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따라 걷기

수월하게 싹이 돋고 뿌리 내리는 ㅡ 청명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스물네 번의 절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쓰다듬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록한다.

계절의 북돋움을 받아 나아가는 길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라고 말할 정도로 무엇이든 시작하기만 하면 어느 때보다 수월하게 뿌리가 내리고 싹이 돋아나는 축복의 시기에 도착했다. 나는 이 계절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만약’이라는 배를 띄워 바다로 보내기로 한다. 금세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많은 것을 싣고 노를 젓는다.”

계절의 초대장을 알아본 사람들이 나무 아래에 도착해 매일 올려다보는 시기가 왔다. 그들은 이제 막 피어나는 것을 보며 맑은 빛으로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춘분 이후 해가 길어지면서 계절은 성큼성큼 미뤄둔 걸음을 걷기 시작했고, 하루가 다르게 어떤 꽃은 피고, 어떤 꽃은 벌써 지는 중이다. 봄이 짧다고 말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와 다시 보면 봄은 하나도 짧지 않다. 그저 다채로운 감각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충분한 계절이다. 황량하게 시작하여 어느새 피어나는 모든 과정을 눈여겨보고 꽃이 지는 것까지 본 후, 세상이 초록빛으로 덮여가는 모습을 볼 무렵에는 여름이 인사를 건네올 것이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도 부드러운 바람이 어깨를 안아주는 느낌이 들어서 전보다 얇은 외투를 걸치고 집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도 3분쯤 걸었을까,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잠깐 멈춰 섰다. 낮이 길어지기도 했고, 봄이 하늘과 땅에 도착한 지도 꽤 되었으니 이제 켜켜이 쌓아둔 계절의 온기가 봄의 걸음을 재촉할 때도 되었지 싶다. 마음이 간지러워질 만큼 다정한 날씨에 결국은 집으로 돌아가 외투를 벗고 헐렁한 후드티에 면바지 차림으로 나왔는데 하나도 춥지 않다. 집 근처에는 벚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벚꽃 터널이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무가 겨울과는 사뭇 다른 색을 보여주면 우리는 흐르는 계절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회복, 때 되면 돌아오는 명랑함에 기운을 내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들 기운을 내고 싶어서 나무 곁에 몰려들어 같이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두려고 하는 것 아닐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어떤 소문을 듣고 얼마나 길을 걸어 여기에 도착한 것인지, 이 무렵만 되면 터져 나갈 것만 같아지는 동네를 걸으며 궁금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두 ‘지금’이 아니면 올해는 이 풍경이 더는 없을 거라는 한 마음으로 간절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는 것이다. 늘 그 자리에 있던 나무와 오늘은 사진을 한번 찍어보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들을 멀리 서서 바라보면 어쩐지 애틋해진다.

 

벌써 십 년도 더 전에 ‘스윙 댄스’라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을 추다가 안 추다가 하면서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성실하게 유지한 덕택에 뜨겁지는 않아도 뭉근하게 여정이 이어지고 있고, 요즘은 마음이 맞는 이들과 연습도 하게 되었다. 한 주에 한 번 만나 두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른 장소에서 짓던 웃음과는 또 사뭇 다른 웃음소리가 내게 흘러나온다. 언젠가 그곳에서 만나 좋아하게 된 선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있잖아, 기운이 날 때 뭐든 많이 해둬. 그래야 기운이 없어졌을 때 그 힘으로 몇 계절을 살아가게 되니까. 인생은 그렇게 굴려 가는 거야. 오르락내리락하거든, 나를 돌보는 그 기운이라는 것이. 저축해두는 느낌으로 많이 보아 두고, 많이 경험해 두고, 힘이 있을 땐 사람들을 많이 만나. 나중에 마음이 저기 바닥보다 더 아래로 가라앉을 땐 좋은 시절에 만나서 마음을 나누던 사람들이 또 곁으로 찾아와 힘이 되어 줄 테니까. 지금처럼 말이야.” 끝도 없이 추락하던 마음, 그리고 여기는 이제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 더 내려갈 곳이 없는 것 같은데 이제는 고개를 들어야 하나 싶던 날에 만나 그간의 마음을 이야기하다가 들은 말이다. 선배는 그 무렵 우리가 함께 보낸 호시절을 이야기했다. 늦은 시간까지 바에서 춤을 추고 전철 막차에 겨우 올라타 집으로 오면서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던 날들, 서로 궁금해하며 집을 오가며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던 날들, 보름달이 뜬다고 동네에 모여 뒷산 중턱을 오르던 어느 밤과 늘 같은 자리에 있던 동네의 유적들을 살펴보자면서 경복궁 일대를 걷던 여름 한낮이 우리에게 있었다. 그런 호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남아 오늘분의 새로운 웃음을 만드는 장면을 지켜보다가, ‘만약’ 춤추러 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아득한 마음으로 질문하게 된다.

 

춤을 추러 간 것은 영화관에서 일하던 이십 대 초반, 일터에 비치되어 있어서 우연히 들춰본 매거진 속 짧은 기사에 마음이 이끌려서였다. 스윙 재즈를 크게 틀어 둔 바에서 사람들이 춤을 춘다는 문장에 홀린 듯이 신청을 하고 첫날을 기다려서 혼자 찾아갔다. 용감한 척 갔지만 겁이 많은 나는 처음 찾아갔던 스윙바 ‘피에스타’로 향하는 골목길에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한참을 서성거렸다. 출입구의 문턱이 꼭 내 키보다 큰, 넘을 수 없는 벽 같이 느껴졌는데 조그마한 아이 하나가 계속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알아챈 한 언니가 “오늘 첫날인 거죠? 같이 들어갈래요?” 물어봐 주신 덕분에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들 누군가 친구가 있어서 따라온 것 같았고, 나처럼 매거진을 보고 혼자 찾아온 사람은 없는 것 같아 어쩐지 주눅이 든 표정으로 한쪽 벽에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나를 데리고 들어온 언니는 그 마음도 알아봐 주고는 여기저기로, 내 손을 잡고 바 구석구석에서 익숙한 몸짓으로 시간을 보내는 오래 춤 춘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모두 그 언니의 동생이겠거니 생각했다고. 덕분에 나는 어색한 시간을 비교적 짧게 보내고 그 세계로 풍덩 뛰어들 수 있었다. 이제는 소식도 모르는 그 언니가 손 잡아 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춤을 춰보고 싶어서 갔지만 결국은 들어가지 못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들과 나눈 대화와 시간은 지금의 내가 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굉장히 큰 역할을 하였는데, 지금 곁에 있는 애인만 해도 거기에서 십이 년 전에 만났으니 인생의 초입에서 중요한 방향키가 되어준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수많은 만약과 또 다른 만약을 거듭 합하며 셈을 하다 보면 역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은 없고, 시도한 모든 것들은 모두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이라는 말은 참 연약한데 그 연약한 말에 기대어 가끔은 위로받고, 가끔은 새로운 꿈을 꾸고, 가끔은 지금에 감사하는 마음을 초대하기도 한다. 아마 그게 나의 허약한 점이면서 귀여운 점이기도 할 것이다.

 

사랑스러운, 사랑하는 사람들을 오늘도 많이 만난다. 나의 뒤에서 밀어주고 내 앞에서 당겨주는 힘들은 사랑하는 마음들, 슬픔보다 힘이 센 바깥과 내부에 대한 사랑을 만난다. 봄볕과도 같은 사랑이 내 삶의 뾰족한 단추들을 풀어줄 때 나는 기꺼이 무거운 외투를 벗고 가벼운 몸으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게 된다. 두려움과 슬픔이 내 어깨에 입혀 둔 무거운 옷을 언제든 벗어 두고 나올 기회가 있는데, 어떤 날에는 미련하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벗지 않고 버티기도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면 나는 나도 모르게 슬픈 얼굴을 한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워도 마음을 기울일 수는 있고,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공감과 이해가 흐른다. 품에 안고 걷다 보면 자연스레 그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계속 걸으면 결국 그 방향으로 삶의 빛이 굴절되어서 어려운 순간의 경험을 어느 날에는 사랑하게 된다. 사랑이 열어주는 세계,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고 또 받는 사랑의 빛 속에서 나는 빈 몸으로 고요하다. 가리고 있던 것들을 벗어서 내려놓았으니 더욱 맑게 빛나기도 할 것이다. 앞뒤 재지 않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일이 내 삶의 동력이 된다. 지금이라서 아름답게 빛나는 것과 초라해 보이는 것이 가진 의외의 빛, 환한 것들이 가진 어둠이 사랑스럽다. 그 모두를 알아보며 사랑하는 일이 나의 삶을 더 넓고 따뜻한 자리로 데려가는 중이다. 저마다의 속도로 피어나는 꽃들, 꽃나무 아래에 서서 각각의 모습을 감탄하며 올려다볼 때면 꽃들처럼 나답게, 나의 속도로 피어나고 풍성해지는 방법 역시도 그리 복잡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다운 모습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모습 전부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일,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을 호시절이라 여기며 누리는 일, 선배의 이야기처럼 기운이 날 때 많이 만나두고 경험해 두는 일이 필요한 것 아닐까.

 

살아가는 내내 무엇이 언제 내게 올지, 또 무엇이 언제 떠나갈지 미리부터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알고 싶어할 때마다 막막함만 커진다. ‘때’라는 것은 알 수 없으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운명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습관이 있는데, 요즘은 애써서 바꾸려고 하기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태도를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여전히 있구나. 에구, 멋지게 넓어지고 깊어지는 일 참 어렵고 오래 걸리네.’ 스스로에게 말하고는 더 덧붙이지 않고, 지금의 나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게 꼭 무언가를 외면하는 것 같았는데 돌아보니 그것이야말로 수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둔다.’ 명상 공부를 할 때 배웠던 문장을 되뇌며 오늘의 걸음을 걷는다. 하나씩 배워가고 경험하고 어려워하고 그러다가 편안해지고 사랑하고 또 슬퍼하기도 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다가 어느 날엔 명랑해지는 나를 만난다. 계절처럼 흘러가는 모든 것들, 그 마음들을 누릴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우주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뜻이라던 데이비드 호킨스 선생님의 말씀에 끄덕인다. 내가 가져서는 안되는 모습이 없다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나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자고 나의 삶에 부탁한다. ‘한 번 더 시도할 용기를 저에게 주세요.’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저 도착하고 싶은 곳으로 걸음을 놓을 수 있도록, ‘저의 용기와 저의 사랑을 그 방향으로 사용하게 해주세요.’. 마음속으로 말하고 나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라고 말할 정도로 무엇이든 시작하기만 하면 어느 때보다 수월하게 뿌리가 내리고 싹이 돋아나는 축복의 시기에 도착했다. 나는 이 계절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만약’이라는 배를 띄워 바다로 보내기로 한다. 금세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많은 것을 싣고 노를 젓는다. 아직은 이름 없는 마음에 대한 사랑도, 언젠가 도착하고 싶은 풍경에 대한 기대도, 언제 멀어질지 알 수 없지만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다정도 모두 싣는다. 봄바람이 가볍게 배를 밀어줄 것이고, 어디에 도착할지 모르지만 바람이 만들어준 길 따라 우선 노를 저어본다. 지금 마주하는 것들을 누리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시도를 시작한다. 오늘이 아니면 더는 없을 꽃나무 아래 풍경들을 사랑하는 사람과 올려다보고 더운 기운이 올라온 김에 어려워하던 것 하나를 더 해보고, 나를 좋은 곳에 데려가 웃게 한다. 못난이 같은 내 모습을 다른 눈으로 지켜보고 사랑하기 위해, 마음이 사랑 쪽으로 기울어질 때까지 그 방향으로 걸어 보기도 한다. 보이지 않고 믿기 어려우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막막함을 그대로 느끼며 그냥 하는 편이 좋다.

 

삶의 바다를 유영하다가 언젠가 도착한 뭍에서 마침 마주한 배 하나가 내게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때 띄워 보낸 ‘만약’이 바로 지금 곁에 있는 친구를 초대했어.”

 

*청명(淸明) : 24절기 중 다섯 번째로, 하늘이 차츰 맑아져 농사 준비를 시작하기에 알맞은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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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