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따라 걷기

비옥한 토양으로 씨앗을 환영하는 ㅡ 곡우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스물네 번의 절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쓰다듬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록한다.

올 것을 믿으며 비를 기다리는 마음

“새로운 질문을 계속 발견하는 삶, 아직 답을 모르는 질문을 안고도 겁내지 않는다. 얼마나 풍성해질지 모르는 씨앗을 심고 비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설렌 마음으로 살아가는 날들을 소망한다. 잘 해내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포기를 고민하기보다는, 비가 올 것을 확실하게 믿으며 기우제를 지내는 옛사람들처럼 삶과 자연을 신뢰하길 바라는 마음을 씨앗으로 심는다.”

그날은 평소보다 퇴근이 늦어진 날이었고, 조금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가장 빠른 길로 걸어서 집에 도착한 후,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시원한 무알코올 맥주를 한잔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온통 고단한 밤. 서둘러 걷는데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모르는 보랏빛 달큰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와 코끝에 닿았다. 짐도 두 손에 넘치도록 들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향기가 출발한 곳을 찾아,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다가 어느 대문 앞에서 멈췄다. 라일락 꽃무리가 대문 머리맡에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데, 밤하늘의 하얀 별들처럼 빛났다. 짐을 땅에 모두 내려놓고, 대문을 등진 채 꽃무리 아래 서서 눈을 감았다. 향기가 머리 위로, 어깨, 배, 다리와 발끝으로 내려앉아서 꼭 샤워기를 머리맡에 걸어둔 것처럼 몸과 마음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찰나. 라일락 향기가 동네 곳곳을 채울 무렵이 되면, 이제 정말 마음을 잘 정해서 나아가야 하는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힘든 계절이 제각각일 텐데 나의 경우는 매년 겨울 말미에서부터 천천히 날이 풀어지다가 딱 이 무렵, 그러니까 곧 여름이 되겠구나 싶을 곡우 즈음까지 어려운 몸과 마음을 겪곤 한다. 차곡차곡 겹친 한기가 절정에 달했다가 다시 해가 길어지면서 서늘한 기운이 빠져나가고 땅이 생명을 품을 준비를 마무리할 때까지, 어려워하던 것은 더 어려워하고 수월하게 하던 것까지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은 마음이 된다. 라일락 향기가 아침저녁으로 일상에 스며들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전부 지금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지금은 단지 씨앗을 심으면 되는 시기라는 것을 알아챈다. 가벼워진 옷차림처럼 마음이 가벼워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연둣빛 나뭇잎처럼 마음도 자연스럽고 기분 좋게 응어리진 것들을 흔들어 풀어낸다.

 

곡우는 못자리에 사용할 그해의 볍씨를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씨앗을 심고 나아가는 시기이다. 소한과 대한에 씨앗을 준비했고, 입춘과 춘분 무렵 도착한 봄의 기운이 언 땅을 녹였다. 청명에 따뜻한 기운이 세계를 채우고 나면 이제 곡우에는 준비해 둔 씨앗을 심어야만 한다. 이제는 정말 씨앗을 심어야 그 해를 무사히 살아갈 수 있다. 소금물에 벼의 씨앗을 담가 살균과 살충을 하는 동안에는 부정타는 일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정성스럽고 맑은 마음으로 한 해 농사를 준비했다. 그렇게 준비한 못자리에는 비가 내려 물이 충분해야만 하는데, 그래서 절기도 ‘곡우’라는 이름을 가졌다. 실제로 비가 많이 와서 붙여진 이름이라기 보다 봄비가 내려 곡식을 윤택하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만들어낸 이름.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는데, 이 무렵에 비가 와야 비옥한 땅에서 싹이 튼 벼들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곡우에 기우제를 지내며 비를 기다렸는데,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에(웃음)! 우스갯소리 같은 심심한 맛의 이 이야기를 나는 정말 많이 좋아한다. 처음 기우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무슨 그런 숭늉 같은 이야기가 다 있냐면서 코웃음을 쳤지만 곱씹을수록 고소하고 다정한 맛이 나는 것 같아서 갈증이 날 때면 몇 모금 더 삼켜보고 싶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간절함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비가 와야만 한 해 농사를 잘 시작할 수 있는데, 비가 안 온다고 벌써부터 포기할 수는 없다. 비가 올 때까지 바라고 또 바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은 전부 해보면서 기다려야만 한다. 비가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 같은 것은 한 톨도 필요하지 않다. 그 생각은 비를 초대하지도 않고,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도와주지도 않으며,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쳐주지도 않으니까. 소망하고, 노력하는데도 내가 바라는 모습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지 않을 때면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이라고 가만히 소곤거리는데, 그럼 든든하고 따뜻해서 한동안 머금고 있다가 씨익 웃으며 숨을 고르게 된다.

 

지금, 여기로 오는 동안 수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했다. 그 덕분에 오늘의 단단함이 생기기도 했지만, 어느 날엔 모든 게 마음 가장자리에 굳은 살처럼 딱딱하게 맺혀 완고한 신념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덕분에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빛을 가리는 장막처럼 여겨지고 마는 것이다. 모든 것에 빛과 그림자가 있듯 이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당연하게 하고 마는 생각의 다른 면에는 너무 확고하게 믿고 있어서 질문을 던져보지 못한 게 쌓여가기도 한다. 전적으로 믿고 있어서 돌볼 생각을 한 적조차 없는 나의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 쪽에서 고개를 살포시 내민다. 경험에 기반하여 지금을 들여다보면 알지 못한 새로운 것이 삶에 등장할 때, 그게 좋은 것인지 어떤지도 잘 모르면서 긴장부터 한다. 경험한 세계를 모르는 눈으로 그 순간을 볼 수 있다면 긴장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내, 많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편안하고 느긋한 눈빛이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건 어쩌면 태도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또한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던 것들을 요즈음은 하나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어떤 문을 통과해 들어오거나 또 나왔었는지 모두 다 기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 잊은 것처럼 맑은 눈과 마음으로 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초능력이 필요한가 보다.

 

소망한다. 경험하며 배운 것들 덕분에 생겨난 마음의 풍경, 그 빛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너머에서 찾아오는 새로운 빛을 환대하는 넓은 마음을 갖고 싶다. 낯설고 서먹할 때마다 너무 쉽게 ‘내 길이 아닌가? 골목을 잘못 들어왔나?’ 생각하며 깊어질 기회를 놓쳐버리지 않길 바란다. 지금까지의 나는 자주 포기하려고 하거나 포기한 척 하면서도 놓지 못하고 끙끙 앓으며 캄캄한 자리에서 아무도 모르는 노력을 비밀처럼 거듭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소망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담담하게 걸으면서 포기하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 편인데, 그런 모습이 종종 나에게 부족한 모습으로 느껴지곤 했다. 그냥 그럴 뿐인데, 나는 내가 조금 덜 힘주고, 덜 바라고, 조금 더 유연했으면 하는 마음이어서 몸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그런 나를 불편해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인지 포기 앞에서는 이상할 만큼 나에게 관대해진다. 바라는 것이 줄어든, 조금 가볍고 부드러워진 내 모습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때로는 그게 나 자신까지 속이는 연극이기도 했다.

 

요즘은 자주 포기하고 싶고 망설이던 나로서는 걸어보지 못했던 세상으로 나와서 새로운 걸음을 걷고 있다. 그래서 내가 자주 경험의 언어들과 충돌하는 느낌을 받는다. 알던 나와는 다른 나를 만나면 낯선 사람을 만나 놀란 것 같은 얼굴이 되는데, 소망을 세상에 드러내는 내가 괜찮은 걸까 자꾸만 고개를 숙이고 웅크린다. 소망을 소망한다고 말하는 내가 욕심 많고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겁을 내면서. 소망이 나쁜 것도 아닌데 언제부터 이런 마음으로 두려워하며 살아온 걸까, 이미 답을 아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한다. 답을 아는 질문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답을 모르는 새로운 질문들이 그제야 시작되는데, 그때부터가 새로운 씨앗을 심는 시간이다. 곡우, 이제는 드디어 내 마음속에서도 새로운 씨앗을 환영하는 비옥한 토양이 준비된 것 같다.

 

새로운 질문을 계속 발견하는 삶, 아직 답을 모르는 질문을 안고도 겁내지 않는다. 얼마나 풍성해질지 모르는 씨앗을 심고 비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설렌 마음으로 살아가는 날들을 소망한다. 잘 해내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포기를 고민하기보다는, 비가 올 것을 확실하게 믿으며 기우제를 지내는 옛사람들처럼 삶과 자연을 신뢰하길 바라는 마음을 씨앗으로 심는다.

 

나의 가슴이 지금 소망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주한 마음의 기억들이 초대해 둔 빛나는 여정의 작은 표지석이다. 새롭게 만나니까 서먹한 기분이 들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은 내 삶을 통과한 씨앗들이다. 씨앗을 헤아려 심는 나는 조금 더 용감해지기로 한다. 표지석 덕분에 알아본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는 동안 아주 먼 곳에 있는 것 같았던 문이 문고리에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 문으로 들어가게 되기도 하겠지. 감사하는 마음은 오목하게 모은 두 손 같다. 지금이 무심히 쏟아지지 않고 소복하게, 사랑스럽게 삶에 담기도록 안아주는 태도의 마음. 그러니까 감사하는 마음은 지금을 단순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초능력인지도 모른다. 비가 올 것을 믿고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소망하는 것을 한다.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간절함의 절기인 곡우에 소망하는 것을 맑은 마음으로 간절히 소망한다.

*곡우(穀雨) : 24절기 중 여섯 번째로, 봄비가 내려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만드는 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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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