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따라 걷기

무성함 속 틈을 만들어 보는 ㅡ 입하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스물네 번의 절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쓰다듬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록한다.

기다리던 여름과 다시 돌아보는 마음

“계절의 호의를 누린다. 적절한 간격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안전하게 마주 잡은 손 같고, 해를 등지고 서 있으면 몸의 뒷면을 따뜻하게 데우는 햇빛은 어루만지듯 안아주는 부드러운 품 같다. 봄에서 여름으로 향해가는 길목은 어떤 계절의 이동보다도 반가워서 자꾸만 손을 뻗어 나무를 쓰다듬고 피부에 닿는 햇살을 만져보게 된다. 여름이 돌아오는 중이라는 것, 새로운 여름이 오고 있다는 것.”

내 안에서 발견된 자그마한 마음 하나가 온몸에 꽉 차는 느낌이 들 때 할 수 있는 행위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고요히 눈을 감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서 이미 일어난 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도 모두 모른 척하며 지금 일어나는 일, 그러니까 숨이 오고 가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잠시 보내면 마음은 원래의 크기로 돌아와 ‘무슨 일이 있었어? 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나를 본다. 또 다른 하나는 우선 밖으로 나가서 나무 아래에 서는 일이다. 동네에 자주 만나는 나무 친구인 단풍이의 몸에 손을 얹고 숨 쉴 수 있다면 제일 좋고, 다른 장소에 있다면 어디든 나무를 올려다보면 된다. 비가 와도 좋고 햇살이 내리쬐는 날도 좋고 꽃이 피거나 질 때, 바람이 불어도 눈이 내려도 좋다. 어디든 지금의 날씨를 담담하게 마주하며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나무를 보면 숨이 잘 쉬어진다. 마음은 결국 흘러가고 지나가는 날씨 같은 것이고, 때가 되면 지나가고 때가 되면 돌아오는 것이니까 날씨 같은 마음에 무슨 문제가 있겠나 생각하게 된다. 비가 오거나 오지 않아서 곤란을 겪는 것은 인간 세계의 일일 뿐이지 그게 날씨의 문제는 아니니까 말이다. 어린이날 무렵 입하, 여름이 시작된다. 시작되는 계절 속에는 봄과 여름이 함께 있는데 그래서인지 고마워하자면 끝이 없고, 또 불평하자면 그것도 끝없이 투덜댈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여름을 기대하는 나는 보통 서늘한 바람에는 서운해하고 뜨거운 봄볕에는 환영 인사를 하게 되는데, 돌아보면 다른 두 가지가 함께 있기에 지금이 사랑스러운 시기임이 분명하다.

 

계절의 호의를 누린다. 적절한 간격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안전하게 마주 잡은 손 같고, 해를 등지고 서 있으면 몸의 뒷면을 따뜻하게 데우는 햇빛은 어루만지듯 안아주는 부드러운 품 같다. 봄에서 여름으로 향해가는 길목은 어떤 계절의 이동보다도 반가워서 자꾸만 손을 뻗어 나무를 쓰다듬고 피부에 닿는 햇살을 만져보게 된다. 여름이 돌아오는 중이라는 것, 새로운 여름이 오고 있다는 것. 여전하지만 매번 새롭게 반가운 여름의 기척은 굳어졌던 몸도 마음도 모두 여름처럼 밝고 환하게 펼쳐준다.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함성을 지르며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어린이들처럼 초록이 명랑하게 넓어진다. 매일 조금씩 몸을 멀리 뻗는 나뭇잎에 닿은 빛은 땅에도, 담벼락에도, 누군가의 집 창문에도, 빛이 닿는 모든 자리에 보석 같은 그림자의 춤을 춘다. 그 모습을 걷다가도 여러 번 걸음을 멈추고 한참 바라본다. 사랑해서일까, 나무들은 그림자도 아름다워서 보고 또 보게 된다. 해 질 무렵, 하루의 마지막 빛은 한낮보다 노란빛이 강해지는데, 그 무렵의 산책이 가장 빛나는 계절 또한 여름이다. 걷기만 해도 마음에 틈이 생겨나는 축복이 걷는 걸음마다 발끝에 닿는다.

 

어느 순간 열심히 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때가 찾아온 첫날을 기억한다. 이전까지는 ‘무엇부터 해야 하지?’ 질문하다가 시간이 다 흘러가곤 했는데, 그날엔 ‘아, 하기로 한 것을 생각 없이 하면 되는구나?’ 하고는 하나하나 약속한 시간에 마쳤다. 그런 날이 쌓이면서 받았던 선물이 있다. 할 수 있는지 몰라서 매번 부러워하고 두려워하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살면서 여러 번 장래 희망이 바뀌었지만 그 안에 늘 있던 것, 되고 싶은 것 가운데에서도 바탕에 있던 것,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제일 부러운 건 꾸준히 쓰는 사람과 쉬운 말로 깊은 자리에 있는 이야기를 담백하게 쓰는 사람. 제일 두려운 건 성실하게 쓰지 못하는 나와 좋은 문장을 찾지 못해서 어려운 단어를 늘어놓고는 어깨를 으쓱해 버리는 나였다. 잘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우울해지던 쓰는 일을 매일 해보면서 그제야 내 삶으로 돌아온 것 같았는데, 삶으로 돌아와 지난날을 바라보니 마주했던 모든 풍경이 다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진심으로 느끼게 되었다. 오갔던 감정도, 다녀간 사람들도,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이나 어느덧 멀어져 가만히 눈을 감아야 가까이 만져지는 존재도, 그 순간의 내 모습으로 그곳에 있기 위해서 만나야 했던 모든 것이라는 것을 신뢰할 수 있었다. ‘인생은 옳은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라는 릴케의 문장이 내 삶 전체를 통과한 느낌이었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그 경험 이후에는 갑자기 열심히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기로 한 것을 단순하게 하면 되고, 뭘 해야 할 지 모를 땐 노트를 꺼내어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은 다음 가장 작은 일부터 하도록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면 되었다. 계획이라는 말이 조금 거창하다고 여겨질 만큼 사소한 일들을 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마음이 걸려서 인생이 엉킨 것 같다고 확대 해석을 할 때면 다른 생각은 한 톨도 할 수 없도록 장편 소설을 들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두 시간 이상 읽는 것, 아직 오지 않은 일에 자꾸 마음이 넘어져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초라한 마음이 될 때면 어디에서든 뜬금없이 서서 할 수 있는 요가 동작을 무심히 하는 것. 울고 싶을 때 눈앞에 바다가 있으면 바다에 들어가 울고, 할 일이 쌓여 있어도 정성스럽게 먹는 식사 한 끼를 잊지 않는 것. 내 몸에 맑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참여하게 하는 것, 내 인생에 선하고 정직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겹겹이 포개는 것, 그런 일들이다. 그렇게 계획한 것을 가벼운 마음으로 하며 가지런해진 일상은 다시 하기로 마음먹은 것을 성실하게 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서 조금 쑥스러운 말이지만 인생을 알 것 같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문득 더 이상 열심히 하는 게 어려워진 날이 있었다. 그게 언제인지는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날이 이날 같기도 저 날 같기도 한 것처럼, 분명 이날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그때는 아직 계절이 바뀌기 전이었다고 여겨지는 것처럼. 그래도 쓰는 동안 어렴풋이 그 무렵이구나, 알게 되었는데 그게 비로소 지금의 내 마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입하 무렵에는 모든 것이 무성해진다. 씨앗을 뿌린 자리에 곡우를 지나며 물이 채워지고 서서히 데워진 땅에 온기가 차오르니까, 땅에 심어 둔 모든 것들이 무럭무럭 큰다. 힘차게 생동하는 동안 자라나기를 기대하는 것들만 쑥쑥 크면 제일 좋겠지만, 농작물 곁의 잡초도 함께 무성해진다. 그래서 농부들은 이 시기에 무르익은 보리도 추수해야 하고, 자라나는 농작물도 돌보아야 하고, 베어 내야 할 잡초를 뽑는 일도 해야 해서 무척 바빠진다. 잡초가 같이 자라났다고 불평하는 농부가 있을까? 불평할 시간에 낫을 들고 잡초를 베어내는 일을 하지 않을까? 내 삶에 원치 않는 감정이 다시 찾아온 무렵을 회고하며 입하의 글을 쓰는 동안 새로운 문장이 찾아왔다. 농부들에게 잡초는 매년 찾아오는 당연한 손님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함께 크는 것, 그러니 내가 남겨두고 싶은 것인지 아닌지만을 헤아리면 되는 것일 뿐이다.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동안 같이 커지는 마음이 있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멋진 결과물을 만나고 싶은 마음과 기분 좋게 채워져 가던 이 시간이 지나가고 난 후의 허전함을 미리 걱정하는 연약함,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까 봐 서둘러 겁내는 표정을 알아본다. 절기를 다룬 이번 연재는 이후로 두 꼭지만이 남았다. 매일 열심히 쓰며 두 권의 책을 연달아 출간한 후 나는 열심히 하는 방법을 다 잊은 사람으로 살았다. 한번 균형을 잃으면 그때부터는 무게가 실린 쪽으로 몸이 기울고 어느 순간에는 돌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린 기분이 든다. 너무 멀리 와버려 아는 것도 오는 길에 다 잃어버린 것 같은 날들. 되짚어 돌아 나가면 그뿐인데 그런 단순한 방법조차 모르겠고, 어떻게 돌아가면 되는 건지 질문만 거듭했다. 울상을 하고는 ‘창문은 어디 있지? 문은 어떻게 만들지?’ 질문만 남은 어둡고 먼지 쌓인, 창도 문도 없는 질문의 방에서 숨을 못 쉬겠다고 울었던 기억들이 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시간이 여러분에게 주어졌어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요?”

어느 날 명상 수련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세 시간 내내 펑펑 울고 말았다. 그 무렵의 나는 명상을 하려고 앉아서도 도무지 생각이 멈추지 않아서 나를 답답해하고 있었다. 생각을 멈추고 숨을 고르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던 것이 단순히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허탈하고, 나에게 미안해서 눈물만 쏟아내던 날. 명상을 하지 않는 일상의 모든 시간 동안 지금 해야만 한다고 여겨지는 생각을 하고 또 했었다. 무성해졌던 열심의 행위들이 잡초도 같이 무성하게 키워낸 자리. 나를 돕는 것 같은 생각들, 내 삶에 꼭 필요할 것만 같은 아이디어들, 그런 것들은 어쩐지 내려놓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끊어내지 못한 채 생각의 이어달리기를 거듭했다. 그 질문을 듣고는 무엇이든 넘치면 무거워지고 꽉 차면 부족한 것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부풀어서 덩치가 커진 생각의 조각 모음이 삶에 주어진 자유시간을 누리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남겨두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물을 주지 않으면 되는데 숨 쉴 틈을 막아버린 자리에서는 그런 당연한 것이 쉽지 않았다. 그날 이후 다시 열심히 살아가는 법을 깨달은 듯했지만, 이번 연재를 열심히 써 나가는 동안 무성해진 것들 사이에서 다시 길을 잃고 말았다. 덩달아 떠오른 어느 날을 품에 안으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시간을 내게 준다.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지난날을 한 번 더 보니 역시 과거의 어느 날처럼 끄덕이게 된다.

 

무성해지는 것들 사이에서 무성해지지 않아도 될 것을 헤아리고 북돋울 것을 알아보는 입하의 시간,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틈을 만드는 것이다. 무성해진 것 사이에서 남겨둘 것을 만지작거리며 여름빛과 여름 그림자 사이를 걷고 또 걷는다.

 

*입하(立夏) : 24절기 중 일곱 번째로, 산과 들에 신록이 일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