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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씨앗을 심는 ― 입추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입추에는 남은 여름을 힘껏 끌어안으며 배웅할 기회와 가을을 마중 나가서 느긋한 인사를 나눌 기회가 함께 주어진다. 여름 바다의 포옹 속에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계절은 머뭇거림 없이 성큼성큼 다가올 테니 두 팔 벌려 환대할 수 있도록 어깨를 부드럽게 만들어 두고 싶다.
침실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의 기울기가 달라졌다. 왕왕거리는 매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것은 어제와 다르지 않고, 후덥지근한 열기도 그대로인 것 같은데, 어제까지만 해도 힘 있게 들어오던 빛의 명랑함이 조금 어른스러워진 기분이 들면 달력을 보게 된다. ‘벌써 입추, 가을의 절기가 시작되는구나.’ 아침 찻물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한참 더운 날에는 뜨거운 물로 우려낸 차도 그리 내키지 않아서 냉침한 백차를 마시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아침 빛이 달라진 것을 알아보자 다시 더운물을 내고 오랜만에 보이차 잎을 꺼내었다.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다가 탈칵, 스위치가 올라가면 찻잎을 담은 자사호에 물을 붓는다. 차를 우려 잔에 따르고는 부엌으로 길게 들어온 햇빛을 바라보았다. 빛 속에 둥둥 떠다니는 먼지들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바라본다. 빛을 보는 중인지 먼지를 보는 중인지 모르겠다고 여겨질 무렵, 빛무리 너머에 있는 화분에 시선이 멈췄다. 어느 봄에 경기도의 한 화원에서 데려와 몇 년을 함께 보낸 잎이 넓은 고무나무와 높게 키를 키운 산세베리아, 바람 불 때마다 가녀린 가시 같은 잎이 부드럽게 춤을 추는 아스파라거스, 그보다 몸집이 작은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소박한 군락. 지난봄까지 한동안 마음이 종종 뭉개지다가 납작 엎드려 버려서, 그렇게 넘어진 내 등 뒤로 어서 시간이 흘러가 버리기만을 기다리던 날들에 식물의 색은 희미해졌다. 여름의 한가운데에 도착해서야 그 색을 알아보고는 햇빛을 조금 더 보게 하고, 바람의 율동을 느끼게 하려고 자주 환기를 시키거나 창문 곁으로 자리를 옮겨 두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생을 다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지쳐버린 것 같은 모습들. 바라보고 있으려니 미안함이 든다. 식물들이 잘 살 수 있는 곳에서는 사람도 잘 살 수 있다고 여기는데, 그동안 나는 나를 어디서 키우고 있었던 걸까 싶어서 나에게도 어쩐지 미안한 마음. 곧 가을이 오면 이제 식물들도 서서히 왕성한 생장을 멈추고는 여름보다 더 긴 잠을 잘 것이다. 올해의 무성해지는 시기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걸까? 힘없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생각이 자꾸만 많아지다 보니, 어느 다정한 사람의 손에서 씩씩하게 자라난 새 친구를 이곳에 초대하고 싶어진다. 새로운 식물은 봄에 들이는 거라는 이야기를 어느 날엔가 들은 적이 있다. 처음부터 겨울을 함께 나는 것은 어려우니까 조금 더 수월하게 친밀해질 수 있는 봄에 동거를 시작하라고. 그 말이 떠오르고 나니 입추에 화원으로 향하는 일이 망설여진다.
“정말이지 내 마음은 내 행복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올라오는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평화로움을 위태롭게 만드는 감정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고. 나 역시 그렇다. 기쁨은 곧 사라질까 벌써부터 아쉽고, 두려움은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 같아서 갑갑하다. 마음을 잘 돌보면서 살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모르는 척 외면하는 게 편안한 것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못 본척하며 눌러두었던 것들이 우르르 쏟아지듯 눈물로 흘러나온 다음부터는 그렇게도 할 수 없어서 한참 동안 바라보는 중이다. 내 마음은 내 행복에 관심이 없어도 나는 내 행복에 관심이 있어서 틈틈이 바다로 달려와 해변에 누운 채 파도 소리를 듣는다. 하나의 마음이 지나가고, 또 하나의 마음이 오는 모습을 바닷가에서 마주하게 되면 오가는 많은 것들이 밀물과 썰물 같다. 자연스러워 보이고, 그렇게 느끼는 순간의 나는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 여름 햇살은 여전히 뜨겁고 바람까지 열기가 묻어있어서 얼굴도 몸도 전부가 천진하게 열리는 것 같은데 곧 입추, 가을의 절기가 시작된다니! 봄도 아니고 여름이 되어서야 겨우 기지개를 켠 올해의 나는 이미 서운한 마음이 가득하다. 바닷가에 누워 파도의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되면 오가는 마음 때문에 부대낄 때 어떻게 하지? 벌써 걱정스럽다.
정점이라는 것은 이제 곧 내리막이 시작된다는 뜻이라고 계절이 내게 말한다. 가장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슬슬 가을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가을 절기의 시작인 입추와 더위의 정점인 말복이 맞붙어 있는 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해석된다. 가장 더운 날인 말복은 어느 해에는 입추와 같은 날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입추 며칠 후이다. 그러니 입추에는 남은 여름을 힘껏 끌어안으며 배웅할 기회와 가을을 마중 나가서 느긋한 인사를 나눌 기회가 함께 주어진다. 여름 바다의 포옹 속에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계절은 머뭇거림 없이 성큼성큼 다가올 테니 두 팔 벌려 환대할 수 있도록 어깨를 부드럽게 만들어 두고 싶다. 여름의 몸은 넓어지는 식물의 잎처럼 부드럽게 열린다. 그러나 찬 바람이 불 무렵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부터 굳어지고 몸의 뒷면이 서서히 뻣뻣해지기 때문에 아직 다정한 훈풍이 부는 입추에는 등을 부드럽게 열거나 좁히는 움직임과 이런저런 비틀기 동작을 전보다 자주 한다. 윗등이 부드러우면 바람이 차가워져도 목과 어깨가 덜 딱딱해지고, 그렇다면 겨울을 맞이하는 얼굴 속 나의 미간이 긴장되지 않을 것이다.
입추는 김장용 무와 배추를 파종하는 시기이다. 지난 봄과 여름 동안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돌보며 키운 것들을 수확하는 시기로 가을을 알고 있었는데 정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두면서 또한 뿌리기도 하는 시기, 그렇게 모든 일들이 오는 동안에 가고, 가는 동안에 오는 것을 알아보는 때가 바로 입추다. 입추에 씨앗을 심고, 가을의 열기와 한기를 모두 품으며 자란 무와 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먹으며 촘촘한 칼바람이 부는 겨울을 난다. 그러고 나면 언제 추웠냐는 듯 공기가 느슨해지면서 다시 봄이 찾아오겠지. 추운 계절에 대한 준비를 지금 시작해도 된다는 것이 고맙다. 아직 늦지 않았다. 자연의 호의는 여전히 우리에게 씨앗 뿌릴 기회를 준다.
요즘은 명상 할 때 전과는 다른 말을 내게 해주고 있다. 그건 바로 파도가 내게 해주었던 말. “오가는 마음들을 바라보다가 너를 자유롭게 하는 마음과 손을 잡아.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대신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이 만들어서 전해주는 기쁨을 누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사랑으로 자유롭게. 의식적으로 하던 무언가가 무의식의 영역으로 편입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21일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21일간 작심삼일을 일곱 번 반복하면서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것을 계속해서 한다. 그러다가 한달이 지나고 아홉 달이 되면 그 생각이나 행동을 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하게 될 테고, 한 요가 경전에서는 7년이 지나고 나면 그 경험 이전의 나는 내 안에서 대부분 사라진다고 한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에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이 어색해 보여 내년 봄으로 미뤄야 하나 싶었지만, 김장할 배추의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아직은 몸에 꼭 맞지는 않는 언어를 품에 안는다.
<다가오는 것들>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여러 번 보았다. 주인공인 나탈리가 무언가를 계속해서 잃어가는 것처럼 보여서 제목을 적어도 다섯 번쯤은 착각했다. 누군가에게 영화를 추천하고 싶을 때마다 사라지는 것들, 잃어버린 것들 같은 온갖 상실의 언어들을 제목으로 떠올렸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매번 다른 제목이었다. 삶은 길이로든 너비로든 어쨌든 유한하고, 흘러온 것을 다 품에 안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생성과 유지, 소멸과 재생을 통해 굴러가고 있으니까 잃어가는 동안에 잃는 것의 자리를 고요하게 채우는 것들 또한 존재한다. 생겨났다가 사라진 자리에 새롭게 남겨지는 씨앗들. 이 영화에서 나탈리는 중년으로 다가가는 중이고, 고등학교 철학 교사다. 치매에 걸린 엄마의 전화를 시도 때도 없이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25년을 함께 산 남편이 다른 사람이 생겼다며 이별을 통보하고, 그녀를 존경한다던 제자는 어느덧 머리가 커져서 자신의 선택에 안심하고 싶었던 것인지 나탈리에게 당신의 결정은 당신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늘 자신을 힘들게 하던 어머니와 고양이마저 떠난 자리, 그는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온전한 자유를 드디어 되찾았다고 영화의 말미에서 제자에게 말한다. 당연하게도 인생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삶의 가을 혹은 겨울을 맞이한 것 같은 나탈리도 추운 계절 동안 살아남으며 잘 지내면 결국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금 그가 마음속에 심는 씨앗은 겨울을 든든하게 살게 하고 새봄에는 생을 향해 달라진 시선이나 다가오는 것을 향한 다른 표정으로, 처음 보는 빛깔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될지도 모른다.
눈을 감으면 언제든 여름 바다에게 안겼던 파도의 음성을 내 삶의 깊은 자리로 데려올 수 있다. 의식적으로 기억하려는 행위는 언젠가 힘을 잃게 될지 몰라도 무의식에 새겨진 말들은 일상에 진득하게 남아서 거센 바람이나 세차게 쏟아지는 비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언젠가 먼 훗날에는 분명 나의 삶을 그 언어가 도착한 자리에 놓아두게 되겠지. 그러니까 오늘도 가을의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마음으로 말한다. ‘사랑으로 자유롭게. 매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늦지 않았다. 가을의 씨앗을 뿌리기에 가장 정확한 시기에 도착했을 뿐. 그리고 다음 휴일에는 오랜만에 화원에 들리려고 한다. 사나운 바람이 부는 어려운 계절 동안 서로 의지하며 시간을 보낼 친구를 데려오면 어떨까 싶어서. 마음을 터놓을 친구를 늘 새 학기에 사귀진 않았었고, 가까워지기에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니까. 식물 친구를 잘 살려두기 위해 삶의 자리를 정돈하다 보면 나의 마음도 보다 단정한 침묵 속에서 빛나게 될 것 같다고 희망하게 된다. 다가오는 날들 동안 마음을 기대어 둔 채 같이 생생하게 흐른다면 조용한 봄을 함께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입추(立秋) : 24절기 중 열세 번째이며, 서늘한 바람이 반가운 때로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시기다.
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