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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재 제빵사, 더 벨로 대표
빵 공장 안의 소리가 분주하다. 위이잉, 탁탁, 슥슥, 이런 소리들이 뒤섞여 빵을 만들어낸다. 소리는 리듬이 되어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박자를 맞춘다. 양재동의 한 빵집에서 이 시대,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게 직업인의 역할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제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찾아 나가는 사람. 그의 직업은 제빵사다.
INTERVIEW
반영재 | 제빵사, 더 벨로 대표
내가 선택한 길을 일구며
‘더 벨로’가 문을 연 지 10년이 다 되어가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빵만 하는 빵집도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일본이나 프랑스는 빵과 과자, 케이크류가 잘 분리되어 있어요. 그래서 식사빵을 전문으로 하는 빵집이 많아요. 전문가들도 있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보니 빵의 정체성이 모호한 부분이 있죠. 빵이 발전하면 소비자 인식도 변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시도했어요.
가게 문을 처음 연 날을 기억하나요?
20대의 마지막 가을이었어요. 빵을 만드는 저와 영업하는 친구 단둘이서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안에 작은 가게를 열었죠. 가게를 열면서 참 고된 시간을 지나왔고, 저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그해 가을의 빛들과 향, 직접 구워내던 고요한 새벽의 빵 내음을 자주 떠올려요.
대부분 업체 납품용 빵을 만든다고요.
더 벨로는 기본적으로 업체에 빵을 공급하는 제조 가공 공장이에요. 주로 만드는 건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브런치와 샌드위치 빵과 수제버거용 빵이고, 더 벨로 매장에서 판매하는 우리밀 빵도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식사용 빵이 많아요. 사실 납품 빵은 단가 때문에 공장식으로 제조하는 게 대부분인데, 저는 수제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가격보다는 맛이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것도 하나의 시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어릴 때부터 제빵사를 꿈꿨나요?
중학교 땐 미술을 좋아했어요. 나중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제대로 미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좋았지 직업까지는 가기 어렵겠더라고요(웃음).
고등학교 때는 공부보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배워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요리를 선택하게 됐는데, 학원에 가니 원장님이 빵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눈앞에 빵이 짠 하고 나타난 거죠. 만약 그분이 다른 걸 가르쳐줬으면 전 그걸 했을지도 몰라요. 지금도 생각해보면 신기해요.
빵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도 학교도 제 결정을 지지해주었어요. 학교가 시골이라 학원에 가려면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을 가야 했거든요. 친구들이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을 때 저는 학원에 갔다가 밤 열 시가 넘어 아직 불 켜진 학교로 돌아갔어요. 직접 만든 빵을 들고요. 서툴게 만든 빵을 맛있게 먹는 친구들을 가만히 보면서 ‘내가 시간을 들여 만든 결과물이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그 모습이 지금껏 참 따뜻하게 남아 있어요. 그게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동기라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고향에서 아버지와 함께 호밀을 심고 있죠?
고향인 충북 음성에서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시는데, 그곳에 호밀을 심고 있어요. 빵쟁이와 농사꾼의 협업이죠(웃음). 사실 호밀 재배는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저희가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국내에서 호밀은 0.01%도 생산이 안 됐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호밀을 재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보기 좋게 실패했지만 노력을 거듭하다 보니 몇 년 전부터는 주기적으로 수확을하고 있어요. 수확한 호밀은 더 벨로와 음성의 빵집들로 보내지고, 지금은 그 수요만큼 아버지에게도 수익을 가져다드리죠.
4년이 지났고, 이제는 아버지와 호밀의 품질과 수확량에 대해 논의하는 파트너 관계가 됐어요. 아버지가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결과물을 받고, 그것에 대해 함께 대화하는 시간들이 즐겁고 마음이 벅차요. 제 고집을 계산 없이 받아들여주신 것도 참 감사한 일이고요.
‘아버지의 호밀’이 없었다면 ‘호밀로 만든 반영재의 빵’도 없는 거네요.
해마다 아버지가 심어놓으신 호밀을 보러 밭에 들러요. 수확 후 보내주시는 호밀을 바라보며 전에는 생각하지 않던 재료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그저 단가만 고려했기 때문에 이 재료가 어디에서 자랐고, 누가 수확했으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요. 빵에 대한 제 마음이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와 함께 일하면서 제빵사로서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어요.
우리밀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한 것 같아요.
수입 농산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식량 보존 문제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 일이 후세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눈앞에 보이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았는데, 저는 빵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밀 농업에 힘을 줄 수 있겠더라고요. 우리밀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지금 제가 할 일 같아요.
기술도, 가치도 없다면 당연히 누구도 농사를 지으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생산자와 가공자, 그리고 소비자를 이어주는 신뢰가 생긴다면 우리밀, 나아가 우리 농업은 분명히 지속적으로 순환될 거예요. 저는 가공자로서 맛과 품질을 통해 신뢰를 만들어내야죠.
그럼 빵 맛은 어떻게 지켜낼 생각인가요?
빵의 기본은 좋은 재료고, 재료의 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가공이에요. 공장식 제분으로는 빵의 풍미를 살리기 힘들어요. 맷돌 형태의 제분을 하면 빵의 풍미가 잘 살아나는데, 국내에 아직 그 기술이 도입되지 않아서 맷돌식 제분을 공부하고, 천천히 도입해보려고 준비 중이에요.
앞으로는 건강과 맛이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빵의 측면에서는 그런 방법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할 것 같아요. 저렴한 공장식 제분도 좋지만, 단가와 맛의 균형을 맞춰 나가고 싶어요.
제빵사로, 빵집 주인으로 살아가는 데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빵을 만들며 살아간다는 건 아주 고된 일이에요. 그래서 그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빵집을 시작하면 오래 유지하기 힘들어요. 모든 걸 스스로 해내야 하니까요.
일단 가게를 구상하기 전에 내가 제빵사로서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해요. 그럼 어떤 빵을 만들어야 하는지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겠죠. 제가 우리밀 빵이라는 답을 찾은 것처럼요.
모든 직업은 자신의 관점을 넘어 사회와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같아요. 한 번 확고하게 선택한 길은 그렇게 쉽게 등질 수 없잖아요. 마냥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하기 싫으면 그만둬도 되는 취미와는 달라요. 그렇게 자신이 서 있는 사회에, 그 안의 누군가에게 맞춰간다는 생각으로 빵을 만든다면 이 직업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기술은 그 다음이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어떻게 지키는지 궁금해요.
일에 노력해야 하는 시기가 있고, 생활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시기를 놓치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결혼 전에는 일에 많이 투자했다면 지금은 아내 정은이와 딸 유은이에게 시간을 많이 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가 자라면서 함께 있어주는 게 중요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만약 제빵사를 그만둔다면 어떤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가요?
농부요. 빵을 하면서부터 농부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왔어요. 사람들이 점점 땅을 팔고 도시로 나가면서 농사가 기계화되고 있고, 이제 시골 동네에서는 저희 아버지가 제일 젊은 농부가 됐어요. 만약 제가 이어받지 않으면 업이 끊길 거예요.
어릴 때는 태어나 자란 밭과 논이 지겹기도 하고, 하찮아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니 할아버지가 지켰고, 지금은 아버지가 지켜 나가고 있는 그 풍경이 너무 자랑스러워 보여요. 그걸 지키는 게 어쩌면 저한테 주어진 일 같아요.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걸어오신 길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주 생각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또 할아버지의 아버지에게 그 땅을 받아 지켜오신 거예요. 어쩌면 그게 인생의 전부일지 모르죠. 그들이 지켜온 땅, 그걸 지키기 위해서 저는 농부가 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고, 분명 준비해두어야 할 것들이 있기에 거기에 집중하려고 해요.
아빠가 아닌 한 사람으로
작년에 유은이가 여섯 살이었으니 이제는 일곱 살 딸의 아빠네요. 여전히 휴일 아침 함께 책을 읽나요?
작년 가을이 기억나요. 종종 책을 읽어주고 산책을 다녔죠. 이제는 유은이가 한글을 읽을 줄 알아서 소리 내 책을 읽으면 옆에서 듣고 있다가 틀린 단어를 알려주는 정도예요. 요즘은 함께 카페에 가서 각자 책을 보거나 이야기를 나눠요. 얼마 전에는 아내가 아파 유은이와 잠시 떨어져 있었는데 울지 않고 씩씩하게 잘 지내더라고요. 잘 크고 있는 것 같아요.
유은이를 위한 동화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궁금해요.
가게를 시작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어요. 색연필로 선을 하나하나 넣어가며 그리는 그림이 마치 가게를 준비하던 그 시간들을 담는 듯해서요.
유은이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동화의 제목은 ‘토끼의 주문서’예요. 제빵사인 토끼가 열매 없는 사과나무에 사과 빵을, 별이 없는 밤하늘에 별 빵을 만들어주는 이야기예요. 이제 마무리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몇 년 전부터 그림 그릴 마음이 시들해져서 잠정 중단 상태예요(웃음). 언젠가 또 문득 그리고 싶을 때가 오겠죠
어릴 적 ‘나는 이런 아빠가 되어야지.’ 하고 생각하던 이미지가 있을 것 같아요.
음…. 특별한 건 없던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아빠가 되어야지.’보다는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했었죠. 유은이에게도 아빠보다는 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한 사람. 아빠로서 어쩔 수 없이 자꾸 아이에게 바라는 게 생기더라고요. 나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가 주길 바라니까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유은이에게 정말 필요한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유은이와 대화할 때 유은이의 언어를 가만히 보고 그 언어에 맞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해요. 그저 자연스럽게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만 남겨두고 있어요.
일에 치여 어쩔 수 없이 가정에 소홀하게 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저도 일에 치이는 사람 중 한 명이에요. 주문이 느니까 자연스레 일이 많아지고, 시간이 줄어들었죠. 업체 주문이 소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더 바빠졌어요. 그래서 가족과 보낼 시간을 충분히 남겨두려고 노력해요. 유은이 아침 등원은 제가 맡아서 하고, 틈틈이 시간을 내서 집에 들러요. 휴일엔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가족과 함께하고요. 그렇게 어느 정도 일상이 정해져 있어요.
아버지에게 닮고 싶은 점이 있었나요?
아버지는 한결같으신 분이에요. ‘시골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면도 있었지만 저와 동생에게는 늘 자상하게 대해주셨죠. 정직하셨고, 열심히 농사를 지으셨어요. 그리고 언제나 웃어주셨어요.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저는 본 적이 없어요. 그게 정말 힘든 일인데…. 그래서 그 마음을 이어받게 됐나 봐요.
저도 유은이에게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의 슬픔이나 아픔을 살피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부모와 그런 감정들을 공유하면서 유은이가 좀더 단단하게 자라주길 바라요.
인생 선배로서 유은이가 직업을 선택할 때 꼭 명심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어릴 때 어른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대기업에 취직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자식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지만 듣는 쪽에서는 강요가 될 수 있잖아요. 저는 유은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특히 직업은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영역이라서 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그만큼 조심스러워요.
제가 살아오면서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건 자신의 생각을 존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스스로 선택하되, 직업이라는 건 그저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거기에서 충분히 만족을 얻는 일이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요. 그렇게 오래도록 이어나가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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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정연화 일러스트레이터 최인애 장소 협조 더 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