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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dley Waller — Photographer
만나서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저는 브래들리 월러Bradley Waller예요. 덴마크 코펜하겐에 살고 있지만 원래 살던 곳은 영국 로더럼이에요. 로더럼은 시골 풍경으로 뒤덮인 아주 소박한 마을인데, 어릴 때 형제들과 그 동네 모두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녔어요. 긴 여름 내내 황야를 탐험했고, 매일 마지막 빛이 사라질 때까지 걸었지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당시 느낀 자유가 떠올라요. 발견의 자유, 배움의 자유, 그리고 익숙한 곳에서 길을 잃을 자유….
고향을 걷는 건 곧 자유였군요. 오늘의 걷기는 어땠어요?
오늘은 집 근처 자연 보호구역에서 저녁 산책을 했어요.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기 전 마음을 정리할 겸 일요일마다 이곳을 걸어요. 오늘은 걷다가 문득 왼쪽 시야에서 황금빛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걸 보았어요. 꼭 알라딘의 나무 동굴 같았죠. 늘 걷던 길인데 어떻게 이전엔 이 풍경을 몰랐을까요? 산책하다 보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도 자꾸 새로운 게 보여요.
산책할 때만 보이는 풍경들이 있고, 그게 일상을 새롭게 하죠.
산책하다 보면 많은 게 저한테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저 또한 어떤 사물이나 풍경을 향해 걷고, 또 멀어지기도 하죠. 모든 걸음엔 발견과 탐험이 함께하고요. 그럴 때마다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드는데, 미국에서는 이제 의사가 환자를 위해 국립공원 입장권을 처방할 수 있게 되었대요. 전 이게 무척 훌륭한 처방이라고 생각해요. 의사가 환자에게 ‘걷기’를 처방한다니! 걷기가 우리에게 힘을 준다는 아주 멋진 증거예요.
역시 걷기의 힘은 대단하네요. 브래들리는 어디를 걷든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닐 것 같아요.
맞아요. 카메라를 목에 걸지 않고는 집을 떠나지 않아요.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않은 날은… 이제 기억나지 않아요. 요즘은 도시 속에서 자연을 포착하는 데 푹 빠져 있어요. 최근엔 자연과 연결되는 일이 줄어서인지, 사진으로 남겨두는 게 지금 있는 것들을 보존하는 행위처럼 느껴져요. 미국 포토그래퍼 조엘 메예로비츠Joel Meyerowitz가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사물은 있는 그대로 충분히 좋으며, 우리는 그것에 손댈 이유가 없다.” 저는 그런 ‘있는 그대로 충분히 좋은’ 풍경을 담고 싶어요. 작은 세탁소, 길가의 꽃들, 조용한 길모퉁이…. 우리가 사는 곳이 우리를 구성한다는 것은 참 매력적이지 않나요?
문득 깨닫고 나면 신비로운 사실이죠. 브래들리에게 산책은 어떤 의미예요?
10대 시절 꽤 힘든 하루를 보내고 하교한 날이 있었어요. 그때 엄마는 부엌에서 다림질을 하고 계셨죠.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고… 그냥 울기 시작했어요. 방 건너편에서 그러고 있는 저를 보고 엄마가 “산책하자.”고 했죠. 걷기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에요. 그 이후로 산책을 더 좋아하게 됐어요. 저는 제가 사는 도시의 리듬 속에 있는 걸 특히 좋아해요. 제 발밑의 모래 느낌, 제 신발 밑에 닿아오는 그 감촉은 정말 멋져요. 요즘엔 나무들 사이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는 게 좋아요. 가끔은 제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언덕까지 단숨에 뛰어오르고 싶기도 해요.
SNS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죠. “저는 아침 햇살과 안개를 포착하기 위해 동네를 40분 정도 걸었어요. 언덕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제가 찾던 이미지를 만날 수 있었죠.” 원하는 풍경을 찾기 위해 기다리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아주 친숙한 곳이지만 10여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어요. 저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건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발견의 연속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원하는 이미지’를 찾아 걷는 건, 제가 해보지 않은 일이었죠. 오늘도 비슷한 시도를 해보았어요. 산책 중에 문득 저녁 불빛을 포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시간이 지날 때까지 조금 기다렸고 비로소 원하는 이미지를 얻게 됐어요. 전 특히 저녁 시간대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어요. 그건 마치… 속도를 늦춰 걸을 때에야 볼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이 시간이면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고, 광적일 정도로 활기찼던 에너지는 노을이 지는 순간 고요하게 정착하겠죠. 그게 바로 제가 오늘 포착하고 싶던 순간이에요. 심호흡하고 휴식을 취하는 느낌을 담고 싶었거든요.
얼마 전에 노르웨이에 다녀오셨죠. 충분한 휴식이 되었나요?
물론이죠!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자마자 노르웨이 버겐으로 날아갔어요.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기차를 탔고, 산으로 올라가 오두막에서 나흘을 보냈죠. 나흘간 눈 덮인 풍경을 사진으로 부지런히 담았어요. 저한텐 아주 생소한 풍경이었는데 현지인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풍경이라는 게 재미있었어요.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모든 걸 기록하고 싶어져요. 내가 사는 곳보다 여행지가 훨씬 아름다워 보이는 건 나보다 타인의 좋은 점이 더 눈에 띄는 것과 비슷한 이치겠지요. 우리는 여행지에서 더 많은 재미를 기대하곤 해요. 그런데 멋진 여행을 하고 나면, 우리 주변에도 재미와 근사한 풍경이 함께한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돼요. 일상이 더 귀해지는 거죠.
최근엔 익숙한 곳에서 어떤 새로움을 발견했어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꽃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수없이 많이 지나간 나무인데도 어느 날 아침엔 유독 다르게 느껴졌어요. 빛과 꽃나무가 만나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근데 왠지…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어요. 그 순간에 완전히 매료된 거죠.
인물보단 풍경에 빠지는 편이군요. 카메라로 인물을 포착해도 그보다 서사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아요.
눈썰미가 좋군요(웃음). 인물을 찍을 땐 늘 호기심이 함께해요. 저희 할머니 이야기를 해볼게요. 할머니가 아플 때 지금 할머니 모습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근데 할머니가 “이런 내 모습을 찍지 말아줘.”라고 하시더라고요. 물리적인 사람 없이 초상화를 남기는 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봉착한 저는 그날부터 그녀의 집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천천히 집의 풍경을 모아 하나의 시리즈를 만들었고, 그걸로 그녀의 초상화를 대신했죠. 물론 할머니와 함께한 작업이었어요. 저는 에드워드 호퍼에게서 상당히 많은 영감을 받는데, 그에겐 아름다운 태도가 있어요. 답을 필요로 하지 않고 질문을 하도록 만드는 게 그렇죠. 저도 그런 식으로 할머니 없이 할머니의 초상화가 가능할까 생각해본 거였어요. 성공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물을 찍을 땐 늘 어떤 호기심이나 새로운 태도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브래들리의 SNS를 보다가 놀란 적이 있어요. “새로 나온 필름이 빛이 없는 실내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보기 위해 주인이 청소하고 있는 가게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물었어요.”라는 문장을 보고서였죠.
정말 그랬어요(웃음). 어느 날 코닥에서 연락이 왔어요. 코닥 골드 200, 120 필름이 정식으로 출시되기 전에 시험해 볼 수 있겠냐고요. 저는 본능에 따라 자연광 아래서 촬영하고 싶었지만, 이 필름이 얼마나 다재다능한지 알고 싶어서 가능한 한 다양한 환경에서 촬영해 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때 그 가게가 눈에 들어왔죠. 정신없이 청소하고 있는 주인에게 가게 안에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물었더니 처음엔 당황하시더니 이내 수락해 주시더라고요. 사진을 현상하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가게 벽에 그려진 그림이었어요. 코펜하겐 사람이 모여 즐겁게 술 마시는 모습이었죠. 실내에서 실험해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장에선 눈에 띄지 않던 모습에 눈길이 미칠 만큼 좋은 성능의 필름이란 걸 알게 됐으니까요.
실험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흑백 필름을 실험해 본 적도 있죠? 몇 롤 사용하고 나니 본인이 컬러 포토그래퍼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했죠.
흑백 필름을 찍다 보니 흑백 사진은 제가 여태 가지고 온 것과는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걸 금방 깨달았어요. 저는 세계의 모든 색깔과 생동감을 보고 싶은 사람이에요. 제 눈길을 사로잡는 이미지 속에서 색들이 춤추는 걸 보는 게 즐거우니 저는 컬러 필름에 최적화된 포토그래퍼인 거죠. 그런데도 저는 여전히 흑백 필름을 시도해요. 색이 없으니 더 많은 의도를 가지고 질감에 초점을 맞출 수 있거든요. 컬러 필름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을 포착하긴 어렵지만, 이런 시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건강하다고 믿어요. 모든 도전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만드니까요.
브래들리의 그런 시도가 좋아요. 실패를 바라보는 태도도 그렇고요. “약간 흐릿한 거 알아요….”라면서 초점 나간 사진을 업로드하기도 하잖아요(웃음).
하하하(웃음), 그 말을 듣고 보니 저는 제 일이 정말 재미있나 봐요. 이건 때때로 감각적인 경험처럼 느껴져요. 사진은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니라 냄새나 감각을 불러올 수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저는 이미지가 선명할 때, 메가픽셀을 활용할 때 더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소프트 포커스가 오히려 특정한 질감을 가진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고 생각하죠. 지금 출시되는 모든 카메라는 이전보다 훨씬 나은 화질이어서 훨씬 선명해요. 도대체 ‘더 나은 것’의 끝은 어디일까요? 저는 이제 예술적인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지 결정함으로써 말이죠.
그 결정엔 나에게 잘 맞는 카메라나 필름을 찾는 일도 포함될 것 같아요.
지금은 Mamiya RZ67이라는 중형 카메라를 주로 사용해요. 함께 쓰는 Canon AE-1 모델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죠. AE-1 모델은 매우 민첩해요. 대부분의 시나리오에서 완벽한 결과를 보여주는 모델이죠. 반면, 상당히 무겁고 번거로운 Mamiya는… 수동형이기 때문에 제 머릿속을 계산으로 복잡하게 만들어요. 중형 카메라 필름 특성상 한 롤이 열다섯 방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사진 찍을 때 신중하게 고려해야 해서 더 그렇고요.
그런 복잡한 계산에도 불구하고 중형 카메라를 좋아한다는 거군요. 브래들리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더 많은 사람이 제 사진을 보고 여러 가지를 느끼길 바라요. 주위에 있는 것에 감탄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게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상기시켜 주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하는 건 아주 멋진 일인 거죠.
에디터 이주연
Bradley Waller—Photograp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