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앞에 마주 앉은 마음으로

문경연—아날로그키퍼

아날로그키퍼라는 문구 브랜드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한 손에 들어오는 스케줄러를 찾다가 흘러 들어간 그곳에서 홀린 듯 시간을 보냈다. 만든 이의 응원은 사근사근한 말투로 백지를 채웠고, 만든 이의 쓰임은 진실한 모습으로 공백을 메웠기 때문이다. 기록물마다 춤추는 작고 동글동글한 글자들은 어떤 이가 써두었을까 궁금하면서도, 기저에는 사랑이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쓰는 사람이기에 쓰는 마음을 알 수 있다는 아날로그키퍼 문경연은 언제나 기꺼이 종이 앞에 마주 앉는다.

덕분에 한가한 월요일의 서촌을 구경하게 되었어요.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ʻ아날로그키퍼analogue keeper’ 문경연이라고 합니다. 기록을 위한 도구를 만들고 소개해요. 사실 이런 말보다는 꾸준히 쓰는 사람이라 소개하곤 해요. 

 

그 말도 좋은데요? 대화를 나누는 이곳은 ‘파피어프로스트papier, prost’죠. 문을 연 지 얼마나 됐어요? 

5월에 오픈했으니 두 달쯤 되었네요. 파피어프로스트는 아날로그키퍼를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에요. 아날로그키퍼 문구들은 주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숍에 입점해서 퍼져 나갔는데, 아쉬운 점이 있더라고요. 쓰는 분들의 표정이라든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고르려다 내려놓는지를 전혀 모르잖아요. 하나를 사더라도 또는 아예 사지 않더라도 아날로그키퍼에 어떤 얼굴로 닿는지 궁금했어요. 

 

흔히 듣던 단어의 조합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의미를 가진 이름이에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독일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가 저를 종이라는 뜻의 독일어인 ʻ파피어’라고 불렀어요. 제가 워낙 쓰는 걸 좋아하다 보니 붙인 이름이죠. 그리고 남편을 ʻ프로스트’라고 불러줬어요. 혹시 들어올 때 문 손잡이를 보셨어요? 

 

안 그래도 손잡이가 무척 특이했어요. 둥근 컵 같은 걸 밀고 들어온 것 같은데요. 

맞아요. 프로스트는 ʻ치얼스’, 건배라는 의미예요. 술을 즐기지 않는 남편을 그렇게 부른 이유는 기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떠오르는 단어이기 때문이래요. 남편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건배가 떠올랐다고요. 이 공간을 꾸리기로 할 때 어떤 이름을 줄까 고민했는데 순간 종이와 건배가 번뜩 생각나더라고요. 그 친구한테는 비밀로 하다가 파피어프로스트가 완성된 후에 초대한 적 있어요. 그때 깜짝 공개했죠(웃음). “네가 만들어준 이름이야!” 정말 좋아해 줬어요. 

곳곳에 경연 씨와 팀원들의 기록물이 놓여 있고, 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네요. 

공간의 목적을 고민했을 때, 책을 읽고 기록하는 사람이 오길 바랐어요. 큰 테이블에 앉아 가방에서 일기장 꺼내서 쓰고 가는 분들 있잖아요. 카페는 가기 싫고 서점도 내키지 않은 날에 여기서 쓰고 싶어지도록요. 그래서 매대 높이를 높여서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오래 머물도록 구성하고, 우리 기록물을 최대한 늘어놔요. 일종의 샘플로 보여주는 건데 많은 공을 들이죠. ʻ과연 여기 주인들은 제품을 써봤을까? 잘 알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 않도록요.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의 마음을 알 거라 믿으면서, 노력이 더 필요하더라도 기록물을 꼭 보여주자고 팀원들과 약속했어요. 

 

자유롭게 쓰도록 둔 펜들과 스티커, 시필지, 기록을 돕는 질문지까지. 여긴 쓰는 사람이 만든 공간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정말 바빴겠어요. 

바빴어요(웃음). 여길 계약하고 1년 동안은 준비에만 몰두했으니까요. 그래도 체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아픈 데가 있으면 그만큼 퍼포먼스를 내기 힘들잖아요. 일주일에 3일은 아침 수영을 하고, 아침 운동이 없는 날에는 저녁에 필라테스를 하고요. 하루에 복합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데, 운동은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되니까 좋아요. 수영은 생존, 필라테스는 자세! 그 외에도 밤에는 꼭 기록을 남기고, 그마저도 못 하면 쉬는 날에 밀린 기록을 쓰곤 해요.

 

오늘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요. 한숨 돌리고 문구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문구 애정의 역사를 들려주세요. 

시작은 어릴 때가 떠올라요. 초등학교 입학쯤, 아빠가 뜬금없이 자길 따라서 밥을 먹으러 가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고기를 잔뜩 먹고 아빠랑 도란도란 걷다가 동네에 있는 모닝글로리에 간 거예요. 마음에 드는 걸 골라보라고 하시길래 파란색 플라스틱 케이스의 36색 크레파스랑 6공 바인더 다이어리를 골랐어요. 그 제품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는다기보다, 그걸 골랐던 경험 자체가 저한테 되게 중요했어요. 

 

어떤 점에서요? 

어릴 때는 주는 옷 입고 주는 밥 먹고, 어떻게 보면 선택할 수 있는 보기가 별로 없잖아요. 문구를 골랐을 때 ʻ아, 이건 내가 고를 수 있구나.’ 싶었어요. 공책의 색이라든지 연필이나 필통이라든지 나만의 개성을 찾을 수 있는 수단이 되어준 거죠. 그때 문구가 나랑 되게 잘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용돈을 받기 시작하면서 문구를 더 맘껏 골랐는데, 옷이나 신발도 좋아했지만 문구만은 좋아하는 감정이 팍 식지 않고 꾸준했어요. 

 

나의 것을 직접 고른 경험에서부터 물꼬를 튼 거네요. 그 시절 가장 좋아하던 문구를 꼽아본다면요? 

펜이요. 반마다 필통 세 개씩 들고 다니고 엄청 무거운 친구들 있잖아요. 그게 저였어요(웃음). 샤프 스무 개씩 갖고 있고, 수많은 필기구 중에서 뭐 하나 없어지면 바로 알아챘어요. 신제품이 나왔는지 살펴봐야 하니까 문방구도 엄청 자주 갔고요. 친구들 하이테크 펜 고장 나면 고쳐주고요. 

 

그걸 어떻게 고쳐요? 사자마자 떨어뜨려서 망가진 경험이 있거든요. 되게 비쌌잖아요. 

하이테크는 심이 얇으니까 부딪히면 쉽게 구부러져서 안 나오는 데요, 뭉툭한 가위 같은 걸로 끝을 살짝 올려주면 돼요. 그때 저는 펜이 예쁘니까 사거나 쓰는 게 아니라, 그날의 쓰임에 맞춰서 골랐어요. 이런 필기에는 이 펜이 알맞겠다는 손의 감각이 있었달까요? 문구랑 궁합이 잘 맞아서 그랬나 봐요. 지금은 누군가의 글씨체를 보거나 글씨체의 특징을 들으면 그 사람과 잘 어울리는 펜이 바로 떠올라요. 

 

신기하네요. 필기구가 많았으니 쓰는 걸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걸까요? 어머니와 교환 일기를 썼다고요.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남동생이 보면 안 되니까 자물쇠 달린 일기장으로 골라서 엄마랑 열쇠 하나씩 나눠 가졌어요. 하루는 제가 쓰면 다음 날은 엄마가 쓰고…. 한 권을 나눠 쓰던 기억이 생생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놀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저희 집 거실에 텔레비전이 없었거든요. 안방에 있는 작은 텔레비전으로는 주말 저녁에 <X맨> 정도만 볼 수 있었고요. 대신 가장 큰 방에는 책이 가득했어요. 저랑 동생이 다 읽은 책에 스티커를 붙였는데, 둘 다 견출지를 공들여서 고르고 붙이던 기억이 나요.

경연이와 엄마의 하루를 지냈던 하루였구나. 엄마는 즐거웠는데 경연이는 어땠니? 봄에는 취한단다. 술을 마셔서 취한 것처럼. 하얗고 발그레하고 몽땅 흐드러지는 것을 보면 향기와 자태에 취한단다.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자연에 흠뻑 젖어보렴. 그리고 글을 써서 너의 마음을 표현하면 먼 훗날 미소지으며 행복해 할 때가 온단다.

— 2004년 4월 5일. 교환 일기 중 엄마가 경연에게

엄마 안녕하세요? 저 경연이에요^_____^ (중략) 공부도, 노는 것도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 어서 빨리 피로가 풀리셨으면 좋겠어요! 컵스카우트 때문에 다리 많이 아프실텐데, 내년에는 안하셨으면 좋겠네요~

— 2004년 5월 16일. 교환 일기 중 경연이 엄마에게

어머니도 기록을 즐기시나 봐요. 

읽고 쓰는 걸 좋아하셨어요. 가계부나 일기 쓰는 모습을 오랫동안 봐왔고요. 아직도 전하고 싶은 말이나 응원을 보내고 싶으면 꼭 메모지에 적은 후에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세요. 그리고 가족들끼리 아직도 생일 때마다 편지를 주고받아요. 엄마는 아빠 생일 때마다 “자~ 읽는다!” 하면서 당신이 쓰신 편지를 모두에게 읽어주세요(웃음). 

 

글로 진심을 적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닭살 돋는다든지, 오글거린다든지 그런 말들 하잖아요. 

감정이나 생각을 쓰는 게 제 삶의 태도에선 굉장히 자연스러운 부분이었어요. 가족이나 친구들도 저와 비슷해서 더 어렵지 않았나 봐요. 고등학교 때 기숙 학교에 다녔는데 제일 친한 친구랑도 항상 편지를 썼어요. 

 

잠시만요, 기숙 학교라면 항상 붙어 있는 거 아녜요? 

맞아요. 3년 내내 붙어 있었어요(웃음) . 한번은 그 친구가 좋은 대학 갈 거라면서 한 달 반 정도 템플스테이에 간 적이 있어요. 친구가 없으니까 너무 서운하고 쓸쓸하더라고요. 그래서 스프링 노트를 한 권 사서 거기에 매일 편지를 적었어요. ʻ이렇게 널 생각했다는 걸 알면 얼마나 감동받을까.’ 하면서요. 그러고 돌아오자마자 만났는데, 친구도 절 생각하며 똑같이 노트에 편지를 써 온 거예요. 깜짝 놀라고 기분도 좋았어요. 그 친구랑은 아직까지도 그러고 지내요. 기록에 대해 ʻ쿵짝’이 잘 맞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어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두 달 정도 문구 여행을 다녀왔죠. 그 이야기를 《나의 문구 여행기》라는 책으로 펴냈고요. 좋아하는 걸 더 많이 경험하고 싶어 떠난 거겠죠? 

사실은… 비행기표가 정말 저렴했어요. 파리로 들어가서 뉴욕에서 아웃인 표였고, 중간에 런던을 들렸는데 60만원인 거예요! 이 가격에 두 대륙을 갈 수 있는데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 제 전공이 디자인이었고 당연한 듯 IT 기업 입사를 준비 중이었거든요. 누가 취업도 안 하고 모아둔 돈 날려서 가는 게 맞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거 보러 가는 건데?”라고 했어요. 좋아해서 간다면 아무도 뭐라고 못 하잖아요. 

 

그래도 문구를 제대로 즐겨볼 만한 유예의 시간을 얻은 거네요. 

맞아요. 이왕 주변에다가 ʻ문방구 여행’이라고 해두었으니, 가보자 싶었어요. 가고 싶은 해외 문방구 리스트도 이미 가득했고요. 펜, 마스킹테이프, 노트처럼 항상 들고 다니던 걸 챙기니까 엄마가 너는 왜 옷보다 문구를 먼저 챙기냐고 물어보셨죠. 제대로 무언가 해보자는 욕심은 있었는데 파리 도착하자마자 환상이 깨졌어요. 여행자로 있다 보니까 루틴이 없었거든요. 이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 봐 불안했고,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어떤 기록이든 남기자고만 생각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도착하진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궁금해요. 파리는 어땠어요? 

쓰는 사람들의 문화가 인상 깊었어요. 갤러리 안 카페들을 자주 갔는데 거기에 쓰는 사람이 정말 많은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그곳을 전시 보기 전이나 후에 들렀다 가는 정도로만 여기잖아요. 인파가 몰렸다가 한순간에 빠지기도 하고요. 퐁피두 미술관의 카페를 좋아했는데, 노트에 무언가 쓰는 사람들을 보면 완전 무아지경이에요. 어디선가 쓸 곳을 찾아서 온 것처럼요.   

여러 도시를 연달아 경험했는데 도시가 가진 특징들도 느껴졌나요? 

베를린과 바르셀로나는 이어서 다녀왔는데 두 도시 간의 대비가 컸어요. 베를린의 첫인상은 레고로 만든 동네 같달까요. 3시면 해가 지고 톤 다운된 모습을 마주해요. 루이반Luiban의 엽서 매대를 하루 종일 구경하고 밥값과 교통비를 아껴 문구를 샀어요. 빈티지 필기구를 구경하고 우연히 만난 다큐멘터리 감독한테서 펜을 선물 받기도 했는데, 축축하고 추운 도시라서 그런지 움츠러드는 기운을 느꼈고요. 반대로 날이 온화한 바르셀로나는 그간의 긴장이 풀리더라고요. 선명한 도색이 눈에 띄는 문방구에 들어갔더니 알록달록 문구가 가득했어요. 햇살도 따뜻하니 ʻ취업은 뭐, 될 대로 되라!’ 싶었죠.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방구 하나를 골라볼까요? 

런던의 프레젠트&커렉트Present&Correct가 바로 떠올라요. ʻ수집가의 방’이라고 부를 정도로 좋아하는 곳이에요. 작은 집기들이 먼지 없이 깔끔하고, 각양각색의 작은 클립 하나도 모두 개별로 구경할 수 있죠. 사실 파는 사람은 뭉텅이로 한꺼번에 파는 편이 낫거든요. 그런 점에서 문구를 대하는 주인장의 태도가 보여요. 수기 영수증도 정성스럽게 써주는데, 열심히 기록하라는 암묵적인 인사 같았어요. 아, 그리고 한편에 ʻ이페메라Ephemera’도 판매해요. 

 

그게 뭐예요? 

누군가 수집한 우표나 껌 종이처럼 수명이 짧은 종이 조각이에요. 직접 모은 이페메라를 판다는 게, 수집이라는 행위를 다른 이가 이어나가도록 돕겠다는 마음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최근에는 문구류 수집을 잘 하지 않거든요. 이제는 충분히 모았으니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건 갖고 싶지 않아서요. 그래서 저만의 이페메라를 모아요. 빵 봉투, 쇼핑 봉투같은 빈티지한 지류나 브로슈어, 코스터, 우표, 맛있게 먹은 잼 상자 같은 것들요. 그때만의 인쇄 기법이나 디자인 스타일을 볼 수 있어서 좋아해요. 여행 중에 구겨질까 봐 지퍼백에 보관해서 가져오고, 도시 별로 스프링 파일을 사서 끼워둬요. 

 

일상에서 지나치지 않고 수집하는 거니까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특별함이 있네요. 

ʻ누가 이런 걸 모으느냐 싶지만 내가 모은다!’의 마음이죠(웃음).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이미 충분해요. 

 

여행에서 좋은 감정만 얻기는 힘들잖아요. 경연 씨도 그런가요? 

물론이죠. 현실과 미래 사이 경계에 놓인 기분이라 혼란스러웠어요. 긴 여행 동안 분명 즐거웠고 좋은 걸 구경했지만 항상 혼자였고 미래에 뭘 할지도 보이지 않았어요. 시각적인 기쁨은 충족이 되는데 그 경험을 소화하지 못하는 기분이었죠. 물론 안일한 마음도 있었어요. 돈을 써서 세계를 여행하니 무조건 좋을 거라는 건 말도 안 되는 환상이죠. 저와 맞지 않는 것도 있었고 실망스러운 곳도 많았으니 그걸 느끼는 과정에서 저만의 기준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문구를 좋아했고 좋아하고, 많은 시간과 경험을 쏟는데도 그저 취향으로만 바라본 이유가 있어요?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어요. 사실 문구를 싫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세상 사람들 다 쓰고 있는데 이걸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맞나 싶은 거죠. 스무 살은 20년 동안 쓴 거고 쉰 살이 된 사람은 50년 동안 쓴 건데, 누가 더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고요. 만약 여름에 스니커즈 신는 거 좋아해, 정도의 말이었다면 이렇게 어렵지 않았을 거예요.

자신의 진심을 가늠해 봤던 거네요. 취향이나 선호는 보잘것없이 여겨지거나 다른 이와 비교하기 쉽기도 하고요. 처음에 아날로그키퍼를 만들 때도 단기 프로젝트였다고 했죠? 

일종의 시한부 프로젝트였어요(웃음). 당시 하반기 취업 시즌까지만 운영하기로 약속했거든요. 문구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성취를 통해 기승전결로 마무리해 보겠다면서요. 막상 시작하니 나만의 것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일이 재미있더라고요. 고난도 있고 어려움도 많지만 오히려 책임감을 갖게 되는 것도 좋았어요. 새롭게 공부해야 될 게 많았는데 그만큼 더 아는 사람이 된다는 거니까 뿌듯했죠. 

 

칼을 들었으니 무라도 베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가 요리에 빠지게 된… 그런 건가요? 주변 반응도 궁금해져요. 

엄마랑 동생은 직감하고 있었대요. 아빠만 빼고요. 그때 동생이 처음으로 아빠를 설득했어요. 누나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지켜보자고, 용돈도 안 받고 밥도 알아서 먹고 사는 것 같으니 믿어주자고요. 당시 애인이었던 남편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대요. 여행 갔다 오더니 뭔가 뚝딱뚝딱 만드는데 사실 다 지인들이 사주는 거 아닌가 싶었대요(웃음). 그래도 제가 어릴 때부터 한다고 하면 그걸 꼭 해냈던 아이라 가족도 애인도 믿고 응원을 해줬어요. 

 

아날로그키퍼의 대표가 둘이 된 것도 그때부터죠? 

프로젝트가 아닌 본격적인 사업을 해보려고 하니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원래 남편이 서비스 기획자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브랜드를 꾸려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함께 하면 좋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모셔왔죠. 제가 디자인과 브랜딩, 문구 제작을 담당한다면 남편은 전반적인 운영을 도맡는 걸로 역할 분담이 되었어요. 그렇게 1년 동안은 사무실에서 간이침대 펴놓고 화장실에서 먹고 자고 버텼죠. 침대도 이케아에서 10만 원짜리 산 거라 엄청 삐거덕거렸거든요. 눈 뜨면 출근하고 눈 감으면 퇴근하는 그런 삶. 

 

지금의 아날로그키퍼를 생각하면 상상이 어렵네요. 

저 자신을 호되게 검증했던 시기 같아요. 너 정말 이렇게 먹고 사는데도 괜찮은 거니? 집도 없는데 괜찮아? 근데 1년을 꽉 채워 이렇게 보내도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만두고 싶지 않았고 팔리는 게 어디냐, 다음 걸 계속 만들 수 있는 게 어디냐고 생각할 때 느꼈어요. 아, 나 이거 계속 하겠구나. 

 

오랫동안 좋아하던 마음이 단단해져서 뿌리가 되어줬네요. 두 분이 똑같은 생각이었어요? 

남편은 ʻ아, 이거 큰일났다.’ 했대요(웃음).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고요. 그동안 좋은 회사 다니면서 매일 쓰레기통이 비워지는 일상이었는데, 완전히 달라졌잖아요. 브랜드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열심히 했고 하나둘 팀원도 들어와 주었어요. 

 

아날로그키퍼라는 이름은 프로젝트 때부터 변함없이 쓰고 있죠. 

쓴다는 건 느림과 기다림의 연속이니까 아날로그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거기다가 키퍼를 붙이게 된 건 일종의 페르소나를 만든 거죠. 기록하는 사람들이 하나로 모였을 때 뭘 중요하게 생각할까, 아날로그 감성을 애틋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ʻ지키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었어요. 

 

지킨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 이름이었네요. 이제는 좋아하는 걸로 자기소개를 하게 됐는데 어때요? 

음, 사실 아직도 편하게 소개하진 못해요(웃음). 물론 기쁘지만 브랜드를 5년 정도 꾸리게 되니까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하거든요. 뭔가를 너무 좋아해서 성취했다고 말하기엔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그냥 꾸준히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편해요.

안녕하세요. 여름의 더위를 실감하며 금요일에 도착했습니다. 잠깐 사이에도 땀이 헤아려지는 요즘을 건강하게 보내고 계신가요? (중략) 쓰는 일을 멈추지 않기 위해선 이런 작고 귀여운 상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실은 나 비밀 모임의 보스야. 꽤 오래된 조직이야. 강한 편이고, 쉽게 넘볼 수 없어, 라고요. 어차피 들킬 수 없는 생각이니 이 여름, 종이 앞에 앉을 때 조금은 심각해져 볼까요? 그 심각함으로, 진지함으로 우리는 더 깊고 강해질 수 있습니다.

— 2023년 7월 8일 아날로그키퍼 경연

쓰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이 편지는 수취인이 없습니다. 모든 쓰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예요. 만약 지금 책상 앞에 계시면, 편지가 제대로 도착한 것 같습니다. (중략) 쉽진 않겠지만 마지막 문장까지 마음을 많이 쓰시길 바라봅니다. 그래서 받은 사람의 기울어진 몸이 한동안 멍할 만큼의 고유한 원본을 만드시길 응원합니다. 그 고유한 만큼 쓰는 분의 마음이 깊어지리라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마지막 인사는 이렇습니다. ʻ백지 위에서 내내 다정하시길!’

— 2023년 7월 8일 아날로그키퍼 경연

제품을 소개하는 정성스러운 문장들에 시선이 머물러요. 항상 인사를 붙이고, 감정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편지 같기도 하고요. 

아날로그키퍼의 러브 레터라고 생각해요. 샘플로 보여줄 기록물, 인스타그램에 적을 텍스트, 작은 인사까지 수십 번 고민하고 시간과 정성을 쏟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편지를 참 좋아하나 봐요. 진심의 원본 같아요. 남편이 한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돈으로 할 수 있으면 그게 제일 쉬운 방법이라고. 편지는 아무리 돈을 줘도 누군가를 대신해서 진심으로 쓸 수는 없잖아요. 내가 이 시간과 이 마음을 들여서 쓰는 편지라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 아닐까요? 

 

경연 씨는 편지에 어떤 내용을 쓰는 지 궁금해져요. 

모든 종류의 기록은 솔직하게 쓰려고 해요. 보통 편지는 소중하게 간직하는 거니까 내밀한 감정을 쓰려고 노력하죠. 저는 누군가가 보고 싶었을 때 문장이 줄줄 써지는 것 같아요. 우리의 시차와 공간차가 아쉬워서, 편지를 쓰는 과정뿐 아니라 평소에도 당신의 생각을 많이 했다고 표현해요. 봉투를 예쁘게 꾸미거나 나만의 힌트를 써두기도 하고요. 

 

전하고 싶은 말에 무게중심을 더 두는 거네요.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완벽히 안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전하고 싶은 감정을 잘 포장하고 다듬어서 선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누군가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상상을 하진 않나요? 편지 외에 모든 내밀한 기록들도요. 

저와 남편의 암묵적이고 유일한 약속이 있어요. 절대 몰래 읽으면 안 된다는 것. 식탁에 노트가 펼쳐져 있어도 절대 안 읽고 다시 덮어줘요. 부모님도 제 일기장을 몰래 보지 않으셨어요. 일기에는 자책하고 후회하는 감정도 솔직하게 쓰는 터라 남에 대한 말보다 저에 대한 말이 많아요. 그리고 모든 글에는 쓰는 사람의 감정이 담기잖아요. 다짐하는 글이라면 꼭꼭 눌러서 힘차게, 화가 나면 글자에서도 분노가 느껴지고, 즐겁다면 느낌표도 많고 가볍게 쓰겠죠. 만약 아픈 감정을 쓴다면 너무 괴롭더라도 일단 써놓고 메모지로 ʻ감정이 정리되면 읽을 것’, ʻ다신 읽지 말 것’ 이런 식으로 붙여둬요. 제가 과거 기록물을 자주 들춰보는 사람이라 이런 장치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럼 오늘만 살짝 물어봐도 될까요? 최근에 썼던 기록이 무엇인지요. 

남편에게 편지 쓰던 게 떠오르는데요. 평소에 하지 않는 표현으로 애정을 전하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남편과 제가 스무 살 때 만나서 7년 동안 연애했고 지금 결혼 4년 차거든요.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다양하게 했겠어요? 그래서 점점 쉽지 않아요(웃음). 편지에는 오빠를 만나서 내가 날 더 좋아하게 됐다, 네가 준 사랑이 엄청 컸다, 이런 말을 적었던 것 같아요.

기분 좋은 사랑의 언어네요. 일기나 편지 외에도 꾸준히 쓰는 게 있어요? 

오랜 시간 공들여서 채우는 노트들이 있는데요. 하나는 언젠가 노트라고, 언젠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적어두는 거예요. 소소한 거라도 무얼 바라는지 구체적으로 적는데 나중에 다시 보면 이루어진 게 많아서 신기해요. 또 하나는 생경한 단어들을 모아두는 저만의 단어 사전이에요. 얼마 전에 ʻ렉시콘Lexicon’이라는 단어를 들었는데요. 개인이 가진 언어 보따리 같은 개념이래요. 영감은 필요할 때 스윽 나타나는 게 아니니까 특별한 단어를 발견할 때마다 모아두어요. 

 

음식점에 가면 효능을 알려주는 글이 꼭 있잖아요. 문방구에도 그런 게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물어볼게요. 기록의 효능은 뭘까요? 

자신과 좀더 친해져요. 기록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는 거잖아요. 좀더 잘 살길 바라면서 보듬는 마음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쓰기만 하면 대단한 사람이 된다, 부자가 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꾸준히 쓰면 자신과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거예요. 

 

기록을 통해 대화를 걸어보니 경연 씨는 스스로 어떤 사람 같던가요? 

전 제가 미래지향적이고 빠르고 파이팅 넘치는 줄 알았거든요(웃음). 그런데 멀지 않은 일상을 고민하고 하루를 공들여 보내기를 좋아한다는 걸 쓰면서 깨달았어요. 얼마 전, 집이 너무 지저분했던 일이 일기에 적혀 있어요. 이곳은 이렇게 깔끔한데 우리 집 문을 열면 엉망인 거예요. 사소한 것들을 감각하곤 하니까 일상이 무너지면 엄청 우울해지든요. 그랬을 때, 내일 아침에 거뜬히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앞으로는 매주 일요일에 꼭 식재료를 미리 손질해 놨으면 좋겠다고 기록해요. 일상을 되찾으라는 일기의 시그널을 받는 거죠. 

 

쓰는 일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을 살짝 도와준다면요? 

마음에 드는 필기구를 골라보세요. 그리고 자유롭게 생각하세요. 기록은 침묵 속에서만 가능한 대화예요. 입을 앙 다물고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잖아요. 기승전결 필요 없고 문장의 맺음, 맞춤법, 띄어쓰기 전부 상관없어요. 갈등이 없을 수도 있고, 발단만 늘어두다가 끝날 수도 있어요. 무엇이든 괜찮아요. 

 

종이와 나 사이에선 무엇이든 괜찮다는 마음, 간직할게요. 오늘의 대화는 어떤 기록이 될지 궁금해지네요. 

음… 오늘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수집과 기록만으로도 이렇게 오래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즐거웠다고 쓰려고요. 서로 다른 사람이 마주해 무언가 만들어내는 건 변함없이 좋고 재미있다는 것도요.

“에디터님은 평소에 글씨를 어떻게 쓰세요?” 긴 대화를 마친 뒤 경연 씨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는… 빨리 대충 쓰고 또 작게 쓰는 것 같아요.” 발그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경연 씨가 나에게 꼭 맞는 펜이라며 한 자루 건네주었다. 그 곁에는 원고를 볼 때 사용하라는 도톰하고 매끄러운 빨간색 샤프도 한 자루 있었다. 품고 있던 마음을 나누고 싶은,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서 좋아한다는 감정이 완성되는 게 아닐까. 필통 속 두 자루의 필기구가 보일 때마다 발그레한 다정함이 떠오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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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임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