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에 새긴 경쾌한 사랑

고우리·이방글 ㅡ 레디터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으니 전주로 주섬주섬 챙겨 갔던 질문들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두 사람이 말간 얼굴로 조심스럽게 전한 답변을 하나씩 곱씹어봤다. 어떤 대답은 또 다른 물음으로 이어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이내 뜬금없는 결심으로 다다랐다. 오늘 밤에는 아끼는 펜을 꺼내 내 엉성한 마음을 적어 누군가에게 전해야겠다고. 그들이 내게 들려주고 간, 편지 위에 새겨온 경쾌한 사랑 이야기 덕분이다.

요즘 시대에 직접 쓰는 편지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방글 요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챗 지피티처럼 AI와 대화하는 분들도 많아졌죠. 그래서 오히려 편지가 갖는 의미가 더 커진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AI가 정교해도 잉크 냄새가 배어 있는 종이의 질감이나 손 글씨에 담긴 감정까지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거든요. 손 글씨는 쓰는 사람의 감정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줘요. 기분이 좋을 때는 획이 힘차고 또박또박하고, 마음이 울적할 때는 글씨체가 흐트러지기도 하죠. 편지는 이런 불완전하지만 온전한 사람의 흔적을 담아내요. 아무리 시대가 빠르게 변해도 사람만이 가진 아날로그적 온기를 대신할 수 없다는 걸 편지가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불완전하므로 온전하다는 말에 공감해요. 레디터는 그 서툰 감정을 담아내는 방법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죠. 좀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우리 저희는 편지가 사라지지 않길 바랐고, 이를 위해 사람들에게 편지가 어렵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쉽게, 편하게 느낄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편지 쓰기 리추얼 프로그램은 자기 자신에게 오롯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에요. 우선 편지를 보낼 대상을 정한 뒤, 그 대상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해요. 생각나는 단어들을 검열하지 않고 적어 내려가면서 지금 자신의 감정 상태를 확인하고 마인드맵처럼 점차 넓혀가며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에요. 

 

수신인이 누구든 글을 쓰는 나의 감정에 먼저 집중해 보는 거군요. 

우리 맞아요. 타인도 좋지만 한 번쯤은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면 좋겠어요. 내 고민이나 감정을 활자로 꺼내어 있는 그대로 보고 스스로 위로하는 경험이, 오히려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해주더라고요. 나에게 편지를 쓰면 온전히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거든요. 평소에는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는지 곱씹지 않으면 쉬이 흘려보내기 마련이니까요. 

방글 많은 분이 편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시는데요. 저희는 그 막연한 두려움과 막막함을 조금만 덜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막상 쓰기 시작하면 어렵지 않거든요. 저희는 그런 안내자 역할을 하는 거죠. 

 

편지 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안내하고 싶었어요? 

방글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늘 완벽해 보이려고 노력하잖아요.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 더 애쓰고요. 하지만 편지는 그런 부담을 내려놓고, 솔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맞춤법이 조금 틀려도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진심이니까요. 완벽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연습이 될 수 있어요. 그 서툰 솔직함이 오히려 관계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마전들로 67, 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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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강현욱 장소 협조 하우스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