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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두룩한 명언에, 심지어 미래까지 여러 차례 예언한 〈무한도전〉에서 출연자 길은 이런 말을 했다. “난 분쟁이 싫어.”
장안의 화제였던 〈흑백요리사〉, 당연히 봤다. 끝까지 정주행하지는 못했다. 이유를 고민해 봤다. 어쩌면 나이 들수록 경쟁을 통한 생존에 환호를 보내는 구도가 견디기 어려워서인 듯하다.
요리사를 동경한다.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리야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이라고 거의 확신하는 쪽이다. 그렇다면 음악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음악은 요리와 더불어 인류가 향유해 온 가장 오랜 예술이다. 한데 모든 예술 중 우리의 목숨과 직결된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요리다.
‘먹고사니즘’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먹고 살아야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미술관도 갈 수 있다. 소설가 김훈은 “나는 돈을 우습게 아는 사람을 우습게 압니다.”라고 말했다. 똑같은 이치다. 즉, 모든 예술은 우리 인생에 주어진 특별 보너스 비슷한 거다. 반대로 말하면 이 보너스를 거의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렇다. 나의 일상이 누구에게는 사치일 수 있다. 나는 어제도 게임을 하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봤다. 가끔 짬이 나면 미술관도 가려고 애쓴다.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치만 요리는 좀 다르다. 제법 공평하다. 아니, 공평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스스로 하거나 타인이 해준 요리를 먹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요리, 그중에서도 (2005) ‘비싼’ 요리는 욕을 참 많이 먹는다. 지금 당장 유튜브만 둘러봐도 “입에 넣으면 다 같은 걸 왜 저 돈 주고 먹냐.”는 댓글이 넘쳐난다. 약간은 과체중이지만 비만은 아닌 중년 남성으로서 나는 사적 경제가 허락하는 한 가격이 제법 나가는 요리를 먹어보는 경험을 아주 좋아한다. 단지 맛 때문만은 아니다. 그 요리를 지긋이 바라보는 즐거움이 적어도 나에게는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상력의 힘이다. 나는 요리를 주시하면서 그것에 사용되었을 재료와 요리사의 아이디어와 노고를 떠올린다. 우리는 자주 ‘한 끗 차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미슐랭 별로 말하자면 그 한 끗 차이가 별 한 개를 가른다고 미식가들은 입을 모아 얘기한다. 나는 미식가는 아니지만 여기에서 삶의 자세를 배운다. 어떤 대상에 완전히 몰입해 한 끗 차이를 일궈내려는 광기에 가까운 노력에 대해 생각한다.
결국 ‘조금 더’에서 인생이 갈린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럴 것이라고 믿는 수 외에는 답이 없다. 나는 ‘조금 더’를 긍정하기도, 부정하기도 한다. 새해에는 책 사기를 ‘조금 더’ 줄일 것이다. 새로운 것에 집착하는 마음 역시 ‘조금 더’ 내려놓을 것이다. 다만 딱 한 가지, 내가 하는 일에서만큼은 ‘조금 더’를 추구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천재가 아니다. 그건,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에 방법은 하나뿐이다. ‘조금 더’라는 말을 되뇌면서 반복하고, 누적하는 것. ‘조금 더’가 향하는 방향이 필요 이상의 질투나 욕심 같은 것만 아니라면 ‘조금 더’는 참으로 이로운 주문이 될 것이다. 치열한 자세로 요리를 대하는 저 요리사들처럼.
‘치맥’은 우리나라에만 특화된 문화가 아니다. 전 세계 어디서든 튀긴 고기 요리에 시원하게 맥주 한잔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치킨은 미국 남부에서 태어난 요리다. 그래서 미국 남부 출신 흑인 중에는 치킨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난 사람이 많다. 한데 그런 그들이 한국에 와서 치킨 한 입 먹어보고 놀라는 영상이 유튜브에 널려 있다. ‘국뽕’ 지수가 모자란다면 찾아보기 바란다. 이 곡은 널리 알려진 치킨과 맥주 찬가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내가 프라이드치킨 좋아하는 거 알지 / 금요일 밤 시원한 맥주도 / 딱 맞는 청바지 입고 / 라디오를 크게 틀라고”
겨울이 되면 자동적으로 생각나는 요리가 몇 있다. 그중 하나가 튀김우동이다. 참 신기하지 않나. 튀김은 원래 바삭한 게 제맛인데 우동 국물에 적셔서 먹는 맛이 별미다. 여기에 튀김이 동동 떠 있는 뜨끈한 국물 한 모금 마시면 이 추운 겨울, 거뜬히 이겨낼 것만 같다. 권나무는 한국 인디를 대표하는 포크 싱어송라이터다. 따듯한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낸 곡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 몇 년간 읽었던 에세이 중 1위를 꼽으라면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 의 《 H마트에서 울다 》 를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큰 감동을 받았다. 책을 다 덮고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도 기저에 사랑이 있었음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 대개의 인간은 대성통곡할 수밖에 없는 법이구나. 그 사랑의 매개 중 하나가 이 책에서는 요리다. 재패니스 브랙퍼스트는 미셸 자우너가 이끄는 밴드다. 재패니스가 들어갔지만 엄연히 한국계 뮤지션임을 기억하자.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 〈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