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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
조금 더 먼 바위를
생각하며
경주 남산
경주에 가면 무엇을 할까 생각하며 몇 개의 이름을 적었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안압지, 요즘에는 주상절리도 좋다던데? 그러다 경주에도 남산이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여행을 하면 꼭 하루쯤은 무리해서 걷는 일정을 넣곤 하는데, 어쩐지 이곳이라면 마음껏 지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산학교와
조력자
사실 경주에 내려오기 직전까지도 남산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한 사진작가가 찍은 소나무 숲이 유명하다더라. 딱 그 정도였다. 검색을 해봤더니 남산에는 생각보다 많은 문화재와 역사가 있었다. 이제까지 확인된 문화재만 해도 690여 개 이상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남산은 고대 왕국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지이자, 당시 세계 3대 도시 경주의 가장 중심에 있던 산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통일신라 시대의 경주는 지금보다 약 네 배가량 많은 100만 명 정도의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담이 낮은 경주의 한적한 골목을 걷고 있자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과 문화가 이 땅을 지배했는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숫자가 많아지면 당황하는 편인데, 그 와중에 산을 오르는 경로마저 다양하다고 하니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던 중 동료가 남산학교라는 것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말 그대로 남산을 공부하는 학교였다. 산을 공부한다니 무슨 일일까? 나는 부랴부랴 조력자를 만나기 위해 학교를 찾아가기로 했다.
김구석
아저씨
알고 보니 남산학교는 경주남산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연구소는 작은 현판이 걸린 건물 2층에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자 교장선생님은 책 속에 거의 파묻혀있었다. 김구석 아저씨는 경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시청 공무원 생활을 마친 뒤 남산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연구소라고 하니 뭔가 전문적인 기운이 느껴졌는데, 뜨거운 물로 우려낸 보이차를 직접 따라주는 모습은 온화한 교장선생님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남산 해설사 교육, 안내소 운영, 가이드북을 만들거나 사진전을 여는 것 모두 연구소의 일이었다. 다양한 코스를 개발해 안전한 산행을 돕는 것 역시 그들의 일이었다. 현재 남산에서 활동하는 해설사들은 거의 다 김구석 아저씨의 손을 거쳤는데, 그런 오랜 시간의 경험과 지혜를 갖는 동안 어떤 사명감 같은 게 있지는 않았을까 궁금했다. “어째서 이런 일을 했는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가끔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흘러온 거예요. 공부를 열심히 안 했으니 객지로 나가지도 못한 거고(웃음). 고향의 문화유산에 반해서 하는 일을 미화할 필요가 뭐 있겠어요.” 그저 좋아서 산에 오르고, 깨지고 흩어진 문화재를 더 오래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20년을 넘게 남산만 봤어요. 그런데도 겁이 나서 말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많이 알수록 더 어려워지더라니까.” 그는 남산이 기록된 고문서를 몇 번이고 다시 공부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답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남산에 대해서라면 첫 번째 손가락에 꼽히는 전문가의 태도라기에는 지나친 겸손 같았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사람의 지식으로는 산에 담긴 천 년의 지혜를 다 헤아리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산은 평야 속의 산이다. 기진한 능선들이 들판으로 잦아드는 언저리에서 산은 들로부터 겨우 몸을 일으키는 흙의 유순한 융기에 불과했으나 산의 골세는 이미 거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뼈의 얼개들은 산의 언저리로부터 희미한 맥을 일으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가 문득 힘이 솟구치는 곳에서 계곡을 옆으로 타넘고 이웃 계곡을 따라 올라온 또다른 골세와 합쳐지면서 칠부능선 위쪽으로 뼈와 숲과 바다를 이루는데, 그 뼈줄기 모든 관절에서 부처는 피어난다. 경주 남산에서는 예기치 못한 모든 모퉁이나 굽이침에서 부처와 탑들이 복병처럼 불쑥불쑥 나타난다.
– 김훈, 《풍경과 상처》 중에서
그 많은 부처는
다 어디서 나왔을까
소설가 김훈은 남산을 하나의 뚜렷한 봉우리가 없는 산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남산은 경주의 너른 평야 한가운데에 거북이 등 모양으로 완만하게 펼쳐져 있었다. 내가 택한 길은 삼릉에서 시작해 금오봉에 오른 뒤 용장으로 내려오는 서남산 코스였다. 여유를 두고 걸으면 여섯 시간 정도가 걸리는 길이었다. 김구석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다른 길에 비해 문화재가 많이 분포되어 있어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한다. 과연 세 개의 왕릉이 모인 소나무 밭을 시작으로 산을 오르는 내내 다양한 얼굴의 문화재를 볼 수 있었다. 김훈의 표현처럼 불상은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는데, 가령 가파른 길을 올라 숨을 고르려 고개를 들면 불쑥 코앞에 불상이 나타나는 식이었다.
종교를 믿는 것과는 관계없이 천 년을 견딘 바위라는 것이 놀라웠다. 절벽 가파른 곳에 부처의 얼굴을 새긴 신라인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에게 남산은 어떤 의미였을까? “화강암에 부처를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안에서 부처가 나온 거예요. 그들이 부처를 찾아낸 거지요.” 어려웠다. 말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말에 담긴 속뜻이 어려웠다. 불교를 믿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남산의
진짜 의미
돌로 만든 부처 앞에 앉아 가만히 생각했다. 화강암은 단단하고, 단단한 부처의 얼굴은 눈이 작은 내 친구를 닮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웃음이 나왔다. 아주 오래된, 값을 매길 수 없는 문화재 앞에서 하필 못생긴 친구를 생각하다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처가 친구를 닮은 것인지 친구가 부처를 닮은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이곳을 지나치지 않았다면 내 친구는 불상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평생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문득 아저씨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남산에 불교가 들어와서 신성한 산일까요? 아니죠. 이곳은 원래 신성한 산이었어요. 박혁거세의 탄생지가 남산 기슭에 있어요. 그가 내려왔기에 성스러운 땅이 아니고, 그 이전부터 성스러운 땅이었어요.”, “그럼 왜 그것이 부처의 얼굴로 나타났던 걸까요?”, “돌에서 부처가 나타났다는 말은 조각이 새겨지기 이전부터 그 바위가 신성시되었다는 의미예요. 바위에 담긴 막연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불교와 만나자 자연스럽게 부처와 보살의 형태를 띠게 된 거죠. 다른 종교였으면 달랐을 거예요.” 그러니까 남산을 커다란 불교 유적지로 이해하지 않고 종교 이전의 신령이 깃든 산으로 받아들였다는 거였다. “멀리서 보면 보일 테고 가까이에서 보면 보이지 않을 거예요. 산이 그렇고 종교가 그래요.” 멀리서 보면 가깝고 가까이에서는 멀어지는 것. 문화재를 볼 때 공예품이나 기념품으로만 생각한다면 천 년 전 바위나 보이차가 든 찻잔이나 다를 게 없다는 뜻 같았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남산을 찾은 건 아니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심각해져 버렸다. 억지로 하는 행동처럼 보일까 봐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 대신 눈앞의 불상을 조금 더 멀리서 보기 위해 몇 발자국,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무엇도 거스르지 않는,
남산에서 발견한 풍경들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 지방유형문화재 19호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전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노천불로 만들어졌다고 추측된다. 특히 빛을 형상화한 광배 대신 비스듬하게 자리한 등 뒤의 바위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을 연상시킨다.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활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삼릉계곡 선각마애육존불
| 지방유형문화재 21호
동서로 펼쳐진 넓은 바위 면에 선으로 불상을 새겨 넣었다. 특이한 점은 선각을 하기 전 바위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지 않았다는 것인데, 불상이 커튼 안쪽의 실루엣처럼 보이는 효과를 준다. 마치 불상이 바위 속에서 막 나오려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 보물 186호
금오산 동편 능선에 자리한 삼층석탑이다. 평범한 석탑 같지만 자세히 보면 탑을 받치는 기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과 연결된 편평한 바위가 석탑의 기단 구실을 하는데, 이는 다시 말해 산 전체가 탑의 기단과 같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연과의 어울림이 두드러지는 대표적인 남산의 문화재다.
삼릉 옆 소나무 숲
신라의 세 명의 왕(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을 함께 모신 삼릉 주변으로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소나무는 하늘로 곧지 않고 조금 기울어진 채 한곳을 향해 자라 있는데, 안개 낀 새벽에 숲을 거닐다 보면 영화 <원령공주>의 사슴신을 마주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 보물 198호
바위에 조그만 굴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두었다. 7세기 초의 문화재이며 둥근 얼굴과 미소가 할머니를 닮았다. 만약 저 좁은 굴 안에 꽃미남 불상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래도 뭔가 편안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눈이나 비가 와도 맞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는 모습이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 보물 199호
경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 끝에 불상을 새겨놓았다. 마침 멀리 산등성이와 구름이 배경처럼 펼쳐지며 하늘 위를 떠다니는 모습처럼 보인다. 실제 불상이 앉은 곳 역시 구름 모양으로 조각되었다. 불상을 조각할 당시에도 사람들은 멀리 하늘과의 어울림을 생각했을 것이다.
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