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따라 걷기

언 땅을 깨우는 첫봄 ― 입춘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스물네 번의 절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쓰다듬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록한다.

아홉 번의 시도와 부드러운 땅

‘아홉차리’라는 풍속이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아홉 번 하며 입춘을 보내라는 이야기다. 두 손을 모두 펼치면 대부분은 열 개의 손가락을 만나게 되는데, 왜 하필 아홉 번일까? 기운을 북돋을 만큼의 바탕만 만들고, 약간은 모자라게 두어서 예상치 못한 행운의 공간을 남겨두려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언 땅에는 씨앗을 심지 못한다. 우선은 얼어 있는 땅을 흔들어 깨울 필요가 있고, 지금 하는 아홉 번의 시도는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땅을 부드럽게 하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몸에 몇 개의 타투가 있다. 기억하고 싶어서 새겨 두었는데, 잘 보이지 않는 쪽에 있는 탓인지 자꾸만 잊어버린다. 잊어버릴 것을 대비해 남긴 거니까 때때로 잊을 것을 예견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처음으로 몸에 새긴 형상은 빛과 어둠이 함께 있는 장면이다. 그림자라는 그릇에 빛이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하고, 빛의 얼룩 속에 그림자가 참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늘 함께 있다. 같이 흐르는 중이고, 어우러져 만들어진 새로운 빛이 세상으로 퍼져 나가 필요한 곳에 닿는 장면을 항상 기억하며 이 순간을 만나고 싶다. 그런데도 낯선 파도 같은 마음이 밀려올 때면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헤엄쳐야만 할 것 같아서 잔뜩 긴장한 채 허우적거리다가 잊고 만다. 오른손으로 가만히 타투가 있는 왼쪽 팔뚝의 뒷면을 만지작거리며 긴 숨을 쉰다. 눈을 감은 채 거기에 있는 장면을 떠올린다. 열어 둔 창으로 조금 길어진 해의 마지막 빛이 들어온다. 온기에 반가운 것도 잠시, 아직은 찬 공기에 서둘러 창을 닫으며 계절 사이에서 마주하게 된 풍경과 마음 사이에서 알아보게 된 무늬를 한참 들여다본다.

완연한 봄의 기억을 안고 맞이한 봄의 초입은 어쩐지 부족하게만 여겨진다. 내가 기다렸던 봄은 이게 아니라고, 이렇게 차가운 공기가 등을 서늘하게 하는데 무슨 봄이냐고 투덜거린다. 그러나 그건 봄이라는 계절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봄의 기운이 땅에서 태어날 때, 무르익은 봄과 다른 모양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다. 덕분에 경험하는 모든 것을 배우고 이해하게 될 때, 봄에게 더이상은 춥다고, 혹은 짧다고 이야기하며 서운해하지 않게 된다. 서늘한 봄과 온화한 바람이 시작되는 봄, 꽃들이 만개하는 봄이 있을 뿐이다. 매번 오해받느라 고생이 많았을 봄의 풍경을 곁에서 바라본다. 목련 나무의 봉오리에 어느새 수상한 낌새가 있다. 아직 캄캄한 빛깔이지만 꽃을 준비하느라 몸을 부풀렸고, 올망졸망한 봉오리들이 그새 나무에 가득 맺혔다. 이 계절을 여러 번 겪은 나는 이제 까만 봉오리에서 꽃을 본다. 기억이 만들어준 상상력으로 기억 너머 먼 곳을 향해 간다. 가끔은 기억이 나를 붙잡아 더 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느낌이 드는 날도 있지만, 기억 덕분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화사한 풍경을 믿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기억의 몫이 아니라 나의 몫. 봄의 작은 기척을 한없이 환영하며 지금 만나는 세계 속에서 나무들을 올려다본다. 겨울과는 다른 얼굴을 한 나무들이 봄다운 미소를 짓고 있다. 꽃이 피어나야 올려다보던 나무들, 연둣빛이 보여야 사진에 담던 나무들을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봄과 어울리는 눈빛과 마음을 안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본다. 겨울과 봄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마주해야 할 것에 대해 나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람마다 가장 중요하게 지키고 싶은 가치는 제각각일 텐데, 내게는 ‘진실’이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 중 제일 앞에 있다.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에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던 날이 있는데, 그걸 알게 된 엄마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거짓말은 없다고, 거짓말을 한 너는 사랑 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냥 숙제 하기 싫어서 둘러댄 말이었을 뿐인데 호되게 혼나고서 아주 깊숙한 곳에 타투처럼 새겨진 말이 되어버렸다. ‘진실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구나.’ 사는 내내 타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진실해야만 한다고 그때부터 스스로에게 말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내가 나한테 진실하지 못했음을 알아보고 나서는 삶이 우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아득한 마음으로 가득할 때 책을 읽는 일은 오래된 습관이다. 읽는 행위는 나 하나로만 가득했던 좁은 세상에서 스스로를 꺼내어 사람들이 있는 넓은 세상 속으로 데려가고, 또 지금 보이는 세계에 문을 만들어 열게 했다. 가까운 빛에 손을 뻗어 만지게 했으며, 먼 어둠으로 달려가 모르던 언어를 배우게도 하였다. 경험이 시작되는 자리에는 언제나 문장들이 있었고, 누군가 정성 들여 적어둔 글은 생각이 출발하는 자리가 되어 주었다. 요가를 수련하고 안내하는 동안에도 막막해질 때면 책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거기에서 실마리 하나를 발견하면 기쁘고 들떠서 한동안 그 단어들을 마음속에서 굴려보았고, 그 덕분에 발견한 세계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보자고 다짐했던 2012년부터는 요가 수업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떤 문장 덕분에 발견한 길의 초입에서는 아직 나만의 언어가 보이지 않았고, 그들의 사유를 내 것인 양 함부로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 문장 그대로를 읽곤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사람들이 그걸 좋아해 주었다. 타인의 환대란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만 같아서 점점 더 열심히 읽고 또 읽고, 책의 내용을 수련하는 분들에게 나누었다. 그걸 듣고 싶어서 온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난 후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책임감까지 생겨버려서 때때로 읽기 어려운 날에도 부단히 노력하며 지냈다. 덕분에 수많은 멋진 세계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책만 있으면 나는 두려워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갔고, 무척이나 든든하고 편안해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세계였기 때문에 거기에 갇혀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모두를 이해하고 싶어서 부딪혀오는 말과 상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동안 나는 나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다. 어떤 상황 안에서 괜찮지 않은 나를 알아보고 나면, 타인을 상처 입히는 말을 결국 하게 될까 봐 겁이 나서 나를 모르는 척하기도 했다. 내 상처보다 타인이 나로 인해 받을지도 모르는 상처가 더 무서웠는데 그건 선한 마음이기보다는 벌 받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 막막하게 가라앉는 날에는 습관처럼 책으로 도망쳤고, 한참 타인의 문장에 기대어 위로받다가 조금 괜찮아질 무렵엔 이제 어려운 마음들이 다 지나갔다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몇 년 전에야 알아보았다. 아, 진실하지 못했구나. 나의 상처와 어둠 앞에서 진실을 제대로 보지 않고 책으로 도망갔던 거구나, 알아보고 나니 책을 읽는 행위가 두려워졌다. 어느새 읽는 행위가 나를 살리는 기술이 아니라 진실을 외면하는 기술로 쓰이고 있었다는 것이 섬뜩했다.

읽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수업은 해야 했고, 수업에서는 무언가를 읽어야 할 것 같아서 꾸역꾸역 읽고, 읽은 것을 나눴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는데, 이제와 돌아보면 요가 수업에서 읽은 걸 나눠야 했기 때문에 읽는 행위가 멈춤 없이 가늘게라도 이어졌던 것 같다. 삶의 어느 시기에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행위 덕분에 삶이 계속해서 새롭게 창조되고, 인식은 그 방향으로 넓어진다. 이제야 분명한 것은, 계속 읽지 않았다면 빠져나오지 못했을 어둠이었다. 어째서 하나의 행위가 살리거나 죽인다고 생각했던 걸까? 하나의 행동에는 그 두 가지가 늘 같이 있는지도 모른다. 빛과 그림자처럼.

내면이든 외면이든 더 아름답고, 견고하고, 편안하고, 자유롭기 위해서 이미 내가 가진 것 말고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다. 나는 자주, 내가 이미 가진 어둠과 약함을 비난하고 갖지 못한 강함과 빛을 부러워했다. 물론 그런 마음이어도 고요함을 위해 노력하면 전보다 나아지기는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결국에는 벽에 부딪히고야 만다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그저 더 나여야 할 뿐, 나 아닌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상처 없이 깨끗하고, 어둠 없이 맑게 빛나기만 하는 내가 되려는 마음으로는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빛을 통해 배우고, 어둠을 통해 경험하고, 빛과 그림자의 춤 안에서 자유를 만나야 한다. 가난한 마음이 되기도 하는 나를 허락하고, 그러다가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나를 신뢰하면서 자유로운 공간에 나를 놓아줄 수만 있다면 어떤 행위든 문제 될 것이 없다. 행위가 눈을 가린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눈을 감은 채 행위를 한 것뿐이니까.

‘아홉차리’라는 풍속이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아홉 번 하며 입춘을 보내라는 이야기다. 두 손을 모두 펼치면 대부분은 열 개의 손가락을 만나게 되는데, 왜 하필 아홉 번일까? 기운을 북돋을 만큼의 바탕만 만들고, 약간은 모자라게 두어서 예상치 못한 행운의 공간을 남겨두려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언 땅에는 씨앗을 심지 못한다. 우선은 얼어 있는 땅을 흔들어 깨울 필요가 있고, 지금 하는 아홉 번의 시도는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땅을 부드럽게 하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그 땅에서 어떤 것이 어떤 속도로 피어날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채로, 나 역시 아홉 번의 시도에 여백을 남겨두고 싶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목련 나무를 올려다보며 나무에게 묻는다. ‘겨울 속에 봄이 있다는 것을 믿어?’ 나무는 대답은 하지 않고 다시 질문한다. 아직 유연하게 열리지 못한 한편의 마음속. 가장 아름답게 펼쳐질 꽃이 숨어 있으려나. 제일 오래 돌보지 못했던 자리를 더듬거려본다. 아홉 번의 시도만으로 만지작거리는 자리에 정말 숨구멍이 생기고 바람이 통할지 궁금해하면서, 너무나 사소해서 시도한다고 하기에도 쑥스러운 것을 말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처음 숨을 느낄 때, 오늘을 경험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들을 수 있도록 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인사하기로 한다. 하루에 한 번은 눈을 감고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에게 감사를 전하기로도 한다. 하루에 적어도 30분은 읽어야만 하는 책 말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책을 두려움 없이 보는 것도 하고 싶다. 너무 대단치 않아서 멋쩍은 느낌이 들지만 이렇게 작은 조각 하나가 큰 풍경의 바탕이 되어줄 것을 믿는다. 꽃을 품은 봉오리처럼.

모든 순간이 하나의 결과물이고, 모든 찰나는 또한 과정이기 때문에 어떤 이름을 붙이며 해냈다거나 해내지 못했다고 단정하는 것에는 늘 오류가 뒤따른다. 이 순간이 뿌리인지 줄기인지 꽃인지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가까이에 코를 박고 바라보는 지금은 봉오리 안에 꽃이 숨어있는지 볼 수 없지만 꽃이 피어나면 그땐 알아보게 된다. 꽃의 존재를 믿는 것처럼 나의 삶 속 꽃봉오리에도 신뢰의 시선을 보낸다. 엉망으로 길을 잃고 헤매기만 했던 것 같은 모든 날은 잘못한 날이 아니라 길을 찾기 위해 무언가를 ‘그냥 했던’ 날이다.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면, 진실하고 싶어서 발버둥 치거나 조금은 진실을 알 것 같다고 안도하거나 모르겠다고 다시 울먹이던 수많은 여정의 날들, 해낸 것 없이 그저 해내고 있었던 날이다. 알아본 만큼의 진실 속에서 모든 빛과 그림자를 경험한 것뿐, 거짓된 삶이라고 스스로에게 비난받을 필요가 없다. 지금도 또한 그렇다. 무언가를 지금 하거나 지금 하지 않거나, 중요한 것을 지금 기억하거나 지금 잊어버리거나, 모두 그뿐이라면? 역시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가장 중요한 가치를 기억하며 품위 있는 선택을 하고, 그 행위를 나답게 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입춘에는 완결 지으려는 마음을 비우라고 했다. 추수의 시기는 멀고 멀었으므로 수확하려는 마음 없이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림자처럼 어둡고 자꾸만 웅크리는 마음에게 질타의 말을 하지 않고 그 곁에서 숨을 쉰다. 나 자신에게 맞는 매가 가장 아프다. 나 자신이 안아주는 포옹이 가장 따뜻하고. 스스로를 객관화한다고 여기며 영리한 척 뱉어낸 결론의 말들에 상처받지 않도록 나에 대해 내가 하는 말들을 멈추고 침묵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입춘에는 아홉 번 눈을 감는다. 아홉 번 고요함을 만난다. 아홉 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아홉 번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다음 눈을 뜨고 만난 봄빛 가득한 세상에서는 봄의 여러 가지 모양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봄밤의 찬 공기도, 봄 한낮의 느슨함도 모두 한 계절이라는 것을 알고는 미소 짓게 되겠지. 그 둘이 내내 함께 봄을 만들어 가고 있음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빛과 그림자의 공존을 통해 모든 것의 너비와 깊이를 배워가는 삶, 그 속에서 마주하는 것들이 나의 우주를 확장하는 중임을 알아본다. 유일하고 유한한 생이 드디어 겨울이라는 그릇 속에서 봄을 만난다.

*입춘(立春) : 24절기 중 첫 번째로, 이날부터 새해의 봄이 시작되며 음력으로는 정월의 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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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