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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울ㅡ작가
김서울 작가의 궁 산책은 서울의 궁을 좋아해야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시작되었다. 싫어하는 것에 먼저 손을 내밀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동안 알고 있던 싫은 점을 외면하고, 눈을 크게 뜨고 취향을 발견하며, 미처 보지 못한 것은 잊지 않고 다시 찾아가면서 마음에 자기만의 지도를 새겼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좋아해 내고 보니, 다른 이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간질간질 피어 올랐다.
한국 전통문화에 관한 글을 쓰셔서 그런지 김서울이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려요.
김서울은 SNS에서 닉네임으로 사용하다가 필명으로 굳어졌어요. SNS에 박물관, 유물, 전통문화 전반에 관해서 쓰다 보니 주제를 포괄적으로 아우를 만한 이름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김씨가 먼저 떠올랐어요. ‘서울’이라는 이름도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었고요.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가 익명성을 대표하는 옛 구절이라고 생각해서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어요. 이건 다른 얘기지만, 제가 황씨라서 살면서 한 번도 출석부 마지막을 놓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김씨가 부럽기도 했어요.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저자 소개에 “대학에서 전통회화를 전공하고 문화재 지류 보존처리 일을 하다 현재는 대학원에서 박물관과 유물에 관해 공부하고 있다.”고 되어 있어요. 한 방향으로 걸어 왔는데, 어릴 때부터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나요?
아뇨. 고등학교 때까지 클라리넷을 전공했어요. 매일 연습하고 콩쿠르 나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제가 주목받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정말 크거든요. 그래서 고민하다 열아홉 살 때 그만 뒀어요. 미술 입시를 너무 해보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한 예술대학 사진과에서 사진 비평 글쓰기 시험을 통과하면 입학이 가능하다는 공고를 봤어요. 해볼 만할 것 같아서 도전했고 합격했죠. 정말 우연히 실기가 아닌 글쓰기 시험으로 뽑힌 학번이었어요. 막상 입학하니 학교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친구들로 가득해서 저와는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요.
고3때 클라리넷을 그만둔 것도 놀라운데 사진과라니….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음… 그만 뒀죠(웃음). 그 다음에는 전통회화를 공부하고 싶어서 알아봤어요. 가고 싶은 학교에서 보는 본고사와 기본적인 실기 시험을 치렀고, 그림은 입학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그렸죠. 지류 보존처리 일은 학부 포함해서 5년 정도 했는데, 업계에서 이 정도 경력이면 명함도 못 내밀어요. 지금은 대학원에서 문화정책연구를 전공해요. 한국에 박물관학이 따로 없는데, 학과 교수님이 박물관을 연구하시는 분이어서 선택했어요. 학부도 대학원도 여기저기 다녀서 제가 다닌 학교 간판만 다섯 개쯤 되네요(웃음).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네요.
근성이 없어서요(웃음). 요즘 MZ세대가 사회생활 할 때 이렇다 저렇다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제가 딱 그 전형이에요. 학교도 직장도 다니다가 ‘아… 아닌 것 같은데.’ 하면 그만두고 아예 다른 일을 찾아요. 회사에 출근하면 구성원과 업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기본적인 사회생활이야 괜찮지만, 업무에서 타인과의 인간관계까지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크게 보이거나 요구된다면 더 이상 일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대인을 안 좋아했던 것 같아요. 게임도 혼자 하는 퍼즐이나 스도쿠 같은 걸 즐기고요. 보존과학 회사를 그만두고 악기점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기타 수리하는 일이 훨씬 좋았어요. 좀 어영부영 살고 있어요(웃음). 120세 시대라고 하니까 직업에 더 미련을 안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뭘 해도 어차피 바뀌게 될 텐데 그럼 그냥 지금 바꾸자, 싶은 거죠.
지나온 일에 대한 미련만큼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보여요.
그런 편이에요. 클라리넷을 그만둘 수 있었던 건 오히려 입시를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한 발짝 더 가면 나오기 힘들겠다 싶을 때 빠진 거죠. 이혼보다 파혼이 낫다고 하잖아요(웃음). 사실 글쓰기도 2016년에 처음 《유물즈》를 내고 끝내려고 했어요.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은 결과물이었고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접으려던 때에 계속 일이 들어왔어요. ‘이번 마감만, 이번 마감만’ 하다 보니 6년이 됐죠. 이왕 이렇게 된 거 10년만 채워보고 싶어요. 지금도 적성에 안 맞다고 생각하는 건 변함없는데 편집자분들이 멱살 잡고 끌고 가 주시는 거예요. 새로운 일에 쉽게 도전하는 건 뭔가 하려는 의지를 언제나 마음에 품고 있어서 가능한 것 같아요. 그 마음이 있으니 뭘 하든 못 견디겠다 싶으면 바로 돌아설 수 있어요.
지금은 우리 전통문화 전반에 애정이 큰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깊게 빠지게 됐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고향이 없었어요. 태어난 곳도 있고 오랫동안 자란 곳도 있지만 한 번도 그 지역을 고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마음이 안정되는 곳이 없는 거죠. 방학 때는 음악 전공 때문에 합숙하느라 집을 자주 떠나 있다 보니 더 정붙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예전에 백문백답 많이 했잖아요. ‘당신의 고향은?’이라는 질문에 당연히 지역명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그 애틋한 감정이 궁금했고요. 저는 ‘내가 왜 한국인이지?’라는 고민도 정말 오래 했거든요. 밖으로 나가야 해결이 될 줄 알고 유럽 여행을 오래 하거나 외국인 친구들이랑만 교류한 적도 있는데, 질문에 대한 답을 못 구했어요. 하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태어난 국가와 문화를 이해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내가 한국 사람인 이유, 여기서 사는 이유, 나한테서 떨쳐낼 수 없는 한국적인 면들을 파헤쳐보고 싶었어요. 사실 평소에도 스스로 너무 한국인임을 느낄 때가 많아요. 문이 보이면 무조건 밀고, 공항에 내리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향해 돌진하는 제 모습을 볼 때 그렇죠(웃음).
풀리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가 애정이 생긴 거군요.
맞아요. 뭔가에 쉽게 정을 못 붙이는 편인데, 박물관은 학교 다닐 때 매일 가다시피 하니까 싫어할 겨를 없이 일상에 녹아들었고, 좋아하게 됐어요. 생각보다 재미있었고요. 물론 제 문제를 풀러 간 것도 있어요. 내가 쓰는 물건들은 왜 다른 나라 것보다 못생기게 느껴지는지, 이 물건의 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려고요. 실제로 알고 나면 납득이 됐거든요. 예를 들어 냄비 중에 각지지 않고 둥글게 떨어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저는 예쁘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고려시대에 쓰던 냄비였다든가, 조선시대에 쓰이던 물건들과 제가 보던 물건들을 연결점으로 이을 수 있을 때 더 이상 싫은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아, 그래서 그랬구나. 나는 이런 뿌리와 흐름 속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이런 걸 봐온 거구나.’ 이해가 된 거죠.
한국 사람이라는 게 왜 그렇게 싫었어요?
박물관과 전통문화를 공부해 온 사람으로 이제 와서 정리를 해보자면, 저희 세대는 아직 한국의 복합적인 근현대사의 영향 속에 있는 세대라고 생각해요. 저희 엄마만 해도 베이징에서 지내다가 인천으로 넘어와 차이나타운 근처에서 자란 분이고, 저희 이모들은 베이징에서 태어났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나 봐요. 어릴 때는 학교에서 가족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이 있잖아요. 저는 부모님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되게 이질적으로 받아들이는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악의 없이 나오는 반응이겠지만 그런 질문을 자꾸 들으면서 의문이 생겼어요. 내가 이상한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면서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아요.
이제 조금 이해가 가요. 싫어하는 것에 정붙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번 책 쓰기 전까지 ‘조선, 왕실, 궁궐’을 좋아하지 않았다고요. 마음을 여는 데 노력이 꽤 필요했을 것 같아요.
먼저 정보를 다 없애고 대상을 보려고 했어요. 엄격한 규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기는 왕이 살던 장소니까 네가 알아서 정숙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답답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유물도 마찬가지인 게, 유물에는 나이가 없잖아요. 옛날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이 저보다 위에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모양에 대한 호불호도 쉽게 뱉지 못하는 분위기가 이해가 안 됐어요. 전 아직까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본 적이 없어요. 국기에 왜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모두가 국기를 보고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게 이상해 보였거든요. 전체주의에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땐 선생님이 시키는데도 안 해서 많이 혼났죠.
어린아이가 시키는 걸 안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엄마·아빠의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그럴 수 있다면서 수긍해 주셨어요. 집안 환경이 그래서 의문이 더 커졌나 봐요. 어릴 때부터 고분고분 말 잘 들었으면 한국인인 것도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텐데(웃음)…. 궁궐이 싫었던 이유도 그런 정보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엄숙한 분위기는 사실 보이지 않는 허상일 뿐이잖아요. 허상을 걷어내고 산책 장소로 보려고 노력했어요. 제 편견 때문에 그 좋은 곳을 못 가는 것도 손해라고 생각했고, 조선 왕실 주제를 계속 피하기만 하니까 박물관 유물을 쭉 둘러보면서 이야기할 때마다 중간에 뚝 끊기더라고요. 이 문제를 내가 한 번은 넘어야겠다, 정붙이려면 일단 걷고 보자, 걷고 나서 보면 더 이해가 되겠지, 해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장소에 대한 애정을 만들고, 이 궁은 나무랑 풍경이 좋다, 저 궁은 동선이 매력적이다, 하면서 그 안의 요소에도 마음을 주었죠. 제가 돌을 좋아해요. 이상한 취향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돌의 질감과 쓰임이 좋아요. 담장의 돌 색깔, 바닥의 돌이 우둘투둘하게 밟히는 느낌, 비가 왔을 때 달라지는 질감들을 살펴보는 것도 즐거웠어요. 예전엔 제 발로 궁을 찾은 적이 없지만 이제는 안부 묻듯이 거닐어요.
책을 위한 궁 산책 계획도 세웠을 것 같아요.
사계절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1년의 기간을 잡았어요. 그래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쉽게도 모든 궁의 사계절을 보지는 못했지만, 봄은 주로 경복궁에서, 겨울은 창덕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죠. 저는 극단적인 날씨를 좋아해요. 오늘 같이 애매하게 더운 날보다 오히려 37도에 푹푹 찌고 습기 가득한 날이 더 좋아요. 그런 날엔 궁에 사람도 없고 모든 소리가 습기를 머금어 먹먹하게 들려요. 나뭇잎도 약간 시커먼 색을 띠고요. 사람이 너무 힘들면 멍해지잖아요. 강제로 명상이 되는 순간이 왔을 때 다르게 보이는 풍경들이 있더라고요. 너무 더울 때 보는 마당, 너무 추울 때 보는 숲은 평소와 많이 달라요. 가끔 계획없이 가서 거닐기도 했어요. 궁 근처에 약속이나 미팅이 있으면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짧게는 15분, 30분씩 발길 닿는 방향으로 걸어요. 어떤 날은 유난히 발이 안 갔던 구역을 표시해 두었다가 그쪽만 돌기도 하고요.
사람도 자주 만나면 친해지듯이 궁도 마찬가지네요. 궁 산책의 매력을 말해 주세요.
일단 빌딩이 없어요. 도시와 단절된 느낌이어서 좋긴 한데 자기가 서 있는 곳을 제대로 모르면 길을 잃을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 해요. 서울 안에서 길을 잃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이겠네요. 저도 한 번 길을 잃은 적이 있어요. 궁과 그다지 친하지 않을 때 창덕궁을 걷고 있었는데 비가 조금 오더라고요. 담장 때문에 시야가 완전 가려져서 방향감각을 잃고 계속 빙빙 돌았어요. 사람은 없고 까치랑 고양이만 지나다니고, 점점 깊이 들어가는 것만 같고… 아마 위에서 봤으면 가관이었을 거예요. 혼자 비 맞으면서 빙빙 도니까(웃음). 다행히 제가 알고 있는 향나무 끄트머리가 보여서 길을 찾았죠.
평소에도 길을 자주 잃는 저로서는 오싹한 매력이네요(웃음).창덕궁에 특별히 좋아하는 것들이 있어요?
입구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작은 돌다리가 보여요. 돌다리 난간에 네 개의 석수가 올라와 있는데 우선 그 친구들을 귀여워하고요. 5월 말에 선원전 뒤 화단에 모란이 만개해요. 그게 피었는지 궁금하고… 여름 되면 저쪽 중간 건물 앞에 있는 앵두나무에 앵두가 새빨갛게 열리는데, 한여름 쨍한 햇빛에 비추는 빨간색과 주변 건물의 대비가 확실하고 생동감이 있어서 예뻐요. 저 뒤에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 깔린 잔디밭도 좋아해요. 정말 조용해서 잔디 밟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예요. 이것도 궁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이겠네요.
혼자 걷는 걸 선호하나 봐요.
네. 누구랑 같이 오면 제가 뭘 봤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옆 사람이 어떤 풍경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서 계속 질문하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좋아하는지도 묻고요. 그러고 나면 그날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물론 그 시간도 뜻깊지만 온전히 제 시간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오늘처럼 뙤약볕 아래서 궁을 즐기는 팁이 있을까요?
글쎄요…. 이런 날엔 보통 모자를 쓰긴 하지만, 워낙 그늘이 없어서 달리 햇빛을 피할 방법은 없고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에요. 비가 오는 날에는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구경하기도 하고요.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그런 식으로라도 경험해 보려고 해요. 궁의 여자들이 지내던 공간인 내전 주변에 물길이 쭉 둘러져 있거든요. 괴석도 놓여 있고요. 여기 들어온 여자들은 죽거나 폐위되지 않는 이상 평생 밖에 못 나갔기 때문에 그런 돌이라도 놓고 나무라도 심으면서 바깥 풍경을 끌어오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예부터 산을 좋아하던 민족이고, 이 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들인데 한정된 공간에서만 살았다는 게 안타까워요. 물길에 떠 있는 연꽃이 얼마나 위로가 됐을까 싶어요.
지금은 궁녀들 대신 남녀노소 모두가 궁을 즐기고 있네요.
맞아요. 박물관에서는 대상을 보고 밝은 표정을 짓거나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대부분 정적으로 관람하는 편인데, 궁궐에서는 이 대상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고, 여러 번 온 것 같은 말소리를 가깝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순수하게 좋아서 웃는 얼굴들을 봤을 때 안도감을 느껴요. 가끔 혼자 적당한 데 앉아서 그런 분들을 구경해요. 표정, 발걸음, 속도, 움직이는 동선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어찌 보면 그것도 작가님의 궁 산책 루틴이네요. 창경궁에서 본 고양이들이 조선시대부터 살던 고양이의 후손이 아닐까 생각하셨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제가 워낙 동물을 좋아해서 처음 그 고양이를 봤을 때 인상이 남아 있거든요. 창경궁 대온실 안에 식물이 쭉 놓여 있는데 아래쪽 배수관에서 야옹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고양이가 있는 거예요. 궁궐에 강아지는 못 데리고 가잖아요. 고양이가 그렇게 내부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거라는 생각을 못 해봐서 너무 뜻밖이었어요. 심지어 되게 많아요. 한두 해도 아니고 7-8년 정도를 봤으니 이쪽에 생태계가 생긴 지 꽤 오래됐을 거예요. 신기하게 창경궁 호수 쪽이랑 창덕궁 후원 문 앞에만 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생각하게 되는 거죠. 공주가 고양이를 키웠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때 본 애들이 그 고양이의 후손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요.
작가님의 ‘아주 사적인 산책 스타일’이 궁금해요.
변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웬만하면 가는 곳만 가고 시간도 정해 둬요. 요즘 제 산책 패턴은 강아지 ‘도리’에게 맞춰져 있어요. 하루 세 번 나가는데요. 10시에서 11시 사이, 아니면 11시에서 12시 사이에 한 시간 좀 넘게 하고, 5시에서 6시 사이에 40분 정도 걸어요. 밤 12시에 마지막 짧은 산책을 하면 총 두 시간 정도 되겠네요. 동네 바로 옆에 산이 있어서 더워지기 전에는 매일 등산했어요.
산책 메이트 도리는 어떤 친구인가요?
작년 8월에 보호소에서 데리고 왔고, 그때 세 살 추정이었으니까 서너 살쯤 됐어요. 여자애인데 중성화했고요. 너무 TMI인가(웃음)? 소극적이고 겁이 많아서 가던 길 이외에는 갈피를 못 잡아요. 정해진 길 안에서 평소에 잘 못 가던 구역의 냄새를 조금씩 맡게 해주면서 산책을 시키죠. 사람은 좋아하는데 개만 보면 짖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다움’은 없는 개인데, 계획된 시간과 공간을 좋아하는 게 저를 닮은 것 같아요.
도리 없이 걸을 때는 어때요? 언제 산책이 필요한가요?
일하다 안 풀릴 때죠. 저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시작을 못 하는 편이에요. 글쓰기가 엄청난 창작력이 필요할 것 같지만 사실 그냥 쓰기 시작하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육체노동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글의 주제는 늘 미리 생각해 두기 때문에 얼른 초안을 쓰고 나중에 살을 붙여가면 되는데 초안 잡기까지가 어려워요. 그럴 땐 그냥 속 시원하게 한 시간 정도 걸어요. 지쳐 돌아와 샤워 싹 하고 집중하는 게 제일 효과적이에요. 걸으면 생각이 없어져서 좋아요.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한다는 분들도 있던데, 비워내는 편이군요.
비워낸다기보다 밖에 나가서 신경 쓸 게 많아서 그래요. 주변 풍경을 잘 관찰하거든요. 요새는 풀이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빠르니까 ‘풀이 벌써 저만큼 컸네.’ 생각하고, 정오에는 햇빛이 떨어지는 각도를 보며 ‘정오에는 정말 햇빛이 이렇게 떨어지네.’ 해요. 냄새도 잘 맡고 소리도 잘 들어요. 그래서 일 생각할 틈이 없죠. 순간순간의 감각은 깨어나고 생각이 없어져요.
감각을 깨우는 산책의 삼요소를 꼽아보자면 뭐가 있을까요?
삼요소라…. 날씨랑 신발이랑 체력이요. 장소는 사실 어디든 될 수 있어요. 궁궐이든 산이든 또 다른 곳이든 걸을 만한 길을 발견하면 걸으러 가보거든요. 그런데 제가 발 살이 무른 편이라 잘 까져서 신발에 예민해요. 발에 잘 맞는 신발이면 몇 년이고 닳을 때까지 신는 걸 생각하면 신발이 꽤 중요한 것 같고요, 날씨에 따라 볼 수 있는 범위가 많이 달라지니 날씨도 중요한 요소예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극단적인 날씨를 정말 좋아해요. 지나고 봤을 때 힘들다는 느낌보다는 강렬한 기억이 더 많이 남아서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체력을 꼽은 이유는, 제가 어느 정도의 체력이 필요한 산책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힘없는 상태에서 걷는 건 왠지 생존을 위한 느낌이라 별로예요. 그래서 저는 꼭 돌아갈 체력까지 안배해서 걸어요. 계획한 시간을 다 쓰지 못해도 유난히 피곤하다 싶으면 중간에 돌아가요. 다음에 다시 나오면 되니까요.
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