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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 제철식재료연구가
사방이 바다에 큼지막한 산이 못해도 서너 개는 자리한 섬, 영도. 산야초와 식재료를 연구하는 수련은 영도 곳곳을 넘나들며 제철의 결실을 수확한다. 코끝으로 바다 내음을, 손끝으로 부드러운 흙을 느끼며 풀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식탁을 꾸린다. 그녀에게서 전해 들은 영도의 지난 이야기는 마음 한편에 고이 저장해둔다. 제철은 또다시 돌아올 테고 때에 맞춰 꺼내보고 싶으니까.
사실 오늘 난생처음 영도에 와봤어요. 대교를 건널 때 왠지 모르게 설레더라고요.
영도다리를 건너오셨나 봐요. 저는 이곳이 고향이라 매일 바다를 보면서 자랐어요. 섬 사람들은 가끔씩, 섬을 벗어나 육지로 가고 싶어하거든요. 저도 고등학교 때부터 부단하게 애를 썼고요(웃음). 그럼에도 근교에 갔다가 돌아올 때 저 멀리 영도다리가 보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아, 집에 왔다!’ 싶거든요. 보셔서 알겠지만 영도는 무척 크진 않고 육지와 완전히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라 특이한 느낌을 주는 곳이에요. 산도 많고 바다도 끼고 있고, 자연물도 다양하고요.
최근에는 찾는 사람도, 변화도 많은 곳이라고 들었어요.
도로가 출퇴근 시간에 꽉 막히는 걸 보면 신기하더라고요. 저는 이런 변화가 좋아요. 영도는 노인 인구가 많고 사람이 적어 인구 소멸 지역 중에 하나거든요. 어떤 이유로 이곳을 찾든 문화만 잘 자리 잡는다면 영도만의 매력이 피어날 거라고 믿어요. 어찌 됐든 마을에는 사람이 많아야 해요.
영도에서 제철 식재료를 탐구하고 요리하시죠. 그 행위의 뿌리를 들어볼까요?
전공은 패션 디자인이었어요. 한복을 구성하는 천과 패턴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2학년 1학기 때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돌아가셨어요. 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고픈 마음으로 휴학을 했죠. 그때 방랑식객이라 불리던 임지호 자연요리전문가에게 매료되어서 산야초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산야초는 산과 들에서 나는 모든 풀을 말하는데요. 들나물이든 산나물이든 꺾어서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죠. 1-2년간 산야초와 자연농에 대해 배우고 사찰 음식도 해봤어요.
디자인에서 자연 요리라니. 전혀 달라 보이는 분야인데 푹 빠졌네요.
하나에 빠지면 그걸 깊이 파고들어 가는 ‘덕후’ 기질이 있거든요(웃음). 둘 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공통점도 있고요. 이후에는 한국 슬로푸드문화원을 통해 이탈리아에서 2년마다 열리는 ‘테라 마드레Terra Madre’ 축제에도 다녀왔어요. 전 세계에서 슬로푸드 모토를 가진 청년 농사꾼이나 요리사, 연구진과 브랜드가 모이는 행사인데요. 포럼처럼 새로운 소식을 듣고 기술을 살펴볼 수 있어요. 그곳에 다녀온 후 식문화라는 장르에 반해서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어졌죠.
그 길로 바로 요리를 시작한 건가요?
맞아요. 부산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취직해서 2-3년간 배웠어요.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주 6일제로 일하고,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재료를 다듬고 썰어도 봤죠.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상업 요리를 한 건 처음이라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것 같았어요. 힘들었지만 재밌었고요. 이후에 잠시 서울에 올라와 있을 때도 레스토랑이나 요리 선생님들 밑에서 보조로 일했어요.
추진력이 대단한 것 같아요. 아니면 앞으로 갈 길에 뚜렷한 확신이 들었어요?
그동안 일반적인 노선으로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가려고 하거나 하고 싶었던 것들은 정석이라 할 만한 루트가 없었거든요. 파고들 틈이나 길을 계속 찾아다닌 거죠. 새롭게 시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길이 열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영도로 돌아와서도 낯선 길을 찾아다녔죠. 케이터링 말이에요.
상업 공간에서는 식재료의 쓰임이 한정적이잖아요. 저는 산과 들에서 나는 모든 풀을 탐구하고 싶었거든요.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도중에, 부산에서 기획자로 일하던 친언니가 이벤트 케이터링 사업을 제안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대용량 음식을 만들어봤죠. 업장에서만 요리하다가 출장으로 차려 놓는 요리는 또 다르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요.
예를 들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이게 지금은 너무 맛있는데 식으니까 맛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구이나 고기 요리는 조금 굽는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딱딱하게 말라버리고요. 무엇보다도 케이터링에서는 요구하는 콘셉트에 맞게 데커레이션이나 서빙을 이끌어가는 게 중요해요. 그동안 저는 음식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서비스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그렇네요. 음식을 맛이 아닌 눈으로 보는 것도 일종의 서비스니까요. 케이터링은 왜 그만두게 됐어요?
그 일을 하면서 제 자신의 성향을 외면했던 것 같아요. 음식에 애착도 강하고 완성도도 중요한데, 케이터링은 속도와 양이 우선인 작업이니까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이전에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까 생각했다면, 앞으로는 나만의 방향과 속도를 이해하고 깨달은 대로 나아가고 싶었어요. 요리사라고 다 같은 요리사가 아닐 테니까요.
무수히 많은 식재료 중 제철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거든요. 평소에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그 이유를 고민해 보니, 우리가 계절이나 자연을 잊고 365일 비슷한 톤으로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어요. 비슷한 옷을 입고 음악을 듣고, 비슷한 음식을 먹다 보니까 기억에서 두드러지는 순간이 없는 거죠. 오늘 어떤 냄새를 맡았고 어떤 나무를 봤고 새로운 걸 먹어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꼽아보다 보면 일상이 짙은 밀도가 될 것 같았어요. 제철을 제철답게 보내는 데 집중한 거죠.
재료 하나를 파악하기 위해 탐구에도 열중했겠어요.
10년 전에 처음 산야초를 배웠어요. 이후 다양한 곳에서 일하면서 식재료에 대한 공부는 꾸준히 해왔고, 최근에 다시 산야초를 배우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처음부터 너무 욕심부리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왜냐하면 제철은 계속 돌아올 테니까. 한 달에 하나의 재료를 꼽아서 자료도 살펴보고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요리해 보고. 친구들과 워크숍으로 알게 된 걸 공유하면서 배우고 있어요.
산과 들의 지식을 몸으로 체득한 거네요. 풀마다 특성도 참 다양하죠?
일단 산야초는 단오 전까지만 먹을 수 있거든요. 정말요? 일년 내내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순이야 부드럽겠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 풀들이 엄청 질겨져요. 먹기에 알맞지 않은 거죠. 예를 들어 취나물은 좀 쓰거든요. 데쳐서 물에 두 시간 정도 놔두고 조물조물하면 쓴맛이 싹 빠져요. 엄나무순이나 죽순도 쓴맛을 빼야 맛있고요. 고사리는 생으로 먹으면 독성이 있어요. 야생의 먹거리다 보니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독성과 쓴맛이 있는 거예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시선의 이야기라 흥미로워요.
그렇죠? 풀들은 잘 쓰면 약재가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돼요. 잘못 먹었다가 설사 계속하고(웃음). 일상에서 주로 정제된 것과 약해진 풀들만 먹다 보니까 배 속이 못 견디기도 하고요. 풀을 발견하는 것뿐 아니라 잘 다루는 법이 중요해요.
산야초를 얻는 특별한 스팟이 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영도시장이나 남항시장도 가고요. 다양성으로 따져보면 부전시장이 최고예요. 할머니들이 노점처럼 앉아서 파시는데, 키운 것부터 어디서 캐 왔을까 궁금한 것들이 많아서 슬쩍 여쭤보기도 해요. 활기가 느껴져서 재래시장을 좋아해요. 채취를 할 때도 있는데 약을 치거나 불법인 경우가 있으니 사전에 잘 알아봐야 해요. 요즘에는 주변 마트에서도 제철 특집 같은 거 하니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봄과 여름 나물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요리를 소개해 주실래요?
음… 봄에는 돌나물이나 취나물, 쑥이 먹기 좋아요. 올 봄에 쑥버무리를 많이 먹었거든요. 습식 쌀가루에 소금과 설탕을 넣고 쑥과 버무려요. 그대로 찌면 바로 먹을 수 있어요. 그리고 나물이 워낙 많으니까 한 번에 한 가지보다는 다양하게 먹어보고 싶잖아요. 그래서 저는 일본의 지라시스시 요리법을 추천해요. 단촛물을 넣은 밥 위에 각종 나물을 올리면 되는 건데요. 나물은 향이 강하지 않은 것부터 데쳐야 해요. 신선한 풀들은 데친 후에 물기를 짜서 간장이랑 참기름만 넣고 조물조물 해도 맛있어요. 생으로 먹기 힘들 때는 밀가루랑 감자 전분을 섞어서 소금 간하고 바삭하게 구워도 맛있죠.
이야기를 들으니 군침이 돌아요(웃음). 제철 재료를 찾다 보니 절기나 계절 등의 변화가 반가울 것 같은데 어때요?
산에 가보면 다 느껴져요. 얼마 전에는 아기 매실들이 달린 것도 보았어요. 이제 여름을 준비하고 있는 거죠. 냄새도 공기도 달라지고 이런 계절에는 풀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요. 반갑고 재미있는 장면이에요.
식재료 탐구는 환경 문제와도 밀접하게 닿아 있죠.
주변에 비건 셰프들이 많다 보니, 기후위기나 동물권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저는 아직 비건이 아니지만 긍정적인 영향도 받고요. 케이터링 사업을 할 때는 고객분들이 먼저 음식이 눅눅해지더라도 친환경 용기를 사용해 달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저는 밀짚 용기나 사탕수수 용기를 주로 쓰는데, 이런 걸 보면서 요리와 환경이 별개의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아요. 나에게 요리사로서의 사명감 또는 미션이 있다면, 환경을 등지지 않는 요리법이나 재료를 탐구해서 사람들에게 제안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을 나누기 위해 부산에서 활동하는 커뮤니티도 만들었죠. 신토불이 클럽이라고요. 이름은 누가 지었어요?
제가 지었어요(웃음). 이름 자체가 귀엽잖아요! 영문으로 표기하기에도 좋고요. 보통 산야초, 제철 여행같은 모임에 가면 연령대가 많이 높다 보니, 또래 친구들과 사계절을 따라 먹고 즐기는 문화를 만들고 싶더라고요. “자연에서 이렇게도 놀 수 있구나!” 하면서요. 신토불이 클럽은 우리의 사계절이 더 다채롭기를 바라며 만든 모임이에요. 계절을 다채롭게 느끼는 건 우리의 삶이 더 다채로워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부산에 많아서 영양교사나 요리사, 기획자, 디자이너, 공부하는 친구들까지 모였어요. 각자 속한 분야가 다양하니까 시너지도 더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신토불이 클럽의 최근 모임에서는 무얼 했어요?
주제는 ‘장 보러 가요’였어요. 먼저 부전시장에 들러서 나물들을 둘러보고 한 번에 사면 양이 너무 많으니까 돈 모아서 나눠 샀어요. 어떤 분이 두릅이 끝물이라 고민하시면 살짝 데치면 맛있다고 꼬드겨요(웃음). 자기만의 요리법도 공유하고요. 근처 맛집인 경북식당에서 두부찌개로 든든하게 밥도 먹고 커피에 빙수까지 먹었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풀 이야기 하나로 어우러지네요.
각자 다른 우리가 통하는 게 있는데 그게 풀이라서 정말 좋아요. 앞으로는 제철 식재료가 가장 맛있는 지역에 가서 농부님을 만나보거나 채취도 해보고, 로컬 맛집도 가보고 싶어요.
삶의 방식에서 자연스러움이 느껴져요.
이번 봄을 바쁘게 지냈거든요. 괴로웠다는 뜻이 아니라 즐겁게요. 내가 하고 싶은 걸 계절 따라 하나씩 하다 보니 많은 순간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제가 추구하던 제철의 삶과 닮은 모양이죠.
오늘 나눈 이야기는 결국 먹고 사는 것에 관한 대화였던 것 같아요.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해요?
계절의 리듬을 따라 먹고, 놀고, 몸을 쓰는 것이에요. 시간을 계절에 맡긴 것처럼요. 그리고 먹는 측면에서는 다양한 재료를 고루고루 섭취하는 것 아닐까요? 그 요리를 누군가와 함께 나눠도 좋고요. 계절 맞춰 자란 산나물을 뜯어 와서 손질하고 양념하는 일이 쉬운 건 아니지만, 내 손으로 차린 음식을 든든히 맛있게 먹으면 뿌듯해요. 자연스럽게 살아가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