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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조금씩, 천천히
김종관
김종관은 영화감독이다. 단편영화인 <폴라로이드 작동법>과 지난해 개봉한 <최악의 하루> 등이 그의 영화다. 김종관은 작가다. 지난 4월 세 번째 책 《골목 바이 골목》을 출간했다. 김종관은 사진가다. 그 책에 실린 모든 사진을 찍고 작은 사진전도 열었다. 김종관 감독을 만나기 전 나는 수첩에 세 문장을 적어 그를 나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김종관 감독을 만난 후 이름만 남기고 지웠다. 내가 만난 그는, 그저 천천히 지치지 않고 걷는 사람이다.
Interview
영화감독 김종관
찍고 쓰고 걷고
마신다
커피 좋아해요?
네. 좋아해요(웃음).
첫 질문으로 꼭 묻고 싶었던 거예요. <최악의 하루>에 나오는 대사잖아요(웃음). 커피는 하루에 보통 몇 잔 정도 마시나요?
석 잔 정도 마시는 것 같아요.
단골 카페를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인터뷰 장소인 이곳 ‘9 커피 로스터스’를 추천해줬어요.
커피 마시러 자주 오는 곳이에요. 여기에서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미팅을 하거나 혼자 와서 커피를 마시거나 하죠.
이곳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자주 가는 카페가 몇 군데 있는데요, 일단 저는 로스팅을 직접 하고 드립 커피가 있는 곳을 좋아해요. 제가 카페에서 마시는 것의 80~90퍼센트가 우유나 설탕을 넣지 않은 따뜻한 드립 커피거든요. 여기도 직접 로스팅을 하고 커피도 맛있게 내려줘서 좋아해요.
원두도 직접 골라요?
취향은 있죠. 저는 카페에서 작업할 때가 많아요. 그러면 맛없는 카페도 가고 맛있는 카페도 가는데, 그러다 조금씩 알게 되는 거예요. 커피에 대한 취향이라는 게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보다 어느 카페에 갔는데 ‘커피가 맛이 없구나’ 하고 느낄 때 생기는 거더라고요(웃음). 저는 아프리카 산지의 커피를 좋아해요.
한정된 장소에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분인 만큼 공간에 대한 취향도 분명할 것 같아요. 맛 외에 감독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카페의 조건이 있을까요?
저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멀리 다니지 않아요. 동네를 산책하다가 봤는데 마음에 들고, 갔는데 편안하면 좋아하죠. 또 의자가 편하고… 카페에서 작업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의자가 편한 곳이어야 하거든요. 음악이 너무 시끄럽지 않고, 전망이 있는 곳도 좋아해요.
카페 밖으로 나와서 외부 공간의 취향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감독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와 동네들이 있잖아요.
제가 사는 공간이라서 매력을 느끼는 게 많아요. 동네를 관찰하면서 지내다 보면 정이 많이 들거든요.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는 이문동 쪽에 살았어요. 외대 있는 쪽에. 그때 거기에서 영화도 많이 찍었죠.
최근에 나온 책 《골목 바이 골목》도 공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이 책은 어떻게 기획하게 된 건가요?
첫 책 《사라지고 있습니까》는 여기저기 기고했던 글과 책을 쓰겠다는 의지를 갖고 새로 쓴 글을 모은 책이었어요. 두 번째 책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은 픽션이 대부분인데, 지금은 없어진 영화잡지 《무비위크》에 연재한 글을 모은 거고요. 그다음이 이 책이에요. 제가 《매거진M》에 ‘골목’을 테마로 글을 연재한 적이 있어요. 그 글을 모은 게 반 이상이에요. 연재를 한 게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됐죠(웃음).
‘골목’이라는 테마는 감독님 의견이었던 거죠?
네. 제가 걷고 산책하는 거, 사진 찍는 거를 좋아해요. 그리고 한 공간에 머문 시간도 있지만, 영화 촬영을 하고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일도 많거든요. 저는 여행을 가면 그곳의 랜드마크에 가는 대신 그냥 골목길을 걸어요. 골목길을 걷는 일은 큰 위험부담 없이 가볍게 할 수 있는 즐거운 모험 같아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유명한 골목이 아닌 낯선 여행지의 조용한 주택가를 돌아보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도 저마다의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죠. 그래서 전체적인 구성을 걷는다, 그런데 그 길이 큰길이 아닌 옆에 있는 작은 골목, 그런 골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저도 주택가 골목을 걷는 걸 좋아해요. 이들의 삶 또한 서울에서의 내 삶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때 일상의 영감이 되더라고요.
내가 관광객이나 외지인이기 때문에 낯설게 보이는 공간도 있지만 어떤 친숙함을 느끼는 부분도 있어요.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좋은 자극이 돼요. 쉬는 기분이 들면서 적당한 자극도 있고, 다른 분들도 어디를 가든 시간을 내 골목들을 한번 가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책도 역시 모든 사진을 직접 찍었어요. 사진은 언제 시작한 건가요?
창작의 한 형태로 사진을 찍은 건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영화를 하고 난 후의 일이니까요. 영화를 알고 나서 영화와 다르게 사진과 글쓰기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 과정이 있었죠.
글과 사진이 굉장히 잘 어울려요. 사진이 주가 되는 책은 아니지만, 사진이 없었다면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책이 되었을 거예요.
여행지에서 받은 인상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글로 남기기도 해요. 처음 연재를 할 때부터 사진과 글로 남긴 것들이 같이 어우러져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는 사진이 중요하죠.
오랫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사람이 갖는 시선이 사진에서 보이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도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인가요?
남들보다는 많이 보내는 편이에요. 글을 쓰는 것도 혼자 해야 하는 일이고, 자극을 받기 위해서 혼자 돌아다닐 때도 있어요.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이야기를 구성하기도 하고요. 낮에는 보통 혼자 있죠. 원래 책 제목이 ‘아무도 없는 곳’이었어요. 누군가와 어울려서 있는 공간보다는 조금 더 공간 자체에 대한 이야기, 공간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기 때문에….
제목을 바꾼 이유가 있나요?
첫 책 제목 ‘사라지고 있습니까’는 제가 지었는데요, 책이 나오고 3일 만에 출판사가 사라졌어요. 두 번째 책은 출판사에서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으로 정했는데, 불이 안 꺼지고 잘 팔렸어요. 제가 그 얘기를 농담 삼아 했더니 출판사 대표님이 걱정하면서 그 제목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골목 바이 골목’이 된 거죠(웃음). 이 제목도 좋아요.
《골목 바이 골목》엔 멀게는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가깝게는 서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요.
이전에 이문동에서 살 때의 이야기는 이전 책에 많이 담겨 있어요(웃음). 서촌에서 산 지는 7년 정도 됐어요. 그렇지만 이사오기 전에도 서촌이 낯선 동네는 아니었어요. 제가 중앙고등학교를 나왔고 이 근처를 예전부터 많이 다녀서 공간 자체는 익숙했죠.
서촌도 많이 변했죠? 그 변화가 아쉽지는 않나요?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변화에 대해서 아쉬움을 느낀다고 개발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도 한계가 있는 생각인 것 같고요. 그래도 서촌은 청와대나 문화재 같은 여러 이유로 개발이 덜 된 곳이 있어요. 옛날식 주택도 많고요. 제가 어릴 땐 그런 주택이 많았어요. 그런 편안함이 아직 있죠. 저는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게 한옥뿐이라는 생각은 안 하거든요.
아쉬움 때문에 글이나 사진, 영화로 남기려고 하는 게 아닐까 했어요.
옛날 한국영화에서 지금은 없는 서울의 어떤 형태들을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도 영화를 만들 때 이 시기를 조금 남겨봐야지 하는 기분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뭔가 바뀌지 말아야 해’는 아니지만, 영상이나 글, 사진을 통해서 이 순간을 남기는 건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영화 얘기를 해보자면, 영화제에서만 공개된 <더 테이블>은 현재 개봉 일정이 잡힌 상태인가요?
네. 아마 가을쯤 될 것 같아요. 초가을 아니면 늦여름? <최악의 하루>가 작년 그때쯤 개봉했는데, 아마 그 비슷한 때에 하지 않을까 싶어요.
테이블 하나를 두고 차를 마시며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들었어요.
<최악의 하루>처럼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이고요, <최악의 하루>가 걷는다면 이 영화는 계속 앉아있어요. 그리고 약간 옴니버스식 구성이에요. 하나의 테이블이 있고 한 쌍의 남녀 혹은 두 명의 여자가 들어와서 이야기해요. 조금 연극적이기도 하죠. 이야기가 끝나면 나가고 다른 이야기가 시작하고. 그렇게 다이얼로그로만 이루어진 영화예요. 어떻게 보면 짐 자무쉬Jim Jarmusch의 <커피와 담배> 같은 형식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커피와 담배>에는 아주 다양한 카페 공간이 나오고, 이 영화는 딱 한 곳의 카페, 하나의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일이에요.
테이블이 중요하네요.
카페라는 공간 자체가 하루에도 여러 사람이 오고 가잖아요. 그럼 다양한 사연이 있을 테고, 이 테이블이 만약에 살아있는 것이라면 많은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겠다, 바텐더는 물론 그냥 카페에 있기만 해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되잖아요. 이 테이블도 지금은 우리 얘기를 듣고 있지만 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을 거예요. 그런 느낌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고 가고,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만 하나의 테마로 묶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리고 전작들처럼 두 사람의 ‘최소한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제가 그런 미니멀한 형태에 훈련이 된 것 같아요. 초반 단편영화 작업을 할 때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하면 아주 간단하게 큰 예산 없이도 영화를 찍을 수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중간의 비약 없이 하나의 상황만으로 끝나는 영화를 많이 해오다 보니 그런 취향이 생긴 것 같아요. <더 테이블>도 그 습관에서 가져온 이야기고, 그동안 훈련된 것들로 다시 한번 집중해서 만들어본 이야기예요.
감독님 영화에서 계속 카페가 등장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카페가 만남의 장소이긴 하지만, 바도 있고 소란스럽겠지만 식당도 있잖아요(웃음).
<최악의 하루>는 카페보다는 길에서 벌어지는 일 위주라고 생각해요. 길에서 나오는 역동성이 있었죠. <더 테이블>은 촬영 회차가 7회예요. 아주 적은 예산을 가지고 일주일 동안 찍었어요. 어디서 제작비를 많이 받으면 그만큼 맞춰서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예산이 적은 대신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죠. 그런 면에서 카페는 단순한 형태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고, 또 하루 안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하기에 술집은 한계가 있으니까 카페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문득 감독님이 어느 한 장소에 가서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면 어디를 선택할지 궁금해요.
일단 외국이면 좋겠어요(웃음). 그리고 음… 《골목 바이 골목》에도 썼는데, 러시아 예전 분쟁 지역인 크림반도에 ‘얄타Yalta’라는 작은 해안 도시가 있어요. 얄타 회담이 열린 곳이고, 구소련 국가들의 휴양지예요. 거기를 영화제 때문에 한 번 갔었는데 매우 아름답더라고요. 체호프Anton Chekhov가 한때 그곳에 살면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쓰기도 했고, 이야기에 나온 두 남녀가 만나는 공간이기도 해요. 그 공간이 좋을 것 같아요.
휴양지니까 사건이 일어나기에도 좋겠네요.
그리고 그곳의 작은 골목도 아름다워요. 가로수도 많은데,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거리나 집들과 조화롭게 있는 모습도 그렇고요. 백여 년 전의 이야기지만 왜 체호프가 그런 이야기를 썼는지 알겠더라고요. 아주 낭만적인 공간이었어요.
감독님은 영화를 만들지만 글도 쓰잖아요. 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돼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이것저것 꺼내 쓰고 난 뒤 다시 채우기 위해 하는 일이 있나요?
영화만 한다고 해도 책을 보고 다른 문화적인 것들을 습득하고, 인풋과 아웃풋이 확실하게 있어요.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한계가 있었을 거예요. 영화와 상관없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게 저한테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짧은 자투리 글이 모이고 거기에서 정리된 아이템이 영화에 적용되기도 하고요. 《골목 바이 골목》을 쓰면서 느낀 것들이 <최악의 하루>에 그대로 많이 들어가 있어요. 또 제가 영화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데에도 영화를 하는 사람 나름의 관찰이 담기겠죠. 그래서 표현되는 부분들도 있을 거예요.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돼요.
대립하는 게 아니라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네요.
시간적으로 서로 갉아먹는 부분이 있겠지만, 제 안의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게끔 하는 데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나 싶어요.
앞으로 감독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듣고 싶어요.
창작에는 항상 현재의 관심사가 들어가는데요, 제가 창작하는 건 이전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들에 대한 피드백이나 시도한 것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긴 다음의 과제 같은 거예요. 저는 무언가 획기적으로 변하는 것보다 전의 것을 토대로 조금씩 가는 사람 같아요. 그러니까 마지막에 했던 작업의 다음 스텝이 될 수 있고 다음 질문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감독님의 목표나 꿈은 뭔가요?
음… 저는 해왔던 작업을 조금씩 변형해서 작업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에 대박이 터지고 뭐 이런 쪽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세상은 항상 이슈를 바라고 천천히 가는 과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조금씩 제 파이를 넓히고 어느 지점에 계속 도달해 뭔가가 쌓이면, 거기에 대해서 평가받을 날이 오면 좋겠어요. 그 평가라는 것은 창작자에게는 어떤 소통이거든요.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 소통이 내가 창작자로서 기쁘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면 좋겠어요.
에디터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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