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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유메, 파리 박희수, 밴쿠버 임미르
유메ㅡ리빙 크리에이터
일본으로 인사를 건네게 되어 반가워요. 한국 독자를 위해 간단하게 소개해 주실래요?
안녕하세요. 유메라고 해요. 일본식 식기 판매와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 제작 일을 한 경험이 있고, 현재는 일상과 집 꾸미기, 집에서의 삶을 SNS에 기록하며 지내고 있어요.
현재 어떤 가족 구성으로 생활하고 계신가요?
남편과 초등학생 딸, 이렇게 세 명이 함께 살고 있어요.
오사카와 교토의 중간쯤에 거주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그 지역만의 분위기는 어때요?
오사카와 교토 중심가 모두에 접근하기 좋은 신흥 주택지로, ‘이런 동네라면 아이 키우기 좋고 살기 편하겠다’는 느낌이 드는 동네예요. 실제로 자녀가 있는 가정이 많아요. 넓고 잘 정비된 공원이 있고, 아이 키우는 가정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상업 시설도 모여 있고요. 아이들이 뛰어노는 동안 어른들은 아이들을 지켜보며, 안전하고 밝은 분위기를 느낀답니다.
현재 거주 중인 집의 구조와 공간에 대해 알려주세요.
약 30년 된 2층 구조의 3LDK 주택이에요. 이사하면서 1층을 중심으로 리노베이션을 했고요. 1층은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이고, 2층에는 침실과 옷을 보관하는 다다미방이 있어요.
‘3LDK’라는 용어가 한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인데요. 각 방 기능에 대한 줄임말인 거죠?
맞아요. 맨 앞의 숫자는 침실이나 서재, 다다미방처럼 독립된 방의 개수를 나타내고, L은 거실Living Room, D는 식당Dining Room, K는 주방Kitchen을 의미해요. 3LDK는 거실·식당·주방 공간 외에 3개의 방이 있는 평면을 가리켜요. 일본에서는 이런 표기가 일반적이라, 부동산 정보나 집 구조를 설명할 때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돼요.
일본의 다다미방은 보통 어떤 역할을 하는 공간이에요?
다다미는 ‘이구사’라는 풀로 만들어 나무 바닥보다 부드러워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어요. 다다미 위에 누워 쉬거나, 이불을 깔아 손님 침실로 사용하는 등, 현대에서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돼요. 예전에는 바닥이 다다미인 것뿐만 아니라, 벽 한쪽의 장식 공간인 ‘토코노마床の間’나 문틀 역할을 하는 ‘카모이鴨居’ 같은 전통 요소가 있어야 다다미방이라고 불렀지만, 현대에는 바닥만 다다미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서양식 구조여도 다다미방이라고 해요.
유메 씨 집에서는 다다미방을 어떻게 활용하나요?
저희 집에서는 거실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다다미 외의 전통 요소는 없앴어요. 현재는 아이 장난감 등을 보관하고, 아이가 놀거나 작업하는 공간으로 사용해요. 거실의 연장처럼 가족이 편히 쉬는 곳으로도 활용하고 있어요.
이 집을 처음 보러 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었어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복층 구조, 천장이 트인 공간이었어요. 집에 들어서는 순간 탁 트인 개방감이 느껴져서 기분이 정말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집을 볼 때 채광과 습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지내려면 햇빛이 충분히 들어야 하고, 적절한 습도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느끼거든요. 아무리 구조가 마음에 들어도, 어둡고 습한 공간에 있으면 기분이 가라앉기 때문에 창은 가능하면 큰 게 좋아요. 그래서 햇빛과 습도가 잘 확보된 이 집이 마음에 들어 선택하게 되었죠.
지은 지 30년 된 주택을 개조해 새롭게 꾸미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방향으로 공간을 바꿨나요?
중고 주택 특유의 요소는 최대한 살리면서, 좋아하는 인테리어가 잘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현대 일본에서는 장식이 거의 없는 심플한 디자인과 콘크리트 느낌의 인더스트리얼하거나 현대적인 분위기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예전 중고 주택에는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정교한 디자인과 나무를 중심으로 한 따뜻한 집이 많았죠. 저희 집에서는 계단 난간의 독특한 디자인이나 거실로 이어지는 아치형 문 같은 요소가 그런 예라고 생각해요. 저희 부부 모두 오래된 물건을 좋아해서 1960-70년대 일본의 공간을 참고해 개조했어요.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꼭 남기고 싶었던 요소가 있었나요?
거실의 아치형 문과 계단이요. 중고 주택만의 독특한 디자인과 시간이 만들어낸 오래된 흔적이 느껴져서 허물고 새로 만드는 게 아깝더라고요.
일본에서는 오래된 집을 손보며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인가요?
일본 주택은 목조가 많고, 건축 연도별로 내진 기준이 달라서 오래된 집은 큰 지진을 견디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허들이 높은 편이죠. 하지만 최근 인구 감소와 목재 등 자원 비용 상승을 고려하면, 기존 주택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필요한 부분만 손보는 방식은 자신만의 삶을 꾸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일본 집은 목조가 많다고 하셨는데, 목조 주택만의 장단점이 있다면요?
단점은 나무가 습기에 따라 수축하거나 휘어져서 다루기 어렵다는 점이에요. 반대로 장점은 습기를 흡수하고 집 안에 자연스러운 틈을 만들어 바람이 잘 통한다는 점이라 일본의 습한 기후에는 오히려 적합하죠.
일본에서는 집을 어떻게 인식하는 편일까요? 한국에서는 집을 자산으로 보는 시각이 강한 편이거든요.
일본에서도 물론 적지 않아요. 조상이나 조부모의 집을 자산으로 관리하고 지키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특히 지방에서는 이런 의미가 점점 약해지고, 집을 갖는다는 것을 가족과 자기 삶의 기반을 만드는 출발점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저 역시 집을 사고 직접 개조하면서,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더욱 분명해졌거든요. 집은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게 하고, 그 고민을 실천으로 옮기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유메 씨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은 어떤 모습이에요?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오랜 시간의 흔적이 쌓여가는 것들과 함께하며 가족과 신뢰 관계를 만들어가는 삶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생활에 맞는 편리한 물건이 좋고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 집에 살면서 점점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깨달은 건, 판매자나 제작자가 구매자를 겨냥해 만든 편리한 물건보다 의도치 않게 시간이 지나면서 생긴 모양이나 대충 만들어진 것, 원래 팔 생각이 없던 것 같은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다는 거예요.
시간이 흐르며 집과 사람, 물건이 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세요?
시간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오랜 시간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질감이라고 생각해서 소중히 여기고 있어요. 집에는 가족과 함께한 흔적도 쌓이기 때문에, 우리만의 만족감을 더해주는 느낌이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애정이 깊어지는 것도 있는데, 식물이 특히 그래요. 날마다 자라며 돌보는 방식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니까요. 특히 필로덴드론 셀로움은 함께한 지 3년 정도 되었는데요. 잎이 부드럽고 섬세해서 돌보는 데 시간이 많이 들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그만큼 애착이 생기고 더 귀엽게 느껴져요. 인테리어 소품은 원래 오래된 것이 많아서 ‘함께 변해간다’는 느낌은 적지만, 식물은 살아 있다는 느낌 덕분에 애정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구성원인 만큼, 유메 씨의 손길이 많이 닿을 수밖에 없겠어요.
맞아요. 이 집에서는 제 가치관이 곳곳에 드러나요. 가구와 오브제에서도 취향이 분명하게 느껴지죠. 어릴 적 집 안 깊숙한 수납장에 가족이 쓰던 물건이나 잡동사니가 가득했는데, 심심할 때마다 꺼내어 ‘왜 여기에 있을까?’를 상상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빈티지 물건을 볼 때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껴요. 자잘한 물건이 많아서 생기는 약간은 잡다한 공기가 이 집다운 분위기를 만든다고도 생각해요. 가구나 오브제를 고를 때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유리처럼 인공적인 분위기의 무기적인 소재와 나무, 마, 라탄처럼 자연에서 온 유기적인 소재를 골고루 섞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고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이유가 있어요?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이나 커뮤니티 등에서도 한쪽으로 치우치면 전체적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저 자신이 편하지 않거든요. 제 안에도 다양한 면과 여러 취향이 있어서, 어떤 분위기의 저에게도 잘 어울리고, 질리지 않도록 균형 잡힌 모습을 갖는 게 목표예요.
집에서 보이는 주변 풍경도 소개해 주세요.
주변은 일반적인 신흥 주택지지만, 저희 집 바로 옆만 공터로 남아 있어 나무와 자생 식물이 자라고 있어요. 날이 따뜻해지면 새들이 자주 그 공터로 모여들어요. 다양한 식물들 사이로 큰 밤나무가 있고, 새들이 자주 그 나무에 앉아 있어요. 작은 새부터 중간 크기의 새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계절에 따라 찾아오는 새가 달라 울음소리만으로도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답니다. 창밖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다 보면, 잠시 마음을 고르고 잠깐 멈춰 숨을 돌리게 돼요. 여름에는 무성한 녹음이 강한 햇볕을 가려 실내를 시원하게 해주고, 겨울에는 잎이 모두 떨어져 햇빛이 방 안으로 가득 들어와요. 채광 면에서도 참 고마운 존재죠.
아이와 함께 살면서 새롭게 중요해진 집의 기준도 있을까요?
아이의 성장에 맞춰 변할 수 있는 유연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간이 여유 있고, 자유롭게 손볼 가능성이 있어야 아이와 함께 사는 데 편리하니까요. 현재 거실 옆 다다미방을 아이 놀이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조만간 좀 더 차분한 공간으로 직접 개조해 볼 생각이에요.
집에서 가족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은요?
우리 가족은 각자 어딘가에 앉거나 누워 느긋하게 쉬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모두 모이는 공간은 거실 소파예요. 원래 있던 돌출된 창 아래 수납 공간을 제거해 공간을 확보했고, 그 공간에 맞춰 폭 약 160센티미터의 소파 두 개를 두었는데요. 늘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자리일 만큼 가족 모두에게 중요한 공간이 됐죠.
오랜 시간 집의 모습을 기록해 왔는데, 기록을 대하는 마음에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꾸준히 집의 풍경을 SNS에 기록해 왔지만, 처음에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시물을 고민했어요. 지금은 인테리어와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제 가치관을 기록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요. 집이 변하듯 제 시선도 함께 변하고 있어서, 언젠가 기록을 돌아봤을 때 따뜻한 마음이 들면 좋겠어요.
만약 언젠가 이 집을 떠나게 된다면 꼭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말씀해 주세요.
꼭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가족 모두가 마당을 직접 가꾸던 시간이에요. 자갈뿐이던 마당을 정리하고 잔디를 깔아 함께 만들었고, 그 마당에서 바비큐를 즐기거나 아침을 먹고, 여름에는 아이와 풀장을 만들어 놀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 집을 떠나더라도 분명 그 기억은 오래 남을 것 같아요. 가족들 각자 집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족들에게도 안심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정리할 수 있는 장소이길 바라요.
박희수ㅡ아 몽앙주
파리의 집을 잠시 비워두고 한국으로 휴가를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한국에 갈 때마다 저희 부부는 관심 있는 전시나 건축 공간을 찾아다니는 편이에요. 올해 방문한 곳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제주도의 본태박물관과 연희동의 연희정음 그리고 답십리 고미술상가였어요. 박물관과 고미술상가를 둘러보며 한국 기물이 지닌 멋스러움을 새삼 느끼게 되었죠.
이렇게 종종 한국으로 휴가를 떠나는 편이에요?
프랑스에는 1년에 5주의 유급 휴가 제도가 있어서, 남편과 함께 해마다 한 번 정도 한국을 찾아요.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그리웠던 집밥을 먹으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죠. 남편이 김장 보쌈을 좋아해서 김장철에 맞춰 자주 가고 있어요.
프랑스 생활이 어느덧 15년이 된 것으로 아는데요. 파리에는 어떻게 오게 됐어요?
어릴 때부터 프랑스 미술을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프랑스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했어요. 2010년 프랑스 리옹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사립 미술학교 1학년 과정을 거친 뒤, 그 경험을 계기로 패션 스쿨인 스튜디오 베르소에 입학하면서 파리로 이사하게 되었고요. 그때는 짧은 체류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남편을 만나면서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남편분은 프랑스인이신 걸로 아는데, 어떻게 만나셨어요?
리옹에 온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지인 소개로 만났어요. 함께 저녁을 먹는 다소 어색한 자리였는데, 남편이 제가 제일 좋아하던 드렁큰 타이거 음악을 틀어주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어요.
드렁큰 타이거요(웃음)?
네. 알고 보니 남편은 케이팝이 지금처럼 유행하기 전인 중학생 때부터 드렁큰 타이거나 에픽하이 노래를 즐겨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드렁큰 타이거를 듣던 프랑스 청년은 이제 이문세와 김광석을 즐겨 듣는 아저씨가 되었지만요(웃음).
희수 씨에게 파리라는 도시는 어떤 곳이에요?
익숙한 도시이면서도, 여전히 낯선 골목이나 새로운 건축물을 마주할 때면 여행 중인 것 같은 설렘을 느끼게 되는 곳이에요. 오래 살아도 완전히 다 안다고 느껴지지 않는 점이 파리의 매력인 것 같아요. 자주 걷는 거리에서도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프랑스 건축가 장 푸르베의 건물을 발견하거나, 무심코 지나치던 동네에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를 만나기도 하죠. 익숙함 속에서 계속해 새로움을 발견하게 되는 도시예요.
현재 살고 계신 집 거실에 놓인 빈티지 가구들이 인상적이었어요. 빈티지 가구와 오브제를 소개하는 채널도 운영 중이시죠?
네, 맞아요. ‘아 몽앙주a__monange’라는 채널을 통해 파리에서 프랑스 빈티지 가구와 소품을 중심으로 셀렉한 오브제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어요. 저희 부부의 취향으로 고른 오래된 기물과 가구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시간의 흔적과 멋을 전하고 싶어 시작한 채널이에요.
빈티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프랑스에서는 동네마다 정기적으로 벼룩시장이 열려요. 제가 살고 있는 파리 15구에서도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꽃과 제철 과일, 로컬 식재료를 파는 시장이 서는데, 그곳은 일상처럼 오래된 물건을 마주하게 되는 곳이에요. 에펠탑이 보이는 그 시장은 제가 특히 아끼는 장소이기도 하고요. 그런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오래된 물건을 접하며, 새것보다 조부모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세월이 깃든 물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 사람들의 태도에 영향을 받았어요. 시아버님도 오래된 물건을 고치거나 리폼해 사용하는 분이신데, 집에 있는 접이식 의자 역시 직접 손봐 주셔서 다시 태어난 물건이에요. 저 역시 예전보다 옷이나 소품, 가구를 고를 때 더 신중해졌고, 한 번 사면 오래 쓸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됐어요.
시간이 지나도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물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사용하기 편하고,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간결하고 모던한 디자인이요. 가구나 소품을 들일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라 집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소중하지만, 그중에서도 2년 전에 들인 거실 한쪽의 파란색 ‘앙드레 소르네 빈티지 사이드보드’는 특히 오래 곁에 두고 싶은 가구예요. 우연히 들른 빈티지 가구 거래처 창고에서 아직 판매 전인 채 한쪽에 놓여 있던 이 서랍장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아직도 생생해요. 꼭 제가 사고 싶어서 아무에게도 팔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뒤, 제가 구매했죠.
그런 기준은 두 분이 선택한 가구들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져요.
저희 부부는 실용적이면서 절제된 디자인의 프렌치 모던 가구를 좋아해요. 사용이 단순하고 장식이 과하지 않은,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요. 그 안에서 동양적인 정적인 미가 느껴지는 점도 좋아하게 된 이유고요. 지금 집에는 앙드레 소르네, 장 푸르베, 피에르 가리쉬 같은 프랑스 디자이너의 가구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특히 남편이 태어난 리옹 출신의 가구 디자이너 앙드레 소르네를 가장 좋아하고, 르코르뷔지에 역시 좋아해 그의 건축물을 직접 찾아다니는 저희만의 ‘르코르뷔지에 투어’를 이어가고 있어요.
지금 집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현재 집은 프랑스 기준으로 비교적 높은 층에 속하는 6층 아파트예요. 파리는 집을 구하는 과정이 쉽지 않은 도시인데, 한 매물을 많게는 30명 정도에게 동시에 보여주고 집주인이 그중 가장 조건이 안정적인 임차인을 선택해요. 저희는 예산 안에서 15구에 위치한 집 가운데 직장과의 거리 그리고 채광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 이 집을 선택했어요. 주방은 간단한 파스타 정도만 만들 수 있으면 충분했고요. 대신 남향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어요. 지금은 이사를 고민하며 여러 집을 보고 있지만, 이 집만큼 해가 잘 드는 곳을 아직 만나지 못했어요.
채광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편이군요.
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열어 해가 났는지부터 확인할 정도로, 햇빛은 제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예요.
햇빛 가득한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있다면요?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 내리고, 창문 너머로 파리의 지붕들을 바라보는 시간이에요.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을 구경하는 걸 좋아해요. 창밖으로 보이는 오스만 양식의 발코니들은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이고, 여름에는 이웃들이 파라솔을 펴고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보여요. 여름밤에는 가끔 루프톱 파티가 열리기도 하고요. 거리의 가로수도 계절에 따라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해,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줘요.
한국과 달리 파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일상 풍경은 무엇이에요?
파리 사람들은 해를 정말 좋아해요. 햇볕에 그을린 피부, 심지어 빨갛게 탄 피부까지도 ‘바캉스를 다녀왔다’는 표시처럼 자랑스럽게 여겨요. 날씨가 좋으면 자연스럽게 테라스로 나와 시간을 보내고, 여름에는 비키니 차림으로 공원에서 태닝을 하거나 아이들 생일 파티를 여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어요. 또 하나 인상적인 건 저녁 식사 시간이 꽤 늦고, 식사를 아주 길게 즐긴다는 점이에요. 대부분의 식당이 저녁 7시쯤 문을 열지만 손님들은 보통 8시 이후에 오고, 식사는 여유롭게 이어져요. 주말이나 크리스마스 저녁에는 자정이 넘도록 식탁에 앉아 있는 경우도 많고요.
집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차이를 느끼시나요?
프랑스에서는 오래된 역사와 세월의 흔적을 중요하게 여겨, 신축보다 오스만 양식의 벽난로나 몰딩이 남아 있는 구축 아파트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요. 같은 동네, 비슷한 조건이라면 오히려 구축이 더 비싸기도 하고요. 도어락 대신 열쇠를 사용하고, 최신식 엘리베이터를 찾기 힘든 점도 특징이에요. 100년이 넘은 아파트도 많다 보니, 입주 전에 자신의 취향에 맞게 고쳐 사는 경우가 흔하고 집은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살면서 가꾸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저 역시 한국에서는 풀 옵션의 새 집이 주는 편리함과 기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파리에서는 집에 제 취향을 얼마나 온전히 담을 수 있는지를 먼저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프랑스의 집들은 구조나 분위기가 획일적이지 않고, 초대받을 때마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
사적인 취향을 들여다보기에 집만큼 솔직한 공간도 없는 듯해요. 파리에서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았던 기억도 있나요?
연애 초기에 처음 시댁에 저녁 초대를 받았던 날이 떠오르는데요. 저녁 7시쯤 식전에 간단히 술을 한잔하고 샐러드와 메인 요리, 치즈 그리고 디저트가 차례로 이어지는 긴 식사였는데,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누는 식사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분위기는 한국의 가족적인 식사 자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한국이 비교적 이른 저녁 식사 후 밤에 술이나 야식을 즐긴다면, 프랑스는 술로 시작해 본격적으로 긴 식사를 이어가는 문화라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당시에 제 불어 실력이 능통하지 않아 식사 내내 듣기 공부를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죠.
언어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적응이 필요한 순간들이 여럿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겨울에 바닥 보일러가 없고, 여름에는 에어컨 대신 선풍기에만 의존하는 프랑스의 냉난방 환경이 낯설었어요. 지금은 겨울엔 양말이나 양모 슬리퍼를 신고, 여름엔 자연스러운 냉방에 완전히 적응했죠. 오히려 한국에 가면 에어컨 바람 때문에 감기에 걸리기도 해요. 파리의 발코니 풍경을 에어컨 실외기가 가리지 않는 점도 장점처럼 느껴지고요. 열쇠를 들고 다니는 일은 여전히 번거롭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고풍스러운 아날로그 문고리들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집 안에 잘 어우러지는 오브제가 많아 보여요. 꽃도 자주 들이시는 것 같고요. 동네에 마켓이 있어서 꽃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겠어요.
맞아요. 동네에 열리는 시장에서 주로 꽃을 사요. 꽃을 파는 상인들이 여러 분 계셔서 계절 꽃을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쉽게 고를 수 있거든요. 요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미모사가 한창이라 시장에 가는 재미가 쏠쏠해요. 최근에는 크리스마스 리스도 직접 만들어 달아봤는데, 화려하기보다는 집에 있는 가구들과 잘 어울리는 차분한 색감으로 만들어봤어요.
두 분은 대화도 자주 하시는 편인가요?
아침에는 커피를 마시며 주말에 갈 새로운 카페나 레스토랑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저녁에는 각자의 하루를 정리하듯 이야기를 해요. 주로 거실과 식탁이 이어진 공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고요. 평소에는 말수가 많지 않은 편이지만, 남편 앞에서는 사소한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털어놓게 되더라고요.
부부로 함께 살면서 각자 이 집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정리 요정인 남편은 자연스럽게 정리 담당이 되었고, 요리에 큰 흥미가 없는 저를 대신해 요리도 맡고 있어요. 요즘은 한식 실력이 꽤 늘어서 떡볶이와 김치찌개는 물론, 최근에는 직접 만든 보쌈을 시댁 부모님께 대접하기도 했어요. 저는 주로 청소와 빨래를 담당하고 있는데, 먼지가 보이면 바로 청소기를 돌리는 편이라 남편은 제 베스트 프렌드는 청소기라며 종종 농담을 하곤 하죠.
파리에 처음 왔을 때의 자신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공존하는 프랑스에서 오래 살다 보니, 예전보다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고 제 취향도 한층 분명해졌어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건 어떻게 실감해요?
한국에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 시도하지 않았던 스타일을 지금은 자연스럽게 즐기게 됐어요. 화려한 장미 패턴의 바지를 입거나, 숏커트에 왁스를 바르고 다니기도 하는데 패션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저를 ‘Petit garçon’, ‘남자아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또 프랑스에서는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커플이 애정을 표현해도 주변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예요. 한국에서 무심코 남편에게 뽀뽀를 하려고 하면 오히려 남편이 “한국에서는 안 돼.”라고 말하곤 하죠(웃음).
현재 살고 있는 집은 두 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이 집은 저희 부부에게 바깥의 소음에서 완전히 분리된, 쉼표 같은 공간이에요. 큰길가에서 떨어져 있어 저녁이 되면 집 안이 아주 고요해지거든요. 좋아하는 가구에 둘러싸여 생각에 잠기고 하루를 정리하다 보면, 이 집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저희를 다시 중심으로 돌려놓는 곳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돼요.
임미르ㅡVFX 룩뎁 수퍼바이저
밴쿠버의 요즘 날씨는 어떤가요?
밴쿠버 최고의 계절인 여름이 지나고, 비가 잦은 겨울을 보내고 있어요. 캠핑 같은 아웃도어 활동은 잠시 쉬고 있지만, 본업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에요. 연말에는 지인들과의 모임도 잦았고요. 홈 파티가 일상처럼 이어지다 보니 또 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다가올 봄과 여름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홈 파티를 자주 하시나 봐요.
파티라고 부를 만큼 거창한 자리는 아니지만 지인끼리 서로의 집에 모여 식사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데 익숙한 편이에요. 설날이나 추석 같은 한국 명절도 밴쿠버에서 가능하면 챙기려고 하고,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휴일에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집에서 음식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요.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집 근처에 사는 지인들이 모여 커피를 내려 마시고 식사를 하고, 보드게임을 하며 선물 교환을 했어요. 연말에는 보통 1-2주 정도 회사나 가게가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다 같이 오손도손 시간을 보내게 되더라고요. 한국처럼 카페나 외식 문화가 발달한 환경이 아니다 보니, 오히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더 자연스러워졌어요. 홈 파티를 할 때마다 새로운 취미나 취향을 알게 되는 재미도 있어요. 새로 들인 오븐으로 마들렌이나 소금빵을 구워 온 친구, 새로운 드립 장비로 커피를 내려주는 사람, 취미로 떡을 만들기 시작해 백설기를 가져온 지인도 있었고요. 최근에 들여온 식물이나, 각자의 취향이 묻어나는 주방 그릇들을 보는 것도 즐거워요. 단순히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넘어 요즘 각자가 집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사는지를 자연스럽게 들여다볼 수 있거든요. 집만큼 한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공간은 없으니까요.
한국 VFX Visual Effects회사에서 일하다가, 남편과 함께 직업을 계기로 캐나다 밴쿠버로 오게 됐다고요.
제 직업이 익숙하지 않아, 업무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영화와 드라마의 시각효과(VFX) 분야에서 캐릭터와 배경의 재질과 색감을 작업하며,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저는 대학 시절부터 영화를 정말 좋아했어요. 어떻게든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독립영화를 몇 편 만들며 진로를 고민하던 중, 영화 안에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영화만큼이나 컴퓨터를 좋아했던 터라 곧바로 CG 학원에 등록해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어요. 이후 국내 VFX 회사에 취업했고, 처음부터 더 큰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는 해외 취업을 목표로 경력을 쌓아왔어요. 약 4년간 한국에서 일한 뒤, 남편과 함께 밴쿠버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었고 그렇게 이곳에 온 지도 어느덧 8년이 되었네요. 개인적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일에 큰 거부감은 없어요. 회사 취업이 결정되는 순간부터 이주는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졌고, 오히려 해외에서 살아보게 된다는 설렘이 더 컸죠.
하나의 직업 이전에, 미르 씨를 잘 설명하는 성향이나 태도는 무엇일까요?
이런 질문 너무 좋아요(웃음). 저는 제 직업을 사랑하지만, 그 직업 하나로 저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내향적이고, 계획을 세우며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성향이에요. 정해진 과정을 거쳐 성실하게 쌓아가는 정도를 좋아하고, 요행은 싫어해요. 좋고 싫음이 분명한 편이지만, 제 기준이나 판단을 쉽게 드러내는 건 상대에게 무례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저를 쉽게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아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는 겸손이라고 생각해서, 말이 앞서는 사람들과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더라고요. 그런 성향 때문인지 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기준이 높은 편이에요.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결국 저 자신이라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를 꽤 사랑하는 편이에요. 내가 선택한 길에 확신이 있고, 거기에 따르는 노력과 결과 역시 제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 크게 불만을 갖지는 않아요.
캐나다, 그중에서도 밴쿠버는 어떤 도시로 느껴지나요?
사실 저한테 캐나다와 밴쿠버는 꽤 생소한 나라와 도시였어요. 상상으로조차 이주를 떠올려본 적 없는 곳이었거든요. 잘 모른 채 오게 돼서인지, 오히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죠. 처음에는 이민 정책이 좋아 전 세계 사람들이 이민이나 유학을 오는 도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해마다 ‘내가 살아온 한국과 정말 다른 곳이구나.’라는 걸 새삼 실감하게 돼요. 흔히 밴쿠버를 다양한 인종이 모이는 도시, 여름이 특히 아름다운 곳, 겨울에는 비가 잦은 도시로 이야기하는데요. 제가 느끼는 이곳은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느리고 여유로운 도시예요. 유행이나 겉모습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고, 경쟁하거나 눈치를 보는 분위기도 상대적으로 덜하고요.
자연이 정말 멋진 곳이기도 하죠.
맞아요. 무엇보다 대자연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한국인으로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도 분명 있지만, 완벽한 도시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지내며 내가 삶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자주 돌아보게 됐고, 그 과정에서 제가 생각보다 자연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웃어주는 이웃이 있다는 점도 좋고요. 밴쿠버가 가진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크게 다가와서, 이렇게 오래 머무르고 있나 봐요. 이곳에 사는 분들이 흔히 말하듯, 한국에서보다 몸은 조금 불편해도 마음은 더 편안한 곳이니까요.
현재 밴쿠버에서 ‘콘도’에 거주 중이라고 하셨는데요. 그곳의 콘도는 어떤 주거 형태인가요?
밴쿠버에는 다양한 주거 형태가 있는데, 크게 콘도와 하우스로 나뉘어요. 콘도는 고층 콘도와 저층 콘도로, 하우스는 단독주택과 타운하우스, 듀플렉스 등으로 다시 나뉘고요. 형태에 따라 선택지가 꽤 다양한 편이에요. 그중 콘도는 한국의 아파트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관리 방식이나 소유 형태, 레이아웃 등에서는 차이가 커요. 저는 하이라이즈 콘도, 즉 고층 콘도에 살고 있고 그중에서도 저층 유닛에 거주하고 있어요. 한국 아파트가 보통 단지 형태로 조성되는 것과 달리, 이곳의 콘도는 한두 동 정도만 단독으로 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고층 콘도는 중앙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그 주변을 유닛들이 사방으로 둘러싼 구조예요. 또 하나 다른 점은 방향에 대한 선호예요. 한국에서는 남향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에서는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달라서 각자의 취향에 따라 유닛을 선택해요. 공간 사용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어요. 한국에서는 베란다 공간을 확장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에서 테라스는 스트라타(공동주택을 관리하는 법적 조합)가 관리하는 공용 공간에 가까워요. 입주자가 사용할 수는 있지만, 스트라타에서 금지하는 물건을 두거나 미관을 해치는 장식은 할 수 없다는 점이 달라요.
이전에는 회사와 상업 시설이 밀집한 도심 한가운데에 거주하다가 지금의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고요.
네, 코로나 이후 바뀐 저희 부부의 일하는 방식이 가장 큰 이유였어요. 저희는 둘 다 같은 VFX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데, 당시 회사가 다운타운에 있어 근처의 저층 콘도에서 렌트로 살고 있었어요. 출퇴근이 편리한 대신, 생활과 일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공간이었죠.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회사가 재택근무로 전환됐고, 작업에 필요한 장비들도 집으로 가져와 일을 하게 됐어요. 기존에 살던 원베드룸은 생활과 일을 동시에 하기에는 다소 좁게 느껴졌고, 특히 회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오디오가 서로 겹치는 상황이 잦아졌어요. 그때 작업 공간이 각자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마침 영주권 절차도 진행 중이었고, 주택 구매를 고민하던 시기와 겹치면서 여러 조건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고요.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집을 고르는 기준에도 변화가 있었겠어요.
지금 집은 방이 아주 넓은 편은 아니지만 총 세 개라서, 각자 작업실로 하나씩 사용하고 나머지 하나는 침실로 쓰면 되겠더라고요. 여기에 덴Den* 공간까지 있어서 물건 보관용 창고처럼 활용하기에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주변이 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잔디 관리가 잘되어 있어서, 테라스로 나가면 숲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도 답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희 둘 다 일할 때 소리에 예민한 편인데, 유닛이 조용하고 전반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인 점도 크게 작용했어요.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식물을 많이 키우게 됐는데, 넓은 테라스에 식물들을 내놓기에도 좋아 보였고요.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특정한 뷰였어요. 나무의 머리쯤에 시선이 걸리는 저층의 풍경이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질 걸 알았기 때문에, 집 안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보이길 바랐어요. 그러면서도 프라이빗하고 조용한 환경이었으면 했고요. 사실 이런 조건들을 모두 만족시키긴 어렵겠다고 생각하며 시작한 집 찾기였는데, 결과적으로는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진 선택이었죠.
*덴: 정해진 기능 없이 개인적인 활동에 따라 쓰이는 집 내부의 다목적 공간.
미르 씨가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집의 조건은요?
저는 소음이 적고 개방감이 있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다운타운에 살 때는 수시로 다니는 소방차 소리가 은근히 스트레스였거든요. 지금 유닛은 가끔 너무 조용해서, 창문을 열면 바람에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게 기분 좋게 느껴져요. 업무 스트레스가 많을 때는 테라스로 나가는데, 피곤한 눈에도 좋고 기분 환기에도 큰 도움이 돼요.
한국에서의 집 선택과 비교했을 때, 밴쿠버에서는 집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졌다고 느끼세요?
한국에서는 뷰보다는 접근성이었죠! 회사와 가까운지, 교통은 편한지, 편의 시설이 주변에 있는지 같은 조건들이 우선이었어요. 풍경은 어떻게 보면 옵션에 가까웠죠. 반면 캐나다에서는 어차피 이동 대부분을 차로 하다 보니, 위치보다는 집에서 얻는 경험이 더 중요했어요.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일하고 요리하고 취미 생활을 온전히 즐기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겼어요. 자연스럽게 집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도 더 중요해졌죠.
통창 밖으로 펼쳐진 자연 풍경을 보고, 이 집 이야기를 꼭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저희가 이곳에 반하게 된 이유도 바로 그 통창 때문이었어요. 매물이 올라오는 사이트에서 우연히 마주한 사진 한 장에 마음이 끌려 보러 오게 된 집이었는데, 그렇게 지금의 저희 집이 되었죠. 이 집에서는 하루 종일 머물러도 행복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 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남편과 이사하기로 결정했어요. 통창 너머로 보이는 곳은 사실 골프장이에요. 골프장을 끼고 있는 집이라니! 사시사철 잘 관리된 풍경 위로, 그 공간을 가꾸는 사람들과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비교적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특별해요. 집 안에서 바라보는 이 장면은 이 집만의 시그니처 같은 풍경이에요. 그래서 거실을 꾸밀 때 가장 많이 신경 썼어요. 캐나다는 가구 선택의 폭이 비교적 제한적인 편이라,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선을 찾으려 노력했죠. 개방감은 살리되 너무 차갑지 않도록, 안락하면서도 창밖 풍경을 해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재택을 하며 이전보다 더 신경 쓰게 된 일상의 루틴이 있다면요?
요리하는 시간이요. 코로나 직후, 집에서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 먹으면서 건강이 많이 무너졌다고 느낀 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요리에 더 관심을 갖게 됐죠. 베이킹을 하는 유튜브를 시작하기도 했고요. 재택근무를 하면서 맞이하는 점심시간은 딱 한 시간인데, 그 안에 요리부터 뒷정리까지 다 하려면 정말 타이트해요. 그럼에도 배달을 시키거나 음식을 미리 대용량으로 해두지 않는 이유는, 시간을 조금 더 쓰더라도 점심만큼은 건강하고 신선하게 먹고 싶기 때문이에요. 저녁은 비교적 가볍게 먹자는 주의라, 점심은 먹고 싶은 메뉴를 제대로 만들어 먹으려고 해요. 남편도 요리를 잘하고 주방일에 익숙한 편이라, 주어진 시간 안에서 둘이 호흡을 맞춰 한 끼를 완성해 내는 과정이 마치 작은 미션 같기도 해요.
두 분의 서로 다른 점은 집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궁금해요.
결혼하면서 느낀 건, 참 비슷한 만큼 다르다는 거예요. 저도 저 자신을 늘 새롭게 발견하는데, 배우자는 얼마나 더 새로울까요(웃음)? 제가 알아가고 있는 제 모습은, 어느 정도 강박이 있고 규칙과 질서를 중요시한다는 거예요. 물건이 없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납득되어야 하죠. 그래서 공간을 구성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고, 싫증도 잘 느끼기 때문에 구조도 자주 바꾸는 편이에요. 반면 남편은 공간에는 크게 예민하지 않아요. 그래서 많은 부분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서포트해 줘요. 집 안에서의 공간 활용도 차이가 드러나는데요. 제 방은 일하는 자리는 최소화하고, 대부분 식물을 놓거나 취미 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면, 남편 방은 업무 중심으로 깔끔함과 효율성을 중점에 둔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요.
집 안에서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 어떤 순간일까요?
청소할 때요. 아이러니하지만, 저는 집을 청소할 때가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집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모든 공간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집 구석구석까지 돌보게 되었어요. 저는 물건을 새것처럼 아껴 쓰고 깨끗하게 오래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좋아하는 오브제들을 디스플레이하고 꾸미려면 그만큼 부지런하게 청소해야 한다는 뜻이죠.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도 크고요.
이 집은 지금의 미르 씨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엄청난 마음의 안식처죠. 솔직히 저는 인생의 목표가 집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크고 비싼 집이 아니라 저에게 맞는 안식처 같은 집요.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채워갈 수 있고, 싫어하는 것들은 들여놓지 않는 제 마음과 가장 가까운 공간이에요. 밖에 비바람이 치거나 폭설이 올 때, 집 안에 있는 걸 좋아해요.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절대적인 안정감을 느끼거든요. 그런 공간을 누구의 도움 없이, 이 낯선 땅에서 일구어냈다는 건 노력과 성취의 결과물이기도 해요. 저희 부부의 첫 집이 밴쿠버라니. 어찌 의미 없지 않을 수 있겠어요.
에디터 황진아
사진 유메 박희수 임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