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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성·송다혜 — 씨드키퍼
어떤 혁명은 ‘돌봄’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색색깔의 씨앗들을 모으고, 이를 심고 키우는 기쁨을 이야기하기 위해 다소 거창한 첫 문장일 수도 있겠다. 씨드키퍼의 문혜성과 송다혜는 흙 위로 고개를 빼꼼 내민 떡잎으로부터 일상을 뒤흔들 만한 희망을 발견하고야 만다. 그러니까, 이건 작은 씨앗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곳곳에 물기를 머금은 화분들이 놓여있어요.
다혜 저희는 출근하자마자 스튜디오에서 기르고 있는 식물들에게 물부터 줘요. 화분들을 좀 둘러보고, 흙이 말라 있는지 상태를 체크해 보죠.
혜성 물 주는 시간대를 정해놓지 않으면 다른 일 때문에 미뤄지게 돼서, 아침에 여유가 있을 때 식물들 위주로 둘러봐요. 이후 책상에 앉아 다른 업무들을 하고요.
식물로 시작하는 하루라니 좋네요. 얼마 전에 씨앗 파종을 하셨다고요?
혜성 저희는 계절 상관없이 1년 내내 씨앗 파종을 하고 있는데요. 다가오는 봄을 준비하며 새로운 씨앗키트를 만든 만큼 이번 달엔 유독 분주했어요. 메인 씨앗들을 70종으로 새롭게 구성해 보았거든요. 그런데 시중에서 모종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보니, 저희가 다루는 씨앗들은 데이터 확인차 직접 길러보고 있어요. 식물들이 자라면서 어떤 모습으로 크는지도 계속 지켜봐야 하죠. 그래야 오픈 스튜디오에 방문해 주시는 분들에게 실제 식물들을 보여드리면서 설명할 수 있거든요. 주인공이 없으면 섭섭하잖아요.
이번에 심은 씨앗들은 언제쯤 자라나요?
혜성 씨앗마다 시간이 다 달라요. 발아할 때 3주 걸리는 씨앗들도 있어요. 저희가 다루는 식물들은 생명의 사이클이 조금 빠른 편인데요, 잎채소들은 진짜 빠르면 2-3일 안에도 발아해서 금방금방 크는 편이에요. 보통은 50일이면 다 수확할 수 있을 만큼 자라나요. (화분을 가리키며) 저기 버터헤드레터스 보이죠? 저건 자라자마자 그때그때 잎을 수확해서 먹기도 하거든요.
(뒤를 돌아보며) 우와, 매번 낱장으로만 봤는데 이런 모습으로 피어나는군요. 너무 예뻐요. 꽃 같기도 하고요. 떼어 먹기 좀 아까울 것 같아요.
혜성 유럽형 상추인데 식감이 정말 부드러워요.
다혜 키우는 동안 애정이 생기니까 ‘어떻게 먹냐.’며 머뭇거리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어차피 저대로 놔두면 고루 건강하게 자라지 못해서 제때 수확해야 해요. 머리카락처럼 주기적으로 다듬어 줘야 하죠. 그래야 또 새로운 잎이 자라나거든요.
직장에서 동료로 만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들었어요.
다혜 혜성 씨랑은 9년 전쯤 회사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부터 쭉 친구처럼 편히 지냈어요. 몇 년 전 혜성 씨가 우리 집과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와서 더 자주 만나게 되었고요. 그때 혜성 씨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요, 식물 선반을 만들어 놓고 이것저것 키우더라고요. 꽃집에서 산 화분 말고도 씨앗도 심어가면서 꽤 본격적으로 식물 생활을 하고 있었죠. 그걸 구경하다 씨앗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내친김에 하나 받아 왔죠.
식물 이야기부터 나누느라 정작 두 분 소개를 못 들었네요(웃음). 함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역할은 어떻게 분담했나요?
다혜 저는 씨드키퍼의 전반적인 브랜드 디렉팅을 맡고 있습니다.
혜성 저는 씨앗 큐레이션과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고 있어요.
혹시 그때 어떤 식물의 씨앗을 주었나요? 키우기 쉬운 식물이었어요?
다혜 제 기억에는 와일드 루꼴라였던 거 같아요.
혜성 아마 키우기 쉽진 않았을 거예요. 와일드 루꼴라 씨앗이 정말 작거든요. 씨앗이 작으면 새싹도 작아서, 섬세한 관찰이 필요해요. 저도 씨앗을 키우고는 있었지만, 대번에 쉬운지 어려운지 구분할 정도로 지식이 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궁금한 마음으로 실험해 보던 시기였죠.
씨앗이 크면 상대적으로 키우기가 쉬운가요?
혜성 음, 모든 식물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큰 씨앗은 작은 씨앗에 비해 영양분도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어, 초반에 자기 힘으로 잘 자라날 수 있어요.
다혜 어차피 처음이니까 어려웠는지, 쉬운지조차 모르는 채로 키우기 시작했어요. 씨앗은 싹 틔우는 것 자체가 첫 번째 고비나 다름없거든요. 근데, 싹이 난 거예요. 인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때 웃자람도 되게 심했어요. 웃자람은 빛이 모자라면 줄기만 길어지는 현상이에요.
혜성 줄기만 너무 길어지면 쓰러지거든요. 맥아리가 없어져요.
다혜 저희 집에 빛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 아니어서, 애가 묘하게 힘이 없던 거 같긴 한데요. 그땐 그런 것도 모르고 마냥 신났어요. ‘되게 잘 자란다!’ 하고요.
첫 시도에 싹을 틔우다니, 식물 키우는 일에 소질이 있었나 봐요.
다혜 저희 집에도 화분이 몇 개 있긴 했지만, 씨앗부터 키워본 건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어요. 그때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쉬어갈 때라 마음이 조금 힘들던 시기였는데요. 정성을 쏟은 식물이 싹을 틔우는 걸 보니 기분이 되게 묘했어요. 무언가 회복되는 것만 같았달까요? 제가 원래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편인데 눈이 저절로 떠지더라고요. 얼마나 자랐나 궁금해서요.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자기 효능감도 느꼈고요. 그런 보람찬 기분은 또 처음이라, 제가 느낀 감정을 더 많은 사람들이랑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혜성 씨를 설득하기 시작했죠. 혜성 씨가 식물 관련한 쇼룸을 하나 열고 싶어 했거든요. 내친김에 우리만의 제품을 만들어 보기로 했죠.
씨앗 하나가 두 분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었네요.
혜성 이름이 왜 씨드키퍼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희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이 된 브랜드이고, 씨앗을 통해서 더욱 많은 식물을 돌보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른다’라는 의미의 ‘Keep’을 담게 되었어요. 전하고 싶은 게 확실하다 보니 별다른 고민 없이, 재미있게 이름을 지었죠.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일과 삶의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혜성 저는 원래 일과 삶이 완벽하게 분리된 사람이었어요. 일을 하며 원동력을 찾기보단 취미나 관심사를 통해 동기를 얻는 편이었어요. 나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살았는데도, 제겐 그저 생활을 이어 나가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죠. 지금은 다혜 씨랑 같이 씨드키퍼를 하면서 좋은 쪽으로 일과 삶이 합쳐졌어요. 일을 통해 성장하고 싶어졌다는 것이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점이에요. 늘 재미있는 걸 찾아다니면서도 마음 한편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은 의구심이 있었거든요. 매번 뭔가 잃어버린 것만 같았고, 이렇게 하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마음을 위안 삼아 지냈는데요. 지금은 비로소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트랙에 안착한 느낌이 들어요.
혜성 씨가 원하는 삶의 방향은 뭐였어요?
혜성 저는 농부가 되고 싶었거든요. 어떤 직업적인 걸 꿈꾸기보단, 퍼머컬처Permaculture 같은 영속 농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너른 땅과 그걸 일구며 살아가는 삶을 상상하곤 했어요.
다혜 씨는 어땠어요?
다혜 저는 일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퇴사 전에도 흥미로운 일을 하긴 했지만 열심히 준비해도 아웃풋으로 이어지진 않았거든요. 씨를 뿌려도 물도 못 주게 막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고, 뿌린 만큼 거둘 수 있어서 만족감이 커요.
직장 동료 시절 특별히 합을 맞춰보지 않았음에도 두 분의 호흡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다혜 저희가 종종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저희 둘은 취향은 같아도 성향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더 퍼즐처럼 맞춰지는 기분이에요. 제가 작은 것에 몰입할 때 혜성 씨가 큰 그림을 봐줘요. 또 반대로 제가 전반적인 아웃풋을 챙길 때 혜성 씨가 섬세하게 챙겨주고요. 그런 공수 전환이 잘되는 것 같아요.
혜성 그리고 둘 다 사람한테 관심이 많아요. 다만 다혜 씨는 시선을 ‘사람’들에게 돌리고, 저는 저란 사람을 비롯한 개개인의 내면이 조금 더 궁금해요. 그런 점에 있어서 다혜 씨가 제 스승이기도 한 게,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대중의 시선을 조금 더 생각해 보거든요. 제가 글을 썼는데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에만 머무르면 읽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을 거 아니에요. 그걸 짚어주고 보완해서 씨드키퍼만의 메시지가 되도록 매만지죠.
다혜 저는 백지가 두려운 사람이거든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게 다소 머뭇거려지는데 혜성 씨는 일필휘지로 적는 편이에요.
혜성 시작은 재미있는데, 항상 마무리가 어렵더라고요. 그 부분에 늘 고민이 있었는데, 다혜 씨하고 같이 할 땐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주죠.
완벽한 티키타카네요. “한정된 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자기만의 정원, 자기만의 밭을 꾸미는 것의 가능성을 함께 전합니다.”는 문구로 씨드키퍼를 소개하고 있죠. 두 분께선 나만의 너른 땅이 생긴다면 무엇을 일구고 키우고 싶으셨어요?
혜성 아까도 퍼머컬처를 언급했는데, 자연이 알아서 자기 생태계를 잡아서 성장하게끔 하는 게 핵심이거든요. 너른 땅이 생기면 그런 환경을 조성하고 싶었어요. 정형화된 밭이 아니라, 푸드 포레스트처럼 과실수 위주로 심어서 수확하는 방향으로요. 해외에선 이 시스템이 되게 잘되어 있거든요.
다혜 큰 밭이 아니더라도 내 집 앞에 자그마한 텃밭이라도 생긴다면 그 개념을 꼭 도입해 보고 싶었어요. 이걸 저희 제품에도 적용해 보려 했는데요, 혹시 ‘동반 식물’이란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동반 식물이요?
혜성 두 개 이상의 작물이 함께 자랄 때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이 덜 개입해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어우러지며 자라기 때문에 생태 텃밭에서는 이 원리를 많이 사용해요. 이를테면 마리골드처럼 살충 성분이 있는 꽃들을 채소 사이사이에 심어둔다든지, 해충들이 부추나 양파에서 풍기는 매운 향을 기피하니 벌레를 잘 먹는 식물들 곁에 배치하기도 해요. 그런 상생하는 풍경을 만들고 싶어서 한 화분에 두 식물을 키울 수 있도록 구성해 보았어요. 그 상호작용을 경험하고 나면 또 다른 식물을 키울 때나 자기 삶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예요.
씨앗을 잘 키워내려면 어떤 환경을 조성해야 해요?
혜성 씨앗은 되게 과학적이에요. 기본 원리만 알면 대부분 발아시킬 수 있죠. 물과 공기와 빛만 있으면 돼요. 씨앗은요, 시계태엽과도 같아요. 잘 피어나려면 수분에 노출되어 있어야 하는데 물이 껍데기를 뚫고 안으로 침투하면 그때부터 톱니바퀴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서 유근이라고 하는 어린뿌리가 나오는 거라서 물이 마르지 않게끔 관리를 해줘야 하죠.
이렇게만 들으면 되게 간단한데(웃음)….
혜성 가장 중요한 건 인내예요. 싹을 틔우는 데 한 달 이상 걸리는 씨앗도 있는데, 그때까지 모든 조건이 적당히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게 어렵긴 하죠. 잎이 나오는 초기 단계쯤엔 빛을 충분히 보여줘야 해요. 냉해를 입지 않기 위해선 적당한 온도도 유지해야 하고요. 식물이 뿌리를 내기까지만 신경을 써주면 통통한 줄기들이 자랄 거예요. 그런 스테이지마다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죠. 나머지는 식물의 몫이에요.
2년 동안 선보인 1세대 씨앗키트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키트를 꾸렸다고 했지요.
다혜 큰 틀은 변하지 않았는데요,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느끼던 아쉬운 부분을 보완하려 했어요. 원래 기존 제품에 스포이드가 포함돼 있었어요. 사람들이 씨앗에 너무 많이 물을 주지 않게끔 가이드를 마련하고 싶었거든요. 다른 패키지는 모두 친환경 재질이라 재활용이 가능한데, 스포이드가 플라스틱이라 아쉬운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이번엔 과감히 빼버렸죠. 대신 핀셋을 넣었어요. 씨앗을 섬세하게 심을 수도 있고 줄기나 잎을 제거할 때도 유용해요. 심지어 벌레도 잡을 수 있고요.
거참, 조그만 게 기특하네요.
다혜 그 외에도 저희가 씨드키퍼에서 중점으로 두고 있는 게 씨앗 큐레이션이에요. 씨앗키트 테마를 정한 뒤 거기에 맞는 식물들을 골라 함께 키울 수 있게끔 했는데요. 리뉴얼을 하면서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는 씨앗들 위주로 구성을 해봤어요. 이전엔 성장할 때 편차가 큰 식물들도 있다 보니 더욱 신경 써서 관리해야 했는데, 처음 씨앗을 키우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가감했죠.
사실 저도 씨앗 키우기에 늘 관심이 있었는데, 엄청난 식물 킬러이다 보니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거든요.
다혜 맞아요, 아마 씨드키퍼를 처음 접한 사람들도 다들 그러실 거예요. 저희를 찾아오시는 분들은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초보인 분들도 쉽게 접근하실 수 있게끔 최소 단위의 씨앗키트도 함께 마련했어요. 여기엔 피트 펠릿과 씨앗만 들어 있는데요. 피트 펠릿은 이끼를 부식시켜 만든 피트모스를 압축한 배양토예요. 처음엔 이 작은 흙만 있어도 발아가 가능하거든요. 망이 감싸고 있는데 흙에서 생분해가 되기 때문에 이 상태 그대로 씨앗을 심어도 괜찮아요.
인큐베이터 같은 거네요?
다혜 정확해요. 미네랄 페이퍼로 만든 종이 트레이도 같이 넣었는데요. 돌을 원료로 한 종이라서 물에 안 젖어요. 몇 번이고 재사용도 가능하고요. 만져 보실래요?
우와, 엄청 보들보들해요.
다혜 모서리를 접으면 접시처럼 사용할 수 있거든요. 여기에 피트펠릿을 올리고 물에 불려둔 다음에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임시 화분이 되어줄 수 있게끔 고안을 해봤어요. 저희는 다 재활용이나 재사용이 가능한 소재를 활용하려고 해요. 제품을 사고 나면 포장지는 버리게 되잖아요. 그게 너무 아까워서 충분히 사용한 뒤에 버릴 때도 해가 되지 않는 재료들로 구성하려고 해요. 조금 더 환경에 도움 되는 방향이 무엇이 있을까 하다가 낭비될 만한 건 과감하게 빼버리고 합칠 만한 건 합치는 방향으로 기획을 잡고 있어요. 더 줄일 건 없을까 매번 고민해요.
기후위기를 서서히 체감하고 있긴 하지만, 눈앞에 주어진 하루들을 살아내기 바빠서 그 문제를 자주 잊게 되기도 하지요. 씨드키퍼는 식물들과 각별한 사이이기도 하니 이에 대해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혜성 식물을 키우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날씨를 더 섬세하게 느끼게 되었다는 거예요. 예전엔 그냥 더우면 덥고 추우면 추운가 보다 했는데, 이젠 절기나 주마다 날씨를 체크해요. ‘작년 지금은 어땠지?’ 찾아보게 되고요. 마땅히 추워야 하는 날씨에 안 추우면 걱정이 되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날씨여도 식물이 잘 자랄 수만 있다면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조금 더 예민해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더 고민하게 되고 그만큼 책임감도 생겼어요.
그렇다면 개인 차원에서 하고 있는 노력은요?
다혜 씨드키퍼의 패키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후부터 일상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어요. 얼마 전에 쓰레기 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대부분 건축 폐기물이나 플라스틱 같은 거였는데, 그걸 보고 나니 분리배출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배달 용기를 깨끗이 씻고 나서도 기름기가 남아 있으면 일반 쓰레기로 버리고 끝냈는데, 요즘에는 악착같이 씻고 있어요. 모두가 여기로 현장 학습을 갔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거든요. 이론으로 접하는 거랑 다르게 체감이 확 되더라고요.
씨드키퍼가 브랜드 차원에서 주요하게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돌봄’이잖아요. 어쩌면 환경을 바꾸는 일은 일상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내가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고, 무엇을 썼는지부터 점검하는 일이요.
혜성 맞아요. 저희가 예전에 ‘돌봄’이라는 키워드로 대화의 장을 마련한 적이 있어요. 저희는 식물을 키우는 일이 어린아이를 키우는 일과 정말 비슷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이전에 지인 중 엄마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분과 ‘레터 투 레터’라는 이름의 편지를 주고받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육아하면서 느끼는 고민을 편지로 써서 건네주시면, 저희는 식물을 키우면서 느끼는 감상을 답으로 보냈거든요. 그 과정을 통해 사람 간의 관계에서 느끼는 고민을 식물에 덧대어서 생각해 보면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프로젝트를 조금 더 확장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모인 사람들은 모두 ‘나를 돌보는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서로 일상에서 느낀 경험을 나누면서 무언가 차오르는 기분을 느꼈죠.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가 있어요?
다혜 어떤 신청자분께서 이렇게 이야기해야 하는 자리였는지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괜찮으니 듣고만 가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정작 자리가 끝나고 나니 가장 기억에 남은 이야기는 그분이 중간중간 툭툭 던져주신 말이었어요. 이를테면 ‘나를 돌보려면 자신을 먼저 잘 알아야 한다.’ 같은 이야기요. 되게 간단한데도 그날의 핵심을 짚은 문장처럼 느껴졌어요.
혜성 그분께서,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한테 “어떤 게 좋냐?”고 물을 때마다 대부분 “다 좋아요.”라고 이야기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건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좋다고 이야기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말을 해주셨는데, 많은 분께서 공감하셨어요.
다혜 그런 대화가 오가고 난 뒤 자리를 정리하다가 혜성 씨가 “살아 있는 기분이야.”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만큼 꼭 필요한 시간이었죠.
저도 홈페이지에 올라온 그날의 녹취록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그 프로젝트가 씨드키퍼가 하는 씨앗 큐레이션과 되게 닮았더라고요. 한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의 무언가를 피워내고 있는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어요.
혜성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조만간 다시 자리를 만들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다혜 저희는 너무 좋았는데, 다른 분들도 좋아할지 걱정이 되었거든요. 계속 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네요.
다음에 꼭 저 좀 초대해 주세요(웃음). 씨드키퍼의 첫 시작은 펀딩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때 후원해 주신 분들끼리 씨앗 일기를 공유하기도 했지요.
혜성 맞아요. 그때도 저희가 씨앗키트를 처음으로 선보이면서 공감해 주실 분들이 계실까 고민을 했는데요. 그렇게 씨앗을 키우며 쌓아온 좋은 시간을 이야기해 주시니 이 일에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라운드테이블도 그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겠죠. 어딘가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과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하고 난 뒤 동력을 얻었어요. 사전에 공유해 주신 인터뷰 질문지에 씨드키퍼가 ‘누구를 위한 걸까?’, ‘왜 해야 하는 걸까?’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저희는 결국 돌보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좁은 의미로는 식물을 돌보는 사람들이겠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돌보고, 삶을 돌보고, 공동체와 세상을 돌보는 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꾸려나가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해요.
무언가의 성장을 느긋하게 기다리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씨앗을 돌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다혜 이 질문이 저희에겐 제일 어려웠어요. 이걸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싶었거든요.
혜성 어제 다혜 씨가 그 이야기 해줬잖아요. “저마다 다른 속도로 자라는 걸 보면서,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요. 새벽 배송과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식물은 유유히 성장하죠. 그건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요. 영양제를 준다고 해도 식물은 자기만의 리듬과 속도가 있기 때문에 오늘 심고 내일 깨어나는 걸 요구하는 건 무리이기도 해요. 그런 식물과 함께 살기 위해선 한발 물러서서 기다려야만 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적당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게 돼요.
지긋함은 모두에게 필요한 일 같아요.
혜성 저희끼리 가드닝이 인간성 기르기 좋은 활동이라고 말하곤 해요(웃음). 식물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으니까 가만히 지켜보게 되거든요. 말을 해주지도 않으니 어떤 현상을 관찰하면서 끊임없이 사유해야 하고요. 좋은 훈련인 거 같아요.
다혜 식물이 가지고 있는 사이클을 인간의 삶에 덧대어 보면 어지러웠던 일들이 명쾌하게 정리가 되곤 해요. 로메인과 페퍼민트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잖아요. 식물을 키우다 보면 그것 자체로 존중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죠. 이건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지혜 같아요. 제가 처음 씨앗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행복했던 것처럼 사람들도 이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호가 출간되는 시점이 4월일 텐데요. 4월 5일은 식목일이기도 하죠. 올해 식목일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면 좋을까요?
혜성 모두들 저마다 자연 속에서 느낀 크고 작은 경험이 있을 텐데요. 이를테면 집 앞 장미나무에 얽힌 추억이나 부모님과 주말 텃밭을 가꾸던 기억 같은 거요. 만약 없다고 해도 씨드키퍼를 통해 그런 경험들이 누적된다면 자연스레 곁에 있는 것들을 돌아보고 돌보게 될 거예요.
다혜 예전에는 식목일마다 나무를 심었잖아요. 민둥산을 나무로 채워야 한다고 외쳤는데, 그런 것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해요.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걸 지켜주고 싶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고, 식물도 동물도요. 작은 식물에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애정이 자라나지 않을까요? 씨드키퍼가 그 시작이 되었으면 해요.
에디터 오은재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