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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았고, 우리를 살게 했던 집. 나를 거쳐 간 그 집은 어떤 얼굴로 기억될까.
세계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후 첫 번째 집은 빨간 벽돌 건물의 옥탑방이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영원히 떠돌며 살고 싶다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서울에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십 대의 방황이 내게 작가라는 직업을 갖게 할 줄이야.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지만, 모아둔 돈은 없고 수입은 넉넉지 않았기에 한 칸짜리 옥탑방, 반지하보다는 훨씬 낭만적인 보금자리였다. 그곳에서 여백이를 가족으로 맞았다. 첫눈이 펑펑 오는 날, 내 모자 속으로 쏙 들어온 작은 아기 고양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한 존재가 내게 처음 겪어보는 행복과 기쁨을, 그리고 동시에 절망과 슬픔을 주었다. 희귀한 심장병을 앓는 여백이를 간호하며 지내던 어느 날, 집주인에게 퇴거 통보를 받고 급히 집을 구해야 했다. 동물병원 병원비를 대느라 여유가 없던 터라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카페 게시글을 보고 찾아간 집이 있었다. 공사가 한창인 공원 맨 끝자락, 5층짜리 오래된 아파트였다.
나보다 더 나이를 먹은 아파트는 무척 허름했지만 그것마저 정감이 갔다. 화단에는 꽃무늬 이불이 널려 있고, 담 너머 단층짜리 작은 집 앞에는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평상에 모여 앉아 먹을거리를 다듬고 계셨다. 아기 자전거와 낡은 트럭 등이 촘촘히 세워져 있는 작은 주차장 주위로 빙 둘러싸인 꽃과 나무도 좋았다. 10년간 이 집을 본 적도 없다는 집주인은 그 어떤 수리 요구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저렴하게 월세 계약을 해주었다. 2주 동안 직접 페인트칠을 하며 집을 수리했다. 이맘때쯤 여백이가 최고로 아파 병원을 들락날락하느라 피곤과 불안에 지쳐 자주 울면서 공사를 했다. 하지만 여백이를 생각하며 힘을 냈다. 건물 틈이 아닌 큰 창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여백이와 나는 그 집에서 무척 행복했다. 어느새 연남동은 서울에서 몇 번째로 꼽는 활기차고 유명한 동네가 되었다. 집 바로 앞 공원은 매년 더욱 아름다워졌으며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새소리를 들으며 사계절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그 어떤 곳보다 지금의 내게 최고의 집이라는 것을, 사는 내내 느꼈다.
여백이와는 그 아파트에서 1년 남짓한 시간을 살았다. 혼자가 된 나는 꽤 오랫동안 큰 상실감을 겪었지만, 결국 그 슬픔의 시간을 보호해 준 곳도 그 집이었다. 매일매일의 일상에 최선을 다했다. 책을 세 권 내고,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덧 꽤 능숙한 13년 차 프리랜서 작가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을 살았다. 이사하는 날 짐을 빼고, 청소 따위 하나도 하지 않고 엉망진창으로 놔둔 채 문을 닫았다. 그리고 대문에 빨간색 스프레이로 X자를 그렸다. 이제, 이 집에는 아무도 살 수 없다. 월세로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한곳에서 살 줄은 몰랐다. 또한, 내가 그 집의 마지막 사람이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이제 연남동에서 제일 오래된 이 아파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조만간 아파트가 철거되어 빈터만 남은 공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나의 한 시절, 수없이 좌절하고 수없이 도전하던 책상 앞, 팬데믹 기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견디던 일상의 공간, 오롯이 나 스스로 1인분의 삶을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나의 집. 나의 셸터이자 나의 모든 것이던 집. 앞으로 어떤 집에 살더라도, 나는 아마 이곳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연남아파트. 이제 안녕..
하숙집, 고시원, 반지하, 원룸. 자취를 시작하고 내 공간은 대체로 한 개의 직육면체로 이루어졌다. 그 안에는 대체로 책상과 의자, 냉장고와 세탁기, 때로는 TV와 침대까지 갖춰져 있었고 그 덕에 크게 짐이 늘어날 일은 없었다. 혼자 산 14년 동안 일곱 번 이사를 했는데, 살림살이를 옮기는 데는 1톤 트럭 한 대면 충분했다.
이사를 하며 집을 선택하는 기준은 때마다 달랐다. 창밖을 내려다볼 수 있는 집, 안전한 집, 침대를 놓고도 바닥에 앉을 공간이 있는 집…. 일곱 번째 이사를 할 때는 공간이 분리된 집에 살고 싶었다. 작은 거실에 작은 방 하나가 붙어 있는, 두 개의 직육면체로 이루어진 집이었으면 했다. 당시 이직한 회사 근처로 동심원을 그리듯 수많은 집을 둘러보았고, 마침내 구의동의 한 집에 다다랐다. 창밖으로 탁 트인 경치 대신 회색 벽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처음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포근하고 마음이 놓였다.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하고 계약을 결정했다.
옵션이라고는 세탁기와 냉장고만 있는 그 집에서 텅 빈 두 개의 직육면체를 어떻게 채워갈지는 나의 몫이었다. 또 언제 이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짐을 늘려도 괜찮을까 고민했지만, 잠시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고른 것은 책장이었다. 거실 한쪽 면을 가득 채운 튼튼한 책장에 책을 넣고 와인병, 카메라, 엽서 같은 좋아하는 물건들을 진열했더니 어딘가 든든했다. 책장 맞은편에는 묵직한 서랍장을 놓았다. 동그란 보름달 모양의 조명을 두 개 사서 책장과 서랍장에 하나씩 올려두고는 형광등 대신 켜고 지냈더니 저녁이 한층 더 따뜻해졌다.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꾸미고 나니,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가까운 사람들을 자주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작은 거실에 길쭉한 책상을 놓으면 최대 여섯 명이 앉을 수 있었다. 의자가 부족해 집들이 선물로 가져온 두루마리 휴지 한 팩을 의자 삼아 앉아 있다 스르르 넘어진 일은 아직도 종종 생각나는 즐거운 추억이다. 혼자 있는 시간도 크게 외롭지 않았다. 걸어서 15분 거리인 한강공원이나 어린이대공원으로 자주 산책을 나섰고, 용마산과 아차산에도 자주 올랐다. 집에서 간단히 차려 먹는 샌드위치와 직접 내려 마시는 커피의 매력을 알게 된 것도 그 집에 살면서다. 저녁이면 주황빛 조명 아래서 책을 읽고 와인을 마시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겠다.
살림을 늘리고 마음을 줬던 그 집에서 2년도 채 살지 못했다. 결혼이라는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사하는 날 텅 빈 집을 바라보는데 예상보다 아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잠깐을 살더라도 나답게 사는 일이 얼마나 풍족함을 주는지 알게 되어 기뻤다. ʻ어디에, 얼마나 살든 지금의 나를 소홀히 대하지 않을 것.’ 그 집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시옷 자를 쓰듯 두 개의 획을 맞대어 긋는다. 그 아래로 미음 자를 적듯이 네모를 그린다. 그 주변에 색색의 꽃과 사과가 달린 나무까지 그려 넣으면 완성이다. 그림 실력이 영 별로였던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릴 일이 잘 없는 지금까지 내가 집을 그려온 방식이다. 아파트에 살던 때나 빌라 원룸에서 살던 때나 나는 이렇게 집을 그렸다. 언젠간 세모진 지붕을 얹은 한옥에서 작은 마당을 가꾸며 살기를 꿈꿔왔기 때문일까.
2019년 가을, 충남 금산의 오래된 촌집을 덜컥 샀다. 서울에 일터를 둔 사람이, 다 쓰러진 폐가를, 그것도 빚을 내어 사다니…. 주변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찼다. 저지른 나도 깜짝 놀랐으니 다른 이들의 반응이야 당연했다. 그 후 주말마다 서울과 금산을 오가며 집을 고쳤다. 어떤 날은 무너진 천장을 보수하고, 또 어떤 날은 지붕을 올리고 창을 달았다. 돌밭을 갈아 텃밭과 화단을 만들기도 했다. 해가 바뀌고 봄이 왔을 때부터는 본격적인 주말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평일엔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에만 시골에 머무는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사과 대신 사과대추나무를 심었고, 나보다 벌레를 더 많이 먹이는 작물을 키웠고, 꽃보다 잡초가 번성하는 화단을 만들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다섯 번의 사계절을 맞이하고 또 보냈다.
얼마 전, 나는 시골집 매매계약서에 다시 도장을 찍었다. 이번에는 매수인이 아니라 매도인의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금요일 밤마다 부리나케 달려가던 집을, 작물을 심고 키우며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운 텃밭을, 서툰 시골살이의 스승이 되어주신 이웃 어르신들과 마을을 완전히 떠나겠다는 의미였다. 떠날 채비를 하는 건 집 구하는 일보다 어려웠다. 집의 소유권과 함께 나의 어떤 부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차일피일 결정을 미뤘다. 시골집에 가지 못하는 주말이 점차 많아지는데도 ʻ좀 더 두고 보자.’를 반복했다. 그사이 몇 달이 훌쩍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몇 주간 비워두어 쓸쓸함과 싸늘함이 느껴지는 시골집의 문을 열며 깨달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꼽을 날들을 보낸 집, 삶이 이토록 충만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집이, 이제 다른 이에게 건너가 아름답고 충만한 시절을 만들어줄 때가 되었다는 걸. 집이 나를 돌보아주었듯 집 역시 꾸준하고 다정한 돌봄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걸. 나뭇가지를 모아 둥지를 짓는 새처럼 찬찬히 고치던 나의 시골집, 수풀집이라 이름 붙인 나의 세계, 그리고 집과 함께 보낸 시절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란 사실도. 여전히 나는 시옷과 미음으로 집을 그린다. 그 모양이 바뀌지 않는 한, 나는 또 다른 수풀집을 만날 것이다. 그 집과도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 것이다.
제목은 김초엽 작가의 《방금 떠나온 세계》를 차용하였음을 밝힌다.
에디터 황진아
글 봉현, 이새란, 김미리 일러스트 유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