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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망 전문 인터뷰 작가 정신지
제주어는 제주 바람을 닮았다
할망 전문 인터뷰 작가 정신지
제주도 사투리로 대화하는 걸 옆에서 듣고 있자면 정말 10분의 1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된다. ‘제주도 사투리’라 하지 않고 ‘제주어’라고 칭하는 게 당연하다 싶지만, 내가 고개를 젓고 그 자리를 떠나더라도 여전히 제주어는 존재한다. 제주 섬사람들은 육지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제주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리고 나는 제주어가 있다는 건 잊어버리고, 바다와 한라산, 새로 생긴 카페, 맛집 등에 대한 이야기만 하며, 제주도에 산다. 신지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놈삐 하르방
어데로 감수광
몇 년 전 ‘제주어 일일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시간이 꽤 지나서 자세한 건 잘 생각나지 않지만 여름이었고, 오래된 시골집을 개조한 작은 공간에 여럿이 모여 앉아 수박을 깨 먹으며 제주어를 배웠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의 지휘하에 ‘산 할아버지’를 제주어로 바꾸어 “놈삐 하르방 어데로 감수광” 하며 우렁차게 동요를 부르기도 했다.
몇 년 만에 ‘놈삐 하르방’을 흥얼거리자 수업 중에 일어났던 일이 떠오른다. 옆집 할머니가 젊은이들이 모여서 대체 뭘 하고 있나 궁금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신 것. 돌발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 선생님은 당황하지 않고, ‘네이티브 제주어 스피커’인 할머니를 수업 가운데로 모셨고, 우리는 조금 전에 배운 게 맞는지 함께 확인했다. 다 같이 웃으며 제주어를 처음 배우던 그날, 나는 제주도와 한걸음 더 친해진 것 같아 조금 설렜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여전히 제주어가 재밌다며 깔깔거리던 그날에 멈추어 있다. 제주어 선생님이었던 정신지 씨는 그 사이 수많은 제주 ‘할망과 하르방’을 만나고, 그들이 제주어로 해준 이야기를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옮기고 있다.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언어, 대부분은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할망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듣고 기록하는 신지 씨를 만나러 가는 길,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제주어’라는 도구를 갈고 닦아 몸에 지닌 채 제주 돌담 사이를 지치지 않고 걸으며 할망들을 만나는 동안, 추임새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이는 시간 동안, 그에게 그리고 할망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Interview
할망 전문 인터뷰 작가 정신지
3년이 지났어요. 제주어가 더 늘었겠어요.
그때 무슨 배짱으로 제주어 수업을 했나 모르겠어요(웃음). 처음으로 제주어를 가르친 날이었거든요. 그래도 재밌었죠? 그날의 좋은 기운 덕분에 그 후로도 그런 자리를 계속 만들 수 있었어요.
원래 제주에서 태어났어요?
아니요. 여섯 살에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를 왔어요. 친구들이랑 어울리기 위해서 제주어를 따라 쓰기 시작했죠. 어린 시절에는 다 같이 제주어를 쓰며 놀았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아이들이 점점 제주어를 사용하지 않더라고요.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 제주 아이들은 섬을 떠나고 싶어 하거든요. 표준어를 쓰려고 애쓰죠. 그러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제주어랑 멀어졌어요.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 열아홉 살에 제주도를 떠났어요. 일본, 인도네시아, 미국 등을 떠돌다 삼십대 초반에 다시 제주도로 돌아왔어요.
4개 국어를 한다고요.
일본어와 인도네시아어, 영어를 할 줄 알아요. 거기에 제주어를 더한다면 5개 국어인 셈이죠. 일본에서 지역연구학을 공부했어요. 지역에 대한 오만 가지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어는 언제나 기본이 되는 키워드였어요. 언어에 대해 관심을 계속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죠. 방언과 소수 언어, 사라져가는 언어에 대해서도 접하기가 쉬운 편이었어요.
저는 언어를 배우는 데 서툰 편이에요. 그래서 외국어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요.
일본에서 살 때, 일본말로 백 퍼센트 소통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색한 발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화가 좀 삐걱거리더라고요. 백화점 식품관 같은 데서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매일 반복해서 말하는 홍보 문구를 노래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한 문장을 따라 하더라도 노래하듯 말하자 마음먹었죠. 그런데 그 방법이 통한 거예요.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도 그렇게 늘었어요. 언어를 처음 접할 때마다 새로운 노래라고 생각하며 배워요. 언어마다 선율이나 발성법이 다르거든요. 재밌는 건 일본어로 얘기할 때 저는 아주 야무지고, 공손하고요. 말끝마다 계속 “스미마셍”, “아리가또”를 연발해요. 그러면서 실제로도 사람들을 과하게 배려하죠. 반면 영어로 말하는 저는 쿨해요. 지나가는 사람한테 “잘 지내?“, “너 목걸이 맘에 들어.” 스스럼없이 말을 걸기도 하고요. 쓰는 언어가 바뀔 때마다 인격이 바뀌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다면 제주어는 어떨까요?
‘제주어’라는 노래는 어떤 사람이 부르는 어떤 노래일까 생각해보는 거예요. 그걸 알기 위해서는 사람과 풍토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바람 소리와 물소리를 잘 들어야 해요. 제주어는 말끝이 짧고 거친 편이에요. 바람이 세서 길고 부드럽게 말하면 잘 안 들려서 그렇게 된 거라고들 하죠. 지금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최근에 어떤 분이 “말이 바람 소리를 닮아서 그런 거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자연이랑 똑같이 바람에 흡수되는 운율을 가진 언어라는 거죠. 전자는 자연에 대항한 거고 후자는 흡수된 거잖아요. 전혀 다른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어쨌든 제주어는 바람을 닮은 언어네요.
제주 바람처럼 억척스럽고 투박하게 뱉어야 하는 것이 제주어예요. 제주도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들 하는 고민이 있죠. 옆집 할망이 자꾸 우리집 일에 참견하는 거예요. 가령 “마당에 그거 주워라.” 같은 말들요. 그때마다 우리는 어르신이니까 말대답도 못하고 그냥 “네네.” 하고 말아요. 하지만 제주 할망이랑 친해지려면 내 의견을 정확히 말해야 해요. 제가 그때 수업 시간에 말해준 거 있죠. “내붑서양(내버려두소)!” 외치는 거예요. 그러면 할망들은 ‘쟤도 의견이 있는 아이로구나.’ 하며 친근하게 느끼기 시작해요. 잔소리를 하는 할망은 친해지고 싶은 거예요. 야단을 치려는 게 아니라 ‘대대로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은 여기 마당에 뭐가 떨어졌으면 주웠어.’ 하고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대화는 ‘공 주고받기’라고 생각해요. 특히 제주어는 더 그래요. 퉁명스러운 제주어라는 공을 예쁘게 닦아서 돌려드리는 게 아니라 받은 공 그대로를 던져야 해요. 말은 그렇게 던지고 대신 마음을 예쁘게 닦아서 드리면 되죠. 과자 같은 걸 나눠드린다던가 하면서요.
지난 4년 동안 많은 할망들을 만나고 있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 그런지 그 부분이 특히 궁금했어요. 그들의 어떤 점이 좋아요? 신지 씨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많은 편인가요?
가족 관계 내에서의 할망이 아니라, 같은 여자로서의 할망으로 그들을 만나요. 제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 받았어요. 일 년을 집에만 박혀 우울하게 지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길을 나섰는데 그 길 위에서 우연히 할망들을 만난 거예요. “너는 실연했냐. 나는 내 눈앞에서 남편이 총 맞아 죽었는데(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고 툭 말씀하시는 거예요. 거기서 오는 위안이 있어요. 할망들 앞에서 제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다른 언어라면 오만 가지 형용사가 돌아왔을 텐데, 제주 할망들은 “하이고 기여”, “기이?” 이렇게 말씀하시고 말아요.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랬구나.” 하는 대답이에요. 투박해 보이지만 따뜻해요.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아도 소리 하나로 돌려주세요. 그 소리에는 내가 너를 이해한다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또 무엇보다 제주어는 뱃심으로 얘기해야 하는 말이에요. 표준어로 얘기할 때랑 제주어로 얘기할 때는 완전히 발성이 바뀌어요. 내가 기운이 없거나 우울할 때도 할망들을 만나면 “어떵 지냅수까!”라고 힘차게 말할 수밖에 없어요. 이 사람들이 살아온 억척스러움의 언어로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울하면 길을 나서요. 그리고 할망들에게 억척스럽게 말을 걸고,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듣지요. 그러다 보면 내 슬픔이 작아져요. 일부러 욕을 먹으러 가는 거죠. 그럴 때면, 아, 나는 할머니를 이용해서 하루하루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소리 지르듯 제주어로 대화하고 나면 속이 뻥 뚫려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할망들이 평생 안 해본 걸 같이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무도 묻지 않은 걸 질문하는 사람요. 가령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어요?” 같은 질문들요. 앞으로 5년은 계속해서 제주 할망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요. 저는 할망들을 만날 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만나요. 다시 찾아갈 기약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은 다시 갔을 때 돌아가신 경우도 많았어요.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할망이 떠나고 외양간이랑 하르방만 남아 있는 집 앞에서 펑펑 운 적도 있어요. 제가 부지런히 다녀야죠. 제가 들은 이 이야기들이 현대 역사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주에서 살아온 여자, 할망들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거든요. 할망들이 떠나시기 전에, 지금에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걸 기록해두면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제주어는 어디로 갈까요.
제주어는 제주의 바람과 현무암을 닮은 사람들이 내는 소리예요. 포장하지 않은 거침이 매력이지요. 지금 제주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고, 그러면서 사람도 땅도 매끈매끈해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제주어가 어떻게 변하지 않고 살아남을지, 가끔 걱정이 되기도 해요. 지금의 제주어로 제주 사람과 이야기하고 만나는 것도 어쩌면 지금이 지나면 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이 시점에서 제주어를 배워보는 건 그래서 의미가 있어요.
제주어로 사람을 부를 때는 “양!”이라고 외친다. 배에 힘을 딱 주고 “양!” 내뱉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집에 혼자 앉아서도 그 짧은 한 단어를 큰소리로 말하기가 쑥스럽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저기요”에 익숙한 사람. 하지만 용기 내어 일단 한번 제주어라는 노래를 불러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먼저 “양!”부터. 로커가 노래하듯, 거센 제주 바람을 거침없이 가르며 “양!”
글 정다운
사진 정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