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따라 걷기

초여름의 햇살에 나를 세워두는 ㅡ 소만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스물네 번의 절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쓰다듬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록한다.

마음의 면면을 들여다 보며

“오월은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기념일을 핑계 삼아 인사를 건네는 달. 화사하게 피는 장미와 작약처럼 발그레한 사랑을 말하거나 듣고, 그렇게 표현된 마음에 다시 감사를 담아 고개 숙이며 미소 짓는 달이다. 그래서일까. 소만이 되면 길어진 빛의 시간, 가까워진 여름의 하늘 아래에서 그 무렵 쏟아지고만 마음의 언어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보게 된다.”

열어둔 창으로 나무의 푸른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계절의 자연스러운 걸음을 따라 서서히 모습을 변화시키며 품을 키운 나무들 사이에 유난히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한 친구가 있다. 요가를 안내하는 공간의 창 너머, 눈높이와 비슷한 키로 자라 넓게 팔을 벌리고 선 감나무. 키가 무척 크고 열매를 따기 어려운 모양으로 가지가 퍼져 있어 감이 소멸할 때까지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다. 연말에는 나무에 동그란 알전구가 가득 달린 것 같고, 눈이 내리는 날에는 감을 먹으러 오는 새들의 조찬 모임도 마주 보며 듣는 소중한 경험을 한다. 어느덧 아이의 손바닥처럼 커져 버린 감나무 잎에 초여름의 햇살이 부딪치면 창을 통해 둥글고 밝은 초록빛이 들어와 그 바탕 속에 성큼 나를 세운다. 그것은 아마 무엇이든 가득 차면 흘러나오고 마는 또렷한 진실의 조각이기도 하고, 빛이 지닌 천연덕스러운 속성이기도 할 것이다. 빛은, 닿아있는 것을 다정하게 침범하며 그 안에 있는 걸 자신의 품으로 당겨온다. 늘 승리하고 마는 빛의 고요하고 힘 있는 줄다리기는 어둠 곁에서 머뭇거리던 많은 것을 결국 빛나는 세계에 속하도록 한다. 빛에게 기회를 주지 않던 나는 문도 닫고 커튼도 쳐둔 채, 내가 속한 시공간 속에 빛이 스며들 수 없게 안간힘을 썼기 때문에 그 강인함을 몰랐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제아무리 힘이 세도, 들어올 수 없도록 꽁꽁 잠근 문 너머에서는 다가갈 틈이 없었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다가 지쳐서 되돌아갔을지도 모르는 일. 요즘은 빛을 허용하기 위해 커튼을 젖혀두고, 문과 창문도 활짝 열고 지내는 중이다. 빛의 영역에 머무르면서 캄캄한 자리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된다. 가졌는지 미처 몰랐던 것 중에는 환대하고 싶은 것도, 거부하고 싶은 것도 두루 존재해서 고마움과 곤란함이 온통 뒤섞여 어쩔 줄 모르겠는 표정을 짓는 날도 생긴다.

빛이 온통 찬란하게 차오르는 소만에 도착했다. 작을 소, 가득 찰 만. 글자를 해석하자면 작은 것들이 서서히 자라서 가득 찬다는 뜻이거나 여름이 조금 완연해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이 가득 차오르는 시기라 할 수도 있다. 소만에 담긴 뜻을 어루만지다가 지금 차오르는 중인 것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언젠가 식탁 위에 컵을 두고 물을 따르다가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쏟아져 버려 탁자를 흥건하게 적셨다. 의지로 채우든, 나도 모르게 채워지고 있든 어쨌든 가득 차면 흘러나오게 된다. 그러니 지금 채워지는 것이 나중에 흘러나와도 괜찮은 것인지를 이 무렵에는 잠시 멈춰서 묻고 싶다. 내게는 이 순간에 채워지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유지하거나 바꿀 힘이 있다는 것을 믿고, 분명하게 느낀다.

오월은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기념일을 핑계 삼아 인사를 건네는 달. 화사하게 피는 장미와 작약처럼 발그레한 사랑을 말하거나 듣고, 그렇게 표현된 마음에 다시 감사를 담아 고개 숙이며 미소 짓는 달이다. 그래서일까. 소만이 되면 길어진 빛의 시간, 가까워진 여름의 하늘 아래에서 그 무렵 쏟아지고만 마음의 언어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보게 된다. 감사할 일들이 곳곳에서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는데도 어느 날엔 그 안의 쓸쓸함이나 망설임, 아쉬움이 만져지기도 한다. 바깥에서 찾아왔기 때문에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만들어내거나 굳이 찾아낸 것들이다. 기쁘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를 좋은 날에 구태여 손을 뻗어 한참 더듬거린다.

줄 때보다 받을 때 떠오르는 말 중 하나는 ‘사랑 표현의 문법’이다. 어떤 사랑은 내게 정확하게 들리고, 어떤 사랑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것이 아주 깊은 사랑이었음을 알아보게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랑은 사랑이 아닌 줄 알고 멀리 떠나온 후에야 내가 받을 수 있는 만큼, 내게 필요한 모양의 사랑이었음을 알아보게 된다. 그러니 누군가와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는 아직 만나지 못한 세계 속에서 미래의 내가 지금을 어떻게 바라볼까를 떠올린다. 그러다 보면 종종 멀어지고 싶은 마음과 결국 내가 먼저 멀어지게 된다. 사랑을 표현하는 문법은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개가 존재할 것이다. 대부분은 그 문법이 닮아 있는 사람들과 오손도손 지내게 되는데, 때로는 무척이나 사랑하는데도 문법이 달라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소중한 가족과도 그 문법이 다를 수 있고, 가치관이 누구보다 잘 맞는 사람과도 같지 않을 수 있다. 양보하기 어려운 어떤 구간에서 충돌이 일어나면 두 사람 중 하나는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거나 관계에서 빠져나오려고 시도하는 것 아닐까.

사랑을 표현할 때는 종종 그가 원하는 문법이 지금 내가 표현하고 있는 모양인지에 대해 상대에게도, 표현하는 나 자신에게도 질문하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랑을 표현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충만하고 좋겠지?’ 생각한다. 그런데 사랑을 받고 있을 때는 다른 생각을 하고 만다. ‘나는 이런 모양으로 받고 싶은데 왜 다른 모양으로만 주는 거야?’ 아주 가까운 사이의 사람에게는 용기를 내어 내가 편안하게 느끼고 좋아하는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함께 노력하고 싶다. 그럼에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어릴 때는 이별을 택했다. ‘나랑 잘 안 맞나 봐.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나면 금세 다 지나가는 마음이라고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어떤 어둠의 세계를 통과하며 마음의 강 하나를 건너온 요즘의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왜 나는 그가 주는 모양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전과 다른 질문이 자꾸만 올라온다. 아마도 빛의 세계를 향해 활짝 열어 둔 창 덕분에 드러나는 마음 조각일 것 같다며 오래 들여다본다.

어릴 때, 가장 먼저 포기했던 마음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무언가를 받고 싶은데 받지 못하면 어느새 슬픔이 생겨나고 그 감정은 너무도 불편하다고 느꼈다. 마음을 그대로 두며 존중하는 방법이나 표현하는 법, 소화하는 법을 모르니까 우선은 없는 척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사랑 받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고 정하고 나면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던 부모님을 향해서도, 따돌림을 당하던 교실에서도, 나는 여전히 좋아하고 있는데 이제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향해서도 미움의 화살을 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 조금은 스스로 나쁜 사람이 아닌 기분이 들곤 하니까.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질 만큼 속으로 자주 했던 말은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아.’였다.

빛이 가득한 세계로 들어와서 억눌러 두었던 감정을 하나씩 들여다보다가, 드디어 몇 년 전 아주 오래 숨겨둔 마음을 만났다. 사랑 받고 싶은 마음, 사랑 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문법으로 표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만났다. 사실은 누구보다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누구보다 겁이 많아 매번 뒷짐 지고 서 있던 어린 날의 나를 본다. 욕심부리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서 욕심이라는 단어에 부정성을 덧입혀 두고, 그 말을 들으면 내가 못난 사람일까 디딘 뒷걸음질을 돌아본다.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은 창피한 걸까, 돌봄 받고 싶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너희들이 나를 못 본척 하거나 내 이야기가 안 들리는 척할 때 무척 슬프다는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이제 와 생각해 본다. 돌아보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늘 나였고, 명상을 시작한 후부터는 이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일 때, 그러니까 애인이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만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내 마음속 진실이 그를 상처 입힌다기보다 말하는 나의 태도가 서툴고 부족해서 뾰족한 언어를 고르다가,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의 오류로 인해 상처가 생겨나기도 하니까.

옛사람들은 소만에 막 익은 보리를 수확하느라 바빴는데, 가을에 수확한 작물은 이미 다 떨어져 어느 시절보다 바쁘지만, 배고픈 시기인 보릿고개를 지낸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겪는 와중에도 마당에 핀 봉숭아꽃을 따 백반을 섞어 손톱에 물을 들였다고 전해지는데, 돌아보면 나의 어린 시절에도 여름이면 봉숭아 물을 들였던 기억이 있다. 아빠는 언니와 내 손톱과 발톱에 빻아 둔 봉숭아꽃 무더기를 크기에 맞게 떼어내 올리고 랩을 작게 자르거나 비닐봉지를 조그맣게 잘라서 덧씌운 후에 실을 감아 봉숭아 물을 들여주었다. 그렇게 다 합쳐 마흔 개나 되는 손톱이거나 발톱인 작은 공간에 꽃을 올리고 나면 아빠는 손톱이 아니라 손가락의 가장자리에 봉숭아 물을 들인 사람이 되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모습을 보며 다 같이 웃던 여름날이 내 삶의 기억 한편에 있다. 늘 충분히 받지 못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들여 우리의 손톱과 발톱을 들여다보고, 그러는 동안 자신의 손가락을 붉게 물들이는 게 무뚝뚝한 아빠가 건넬 수 있는 사랑은 아니었을까. 이제 와 궁금한 마음이 된다. 어쩌면 어린 시절 교실에서 나를 따돌리던 친구들은 조금 무덤덤한 얼굴로 거리를 두곤 하던 내가 자신들을 더 좋아해 주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떠나간 인연들 역시도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사랑을 표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채 서서히 먼 곳으로 흘러간 것은 아닐까.

허물어져 가는 마음, 단단한 성처럼 굳건했던 마음이 부서지고 폐허가 된 자리에 초여름의 빛이 스며들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을 나도 모르게 채우고 있구나, 사랑 받고 싶은 나를 존중하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 그 마음만 온통 붙잡고 있구나. 이 마음이 내게 가득 차서 흘러나오게 되면 그 모습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 기쁘지 않을 것 같다. 그 마음이 가득 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보다는 그들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해 주었음을 알아보고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 채워졌으면, 지난날의 상대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을 줄 수 없었기에 멀어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내가 떠올렸으면 한다. 사랑 받고 싶다는 마음에는 이미 받는 걸 온전히 알아보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 하지만 마음 조각의 크기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내게는 사랑을 알아보고 고마워하는 모습도 있으니까 그게 삶에 조금 더 채워지면 좋겠다고, 계절이 가진 다정한 초록빛의 동그라미 속에서 마음을 키운다.

연약한 마음을 가진 나라는 사람의 그릇에 더 넓고 깊은 사랑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풍성하게 담아서 흘러 나가게 하고 싶다. 더 많이 사랑하는 마음, 가까운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 그래서 그들이 한 번 더 웃을 수 있다면 조금 더 노력해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둔다. 더 많이 나누는 것과 더 먼 곳까지 흘러가게 하는 것에만 관심이 흘렀으면 하는 큰바람도 채워두고. 가득 차면 창밖 나무의 푸른 빛처럼 쏟아지듯 퍼져나갈 것을 신뢰하는 마음도, 다정하게 어둠을 침범하는 빛의 기질 또한 진심으로 믿으며 빛나는 마음도 채우고 싶다.

*소만(小滿) : 24절기 중 여덟 번째로,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의 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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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