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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에는 언제나 일상적인 장면이 있다. 먹고 마시고 요리하는 사람들의 평범한 시간들은 고요함을 안겨 준다. 왠지 모를 안심으로 남았던 순간들. 이곳에 모아 마음 두둑이 채워본다.
Movie —Alfred Hitchcock <새>(1993)
나는 새다. 평화로운 항구 마을에 살고 있는 새다. 여느 새들처럼 날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바다 위를 낮게 날면서 물에 살짝 발을 부딪기도 하고, 다른 새보다 높이 날아 허공을 거침없이 비상하기도 한다. 가끔 어린 사람들이 새총이랍시고 고무줄에 돌멩이를 튕겨 나에게 날리기도 하는데,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는 것이 결코 무서워서는 아니다. 돌에 맞아 깃털이라도 빠지면 아까우니까, 멍이라도 들면 골치 아프니까, 그 정도일 뿐이다. 조금 지루하고 대체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우리 마을에 새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옆 동네에서 온 새도 있고, 좀더 멀리서 온 새도 있다. 전선에 하나둘 촘촘하게 모여 앉는 낌새가 좀 이상하다. 한 녀석이 금발 머리의 여자한테 달려든다. 머리카락을 높이 묶어 고정한 우아한 여성인데, 부리로 건드리니 금세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솟아오른다. 여자가 놀라 비명을 지른다. 새가 첫 부리질을 시작하자 다른 녀석들도 바삐 달려들기 시작했다. 새 부리로 사람 피부를 쪼아대면 아플 텐데,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갑자기 왜들 이러는 거지? 나는 사람 가까이 가지 않기 위해 애쓰는데 이 녀석들은 왜 사람들을 공격하려 들지? 어느새 전깃줄 위는 새들로 빽빽해졌다. 나 또한 새인데 여기 함께 있기가 거북하다. 슬쩍 일어나 날아가려는데 옆에 앉아 있던 새가 무심하게 말을 건다. “웬만하면 바닷물 마시지 마. 얼마 전에 몬터레이만에 있던 검은슴새들이 멸치를 잔뜩 토하고 여기저기 머리를 처박은 거 알고 있지? 듣자 하니, 바닷물 속에 이상한 게 있다나 봐.”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높이 날아올랐다. 바닷물에 이상한 게 있다고? 물 가까이 낮게 날다가 솟구쳐오르는 게 나의 장기였는데, 왠지 하고 싶지 않아졌다.
이 마을로 날아온 새들은 좀 이상했다. 난폭하고, 흉악했다. 앞에 뭐가 있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달려드는 것 같았다. 아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 가리지도 않고 부리로 쪼아댔고, 사람들은 연신 피를 흘렸다. 사람만 다치는 게 아니었다. 창문에 부딪쳐 머리가 깨져 죽는 새도 있었다. 새들은 쉬지 않고 울어댔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새 때문에 사람이 죽어 나갔다. 새들은 시체여도 개의치 않고 계속 쪼아댄다. 시체의 구멍이란 구멍은 다 쪼아대기 시작했고, 시체 눈알은 삽시간에 사라진다. 텅 빈 구멍에 벌레가 들어찬다.
나는 궁금했다. 몬터레이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다시 그 새를 찾아가 물었다. 1961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몬터레이만에서 유독성 플랑크톤이 출몰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물을 마신 새들은 어느 순간 방향을 상실했다. 가려움을 호소하면서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매일 이들이 토해내는 멸치가 산처럼 쌓여갔다. 바위와 건물에 부딪치며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그리고 새들은 결심했다. 바다에 독성이 강한 플랑크톤을 만들어낸 것들을 처단하자고. 소중한 형제, 자매를 죽인 사람들을 혼내 주자고. 그렇게 몬터레이만에서 모여든 새들이 우리 마을까지 닿은 것이었다. 나는 무서웠다. 오염된 바다가, 미쳐버린 새들이, 죽어 나가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사흘째 허공만 빙빙 떠돌고 있다.
Movie —Simon Wincer <프리 윌리>(1993)
나는 고래다. 7천 파운드, 그러니까 3천 킬로그램이 넘는 거대한 범고래다. 내 집은 태평양이다. 나는 깊고 푸른 물속을 헤엄치거나 눕고, 엎드리고, 허리를 구부리거나 풀쩍 뛰어오르는 걸 좋아한다. 고래잡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그냥 평범한 범고래일 뿐이었다. 여느 날과 같이 헤엄치며 시간을 보내던 날이었다. 나는 눈 깜짝할 새 가족들과 헤어졌고, 노스웨스트 어드벤처 파크에 갇혔다. 사람들은 나를 위해 거대한 탱크를 구해 놓았다며 좋아했지만, 그건 나에게 좁은 수조에 불과했다. 매일 바닷물을 타고 가족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나를 찾아 울부짖는 소리다. 사람들은 비명을 못 들은 체하며 나한테 말을 걸거나 음식을 준다. 밥을 먹었으니 재주를 부리라고 한다. 휘파람을 불면 뛰어오르라고, 공을 던지면 머리로 받으라고…. 생각이 없는 건가? 사방이 막혀 있는 곳에서 내가 재주라도 부렸다간 다 무너져 버릴지도 모르는데. 지쳤다. 답답하고 지루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좁은 곳에서 단조롭게 지내야 하지?
평소와 다를 바 없던 그저 그런 밤,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캄캄한 수족관에 누군가 들어온 것이다. 조련사의 발소리는 아니었다. 그것보다 좀더 작고 종종거리는 발소리, 얕은 진동. 이 어두운 밤에 여기 올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귀찮으면서도 궁금한 마음에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웬 어린아이가 수조 앞에 선다. 조련사보다 한참 작아서 시선을 내려서 눈을 가늘게 떠야만 볼 수 있는 크기의 아이였다. 아이는 수조 벽을 더럽히기 시작한다. 매일 조련사가 닦고, 또 닦는 곳인데 저 조그만 아이가 더럽힌다고?
다음날부터 아이는 수족관에서 청소를 시작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친구들은 도망가고 혼자만 붙잡힌 모양이다. 마치 태평양에서 나만 잡히고 가족들은 바다에 남아 있는 것처럼, 녀석도 비슷한 처지였다. 녀석은 어느 날부터 내 앞에서 자꾸 하모니카를 분다. 사람들은 나에게 재주를 부리라고 하는데, 이 아이는 내 앞에서 재주를 부린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어느 날은 어디서 생선을 구해와 먹여줬는데 조련사들이 내미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다. 싱싱하고, 달콤하다. 아이는 나에게 바라는 게 없었다. 그래서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가 하모니카를 불면 리듬을 타고, 웃기도 했다. 한 번은 아이가 물에 빠질 뻔한 걸 구해준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나를 사람들 앞에 세웠다. 수족관 개막일이라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리듬을 타고 웃어 보라고 했다. 사람들 앞에서 그런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이와 노는 것만 좋았다. 그건 재주랑은 달랐다. 그날 밤 나는 탱크를 부수어 버렸다. 참고, 참아왔던 어떤 것이 터져버린 기분이었다.
아이와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한 그 밤, 아이가 나타나 다시 한번 재미있는 일을 벌인다. 탱크를 열어 나를, 7천 파운드가 넘는 나를 꺼낸 것이다. 사람들이 돈이 되지 않는 나를 죽이고 보험금을 타내려 한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이의 표정이 절박했다. 나는 아이를 따라 한참을 어디론가 실려 갔고, 눈을 뜨니 꿈에 그리던 바다에 돌아와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사방이 막히지 않은 곳에 자유롭게 떠 있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적응이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탓에 몸놀림도 둔해졌다. 아이는 방파제 쪽으로 달려가면서 점프를 해보라고 소리친다. 나는 아이와 놀던 기억을 떠올리며 크게 몸을 일으켰다. 식구들을 떠올리며 강하게 물장구를 치는 순간,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를 잊지 마, 나도 널 잊지 않을게!“
Movie —봉준호 <옥자>(2017)
나는 돼지다. 보통 돼지랑은 생긴 게 좀 다르다. 몸집도 훨씬 크다. 그래서 ‘슈퍼 돼지’라 불린다. 어릴 때는 형제가 많았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돼지들이었다. 우리는 친해질 틈도 없이 지구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10년 뒤에 만날 수 있다는 말에 그것이 얼마큼의 시간인지도 모르면서 10년을 세며 지냈다. 나는 한국으로 왔다. 나무가 많은 곳이다. 사람들은 이런 곳을 산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는 10년 동안 ‘미자’와 함께 지냈다. 미자는 나에게 ‘옥자’라는 이름을 붙여준 여자아이다. 똥이 마려워서 물가에 가면 엉덩이를 두드려주는 친구다. 꽉 막힌 똥이 술술 나오게 도와주는 둘도 없는 친구다. 미자랑 산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새 소리를 듣고 하늘을 보거나 나뭇잎을 만지는 건 즐겁다. 가끔 나는 헤어진 형제들도 잊고, 10년이라는 시간도 잊는다. 미자와 있으면 이 산에서 태어나 미자와 늘 함께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산이었다. 별일 없이 나무 사이를 걷고 물가에서 세수를 한 날이었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던 그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낯선 남자들이다. 미자에게 누구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미자의 할아버지가 미자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나는 눈 깜짝할 새 미자와 헤어졌다. 산속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 나는 낯선 사람들과 움직이는 시간이 싫다. 힘들다. 부담스럽다. 미자처럼 엉덩이를 토닥이거나 어루만져 주는 사람이 없다. 투박한 손으로 나를 두드리거나 이상한 얼굴로 웃는 사람들뿐이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자꾸 치밀어 오른다. 발끝에서부터 뜨거운 게 머리 쪽으로 솟구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똥을 쌌다. 미자와 멀어지니 아무도 나를 미자 같은 목소리로 옥자라 부르지 않는다. 내 살을 마음대로 갉아 가고, 내 안에서 살덩이를 떼어내 실험이라는 것을 한다. 너무 아프고 싫다. 힘들다. 나는 계속 똥을 싼다.
나를 마음대로 미국으로 데려온 사람들에게서 기분 나쁜 냄새가 난다. 한번은 무대에 나를 세워두고 쇼 같은 걸 하는데 나는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을 참지 못했다. 역한 냄새가 사방에서 풍겨오는 탓이기도 했다. 나는 행사장을 엉망으로 만들고 똥도 엄청나게 쌌다. 그래도 기분은 풀리지 않는다. 미자가 있는 산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마음뿐이다. 나는 눈앞에서 썰려 나가는 형제들을 지켜보는 처지다.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나는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사람들에게 나는 기분 나쁜 냄새가 뭔지 깨달았다. 내 형제들이 타 죽어버린 냄새다. 스테이크가 되고, 고기가 돼서 사람들 위장으로, 땀과 체액으로 변해버린 내 형제들의 냄새다. 가장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여자가 나를 보고 말한다. “왜 아직도 살아 있지?” 무식한 질문이다. 나는 살기 위해 태어났다. 다시 발끝이 뜨거워지고 “꾸엑” 하고 소리를 뱉어낸 순간, 꿈에 그리던 미자 목소리를 듣는다.
“집으로 갈래, 옥자랑.”
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옥자와 나는 번갈아 가며 울었다. 우리는 서로를 토닥여주거나 안아주면서 이동의 시간을 견뎠다. 지금 우리는 다시 산속에 있다. 나는 여기가 좋다. 고약한 냄새가 없는 이곳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내 형제들을 데려오고 싶다.
글 이주연
일러스트 세아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