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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라는 여행을 준비하는 ― 우수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스물네 번의 절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쓰다듬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록한다.
바람이 둥글어지고, 말간 얼굴로 인사하는 것 같은 비와 햇살에 흔들리는 나무들, 이제는 여러 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있다. 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란히 심어진 목련 나무와 산수유 아래에 서서 한참 동안 작게 돋아난 것들을 바라보았다. 한낮의 따뜻한 봄 햇빛이 만들어준 틈으로 겨울나무는 봄을 받아들이고 봄나무로 변화하고 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부러워, 가만히 서서 보고 또 본다. 그렇게 나무 곁에 한참이고 서있으면 나도 나무처럼 이 자리에서 봄의 내가 될 것 같았다.
해변에 도착하면 언제나 하는 일 중 하나는 등을 둥글게 말고 바다를 향해 앉아 발치에 밀려온, 우주의 별들처럼 수없이 쏟아져 있는 돌들을 바라보는 일이다. 저 멀리 치는 파도는 서서 보고, 가까이 찾아온 조개나 돌들은 앉아서 본다. 나는 앉기도 서기도 하면서 바다와의 시간을 보내는데, 살면서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이 드는 먼 곳에 도착하면 뭐라도 기념품 하나를 챙겨 가고 싶다. 이렇게 멀리까지 용감하게 걸어 나온 나를 기억하고 싶은 것인지, 이렇게 아름답게 해가 지는 바다가 지구별에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남겨두고 싶은 것인지는 몰라도 행복한 순간의 조각 하나를 내가 출발했던 장소로 가져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도시를 여행할 때면 마그넷을 사기도 하고, 그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고 기념품 가게에 들르기도 한다. 그런데 바다나 산에는 그런 게 없다.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 순간이 선명하기를 바라면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먼 곳을 여행하고 돌아온 돌멩이와 조개껍데기를 만지작거리다가 가장 손에 잘 쥐어지는 걸로 주워 온다. 커다란 건 아무리 멋있어도 비행기에 태울 수 없으니까 한 손에 잘 쥐어질 정도의 작은 돌 하나를 정하는데, 세계 여행을 하는 동안엔 그 돌들이 하나둘 모여 두 손을 오목하게 만들어야 다 쥘 수 있을 만큼이기는 했다. 17킬로그램 정도의 배낭에 돌의 무게는 몇 그램이었을까, 여행 말미에는 무게 제한에 걸릴까 봐 이런저런 물건을 주변 누군가에게 주거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에게 부탁하면서도, 돌은 소중하게 가지고 있었다. 돌을 가져가서 나 대신 보관해달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한 부탁 같아서.
그렇게 가져온 돌들은 어항처럼 생긴 넉넉하게 넓은 품의 화병에 담아두었다. 마음에 어둠이 내리면 돌들을 꺼내어 흐르는 물에 닦는다. 깨끗한 천을 펼쳐서 젖은 돌을 닦고 그중 하나를 꺼내 손에 쥐면 가끔은 먼 파도 소리가 들린다. 막막한 마음처럼 묵직한 걸음, 물을 가득 머금은 무거운 표정으로 도착한 바닷가에서 몇 번의 밤과 낮을 보내는 동안 생각보다 이르게 발아래에서 나를 지켜주는 땅을 알아보았다. 나를 보호해 주는 세상과 내가 해야 하는 경험을 하도록 나를 안내해 주는 삶에 처음으로 안도했던 오래된 어느 날, 현재였던 그날들이 꼭 지금의 현실로 밀려오는 기분이 든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를 땐 그 기억들이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기억한다는 것, 기록한다는 것, 간직한다는 것은 미래의 나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물인 것 같다고 돌을 손에 쥐며 생각한다. 돌과 같은 형상이지만 다른 에너지가 담겨있는 자수정이나 장미 수정을 손에 쥐고 호흡하면서 땅에 도움을 청하는 날도 있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돌을 모으고, 돌과 비슷한 모양을 한 수정을 사고, 돌에게 도와 달라는 말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내게, 애인은 게임의 아이템을 현금을 써서 모으고, 그걸로 부스트업해서 게임을 이어가는 사람 같다고 놀리지만 돌멩이를 쥔 채 마음의 돌을 내려놓는 것은 어느덧 습관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지구의 돌멩이에게 도움받는 내 방식이 제법 귀엽기도 하고 든든한 마음도 드니까 자주 손에 쥐고 눈을 감는다. 그럼 꽤 쉽게 고요해진다.
돌멩이는 차갑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에 쥐고 몇 번의 숨을 쉬다 보면 돌멩이도 나도 따뜻해진다. 따뜻함을 손에 쥔 채 돌멩이에 대한 인상이 바뀐 것을 깨닫는다. 언젠가 수업에서 이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신기해요. 누구든 이유를 알게 되면 알려주세요.”라고 말했더니 그날 함께한 한 사람이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이유를 알게 되었다면서 메시지를 보내왔다. 여러 번 읽어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공식과 열전도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둥글고 원만한 언덕처럼 느껴지는 설명 덕분에 오르막 같은 이론들도 부드럽고 편안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쥐고 여러 날을 보냈을 마음이 고맙고 소중해서 문자를 보고 또 보았다. 이야기를 안고 걷는 동안 어느 날엔 웃고, 또 언젠가는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웃음만큼 눈물도 많은 사람이라.
모르겠는데도 손에 쥔 그대로 머물러보는 것, 낯선 맛이 느껴져도 뱉거나 서둘러 삼키지 않은 채 머금은 채 시간이 흐르게 하는 것, 단정지어 결론 내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 좋을 때뿐 아니라 두려울 때도 곁에 있는 것, 오래 함께 있으면 온기가 생기며 인상이 변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분명 필요한 경험이 온 것임을 믿으며 놓아버리지 않는 동안 생의 속도를 늦추거나 리듬을 바꾸는 용기.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지혜롭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대체 무엇인지 질문을 손에 쥐고 이곳에 머무르는 내게 한 사람의 메시지가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돌멩이를 쥐고 눈을 감았던 모든 날이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있었음을 알아보게 되었다.
하늘에서 눈이 내려도 땅에는 비로 도착하는 절기, 그 이름마저 비와 물을 머금고 있는 ‘우수’이다. 바람이 둥글어지고, 말간 얼굴로 인사하는 것 같은 비와 햇살에 흔들리는 나무들, 이제는 여러 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있다. 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란히 심어진 목련 나무와 산수유 아래에 서서 한참 동안 작게 돋아난 것들을 바라보았다. 한낮의 따뜻한 봄 햇빛이 만들어준 틈으로 겨울나무는 봄을 받아들이고 봄나무로 변화하고 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부러워, 가만히 서서 보고 또 본다. 그렇게 나무 곁에 한참이고 서있으면 나도 나무처럼 이 자리에서 봄의 내가 될 것 같았다.
우수에는 겨울 철새인 기러기가 다시 북쪽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 다시 삶을 이어갈 장소에 도착할 기러기는 여정을 준비할 때 무언가를 더 챙기려나, 비우려나 호기심이 생긴다. 300일 동안 세계여행을 한 적 있다. 나는 삶을 이어갈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 먼 곳을 헤매다 돌아왔는데, 돌아온 자리는 떠나기 전과 같지만 분명하게 달라진 나로 시작하는 새로운 삶은 신기하게도 같은 자리를 다른 자리처럼 누리며 살아가게 했다. 그간 여정에서 나는 한 배낭에 사계절을 챙겨야 해서 짐 꾸리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데, 첫 목적지에 도착해서 보니 우기인 나라에 우산도 없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전부 잘 준비해서 떠나고 싶었고, 그래서 오래 미뤄온 여행, 철저히 준비하고 겨우 떠났지만 막상 도착하니 없는 것들이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준비해서 떠나야 했던 걸까. 여행 초기에는 우산이 들어있지 않은 배낭을 메고 빗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무엇을 더 가져와야 했고, 무엇을 가져올 필요가 없었는지. 가장 중요한 것은 챙겨왔다. 두려워도 시도하는 용기와 겁 많고 눈물 많은 나를 떠나지 않겠다는 의리, 어떤 일이든 거부하지 않고 경험하겠다는 명랑함도 잘 챙겼고,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고마움도 동시에 데려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져올 필요가 없었던 것은 그때부터 차례차례 내려놓으면 되었다. 시간은 충분했으니까. 나는 잘 돌아가기 위한 여정의 준비를 충분히 한 채 지구 반대편 바닷가 마을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바닷가에 나와 먼바다를 하염없이 보거나 돌을 가만히 쥐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렇게 지나가는 날 속에서 인생의 겨울은 어느덧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마 기러기에게도 필요한 것은 그런 가벼운 마음뿐일 것이다. 무거운 짐은 먼 곳으로 날아가는 동안 방해가 되겠지. 그렇다면 기러기들은 요즘 비움이 한창이지 않을까? 잘 도착하기 위해서, 여정의 편안함을 위해서, 그리고 곁의 동료와 즐겁게 대화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나의 내부에 의도하지 않고 만들어진 신념과 스스로 원해서 새긴 믿음들, 수많은 문장을 본다. 그것이 삶이라는 여정을 잘 살기 위해 챙겨야 하는 것인지 비워야 하는 것인지 때로 헷갈린다. 요즘은 관계에 대해 확고하게, 그러니까 조금은 완고하게 정리해 두었던 언어들을 돌아보고 있다. 영원한 것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영원이라는 말을 아는 나는 어느덧 멀어져 버린 관계에 대한 생각을 자꾸만 거듭한다. 미안해지기도 하고, 두려워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시원하다. 한동안은 더 넓은 품으로 안을 수 없었던 관계에 대한 죄책감이 커서 힘들기도 했다. ‘관계는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인데 돌멩이 같은 마음을 끌어안는 동안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다. 내가 모든 상황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굉장한 오만이었음을 알아보고 나니 또 한 번 겸손함을 잊었던 내가 미워지다가 와르르 마음이 부서지고 말았다. 한결 가벼운 봄바람이 스며들 틈이 생겨난 느낌도 든다.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동안 그 안에서 각자 배워야 할 것을 익히는 중이구나, 온기를 품은 돌멩이가 내게 알려준다. 슬픔은 가만히 맑아진다.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맑아지는 중이다. 맑고 가벼운 마음 하나를 한 손에 산산하게 쥐고 새로운 길로 향해간다.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나를 편안하게 하는가? 내가 지혜로운 선택을 하도록 돕는가? 질문해 보고 답을 들으며 한 해 동안 쥐고 있을 마음을 고르는 중이다. 씨앗과도 같은 단어들, 문장들을 농부의 마음으로 고르고 또 고르기에 참 좋은 시기다. 이 시기는 장을 담그는 때이기도 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장을 담그는 사람의 마음을 그려본다. 가르쳐준 이의 말대로 독도 준비하고 소금물과 콩도 준비하고, 콩을 잘 불린 후 푹 삶아서는 절구에 찧어 콩이 콩의 모습을 잃게 했을 것이다. 뭉쳐서 덩어리를 만들고, 말리고, 독 안에 넣고는 기다리는 시간. 얼마나 궁금할까. 중간에 실수했으면 어쩌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올라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매번 독을 열어 맛볼 수도 없고 맛을 본다 한들 실수가 없었는지 때가 될 때까지는 알 수도 없을 것이다. 경험의 시간이 부족할 때는 경계 근처에서 의심하게 된다. 아직 장맛을 보지 못했으니까 이리저리 손을 댄 콩들이 정말 그 맛을 낼 수 있는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의심이 생겨나면 돌멩이를 손에 쥔 것처럼 그 마음을 다정하게 쥐고 지켜본다. 점점 고요해지는 것 같다가 다시 이리저리 뒤섞여 알아볼 수 없는 마음의 시간이 시작될 때면 ‘새로운 모퉁이를 돌고 있나? 이 모퉁이를 돌아 걷다 보면 한 계단 깊어지려나? 아니면 가보지 않은 오솔길에 접어들었을까?’ 멈춰서 삶을 향해 질문한다.
장을 처음 담그는 사람이 막연한데도 시도하는 것처럼, 그 마음으로 지금의 삶 속에서 나 자신과 대화를 시작한다. 장맛을 볼 때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정확하게 일련의 과정을 알게 되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삶이 답해줄 것이다. 나의 삶을 사랑하는 여정은 이렇게 돌멩이 하나를 손에 쥔 채 질문하며 시작되고 답을 들은 후 다시 질문하며 이어진다. 장 담그듯 해야 할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시간이 일을 하는 동안 담담하게, 뚝심을 발휘하며 나의 이야기들을 기다린다. 기다리고 있지만 애타지 않는 마음으로, 기대하겠지만 서두르지 않으면서, 돌멩이의 얼굴을 한 삶이 이야기를 건네올 때까지.
결국 먼 곳까지 안고 갈 마음은 모든 것이 계절처럼 흘러가고 밀려오고 떠나가고 돌아온다는 진실뿐이고, 내가 정말 이해해야 할 것은 나를 둘러싼 풍경이 아니라 나 자신일 뿐이다. 관계에 대해서도 꿈에 대해서도 우정이나 사랑에 대해서도 연결된 사람들과 만들어낸 풍경을 이해하려고 온통 인생을 쓰기보다는 그것을 마주하며 내가 짓는 표정을 한 번 더 살펴보기로 한다.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바라는 마음 없이 정성스럽게 살고 싶은, 맑게 갠 마음 하나 안고 있다. 장을 담그는 사람처럼 여기에서 빛과 어둠, 바람과 비, 스며드는 봄의 온기를 만나며 성실하게 질문하고 머무른다. 멀리 떠나는 기러기들에게 너희가 돌아올 무렵에는 한결 더 자유롭고 편안한 사람이 되어있겠다는 다짐을 건네면서.
*우수(雨水) : 24절기 중 두 번째로, 겨울을 지나 봄이 되어 눈이 녹아 비로 내린다는 절기이다.
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