함께 졸여내 ‘잼’의 형태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했어요. 꿀에 재우는 방식, 앙금을 내려서 졸이는 방법, 우유와 생크림의 응고되는 성질을 이용한 밀크잼 등 레시피를 계속 연구하고 있어요. 

작업하는 모습을 보니 손이 많이 가네요. 신선하고 건강한 제품을 선보이려는 원칙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모란 재료 수확부터 손질까지 가족들의 손을 거쳐요. 할머니의 땅콩을 받은 엄마가 겉껍질을 까서 보내와요. 그걸 제가 낮은 온도에서 계속 볶아서, 알맹이가 다치지 않도록 속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요. 들깨도 마찬가지예요. 가지에서 털어내고, 물에서 돌과 이물질을 고르고, 햇볕에 말려서 볶아내요. 일련의 준비가 끝나면 비로소 제품을 만들기 시작해요. 땅콩 잼은 상온에서 반년까지 먹을 수 있지만, 나머지는 냉장 보관 상태로 세 달 안에 드시는 게 좋아요. 완두콩 잼과 단팥 잼, 양갱류는 유통기한이 짧아 따로 주문을 받고 있어요.

최근에 미술관과도 협업했다고 들었어요. 

수련 2년에 한 번씩 각국의 디자이너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디자인 포럼을 연다고 해요. 마침 그 행사가 ‘리움Leeum’에서 열렸는데, 식사와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때 참여해서 이틀 동안 다과를 제공했거든요. 외국인들의 피드백을 듣는 것도, 다른 팀들의 상차림과 팀워크를 지켜보는 과정도 모두 공부가 됐어요. 

모란 곡물 잼을 바른 크래커가 인기였지만, 어머니가 담근 매실차와 복숭아효소가 반응이 좋았어요. 시중에 나와있는 것보다 과실의 산미가 풍부해서 이색적으로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죠. 늘 당연하게 먹던 우리 가족의 음식을 누군가는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은 음식에 각별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자매에게 부엌은 어떤 모습인가요?

수련 엄마의 부엌이요. 끼니마다 다른 음식을 하시려고 노력하셨는데, 그때마다 나물들을 무쳐주셨어요. 재료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할머니의 밭에서 온 것들이었고요. 저희에게 요리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모란 저는 늘 먹는 것을 생각해요(웃음). 요즘은 입맛이 다른 남편과 함께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고 있고요. 다만 요리할 때 소금을 거의안 써요. 짭짤한 맛을 내기 위한 조미료지만, 여러 재료의 맛을 융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맛이 섞인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재료 본연의 단맛과 향을 느끼려고 하는 편이에요. 

자매가 좋아하는 엄마의 음식을 꼽는다면요?

수련 저는 역시 나물 반찬이요. 그중에서도 죽순을 좋아해요. 얼마 전에도 엄마가 죽순과 뽕잎, 토란잎으로 반찬을 해주셨는데, 저는 죽순만 골라 먹었어요(웃음).

모란 혹시 탕국 아시나요? 지방마다 요리 방식이 조금씩 달라요. 소고기를 넣어 끓이는 곳도 많지만 저희 집은 말린 홍합과 새우를 넣고 오랫동안 우려내요. 국물이 진간장 풀어놓은 색이 되는데 뜨거워도 식어도 맛있어요. 

 
 

요즘 부쩍 먹고 싶네요.좋은 재료로 정성껏 음식을 만드는 일이 체득된것 같아요. 하지만 때로는 그 일이 힘들 때도 있죠?모란 각자의 본업이있을 땐 그저 즐거웠어요. 그런데 매장을 낸 순간부터 고민이 시작됐죠.이 일로 생활을 유지하고, 사람들이 찾아오게 해야 하니 압박감이 컸어요. 우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처음부터 돈을 벌어야지 했으면, 돈이 벌리지 않을 때 목적이 사라지는 거잖아요. 저희는 그렇게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에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곁눈질하지 않고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수련 인기 있는 제품을 더 많이 만들어 외부에 알릴 것인가, 아니면 다양한 시도를 해서 제품 개발에 힘쓸 것인가. 이 고민도 화두였어요. 한번에 많은 걸 보여줄 순 없겠지만, 차곡차곡 가능성을 축적하면서 재미있는 시도를 해보기로 결론이 났어요.조만간 가게가 새 단장을 한다고 들었어요.
수련 작업실로 구한 곳이라 아무래도 손님을 위한 공간이 부족했어요.테이블을 놓고 가벼운 디저트 제품을 늘려서 좀더 많은 분들이 접할 수 도록 할 계획이에요.
모란 단골손님이 생겼는데, 주로 아이가 있는 분들이에요. 워낙 아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우르르 와서 쉽게 살 만한 과자가 있었으면 해서 고민 중이에요. 곡물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모란’과 ‘수련’, 참 고운 이름을 가졌어요.

 

모란 아빠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한문 선생님으로 퇴직하셨지만, 원래 원예 공부를 하셨거든요. 제가 태어났을 때 강진에 계셨는데, 그곳에 김영랑 시인의 생가가 있어요. 그의 작품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생각하셨대요. 

수련 큰언니는 목련이에요. 언니가 태어났을 때 아빠가 근무하던 학교 교목이 목련이었대요. 제 이름은 목련과 모란을 이을 꽃 이름을 두고 학교에서 투표를 했고요(웃음).

지새우고
서울 마포구 희우정로10길 15, 1층 111호
zsaeugo.com
010 4009 1433
화~토 11:00~19:00 (일, 월 휴무)

곡물 잼

국내산 원유, 천연 버터의 부드러운 질감에 토종 작물의 맛과 영양이 살아있는 곡물 잼. 흑임자 잼, 초코땅콩 잼, 볶은콩 잼, 완두콩 잼, 단팥 잼 1만 5천원

곡물 크래커

청주, 진주, 구례 등 우리 농가의 밀로 정성스럽게 만든 담백한 크래커. 씨앗 크래커, 우유 크래커, 유자 크래커 7천원

그라놀라

국내에서 재배된 여섯 가지 곡물에 건과일, 견과류를 유기농 원당에 버무려 만든 제품. 카카오 그라놀라, 토종쌀 그라놀라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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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오혜진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