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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섯 번째 집에 살고 있다
지금,
여기가 우리 집
우리는 다섯 번째 집에 살고 있다. 결혼한 지 7년 차니, 한집에 길어야 2년, 짧으면 고작 몇 개월만 살고 이사를 했다. 물론 가능하면 한집에 오래 살고 싶었다. 아이의 키를 눈치 보지 않고 벽에 기록하고, 나이 들었을 때 그것들을 보면서 추억하는 그런 집이 갖고 싶었다. 그렇지만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움직여야 했다. 새로운 집을 만나면, 오래 살 수 있는 곳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집으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 그 집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집은 여전히 부의 중요한 척도가 되곤 한다. 어느 동네에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 어떤 학군에 속해 있는지, 또 임대아파트인지 아닌지에 따라 놀이터를 같이 쓰느냐 마느냐 하는 집에 대한 낯 뜨거운 부의 격차가 존재하는 나라. 부동산으로 돈이 돈을 벌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값 상승으로 버는 돈이 여전히 더 많은 나라.
나도 정말 내 집이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한번은 벽에 못질 한 번 하지 않고 곱게 지냈던 첫 번째 집의 집주인이 멀쩡한 거실 마루의 색이 변질되었으니 보수할 돈을 내고 이사를 하라고 했을 때였고, 또 한 번은 세 번째 집주인이 우리가 이사 온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돈이 급해서 건물을 팔게 되었으니 나가 달라고 했을 때였다. 좋은 집주인을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고 싶었다.
그래서 만났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우리 소유의 집은 신영동에 있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오래된 작은 빌라였다. 바닥도 방문도 싱크대도 모든 것이 너덜너덜했던 집이었는데도 뒤편으로는 백사실 계곡이 있고 도심에서 비교적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라 정말 살고 싶던 곳이었다.
어릴 때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인테리어 잡지 보는 것을 좋아했고,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모서리 부분을 접어놓았다. 종종 아파트 분양 때문에 부모님을 따라간 모델하우스는 감동의 도가니였고, 그 당시 가장 애청하던 방송 프로그램은 집을 리모델링해주는 <러브하우스>였다. 이런 관심사 덕분에 집의 페인트칠부터 문고리까지 하나하나 을지로에서 발품을 팔아서 집을 보수했다. 내 손으로 집을 고치고 꾸미는 것에 대한 로망을 실현할 수 있었던 집이었다.
벽과 몰딩은 모두 하얗게 만들고, 바닥은 강화마루를 깔았다. 싱크대는 상부장은 없애고 나무 선반을 달고 하부장은 가장 저렴했던 흰색 싱크대로 교체했다. 주방과 욕실은 흰색 타일로 마무리하고, 모든 조명은 그동안 모아 놓았던 조명으로 하나씩 바꿔 달았다. 무늬목으로 된 붙받이장을 방에 달고, 동대문에서 산 원단으로 커튼을 만들어 달았다.
그 집에서 시호를 낳았고, 러스티와 시호가 처음 만났다. 젖을 물리고, 혼자 온종일 아이를 보다가 아이를 안고 베란다에 서서 남편이 언제 오나 기다렸다. 우리의 손이 닿은 그곳에서 아이는 뒤집기를 했고, 온갖 것을 입에 넣었다. 겨우겨우 아이를 재우고 나면 부엌 한쪽에 서서 허겁지겁 밥을 먹었고, 밤이 되면 또 그 시간이 아까워서 컴퓨터를 켜고 그날을 기록했다.
오래오래 살고 싶었던 집이었는데, 남편이 이직을 하는 바람에 출퇴근이 왕복 4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늘 아이가 잠이 들면 집에 오고, 잠이 깨면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결국 남편 회사 근처에 다시 세를 얻어서 이사를 갔다.
어릴 때는 참 이사를 많이 다녔다. 세 자매가 있는 집이었다. 한방에서 언니들은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다. 초등학교 때도 이사를 했고, 중학교 때도 이사를 다녔다. 그래서인지 한집에서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 와 아이를 키워보니 그게 마음처럼 되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남편 회사에서 가까운 상가 주택 옥상에서 살다가 또 다시 아파트에 잠시 살았다. 그러다가 제주 이주를 결심하고 내려오게 되었다. 우리가 제주에 내려왔을 때는, 제주의 부동산이 가히 최정점일 때였다. 살 집을 알아보니, 터무니없이 비쌌고, 아주 시골집도 몇 억을 호가했다.
“서울에도 그렇게 많은 집 중에서 우리 집이 없었는데, 여기에도 없네.” 집을 알아보다가 남편과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왕 제주에 내려온 것, 앞으로의 삶이 어떨지 모르니, 1년 계약으로 살아보자는 심정으로 연세로 집을 구했다. 오래된 목조주택이었다. 벽에 틈이 많아 벌레가 잘 들어오는 집이었고, 마당은 전혀 정돈되지 않아 잡초가 수북했다. 집을 계약하고 짐을 들여오고, 열심히 쓸고 닦았더니 나쁘지 않았다. 서까래가 있는 천장, 화목난로가 있는 거실이 운치 있고 마음에 들었다. 몇 년간 함께 해온 우리의 짐들, 가구가 자리를 잡으니, 그 또한 정감 가는 그런 집이었다.
내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예전에는 마냥 깔끔하게 정돈하고 싶고, 예쁜 가구와 소품들을 가지런하게 놓은 그런 집이고 싶었다. 이왕이면 더 멋지고 깔끔한 우리 집을 갖고 싶었다. 지금은 꼭 그 물건이, 공간이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이 웃고 떠드는 곳, 음악 하나 틀어 놓고 우리 모두 춤을 출 수 있는 곳, 작은 상 하나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밖에 나가면 생각나고 들어오고 싶은 그런 곳. 내게는 이제 집이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우리는 행여나 헐값에 나온 곳이 없을까, 부동산을 기웃거리지만, 더 이상 조급해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우리 집이고, 다음 집도 우리 집일테니깐.
글·사진 백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