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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슬 — 곰곰요가
꾸준히 일하는 법
웃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에게선 둥근 빛이 난다. 그 빛을 마주보는 순간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 사랑은 내 안을 향했고, 다시 바깥으로 나와 발아래로 뻗어나갔다. 예슬 씨가 말한 것처럼.
이거 차인가요? 굉장히 맑네요.
‘백차’라고 해요. 차나무는 사실 하나예요. 얼마나 덖었느냐에 따라 차 이름이 달라지곤 하죠. 백차는 그중에서도 만드는 과정이 가장 단순한 차이고, 가장 순수한 상태예요. 어제 먹고 남은 찻잎을 우린 건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여름엔 얘가 열을 좀 내려주거든요. 아침이나 점심에 이렇게 차게 한 잔 마시면 참 좋더라고요.
이 차, 예슬 씨 이미지랑도 굉장히 닮았어요. ‘곰곰요가’라는 이름을 쓰고 있죠. ‘곰곰이’ 할 때 그 곰곰인가요?
그것도 맞는데, 곰Gom이 티베트어로 ‘명상하다’는 뜻이거든요. 명상을 통해 익숙한 나를 들여다보는 요가 수련이길 바라서 곰곰요가라 이름 붙였어요. 근데 가만 보니까 제가 ‘곰곰이’라는 부사를 정말 많이 쓰는 거예요.
맞아요, 책에도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겸사겸사 곰곰요가로 지은 건데, 사람들은 제가 곰돌이처럼 생겨서 곰곰요가인 줄 알더라고요(웃음). 유난히 곰돌이 모양 선물도 많이 받고요.
동글동글한 느낌이 정말 그러네요(웃음). “몸, 마음, 글을 읽고 씁니다. 다정한 마음으로 성실하게.”라는 문장으로 소개하시더라고요. 잘 읽고 쓰기 위해서는 우선 잘 아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읽고 쓰는 건 잘하는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전 항상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요즘엔 잘 아는 사람이 읽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이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서 잘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단 생각이 많이 들어요. 뭐든 아직 초심일 때 마음이 더 멀리 가잖아요. 돌아보면 과거에도 저는 충분히 괜찮았는데 왜 그렇게 매일 부족하다고 생각한지 모르겠어요. 먼 훗날에도 지금을 돌아보면서 ‘괜찮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죠? 지금 당장 제가 원하는 모습에 닿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매 순간 여기가 도착지이기도 하고 출발점이기도 할 테니까요.
지금 지향하는 모습은 어떤 거예요?
계속 수련하고, 읽고 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무엇보다 언제나 잘 듣는 사람이고 싶어요.
타인의 이야기를요?
그도 그렇고, 제 안의 이야기도요.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으니까, 귀가 열려 있는 채로 살고 싶어요.
《유연하게 흔들리는 중입니다》에 “스스로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라고 쓰셨어요. 그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이 아닐까 싶은데, 바쁠 땐 내면의 속삭임을 놓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자신의 비상약이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일 여유도 없다는 건 조금은 아픈 상태잖아요. 저한테 비상약은 요가 수련이랑 책 읽는 거예요. 그 두 가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금은 나아지더라고요. 가장 좋은 상태로 한 번에 이동할 순 없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 걸을 수 있는 상태까지는 올려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가 수업에서 낭독을 하는 거군요.
요가와 낭독을 병행한 게 벌써 10년째네요. 요가 동작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마다 책의 도움을 받았어요. 제 언어보다 훨씬 아름답고 정돈된 문장이 책 안에 있으니까요. 책과 요가는 제가 주저앉았을 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워줬어요. 이 둘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저는 아주 튼튼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것 같았죠. 실제로 요가 메시지를 담아 낭독할 때마다 씩씩해지는 기분이고요.
책이 아니라 노트를 읽는 걸 보고 필사를 하시는구나 싶었어요.
내용이 너무 길거나 왔다 갔다 하면서 읽어야 할 땐 책을 들고 갈 때도 있는데, 웬만하면 필사하려고 해요. 제 글씨로 된 글귀를 읽으면 좀더 제 언어로 다가가기 편해지는 것 같아서요. 같은 글자여도 누가 쓰느냐, 어떻게 적혀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와닿잖아요. 저는 언제나 제 언어에 귀 기울이고 싶어요. 제 톤으로 말하고 싶고요. 그래서 글씨는 예쁘지 않지만(웃음) 필사하는 걸 좋아해요.
처음 요가 했을 때 기억나세요?
아(두 손을 맞잡고), 무척이나 기억나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창피했던 시간…. 스무 살 때 언니를 따라 요가원에 갔는데 다들 너무너무 잘하는 거예요. 한 발로 서서 균형도 잘 잡고 안정적인데, 저만 계속 깽깽이 자세로 흔들리는 거예요. 혼자서만 못하는 게 너무 창피해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제가 너무 초라해 보였죠. 그렇게 한 시간을 겨우 수련하고 마지막엔 팔다릴 쭉 펴고 누워서 사바아사나를 했는데요.
사바아사나가 뭐예요?
휴식 자세예요. ‘송장’이라는 뜻인데, 송장처럼 누워서 쉬는 거죠. 모든 요가의 마지막은 사바아사나인데, 저의 기나긴 한 시간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그때 제가 요가 하는 동안 옆 사람들만 보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낸 제가 너무 안쓰럽더라고요. 이게 무슨 감정일까, 계속 생각해 봤는데요. 그 당시 막 성인이 된 때여서 제 삶을 두 손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막막하고 무서웠던 것 같아요. 제 두 손에 있는 이 삶을 좋은 데로 가져다 두어야 하는데 그게 겁이 난 거죠. 요가 수련하는 내내 그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서, 제 것을 잘 가져가려고 하는 게 아니라 계속 옆 사람의 걸 신경 쓴 것 같았어요. 집에 돌아와선 펑펑 울었어요. 그러고 나서 저한테 처음으로 질문해 봤죠. “왜 울었어?” 요가가 뭐길래 제가 이렇게까지 내면을 돌아보고 감정을 쏟아내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한 번, 두 번, 가다 보니 어느덧 여기까지 왔어요.
몸을 쓰는 건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제 삶이자 업이 된 요가 말고 또 어떤 운동 즐기고 있어요?
몸을 움직이면서 걱정을 해소하는 편이라 이것저것 많이 해요. 달리기도 좋아하고, 춤추는 것도 좋아하죠. 스윙 댄스는 2008년부터 해왔고, 얼마 전엔 훌라 춤도 시작했어요.
엇, 저 훌라 춤에 관심 있어요!
소개해 드릴까요(웃음)? 신청하고 연습실에 다 같이 모여서 훌라 파우Pa’u를 입고 동작을 배워요. 훌라 출 때 입는 치마가 훌라 파우인데요. 꼭 파우가 아니라 화려하고 예쁜 치마를 입으면 되는데, 보통은 그런 옷이 잘 없으니까 파우를 빌려서 입고 해요. 저는 벌써 두 개나 샀답니다(웃음). 선생님이 한 달에 한 곡은 출 수 있게 가르쳐 주셔서 재미있게 배우고 있어요. 훌라 춤엔 잘 추고 못 추고가 없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훌라는 내 안의 바다를 끌어내는 춤이다.”
…너무 좋네요. 그게 어떤 의미예요?
모두에겐 각자의 바다가 있기에 자기만의 훌라 춤이 있어요. 못생긴 바다는 없는 것처럼 못생긴 춤도 없죠. 어느 날엔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를 불러내기도 하고, 어느 날엔 파도를 표현하고, 어느 날엔 어둠이 내린 바다와 만나는 거예요. 단어를 몸으로 표현하는 춤이어서 손짓이 아주 섬세해요. 꽃을 표현할 땐 이렇게 손가락을 모아 꽃봉오리를 표현하죠.
이번엔 조금 옛날 얘기를 해볼게요. 어느 인터뷰에서 “목표가 뚜렷하고 더 높은 곳을 올려다보던” 때가 있었다고 했어요.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사고 싶은 게 명품 가방”이던 시절이었고, “전공한 교육학 분야에서 더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고, “작가를 꿈꾸던 동안에는 등단도 해보고 싶”던 시절이라고요.
실제로 첫 월급을 받자마자 루이비통에서 가방을 샀어요. 돌이켜보면 진짜 그 물건을 원한 게 아니라 명품을 들면 내가 좀 나아 보이지 않을까 싶던 마음이었어요. 전 항상 제가 부족하다 생각했고 명품 가방이 이를 채워줄 거라 여겼거든요. 그러다 요가를 수련하면서 진짜 저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돌아보니 알겠더라고요. 이건 진짜 제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요. 한 편의 글이 있다고 생각해 볼게요. 들여쓰기와 띄어쓰기를 하고, 쉼표와 마침표도 찍으면서 글을 정돈해 나가잖아요. 만일 그런 게 없다면 글자만 빼곡하게 적혀 잘 안 읽히겠죠. 이전의 제 인생이 아주 빼곡한 글이었다면 요가는 띄어쓰기와 문장 부호를 제대로 만들어 주는 일이었어요. 명품에 대한 욕심이 저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도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더라고요. 20대 내내 불타게 뭔가를 소비하고 난 다음에야 생긴 마음이었어요. ‘그냥 나 자체로는 빛날 수 없나? 증명하지 않아도 내 존재는 괜찮은 게 아닐까?’
지금은 얼마나 빛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부에서 빛을 발견하고 스스로 꺼내는 일이니까… 충분히 빛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호 주제어가 ‘산책’인데, 예슬 씨 SNS에서 자연 사진을 많이 보았어요. 산책 자주 하세요?
모든 계절의 산책과 모든 시간대의 산책을, 어디에서 하든 다 좋아해요. 제가 어떤 산책이든 좋아한다는 건 여행을 가고서야 알았어요. 코스타리카 바닷가 근처에 한 달 넘게 머문 적이 있는데, 곧 도심으로 떠난다고 했더니 현지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거긴 매일 다른 바다가 없잖아. 여기 좀더 있어.” 그때 저도 마음으로 ‘맞아, 거기엔 매일 변하는 바다가 없지.’ 하고 아쉬워했거든요. 근데 이미 정해진 일정이라 어쩔 수 없이 도심으로 갔는데요. 거기엔 매일 변하는 바다는 없지만 매일 변하는 바다 같은 존재들이 있더라고요. 도시의 불빛, 거니는 사람, 매일 문을 여닫는 상점…. 그때 알게 됐어요. 나는 어디에서건 풍경을 보며 걷는 걸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요.
산책하다 보면 나만의 코스가 정해지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건 매일 같은 곳을 걸어도 달리 느껴진다는 거죠.
맞아요. 특히 계절이 변할 때 많이 느껴요. 집 주변이 다 벚꽃길인데 다른 계절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근데 봄만 되면 없던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와요. 다들 꽃나무 아래 서서 사진을 찍겠다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그 모습이 참 예쁘더라고요. 모두를 여기 모이게 하다니, 자연의 힘이 정말 세다고 느꼈죠.
도대체 자연은 어떻게 우리 기분을 환기하고 새로운 마음을 먹게 하는 걸까요?
자연이니까요, 우리보다 먼저 태어났으니까요. 훨씬 오래 존재했으니 우리보다 지혜롭겠죠. 그러니까 우리한테 가르쳐 줄 수밖에 없는 거예요.
SNS에서 비 그친 뒤 풍경을 업로드하면서 “노력 너머에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말을 쓰셨어요. 시련 다음에 찾아오는 환희이기도 하고, 이 역시 자연의 힘이기도 하죠.
그 기분을 처음 느낀 건 우유니 사막에서였어요. 도착하기 전까지 비가 무척 많이 왔는데 제가 도착한 날 너무 아름다운 반영이 저를 둘러싸고 있는 거예요. 눈물이 차오르더라고요. ‘내가 지금, 이 계절에, 마침 여기 도착해서 이 광경을 보는구나….’ 그때 바깥을 보는 안경이 바뀐 것 같아요. 이전엔 무조건 내가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열심히 해도 결정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때 느낀 건 무력감이 아니었어요. 나 혼자 나를 만든 게 아니라 계절이, 세상이, 사람들이 나를 만들어 주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 후로도 계속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오가는 모든 게 저를 구성했다고, 이 중 무엇 하나라도 틀어진다면 저는 여기 없을 거라고.
지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거네요. 그럼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사라졌어요?
아뇨. 결코 없어지진 않아요. 다만, 그 마음과 잘 동행하는 힘이 생겼어요. 잘하려고 해도 때때로 무너지기도 한다고 저한테 말해 줄 수 있게 되었고,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때가 아니면 안 될 수도 있단 걸 알게 됐죠. 동시에 때가 되면 떠나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게 됐어요. 제가 가지 말라고 붙잡고 있으면 저조차도 걸음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때가 되면 떠나는 것들이 있다는 건… 인간관계만 생각해도 가슴 아픈 일이에요.
나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렇다는 걸 깨달아야 해요. ‘저 사람은 내가 아니고 나는 저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 나는 나도 제대로 이해 못 하는데 어떻게 저 사람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 있을까.’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난 이후로 인간관계가 많이 달라졌어요. 이별하는 일도 줄었고요.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이해하고, 모르는 건 물어봐야겠단 마음이 생겼죠.
근데 사실 ‘나는 너를 다 이해할 수 없어.’라는 생각보다 ‘왜 내 말을 이해 못 해?’라는 말이 먼저 나가기 쉽잖아요.
우리 마음속에는 엄청 큰 정원이 있어요. 그 정원엔 사각지대가 있죠. 어느 날 거기 낯선 꽃이 핀 걸 우연히 발견했어요. 그럴 때 우리는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물을 줘야 해? 말아야 해?’ 고민하게 돼요. 근데 누구에게나 이런 사각지대는 있어요. 하물며 낯선 사람의 정원을 볼 때는 당연히 그 구역이 많을 수밖에 없겠죠. 그러니 제가 어떻게 그 정원을 다 이해하겠어요. 저는 제가 그걸 다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내 한계를 인정했을 때 그걸 채워주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어요.
책에서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무엇을 중심에 두고 시간을 보내는지가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요즘은 어디에 방향을 두고 지내세요?
저한테 타투가 몇 개 있는데 (양팔을 내밀며) 항상 마음에 지니고 있는 삶의 태도를 여기 새겼어요. 해랑 달이 같이 있는 이 모양은 빛과 어둠을 의미해요. 어둠 속에 빛이 있고, 빛 속에 어둠이 있는 형태죠. 저는 늘 어둠과 빛이 함께 있다는 걸 기억하며 살고 싶어요. 제 빛은 아래를 향하면 좋겠고요. 우리 시야는 발밑으론 잘 안 가는데, 그 아래도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싶거든요. 그림 위에는 산스크리트어로 “모든 생명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이라는 의미의 글귀를 적어두었어요. 정체되지 않고, 딱딱해지지 않아야 잘 흘러갈 수 있다고 믿기에, 에너지가 고여 독이 되지 않게 신경 쓰며 살고 싶어요.
꾸준히 신경 쓰기 위해서는 내면의 나와 사이좋게 지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스스로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라는 예슬 씨 문장처럼요.
내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있어요. 보통 속도로 걷고 싶은데 너무 느리게 간다고 느끼거나 너무 빠르다고 느낄 때, 혹은 지금이 아침이면 좋겠는데 밤일 때…. 그럴 때 ‘그렇구나.’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에 남는 건 결국 나밖에 없어요. 모든 게 사라져도 저는 여기 남겠죠. 그러니까,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든든한 동반자를 잃게 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저를 지켜주고 싶어요. 제가 잘 클 수 있게 좋은 음식도 먹이고, 좋은 것도 보게 하고, 쉬게도 하고… 계속 저를 도와주면서 발아래를 잊지 않고 천천히 걷고 싶어요.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