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동맹의 시작 ‘더티 카푸치노’

1월 20일, 일의 절반은 동료다 2

W

출근길에 빵과 같은 주전부리를, 점심시간엔 커피나 편의점 간식을 자주 산다. 그 옆에서 얻어 먹은 것이 많고, 덩달아 사는 일도 많다. 최근 들어 빈약해진 우리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아무튼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

H

항상 예의바르고 당차며 씩씩하다. 전화 예절의 표본이란 게 있다면 단연코 H일 것이다. 10년 넘게 사무실 전화기를 쓰는 동안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표현들을 모두 H에게서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당황하면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진다는 것. 홍당무, 아니 파프리카처럼 정직한 빨간색으로.

Y

5개월 전부터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은 “계획이 좀 틀어졌다고 바로 망했다고 하지 않기.” 내가 “망했다”는 말을 무의식중에 쓴다는 것을 Y를 통해 깨달았다. 반성합니다.

 

위에서 열거한 세 사람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나와 점심을 함께 먹는 고정 멤버다. 이 중에서 업무적으로 겹치는 지점이 없는 사람이 둘이나 된다. 매일 12시에 만나 13시에 헤어지는 사이인 것이다.

어느 날에는 점심을 먹고 회사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에 소위 ‘힙하다’는 카페가 근처에 있음을 인지했다. 누구 하나 나서서 가자고 하지 않았지만, 여덟 개의 발은 구령이라도 들리는 듯 보폭을 맞춰 그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는 ‘더티 카푸치노(dirty cappuccino)’. 아담한 소서 위로 우유 거품이 흘러넘치는 콘셉트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평소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Y를 포함해 전원이 따뜻한 더티 카푸치노를 각자의 무릎 앞에 하나씩 두고 앉았다.

그날 우리는 함께 밥을 먹기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카톡방을 만들었다. 그동안은 사내 메신저로 “저 오늘 점심에 약속 있어요”, “조금 늦게 나가야 해서 제 것도 같이 시켜주세요.” 따위의 대화만 해오던 우리였다. 이건 마치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도원결의를 맺은 유비, 관우, 장비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더티 카푸치노와 함께 맺은 점심 동맹이라고나 할까. 카톡방에 가장 먼저 올라온 건 다름 아닌 똑같은 커피 네 잔과 함께 찍힌 우리들의 얼굴이었다. 모처럼 얼굴 근육을 실컷 쓰며 활짝 웃고 있는.

그로부터 일주일 후, 우리는 저녁 밥상을 앞에 두고 다시 모였다. 아, 같은 날 점심식사도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하루에 두 번 같이 밥을 먹는 사이. 아침을 거르는 나로써는 하루의 전부를 함께하는 셈이었다.

처음 함께 먹는 저녁 메뉴를 선정하는 논의는 점심시간에 이루어졌다. 매일 먹는 점심보다 특별했으면 좋겠다는 데 모두 쉽게 합의했다. 그렇게 정한 식당은 ‘대막 비스트로’. 네 명도 단체 손님으로 분류되어 예약하기 어려운 곳이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바질 소바, 후토마키, 교꾸 산도, 굴튀김, 고등어 초밥. 하나같이 평소에 쉽게 접하기 힘든 음식들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 신생아 얼굴만한 김밥 속에 신선한 회와 큼직한 튀김과 이것저것이 빼곡히 들어찬 후토마키가 단연 인기가 좋았다. 한 접시에 담겨 나온 후토마키는 열 개. 두 개씩 나눠 먹고 남은 두 개를 누가 먹을지 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라는 아날로그 수법이 동원됐다. 우리의 첫 가위바위보는 목숨이라도 달린 것처럼 치열했다.

 

 

 사람들 대체 뭘까. 피를 나눈 것도 아니요, 일을 함께하는 것도 아니요, 그저 하루 한 끼를 함께 하는 것뿐인데 나는 왜 이들에게 이토록 끈끈한 애틋함을 느끼는 걸까. 어쩌면 오히려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고 일을 함께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9개월 만에 생긴 우리의 카톡방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겨우 새로운 대화가 올라오고(그마저도 여전히 “저 오늘 점약 있어요”, “조금 늦게 나가야 해서 제 것도 같이 시켜주세요” 따위의 대화가 전부다) 18시 이후로는 철저히 봉쇄된다. 죽고 못 사는 사이는 못 되지만, 그저 언제나 사무실 한편에 그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퍽퍽한 회사생활의 갈증이 해소되곤 한다. 그냥 그렇게 작은 위안이 된다.

 

겟썸커피

 

A. 서울 강남구 논현로159길 46-6
T. 070 4223 3619

 

대막 비스트로

 

A.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60길 35-5
T. 02 512 1060

 

We Around Project

내가 오늘 분명히 먹은 것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점심 먹고 나오는 길에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저녁 식탁을 치우면서 내일 점심을 고민합니다바쁜 일상 중에도 마음에 선명히 남는 한끼의 식사가 있습니다음식을 앞에 두고 떠오르는 생각과 마음의 대화를 적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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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지향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