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식탁을 지키고 있는 반찬들이 있다. 그중 쌈 채소는 엄마의 단골 재료로 오늘도 한가득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엔 초록색 음식이 빠지지 않았고, 엄마는 여전히 건강한 먹거리와 삶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는 전자레인지를 버리고, 친환경을 선택했다. 텃밭을 가꾸고, 녹즙을 갈고, 산을 오가며 식습관을 모조리 바꾸었다. 지겨우면서도 당연한 연두색으로 가득한 이야기다.
식탁의 변화
세 살 터울 동생이 태어나면서 엄마의 품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욕심 많고 엄마 바라기였던 아이가 온몸으로 투정 부리고 예민하게 반응한 흔적은 지금까지도 어딘가에 남아 있다. 아토피가 심해지면서 엄마와 나는 자연요법을 시작했다. 태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여름밤부터 선선한 가을이 찾아오던 날까지, 빨가벗고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풍욕과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냉온욕을 반복했다. 가장 큰 변화는 식탁의 음식이었다. 건강한 음식이 아닌 모든 것들은 ‘바깥 음식’이라 불리며 집 문턱을 쉽게 들어서지 못했다. 엄마는 채소를 몽땅 녹즙기에 갈아서 매일 건넸다. 한껏 찡그리고 코를 틀어막으면, 엄마는 “채소가 다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라. 맛있게 먹으면 훨씬 더 튼튼해진다?”라며 찡그린 주름을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펴냈다. 미간의 주름은 아마 그때부터 생기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엄마는 내가 안 먹는 음식을 한 움큼 숟가락 위로 올려준다. “음식이 다 듣겠다!”라며. 동생은 그 시기를 이야기할 때마다 깔깔 배를 잡고 웃는다.
“아니 언니는 그렇다 쳐도, 나는 정말 토끼가 되어버리는 줄 알았어.”
산속의 아파트
처음 살던 곳은 산이 둘러싸고 바람이 휘감기는 작은 마을이었다. 시골치고는 큰 아파트가 산 중턱에 앉아 둥글게 마주 보고 있고, 아이들은 한가운데 놀이터로 삼삼오오 모여들곤 했다. 첫 번째 동네, 계절, 산, 친구들. 모든 첫 기억이 선명한 곳이다. 동생과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엄마는 건강한 먹거리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더니 사람들과 유기농 콩나물을 나눠 사는 것을 시작으로 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아파트 뒤편에는 텃밭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밭을 가꾸었다. 하지만 우리의 야심 찬 첫 텃밭은 들끓는 벌레와 가뭄으로 망하고 말았다. 화학적인 비료를 넣지 않고 잘 기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안을 찾다 심기만 하면 저절로 자란다는 감자와 고구마로 즐거운 수확을 얻었고 그 후에는 실패했던 작물을 싱싱하게 키워냈다. 고사리 같던 작은 손은 땅에서 나고 자란 것들의 속도와 힘을 익혀나갔다.
사람들은 마치 공동육아라도 하는 것처럼 함께 지냈다. 없으면 옆집에 있겠지, 거기에도 없으면 그 옆집에 있겠지, 아랫집에 있겠지, 하며. 해가 질 무렵에는 밥 먹자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아파트 사이로 울려 퍼졌다. 매일 도시로 이사 가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지만, 사실 나는 그 동네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억수로 물이 쏟아지는 억수탕, 고운 떡을 뽑아내는 할머니들의 방앗간, 동물들이 북적거리던 보람이네 동물농장, 뽑기에 소질이 없어 시무룩한 동생이 자주 보이던 문방구, 야호를 몇 번이고 외치던 뒷산 첫 번째 봉우리, 이상하게 생긴 시계가 있던 피아노 학원 그리고 1001호 우리 집. 산이 나무를 자라게 하는 만큼 마을은 나를 한껏 키워냈다. 숲이 주는 쾌활한 힘과 동네가 주는 무한한 애정, 그리고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으로.
건강하고 건강하게
우리의 밥상은 그때와 다름없이 한결같다. 엄마의 채소들은 식탁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고 오늘도 건강하고 내일도 건강할 음식들이다. 가끔 아빠가 좋아하는, 엄마가 말하는 나쁜 음식들도 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식탁에서의 유연함을 찾았다. 아토피는 그래도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까지 낫지 않고 한참을 괴롭혔다. ‘여전히’라고 해야 하나. 특히 여름은 쉽지 않다. 숨구멍이 막히는 더위는 노력과 인내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처럼 짜증이 많아지고, 참을성이 없어지고, 당장이라도 건드리면 울 것 같은 표정이 잦은 계절. 냉온욕을 반복하고 마음을 토닥여 본다. 이제는 마냥 떼를 쓸 수는 없으니 나만의 지혜를 가지는 수밖에. 조금씩 유연해지길 기대하며 반갑게 여름을 맞이해 보기로 했다.
엄마, 할머니, 아빠의 시간과 습관은 도망가지 않고 고스란히 내게로 왔다. 조금이라도 나은 것을 선택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똑 누군가와 닮았다고나 할까. 착한 먹거리는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본래로 돌아가 자연을 데려오는 것.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지겹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매번 생일 소원은 변하지 않는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건강하고 건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