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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깊이 심심해지기 위한 여행
마을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읍내라고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이 느린 마을에서 나는 아주 깊은 심심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 심심함이 나빴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선뜻 ‘그렇다.’라고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그때의 심심한 여행이 자꾸만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치따슬로 선언문
시간의 의미를 되찾은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 여기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고장. 마당, 극장, 공방, 다방, 식당. 영혼이 깃든 풍요로운 장소들. 이곳에 온화한 풍경과 숙련된 장인들이 사는 고장. 자비로운 계절의 변화가 주는 아름다움. 향토 음식의 맛과 영양. 의식의 자발성을 존경하고 여전히 느림을 알며 전통을 존경하는 고장.
1999년 10월 그레베 인 끼안띠Greve in Chianti
1999년 가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에서 ‘치따슬로Cittaslow’라는 이름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슬로푸드 먹기’와 ‘느리게 살기’를 실천하며, 속도를 가장 큰 가치로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자 했다. 작은 마음에서 시작한 이 운동은 느림의 가치를 인정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자는 취지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29개국 189도시가 뜻을 함께하고자 슬로시티라는 이름 아래 모였다. 우리나라에도 창평과 증도, 청산도 등 10개의 도시가 슬로시티로 선정되었는데, 공식 슬로시티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국제 연맹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우선 인구가 5만 명이 넘어서는 안 되고, 자연 생태계를 보호해야 하며,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조항을 통과해야 한다. 거기에 유기농으로 생산되는 지역 특산물이 있어야 하고 대형 마트나 패스트푸드점도 없어야 한다. 까다로운 가입조건으로 미뤄볼 때 이 운동은 비단 빠름과 느림의 대비를 부각하는 것에 있지 않고, 성장보다는 성숙하기를 바라는 마음, 양보다 질을 우선하는 마음, 깊이와 품위를 존중하는 마음을 제안한다. 달팽이 등에 업힌 마을 공동체의 로고처럼 느리고 둥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이 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태도다.
사진 속 마을은 돌담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흙길을 걷다가 낮게 쌓아올린 담 너머로 눈길을 돌리면 허리가 굽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쳐 인사할 수 있는 곳. 하늘이 아름다운 계절이었고, 어디든 걷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배낭을 꾸렸다. 기차를 타고 창평 삼지내마을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인 광주역에 도착했다. 기차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슬로시티로 들어가는 방법을 물었는데 마을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방법은 303번 버스가 유일해 보였다. 버스를 타고 얼마간 시골 도로를 달리다 보면 복작복작한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이 바로 창평 읍내다. 이곳에서는 따로 방송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눈치껏 내려야 한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달팽이가게’라는 곳을 찾을 수 있다. 지도를 구하고 읽을 만한 책자를 얻는 것도 모두 이곳에서 해결한다. 마을이 넓지 않아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혹시나 친구와 만나야 할 일이 생긴다면 이곳이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은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모든 돌담을 만져볼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다. 발바닥에 닿는 단단한 흙길의 느낌이 정답고, 마을 구석구석 자라난 꽃과 나무에 기분이 좋아진다. 마을을 충분히 둘러본 다음에는 외곽에 있는 숨겨진 장소들을 찾아갈 차례다. 방문자 센터에서는 신분증을 맡기고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나는 지도에서 추천한 세 개의 자전거 길을(싸목싸목길, 명옥헌길, 미암길) 모두 여행했는데, 이곳에서 자전거 여행은 몇 개의 뚜렷한 장단점을 갖는다. 우선 좋은 점은 아무 곳에나 멈춰 서서 탁 트인 풍경을 원하는 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원하는 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한들한들 춤추는 들풀과 높고 푸른 하늘을 유영하는 행글라이더의 활강을 넋 놓고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제대로 표시돼 있지 않은 경우도 있어 자칫 막다른 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자전거 길의 일부 코스에는 차도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운전에 주의가 필요하다.
여행지에서 내가 만난 어떤 사람은 항상 풍경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 앞에 펼쳐진 일들에 늘 처음인 듯 설렘을 이야기했다. 언제나 “진짜 좋다.”라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뭐가 저렇게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대신 나도 한번은 아무 일도 아닌 일상에 “좋다.”라고 말해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정말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꾸며낸 감정은 아니었고 다만 딱딱했던 내 마음과 어깨의 근육들을 주무르는 일종의 주문 같은 거였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올라 어렵게 도착한 곳에서 나는 연못을 보았다. 커다란 나무와 오래된 목조 건물도 하나 있었다. 명옥헌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곳은 조선 시대에 만든 민간 정원이라고 했다. 고작 정원 하나를 보기 위해 위험하게 차도를 운전했느냐고 한다면, 나는 변명할 말들을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좋아서, 라고 혼자서 중얼거릴 수밖에. 그게 내가 이 커다란 나무와 연못을 앞에 두고 말할 수 있는 전부다. 대신 햇살이 좋은 시간에 와서 좋다고, 그 눈부시게 푸른 잎맥들을 마음껏 올려다볼 수 있어서 좋다고, 나와 자전거 외에는 아무도 없는 나무 평상에 맘껏 드러누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어렴풋이 생각할 뿐이다.
마을 안에는 꽤 많은 한옥집이 있는데 같은 한옥이어도 각각의 매력이 다르다. 차를 마실 수 있는 곳도 있고 맛 좋은 장아찌와 아침식사를 준비해주는 곳도 있다. 모두가 매력적이었지만 나는 그중에서 ‘마음을 내려놓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곳에서 머물렀다. 마을 외곽에 자리잡고 있어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찾아야 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나서는 한적한 공기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주인아주머니는 사투리가 정겨웠고, 주인아저씨는 차를 덖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무심한 듯 세심한 사람들이었다. 느리지만 바지런하게 집 안 곳곳을 청소했고, 직접 끓인 물과 하얀 베갯잇을 갈아주면서 언제 떠나도 괜찮으니까 편하게 머물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작은 방에 짐을 부려 넣고 마당을 걸었다. 하얀 이불이 빨랫줄에 걸려 조용히 펄럭였다. 백구 두 마리는 얌전히 앉아 연신 하품을 했다. 그리고 금세 밤이 찾아왔는데 마침 커다랗고 동그랗게 뜬 달과 별이 아주 가까운 하늘에 걸려 빛나고 있었다.
모든 게 좋았지만 사실 혼자서 자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외롭기도 했다. 이곳의 공기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괴로웠다. 나는 이불을 걷고 밤을 산책하기로 했다. 산책이라고 해봤자 집 주변을 조금 돌아다니는 게 전부였지만 낮의 풍경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플래시를 터뜨려 몇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어쩐지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영적인 것들이 몇 장 찍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무서워져 서둘러 방으로 돌아갔다. ‘아씨, 그딴 게 다 어디 있어.’ 혼자 속으로 생각했지만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문고리를 걸고 아주 두꺼운 이불을 덮었다. 눈을 반쯤만 뜨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곧 더워졌고 이불을 걷어찼더니 다시 추워졌다. 한옥에서 자면 온도 조절이 잘 안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쪽 다리에만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자는 내내 한 번도 깨지 않았다.
사실 느림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밥도빠르게 먹고, 걸음도 빠르고, 약속 시간에 늦는 건 무척 싫어하는 편이다. 그러다 언젠가 걸음이 느린 친구와 발을 맞춘 적이 있었는데, 조금 조바심이 나긴 했지만 천천한 걸음도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무엇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이 작고 조용한 마을에 머물며 내가 한 일은 고작 걷고, 자전거를 타고, 나무 그늘에서 쉰 것이 전부지만 다른 어떤 일보다 더 풍성한 마음을 가진 느낌이다. 내면을 채우는 일이 무엇인지 여전히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이제는 적어도 침묵으로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들을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아침 이슬 머금은 풀잎의 작은 떨림. 대나무 숲에서 듣는 먼 파도 소리. 별 모양의 이파리가 쏟아지는 단풍나무. 개울에 꽃잎을 띄우는 아이의 작은 손. 개미 떼의 행렬. 은은한 차향. 담장 밖으로 터져 나온 꽃나무의 환희 같은 것들. 무엇보다 햇살이 풍경을 비추는 방식이 거의 매시간 달라진다는 걸 안 다음부터는 자주 하늘을 보게 됐다. 매 순간 그 느낌을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아주 가끔씩, 다시 느리게 걷는 일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면 나는 또다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참 좋다.’
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