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절, 다가올 시간들

라라랜드, 싱 스트리트

Movie <라라랜드>, <싱 스트리트>

Time gone by, days upcoming
지나간 시절, 다가올 시간들

한 편의 영화는 지나간 시절에 대해서, 또 한 편의 영화는 다가올 시간들에 대해서 노래한다. 지나간 시절은 대개 상념과 후회로 차 있고, 다가올 시간은 흥분과 불안으로 차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가올 시간은 지나간 시절이 될 것이다.

나는 뮤지컬을 싫어하지만, 남편은 뮤지컬을 좋아한다. 내가 뮤지컬을 싫어하는 이유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지나치게 로맨틱하기 때문이고, 남편이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유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지나치게 로맨틱하기 때문이다. 나는 로맨틱한 걸 싫어하고, 남편은 로맨틱한 걸 좋아한다. 우리는 오바마와 트럼프만큼이나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 나와 뮤지컬을 좋아하는 남편이 극장에서 <라라랜드>를 함께 보았다. 평일 조조였는데, 커다란 상영관 안이 꽉 차 있었다. 수능 시험을 끝낸 고등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온 것 같았다. 그 영화를 굳이 극장에서 본 이유는 내가 감독의 전작 <위플래쉬>를 정말 재미있게 봐서이기도 했고, 분기별로 한번 정도는 남편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라이언 고슬링도 좋아한다. 내 남편과는 미셀 오바마와 멜라니아 트럼프만큼이나 다른 스타일의 남자다. 어느 쪽이 낫다고는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지만. 취향의 문제다. 

<라라랜드>는 무명의 재즈 피아니스트인 남자와 배우 지망생인 여자가 만나 알콩달콩, 투닥투닥하며 꿈을 향해 달려가다 좌절하고, 그러다 헤어지고, 결국 꿈은 이루었으나 사랑은 잃어버린다는 내용의 뮤지컬 영화다. 중간 부분이 좀 늘어지는 감이 있었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 고교생이 들으란 듯이 코를 골며 잠을 잤지만, 배우들도 매력적이고 음악도 좋고 연출도 깔끔했다. 전체적으로 귀여운 영화였다. 그럼에도 시베리아의 설원 한가운데에서 오두막을 짓고 보드카를 홀짝이며 장총으로 곰을 잡고 도끼로 장작이나 패면서 40년째 홀로 살아가고 있는 할아버지의 마음과 (아마도) 비슷한 마음의 소유자일 나는, 이런 종류의 영화가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이란 대체 어떤 사람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런 사람과 함께 손을 잡고 극장을 나와 콩나물국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라라랜드LaLa land’는 사전적으로 꿈의 나라, 비현실적인 세계를 뜻한다고 한다. 특히 미디어 산업의 본고장 로스앤젤레스, LA와 꿈의 공장으로 불리는 할리우드를 지칭하는 단어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꿈을 품고 할리우드의 커다란 표지판을 바라보았으며 지금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손쉽게, 또는 끝까지 버텨내 축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쓰라린 눈물을 삼키며 할리우드를 등지고 고향으로 발걸음을 돌렸을 것이다. 해도 해도 안 되는 주인공 미아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 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 주니까.” 

영화 속 대사처럼, 어쩌면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잊고 있던 열정을 주인공들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만큼은 시베리아의 독거노인에 못지않은 나는 그리하여 이런 영화가 불편하다. 열정 따위는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달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열정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을 텐데. 열정은 파티에 가기 전에 마시는 샴페인 한 잔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다 결국 진탕 취해서 남의 파티에서 진상 짓이나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냉철한 현실 인식이나 주제 파악 없는 열정은 치기나 망상이나 욕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은데, 열정을 이렇게 낭만적으로 포장하면 어쩌자는 건가.

<싱 스트리트>는 <원스>와 <비긴 어게인> 등 음악 영화를 주로 만드는 존 카니의 영화다. 1980년대의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소년이 밴드를 만들고 노래를 지어 부르는 이야기다. 당시의 아일랜드는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고, 젊은이들은 일자리와 희망을 찾아 아일랜드를 떠나서 영국으로 향한다.

주인공 코너의 가정은 파탄 직전이다. 아버지는 불황에 일자리를 잃었고 엄마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집은 대출금을 갚지 못해 넘어가기 직전이다. 형제들은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부모의 다툼을 외면하려, 불안과 분노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코너는 가계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부모의 결정에 따라 학비가 싼 가톨릭계 학교로 전학을 하는데, 이 학교는 교칙이 엄격하고 학생들은 통제 불능이며 구타가 일상적인 곳이다. 그 와중에 듀란듀란이나 디페시모드 같은 밴드들이 등장해 전자음악을 연주하고, TV에서는 그들의 뮤직비디오라는 것을 틀어주어 코너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새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코너는 매일 잘 차려입고 담배를 문 채로 교문 앞에 서있는 라피나에게 반한다. 코너는 라피나와 어떻게든 연줄을 만들고 싶어 자신이 속한 밴드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으려 한다는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 때문에 별 수 없이 새 학교의 친구들을 모아 밴드를 만들고, 뮤직비디오 출연을 명목으로 라피나와 가까워진다. 

코너는 어떤 음악을 할지도 모른 채로 음악을 시작한다. 어떤 자의식도 없이. 대학도 때려치우고 방에 틀어박혀 음악만 듣고 있는 형 브랜든으로부터 주워들은 이야기와 TV에서 듀란듀란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받은 신선한 충격이 그가 만든 ‘미래파’ 밴드 ‘싱 스트리트’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그 동력은 라피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어쩌면 그것은 한 소년이 우울하고 희망 없는 현실에서 탈출하고픈 마음과 같을 것이다. 그러니 꿈은 터질 듯한 열정보다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결핍에서 오는 게 아닐까. 이 멋없고 엉망진창인 현실에서 도약해 저 멀리 별을 잡고 싶은 마음.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브랜든과 코너가 현관 앞에 등을 돌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형제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러게, 엄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나와 비슷하게 중년일 감독이 의도해서인지, 영화를 본 후에도 그 장면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가족과 가정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엄마는 마냥 행복할 수만은, 희망에 부풀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엄마에게도 살고 싶은 인생이 있을 것이다. 엄마에게도 꿈이 있고 열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몇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그녀의 인생은 의도치 않은 쪽으로 흘러와 버렸다. 이제 그녀는 그 인생을 돌이켜 보려는 것이다. 성공도 실패도 확신하지 못하는 채, 지금껏 잘못 한 선택들을 버리려는 것이다.

반대로, 아이들은 선택할 수가 없다. 그들의 인생은 자신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정된다. 그들의 부모가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따라 아이들은 그저 좇아가기만 할 뿐이다. 학교에서의 공연을 마친 코너는 라피나와 함께 할아버지의 작은 보트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기로 한다. 코너와 라피나가 탄 보트는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커다란 여객선이 지나가면서 그들의 보트는 뒤집힐 듯 위태롭게 흔들린다. 물에 흠뻑 젖은 불안한 얼굴로도 그들은 계속해서 간다. 그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그 위로 이런 가사의 노래가 깔린다. 

‘기회란 금세 왔다 사라져. 눈 깜짝할 사이에. (중략)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지 마. 시간 낭비일 뿐. 당당히 맞서고 뒤돌아보지 마. 한번 결정하면 돌아보지 마. 모든 게 무너지더라도 목표를 정했으면 끝까지 가봐야지. 그게 인생인 걸.’

이렇게 오글거리는 노래를 뮤지컬 영화의 배우들이 열창했더라면 나는 손발이 없어지는 고통을 맛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무지 저 작은 배로는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그 배를 모는 애송이들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하고 비장하고 또 겁먹은 것처럼 보여서 나는 좋았다. 

코너와 라피나는 무사히 영국에 도착했을까. 아마 못 갔을 것이다. 만에 하나 갔다 하더라도 밀입국에, 돈도, 연줄도, 아무것도 없는 그들은 패잔병처럼 집으로 돌아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상관없는 일 아닌가. 그들은 그저 그 순간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성공도 실패도 관계없이 그들이 꿀 수 있는 꿈을 꾸었을 뿐이다. 가수가 되건 모델이 되건 상관없었을 것이다. 보트로 바다를 건너겠다며 무모한 꿈을 꾸던 이들도 어느 날 나이가 들어 현관 앞 엄마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날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그제야 어렴풋이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반대로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에서 성공한 미아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세바스찬을 보며 흘린 눈물의 이유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낭만적 후회였을 것이다. 시간을 돌려 미아와 세바스찬이 매 순간 다른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미래가 달라졌을까. 그랬더라면 그들은 또 다른 것들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미아는 영원히 세바스찬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지금껏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세바스찬에게 돌아가겠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그녀 인생의 채 이루지 못한 작고 소중한 것들, 또는 그녀가 버려야 했던 소중하고 작은 것들, 지나간 시절에 대한 사랑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코너와 라피나처럼 꿈을 좇아 이 길을 밟아오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미아와 세바스찬처럼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흘리고 잃어버리고 짓밟았을까. 어린 시절 내가 품던 꿈. 이런 어른만은 되지 않겠다는 각오. 나를 좋아했고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 그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도 지나간 시절을 미워하지 않는 이유는 그 시절이 내 인생에 다채로움과 깊이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렇다. 아, 아무래도 나는 꽤나 로맨틱한 사람인 것만 같다.

라라랜드 La La Land
다미엔 차젤레ㅣ뮤지컬ㅣ미국ㅣ127분

황홀한 사랑과 순수한 희망의 경계 어딘가. 꿈을 꾸는 사람을 위한 도시, 라라랜드에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 미아가 만난다. 인생을 가장 빛나게 하는 두 사람의 만남과 눈빛. 미완성은 그렇게 완성이 된다.

싱 스트리트 Sing Street
존 카니ㅣ드라마ㅣ아일랜드, 미국, 영국ㅣ106분

전학을 간 코너는 멋진 라피나를 보고 첫눈에 사로잡히고 만다. 밴드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남긴 코너는 급하게 ‘싱 스트리트’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라피나의 마음을 열고 싶은 그는 과연 어떤 노래를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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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이영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