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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기로 한다. 어떤 남자를 관찰하면서.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여기, 일본 유학을 다녀온 소설가가 있다. 눈썹 위로 껑충 올라오는 짧은 앞머리를 하고, 둥그런 안경을 쓴 사람이다. 코 밑에 어울리지 않는 수염이 두둑하게 달려 있고… 물론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내 생각뿐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지도. 조금 더 살펴보자. 어깨는 축 처진 채로 약간 붕 뜬 머리, 정장인 듯 아닌 듯한 셔츠를 입고, 구두도 신고 짧은 지팡이도 들었는데 위엄은 없다. 조금 고약해 보이기까지 하다.
집을 나온 그는 천변을 걷는다. 동네 사람들이 마실이라는 것을 나와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이 동네 천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여학생들이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고, 소설가는 그 옆에서 수심에 잠긴 얼굴로 구두코만 보고 있다. 그런 그의 뒤에서 자전거가 다가오는데, 따르릉따르릉 요란스레 경고하여도 소설가는 좀처럼 돌아보지 않는다. 길 한가운데서 바닥만 한참 보고 있으니 자전거를 운전하던 사람이 눈을 세모로 뜨고는 소설가를 바라본다. ‘으구….’ 나도 모르게 혀를 쯧쯧 차고 만다. 그는 왼쪽 귓속을 자꾸 매만진다. 귀가 가려운 걸까, 혹시 청력에 이상이 있는 걸까, 그렇다면 ‘으구….’ 하고 혀를 찬 게 미안해진다. 나는 조금 더 그를 뒤쫓기로 한다. 나도 밤까진 딱히 할 일이 없고 걷는 것이 좋은 까닭이다.
다리에 우두커니 서 있던 소설가는 불현듯 고개를 들고 종로 쪽을 쳐다보며 걷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아는 사람이라도 발견한 듯 경보하는 것처럼 뛰다가… 어느 젊은 내외 가까이에 가서는 뭔가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작은 돌멩이를 ‘툭’ 발로 찬다. 사람을 보는 일은 이토록 재미있다.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하고 그래서 이상하기 때문이다. 아까는 다리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짧은 지팡이를 들지 않은 그의 손엔 낡은 공책이 하나 들려 있다. 표지가 이미 해진 걸 보니 오래 사용한 공책이지 싶다. 점점 빨라지는 그의 걸음을 쫓아 당도한 곳은 기차역이다. 별안간 전차에 오른 그를 뒤따라 나도 가까스로 같은 전차에 오른다. 마침 내가 밤에 가야 할 곳도 이 전차를 타야 했기에 그를 쫓는다는 죄책감 없이 가벼이 오를 수 있었다. 어느 역에선가 한 여성이 전차에 올랐고, 소설가는 아는 사람인 듯 여자를 보곤 흠칫 놀란다. 안경 속 두 눈이 커다래지면서 축 처진 어깨가 위로 봉긋 솟는다. 여자 눈에 띄면 안 될 것처럼 황급히 그는 등을 돌린다. 한참을 숨죽여 있다가 양산을 펼치고 내리는 여자를 살피는 그의 등이 애처롭다. 저렇게 문 앞에 옹송그리고 서 있으면 오히려 눈에 띌 텐데…. 웃음이 나는 걸 참으며 그와 같은 역에 내린다.
그가 들어간 곳은 다방이다. 벌써 오후 2시가 지나 배가 고파져 나도 간단히 먹을 것을 주문한다. 그는 차와 담배를 피로한 얼굴로 청하고… 한참을 담배만 줄지어 피우다 백동화를 탁자에 올려두고 밖으로 나선다. 바보같이 지팡이를 두고. 내가 가져다줄까 싶었는데 웬 남자가 지팡이를 들고 남자를 뒤쫓기 시작한다. 잘됐다 싶다. 한여름 한낮의 뙤약볕은 뜨겁다. 그는 그 뒤로도 아주 많은 곳을 걸어 다녔다. 남대문 안으로, 밖으로 걸어 다녔고, 걷다, 걷다 조선은행까지 와서는 본인도 놀라운지 고개를 슬슬 젓는다. 그를 따라 걷는 게 힘에 부쳐 이제 그만둘까 싶었는데 다시 다방으로 들어가기에 나도 쉴 요량으로 그 다방에 들어선다. 강아지 하나가 그 안에 있었고, 강아지를 귀여워할 줄 모르는 소설가는 강아지에게마저 눈총을 산다. 한참 강아지 등을 쓸어주며 중간중간 소설가를 흘낏대는데 그가 누군가를 보고 한 손을 올려 알은 체를 한다. 그쯤에서 나는 관찰을 멈추기로 한다. 누군가와 같이 있는 모습은 재미없을 테고 나도 이젠 출근할 시간이니까.
나는 바삐 움직여 일터로 왔다. 고단해지지 않도록 등을 곧추세우고 자세를 바로잡는데, 시야에 소설가가 들어온다. 예의 그 벗과 함께 내가 일하는 술집에 손님으로 온 것이다. 나는 그 둘을 상대하며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내 취해 버린 벗을 두고 소설가와 한참 이야기를 섞는다. 마치 그를 처음 보는 것처럼 능청스레 구는 건 꽤나 재미있다. 그가 안경 너머로 눈빛을 빛내며 나이를 묻기에 잘도 “스물”이라 답한다. 소설가가 불현듯 나에게 묻는다. “너 내일, 낮에, 나하구, 어디 놀러 가련.” 목소리가 가늘고 기력이 없다. 웃음을 참고 대답하려는 찰나 그는 내게 수첩과 만년필을 주었고 O 혹은 X를 그리라고 한다. 나는 ‘구보’라고 적힌 수첩에 일필휘지로 X를 그리고, 이런 정처 없는 산책자와는 산책마저도 재미없을 거라 생각한다.
이상, <날개>
이 집에는 여자 하나만 사는 줄 알았다. 밤마다 다른 사내들이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지켜본 바로는 여자와 남자가 함께 사는 것 같다. 남자 하나가 밤이면 비틀거리며 집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몇 번 보았고, 그의 행색을 보아하니 이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 같다. 그렇다면 여자는, 남자와 함께 사는 채로 밤마다 다른 남자를 불러들인 것일까. 나는 흥미가 일어 며칠 그 집을 관찰하였다. 남자는 종일 잠만 잔 사람처럼 머리가 부스스하고 눈곱도 끼어 있다. 비척비척 걷는 것이 툭 건드리면 넘어질 것 같아 위태로운 눈으로 남자의 뒤를 쫓는다. 그는 걷다 마주친 이웃들이 인사를 건네와도 좀처럼 대답하는 법이 없다. 가물가물 뜬 눈으로, 날카롭게 쏘아보고 갈 길을 가는 것이다. 그는 그런 식으로 며칠에 한 번 정도 밖으로 나와 걷다가 돌아갔다.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여자(배우자일까)와 같이 나오는 일도 보지 못했다.
하루는 집에서 여자가 먼저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남자는 홀로 걷는다. 이쯤 되니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더 궁금해진다. 나는 밤 산책 삼아 남자를 관찰한다. 그의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저것은 돈일까. 아무 일도 안 하는 것 같은 남자에게 짤랑거릴 정도로 많은 돈이 있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는 어느 가게에서 짤랑거리는 그것들을 꺼냈고, 놀랍게도 그것은 수많은 양의 은화다. 지폐로 바꾸는 것 같아 얼마를 건네받나 지켜보니 무려 오 원이다. 그는 지폐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전에 없이 경쾌한 걸음으로 걷는다.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간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았다. 그는 이쪽 길로 들어섰다가 뒷걸음질 치며 나와서는 저쪽 길로 걸었고, 춤추듯 한 바퀴 돌며 걷다가는 갑자기 방향을 바꾼다. 돈이 생겼기 때문일까, 조금 흥분한 듯 보였는데 그 흥분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내 피곤한 얼굴로 돌아와 비척비척 걷기 시작한 것이다. 밤의 어둠 사이로 힘없이 걷는 남자의 모습이 처량하기도, 오싹하기도 하여 나는 관찰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다음 날에도 남자는 밤이 익으면 밖으로 나왔다. 코듀로이 양복을 걸친 상태다. 어깨춤을 추며 걷는 기이한 남자. 그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지향 없이 거리를 활보하는데, 어제처럼 피곤해 보이지는 않는다. 경성역의 시계가 자정을 넘긴 걸 확인하고 집에 돌아온 남자는 문 앞에서 그 집에 사는 여자와 손님인 듯 보이는 남자가 이야기 나누는 걸 보게 된다. 그러나 별말 없이 집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장면이 무척이나 기이하게 느껴졌다. 두 사람의 관계는 무엇일까. 매일같이 바뀌는 남자 손님들의 정체는 또 무엇일까. 그 뒤에도 남자는 밤이면 집 밖으로 나왔고, 자주 커피를 즐기는 듯했다. 어쩐지… 하루하루 지날수록 낯빛이 허예지고 말라가는 것 같다. 수염과 머리도 제멋대로 자라 보기에 불편한 행색이다.
항상 경성역으로 향하던 그였지만, 어느 날엔 길게 자란 머리를 흔들며 산에 오르는 것이었다. 왠지 걸음이 평소 같지 않아 나는 긴장한 채 그를 쫓았고, 그는 나무 의자에 누워… 밤새 잠을 잤다. 그다음 날이 밝을 때까지 한 번을 깨지 않고 잤다. 나는 왜 저 이웃집 남자가 걱정되어 이렇게 멀찌감치 바라보고 있는가.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 보고 이제 관찰을 그만두려 했는데, 그가 집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큰 소리가 났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듯한 소리였고, 여자의 분에 찬 악이 들린다. 그리고 얼마 있다 남자가 나와 달리기 시작한다. 그가 뛰어간 곳은 또다시 경성역이다. 경성역까지 가는 동안 몇 번이나 차에 치일 뻔한 것을 보았으니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그는 커피를 마셨고, 계속해서 돌아다녔고, 아무 길바닥에 앉아 멍하니 어떤 곳을 응시하고만 있다. 한참을 걷던 그는 미쓰코시 백화점으로 들어간다.
백화점 바닥에 주저앉아 혹여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되어 쫓아갔는데… 구경을 하지도, 주저앉지도 않은 채 위로,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옥상 문을 열고 그곳에 서서 경성 거리를 내려다보는 남자. 나는 관찰하기를 포기하고 그의 곁으로 다가서기로 한다. 그때 그가 한 팔을 들고 겨드랑이를 긁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말을 주문처럼 외면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조금씩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글 이주연
일러스트 추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