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일의 즐거움

정원사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정원사 헤르만 헤세

2년 전 이사를 했다. 눈여겨보던 동네에서 딱 세 번째로 본 집이었다. 언덕을 힘겹게 올라 도착했는데, 도어락은 고장 났고 주인도 없었다. 당황한 부동산 아저씨는 허망한 표정의 나를 위해 집 앞의 화단을 타고 넘어가 창문을 열어야 했다. 이름 모를 나무가 가지를 무성하게 뻗어 서로를 잇던 작은 화단. 나는 그 화단에서 눈가의 주름이 깊게 팬 아름다운 한 노인을 떠올렸고, 단박에 그 집이 좋아졌다.

헤세에 대하여

몇 년 전 한 뮤지션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곡은 헤르만 헤세의 《방랑》을 읽고 쓴 노래였고, 나는 《데미안》으로밖에 알지 못하는 그가 궁금해졌다. 마침 헤세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작가로서의 헤르만 헤세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그를 다방면에서 조명하는 전시였다. 헤세는 신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던 학생이었고, ‘낯설고 거리낌 없던’ 제1차 세계대전 속에서 평화를 말하다가 출판을 금지당하고 외면받은 국민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작품을 써낸 작가이자, 풍경을 단순하고 아름답게 담는 화가였으며,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였다.

헤세의 그림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없다. 그가 그린 것은 오로지 조용하고 평화로운 산, 강, 꽃, 풀, 구름 등이었다. 단 하나 정원에서 물을 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정원사, 헤세’란 작품에서만 유일하게 사람(자신을 투영)이 등장할 뿐이다. 헤세는 스스로 화가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40세 이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고, 화가로서의 붓을 놓지 않았다.

– <헤세와 그림들 展> 도록 중에서

《크눌프》,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유리알 유희》 등 헤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치열함은 읽고 있으면 저절로 숭고한 마음이 들 정도다. 하지만 헤세는 풍경을 바라보고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의 정원을 직접 가꿀 때 그 속에서 자신을 잊은 듯했다. 그의 그림에는 사람도 동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수줍게 뒷모습으로 그린 정원사로서의 자신이 나오는 그림은 ‘정원사, 헤세’라는 작품 단 한 장밖에 없다.

나는 하루를 아틀리에에서 일하는 시간과 정원에서 일하는 시간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정원 일은 명상과 정신적인 소화를 위한 것이므로 나는 혼자서 그 일을 합니다.

–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중에서

정원에 수놓아지는
자기만의 언어

‘겉보기에는 저렇듯 둔감하고 저주스러울 만큼 건강한, 돈과 기계에 매달리는 인간이 바보처럼 행복에 젖어 한 세대가량을 흘려보내고 나면, 그다음에 아마 그들은 의사나 선생, 예술가, 마술가들을 찾아가 많은 돈을 주고 자신들을 다시 아름다움의 비밀로, 영혼의 비밀로 이끌어달라고 요청하게 될 것이네.’

–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중에서

여행을 가면 꼭 식물원에 들른다. 도심 속에서 비밀의 숲을 찾은 듯한 기분도 좋긴 하지만, 사실 사람이 없는 식물원은 상상하기 힘들다. 여행이 끝난 후 남은 필름 사진 속에는 식물원을 관광하는 나와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듯한 뒷모습이 늘 찍혀 있다.
우선 식물원이나 큰 정원에 가면 정원사를 찾는다. 옷에 흙을 묻힌 채 조용히 밭을 갈거나 커다란 나무 호스로 물을 뿌리는 사람들. 나는 식물보다 언제나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길 좋아했다. 그들을 찾고 나면 보이는 건, 나무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나면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던, 등만은 닮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연과 언어라는 불가능한 것 앞에서 자신을 깊이 어딘가로 던질 때의 뒷모습 말이다. 

어린 시절의 헤르만 헤세는 ‘시를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던 소년이었다. 그가 1931년 니논 돌빈과 세 번째 결혼을 한 후, 친구인 한스 보드머는 헤세를 위해 황금의 언덕에 카사 로사를 짓는다. 헤세가 이사를 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밤나무 숲에서 영감을 받은 정원을 만드는 일이었다. 헤세는 그곳에서 노년을 보내며 ‘한곳에 머물며 고향을 갖는다는 기분, 꽃과 나무, 흙, 샘물과 친해진다는 기분, 한 조각의 땅에 책임을 진다는 기분, 오십여 그루의 나무와 몇 포기의 화초, 무화과나무나 복숭아나무에 책임을 진다는 기분’을 만끽했다. 그가 소설과 시를 쓰는 방식은 정원을 가꾸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정원의 정원사처럼, 그곳에서 시를 쓰는 시인처럼, 키가 큰 밤나무에 그네를 만들어 줬던 나의 젊은 아버지처럼, 정원에는 침묵으로 그리는 각자의 언어가 나름의 모습으로 수놓아진다. 그런 모양 앞에서는 어떤 잣대도 들이밀 수가 없다. 

내일이면 파괴될지도 모를 이 세계의 한가운데서, 시인이 고심해서 자신의 언어를 주워 모아 짜 맞추는 일은, 지금 들판에서 자라는 아네모네와 앵초와 다른 많은 꽃들이 하고 있는 일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중에서

한 평 화단의
개나리 나무

내가 정원 위로 눈길을 보내면, 정원은 단지 황홀해하거나 혹은 무관심한 시선을 던지는 이방인을 보듯이 그렇게 나를 대하지 않는다. 정원은 나에게 무한히 많은 것들은 준다. 지난 수년 동안 밤낮으로, 매 시간마다 모든 계절과 모든 날씨 속에서 정원과 나는 친밀해졌다.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나무의 잎사귀들과 그들이 꽃피고 열매 맺는 모습은 물론, 생성하고 소멸해 가는 모든 과정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친구였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나무들 가운데 한 그루라도 잃어버린다면 나한테는 친구 한 사람을 잃는 것과 같았다.

–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중에서

새집으로 이사 온 후 집 앞에 작은 화단을 두고 나는 몇 번이고 정원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상상 속에서 나는 타사 튜더이기도 했고 헤르만 헤세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저 게으른 인간으로 고양이와 볕 좋은 날 함께 앉아만 있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화단에는 큰 창을 다 가리는, 가지 많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항상 궁금해하면서도 이름을 찾아볼 생각은 못 했었다. 날씨가 푹해졌네, 하고 생각하던 어느 날 가지에 연두색 움이 돋았다. 봄이 왔다. 나는 한동안 그 작은 연두가 무엇을 틔워낼지 궁금해하며 지냈다. 얼마 후 가지에는 노란색 꽃들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개나리.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 세 계절을 맞이하고 나서야 나무의 정체를 알았다. 그 흔한 봄꽃을 몰랐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지만, 개나리가 봄만 사는 나무도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오래 지켜본 후에야 나타나는 것,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알게 된 건 오랜만이었다. 요즘은 집에 오는 친구들에게 이 나무를 설명하는 일이 가장 즐거운 일 중에 하나다. 나는 이제 개나리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계절 사이 나무도 나를 알게 됐을까. 아직 화단에 발도 디뎌보지 않았지만, 가끔은 방충망까지 훤히 열고 종종 가지가 집 안으로 들어오게 둔다. 요즘은 내가 이 집을 떠난다 해도 우리가 서로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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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사진 제공 본다빈치(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