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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모르는 세계가 사랑을 전하는 ― 경칩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스물네 번의 절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쓰다듬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록한다.
날개는 등 뒤에 있어서 앞만 보며 바쁘게 걸으며 서두를 때에는 종종 잊고 말지만 바람을 느끼는 동안에는 날개가 있음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고 발걸음을 통해 땅을 마주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깨어나는 동물들처럼 잠에서 깨는 마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신뢰하며 걷는 여정의 초입. 새학기를 맞아 새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아이처럼 그 씨앗을 향해 손을 뻗는다.
강가에 살고 있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긴 강의 어느 자락, 자동차나 자전거 때로는 대교 위를 걸어 강을 건넌 후 횡단보도 하나를 지나 동네로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사는 집이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도 산책은 주로 강가에서 이루어진다. 한겨울 추위에 강 표면이 얼어 반짝이는 날에도, 한여름 햇살에 초목이 무성해질 때도 강가를 걷는다. 계절은 하늘에 먼저 도착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이 동네에 살면서부터다. 산책하다가 흙길을 걸을 때면 신발 너머로 때늦은 냉기와 온기를 느낀다. 보이는 것은 봄인데 여전한 겨울을, 보이는 것은 겨울인데 여전한 가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전까지 알고 있던 봄에 새로운 표정이 포개어지고, 아는 것 너머에 모르는 것이 수없이 많이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겨울을 보내며 매서운 추위에 딱딱하게 얼어붙었던 땅이 부스스 녹아 부드럽게 풀어지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땅은 뒤늦은 걸음에도 느긋해 보인다. 일어날 일은 항상 일어나고, 모든 것은 때맞춰 펼쳐진다는 것을 수없이 지나온 계절을 통해 배웠기 때문 아닐까. 그렇게 천천히 드러나는 땅에도 어느새 봄이 도착했다. 걷는 동안 온기 머금은 땅을 느끼는 요즘의 산책길에는 보고 있으나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돋아난 싹은 보이지만 땅속에 더 커다랗게 퍼져있을 뿌리는 보이지 않고, 봄빛의 하늘은 보이지만 겨우 부드러워지는 땅의 온기는 고개를 숙여야만 보이는데 그마저도 만져보기 전까진 알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아득한 세계 속에서는 그게 희망이 되기도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발걸음이 무거워져서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려운 날, 보지 못한 것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빛으로 도움을 준다. 아직 모른다는 것이 계속 걸을 용기가 된다.
늘,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가 가장 쉽다. 납작한 말들로 지금을 정리해 버리지만 않는다면 살아가는 여정 동안 겪어온 모든 경험이 전부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언젠가 알게 되고, 심지어 우회로를 알리던 표지판도 아주 적절한 때에 세워진 친절한 안내판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그렇게 믿으면서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기분이 들면 그걸 잊고 축 늘어진 채 애꿎은 땅만 발로 휘적거리지만 말이다.
의도하고 노력한 일이 아닌데도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아니 솔직하게는 아주 많다. 내가 걷고자 한 길도 아닌 곳을 걷는데 어느 순간 ‘이 길은 내가 걸어야만 하는구나.’ 여정 속에서 기적처럼 확신하게 되는 날에는 수많은 마음이 궁금해진다. 결국은 이렇게 상상하지 못한 길에 들어서서 걷게 되곤 하는데 왜 그렇게 예상하려고 하고, 기대와 다르다며 실망하고, 모르는 게 당연한 것을 모르겠다며 두려워했을까? 삶은 매번 알 수 없는 길로 나를 데려가 그 길을 걷게 했는데. 그런데 또 돌아보면 그렇게 고집부리고, 애쓰고, 포기할 수 없다면서 바둥대고, 그러다가 어쩔 수 없으니 지쳐서 힘을 빼고. 그런 과정 덕분에 지금 바로 여기에, 이 모습으로 도착한 것이기도 하다. 참 이상한 일이라고 갸웃거리고 만다.
의도하지도, 상상하지도 않았는데 일어난 일일수록 삶에 꼭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내가 계획을 세우거나 힘을 쓰지도 않았는데 어떤 일이 일어났다면 누군가 먼 곳에서 힘을 쓴 게 아닐지 하는 마음이 든다. 모두 내 힘으로 이루려 하고, 그때까지 소소하게 이룬 것이 전부 내 노력이었다고 여기던 시절에는 어떤 일이 조금 잘 되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높아졌다. 그땐 몰랐는데 돌아보니 그랬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잘 안되면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풀이 죽기도 하고 내가 뭔가를 덜해서 그런가, 어디부터 잘못되었나 나의 잘못을 샅샅이 뒤적거리느라 자주 무릎에 힘이 풀려 오래 엎드린 채 몸을 세우지 못했다.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은 일 뒤에 내가 모르는 힘이 있다고 믿으면 어떤 일이 잘될 때는 전보다 겸손해지고, 어떤 일이 잘 안되면 배워야 할 것이 거기에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겠지, 하며 무너진 자리에서 실컷 울고 적당한 때에 일어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그 믿음은 내게 날개가 되어주고 있다.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봄기운에 놀라 깨어나는 경칩, 옛사람들은 은행나무 씨앗을 나누며 사랑을 고백했다고 한다. 은행나무 씨앗은 껍질이 아주 단단해서 실제로 보면 여기에서 진짜 싹이 날 수 있을까 싶은데 한번 틔우면 천년을 산다. 두 팔 벌려 끌어안으려 해도 반도 안을 수 없었던 오백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가 이야기를 보자마자 떠올랐다. 씨앗 속에 그렇게 긴 생이 담겨있다는 것은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속에서는 늘 놀랍기만 하다. 다 피어난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선물하는 요즘과 달리 씨앗으로 은근하게 사랑을 전하는 마음이라니, 씨앗 속에 담긴 아직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신뢰하는 마음이라니. 옛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아름다운 걸까.
‘우수에 풀렸던 대동강이 경칩에 다시 붙는다‘는 말처럼 경칩에는 날이 다시 조금 추워진다. 엊그제는 산책하다가 가늘게 흩날리는 눈을 보며 봄에 무슨 눈이냐고 투덜거렸지만, 눈이 날려도 온기를 머금은 땅에 도착하자마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장면을 보며 봄은 봄이라고 웃기도 했다. 쉽게 단정 짓지 않는 느긋함이 순간의 웃음을 초대한 셈인데, 봄을 맞이하는 삶에 여전히 불어오는 찬 바람에도 그 마음을 유지하고 싶다. 생이 지닌 복잡함과 다양한 표정들, 뒤늦은 것 같아도 가장 좋은 때에 오고 마는 것들, 서둘러 가는 것 같아도 정확한 때에 가고 마는 것들을 향해서.
눈이 아주 많이 내리던 날 누군가가 눈 사진을 올리며 “눈은 정말 타이밍이야!”라고 했다. ‘와 맞아, 정말. 금세 녹잖아. 눈을 정말 타이밍이야.’ 끄덕끄덕했는데 생각해 보면 자연이 보여주는 모든 풍경은 다 타이밍이다.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다녀가는 마음의 장면들도 실은 다 그렇다. 모두 다 타이밍이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완전히 같은 것은 다시는 없다. 그러니 지금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혼자 요가 수련을 하다가 슬쩍 눈을 떴을 때 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는 석양빛이 너무 아름다워서 부랴부랴 정리를 하고 나왔다. 원래 계획은 수련하고, 혼자 밥 먹고,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가지고 나온 노트북으로 일도 하려 했는데. 조그마한 망설임 조각 하나 꿀꺽 삼켜버리고는, 우선 모두 뒷전에 두고 ‘한강에 가야겠다!’ 일어서는 내가 귀여워서 오늘은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보며 씩 웃기도 했다. 그렇게 나와서는 해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허겁지겁 뛰었다. 석양 보려고 서두르며 뛰는 나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 오랜만에 그 모습 만나서 말갛게 웃으며 달려가 오늘의 해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한참 그 곁에서 강물을 보았다. 봄빛이 쏟아져 담긴 강물에도 봄이 한창이다. 계획에서 벗어난 길에서 우연히 마주한 저녁의 풍경도 좋다. 계획대로 되는 것도 좋고, 계획에서 벗어나 우연히 마주하는 장면 좋다. 지금의 마음이 내 삶으로 전해져 씨앗이 되고, 거기에서 싹이 튼다면 내 삶이라는 은행나무는 꽤 커다란 그늘을 선물해 줄 것 같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소화하는지가 삶을 바꾼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면 역사는 다르게 쓰이기 마련이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쓰이니까. 내 삶의 역사를 쓰는 역사가에게 조금 더 넓고 밝은 눈을 선물하고 싶다. 그게 올해를 향하여 내 두 손에 들린 사랑의 씨앗이다. 마음이 이름을 얻어 확고한 단어로 굳혀지기 전이면 더 좋지만, 그 후라도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긴장감있는 언어들도 따뜻한 품에 안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처음의 여린 모습으로 녹아서 나를 바라볼 테니까, 사실은 봄을 기다리는 나처럼 부드럽게 풀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알아보면 안을 수 있고, 안고 다정한 온기를 전하면 녹아내리고, 어느 순간에는 무게가 줄어 스스로를 전보다 자유롭게 한다. 어제보다 조금 편안한 오늘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내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날개는 등 뒤에 있어서 앞만 보며 바쁘게 걸으며 서두를 때에는 종종 잊고 말지만 바람을 느끼는 동안에는 날개가 있음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고 발걸음을 통해 땅을 마주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깨어나는 동물들처럼 잠에서 깨는 마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신뢰하며 걷는 여정의 초입. 새학기를 맞아 새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아이처럼 그 씨앗을 향해 손을 뻗는다.
*경칩(驚蟄) : 24절기 중 세 번째로,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이며 날마다 따듯해져 봄으로 향한다.
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