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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속에서 봄을 준비하는 ― 대한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스물네 번의 절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쓰다듬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록한다.
“선물로 받은 경험이 현재의 내가 되는 가장 중요한 씨앗이었다. 그러니까 삶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축복이라는 것을 배운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일수록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떠오르고 나니 종결되는 문장과 새로운 문장을 이어주는 연결어가 변한다. 잘못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계 속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러므로’ 웃고, 한 번 더 해보고, 사랑한다.”
내게 어떤 말버릇이 생겨버렸다는 것을 알려준 친구가 있었다. 타국에 살고 있어서 일 년에 한두 번쯤만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면 신기하게 그에게 연락이 온다. ‘잘 있나.’로 시작하는 메시지.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십 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받아온 메시지로 느낀다. 그를 생각하면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부산 사투리로 “괜찮다, 네가 괜찮으면 언니는 다 괜찮다.”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내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엄청 많이 하네?”라고 이야기했다.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일인데 여전히 생생하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속상한 일들이 마구 휘몰아치듯 내게로 오는 것 같던 그때, 그래도 잘 살아보고 싶어서 수많은 문장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붙여 두고 겨우 기운을 내곤 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지낼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해볼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할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살았다. 그 뒤에 붙던 말들은 당시의 내가 해내기 어렵다고 느끼던 것들이었다. 포기하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는데, 이 삶을 두고 아무리 도망쳐도 돌아올 자리 또한 이 삶이라는 것을 모르지도 않았다. 들고 있기가 버거운 삶을 숙제처럼 받아 들고 곤란한 얼굴을 하던 나에게 그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지워버리면 어때?” 나는 더 곤란한 표정을 했다. 그 말을 지우려면 현실부터 먼저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을 지우면 내가 사라질 테니까.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할 일을 알아보고, 노력한다. 그렇게 단순하게 살기만 하면 꿈꾸던 자리에 도착할 거라고 믿으면서, 한 번도 넘어져 본 적 없는 순진한 눈으로 지내던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그런데 삶이 어디 그러한가. 모두 어떤 꿈을 꾸고 나름의 시간을 갖는다. 운 좋게 소망한 풍경에 도착하기도 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면서 예상한 일만 만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삶은 언제나 내가 상상해 본 적 없는 장면을 보여주고, 듣게 될 거란 생각도 못 했던 말을 듣게 한다. 내 계획에는 없던 일들이 수없이 많이 일어난다. 넘어질 것 같았는데 비틀거리다가 리드미컬하게 걷게 되기도 하고, 별일 없을 줄 알았는데 커다란 구멍에 빠져 긴 허우적거림을 겪기도 한다. 대체 삶은 왜 이렇게 이어지는 걸까? 한동안은 그게 참 궁금했다. 이런저런 책을 찾아봐도 삶이 왜 그러는 건지, 예상치 못한 친절함과 심술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고, 다들 그런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만 말한다. ‘삶이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것 아닐까?’ 생각에 생각을 덧입히며, 혹은 생각의 겹을 하나하나 걷어내며 질문하던 시간도 있었다. 사실 여전히 그렇지만 최근에는 그렇게 계획에서 벗어난 일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오히려 더 삶에 꼭 필요한 일 아니었을까 생각이 이어졌다. 필연이라고 여겨진다. 계획에 없던 일일수록 더욱 일어나야만 했던 일인 것 같다. 누구도 계획하지 않은 일이거나,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노력했는데도 일어나버린 것은 어쩌면 삶의 뜻인지도 모른다고 마음이 흘러왔다.
대한은 24절기의 마지막이다. 24번의 마디를 거친 한 해가 이제서야 끝이 나고, 새로운 봄이 곧 시작된다. 옛사람들은 대한 5일 이후부터 그다음 찾아오는 입춘 3일 전, 그 사이의 일주일을 ‘신구간’이라고 불렀다. 지상의 일들을 관장하던 신들이 한해가 끝나는 것을 본 후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그다음 해에 세상을 돌볼 새로운 신들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의 시간. 이때에는 그들의 노여움을 살 일이 없으니 마음 놓고 이사도 하고 집을 수리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늘 지켜보는 눈이 있다고 믿었던 오래전 사람들이 한없이 아름답게 보인다. 아무도 모르게 하는 행위여도 누군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무언가 하나를 바꿀 때면 그게 삶의 어떤 부분을 송두리째 뒤흔들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는 사람들, 계절에 기대어 살고, 날씨에 순응하는 순한 마음의 사람들, 내 힘으로 해내는 것이 아니라 신이 도왔다고 감사하는 사람들, 그런 마음들을 배우고 싶다. 마음이 자리를 옮기는 것도 일종의 이사라면, 요즘의 나는 마음의 이사가 한창이다. 신구간에 하기에 아주 적당한 일이 시작되었다. 신들 모르게 그들을 의심하던 자리에서, 그들이 하는 일을 온전히 믿는 자리로 마음을 옮기며 고장 난 마음 한 귀퉁이를 수리하는 중이다.
이 방향으로 가면 되는구나, 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자꾸만 그곳으로 향하는 문이 닫혔다. 그러면 문 앞에서 잠시 망연하다가 고개를 돌리고 또 새로운 빛이 흘러나오는 문을 향해 걸어가 보고, 거의 다 왔나 싶을 즈음엔 또 눈앞의 문이 닫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또 이전에 했던 행동의 반복. 삶이 해결해야 할 숙제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가 보겠다고 말했고, 그 말이 오히려 나의 삶을 한 겹 무겁게 만드는 것 같으니까 지워보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래, 앞서 종결된 문장과 상관없이 그냥 새로운 문장을 써보자.’ 생각했지만 연결해 주는 말이 사라진 자리는 지난 십 년 동안 내내 어색했다.
한 사람이 돌아갈 곳은 결국 자신의 마음속, 더 자기 자신이 되는 곳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군가 내게 찾아와 말했다. “돌아올 자리가 있어서 행복해요.” 그 말을 들은 내가 놀라서 물었다. “여기가 돌아올 자리 같았어?” 그랬더니 그가 답했다. “선생님이 계신 자리가 제가 돌아올 자리예요.” 한참 동안 그를 가만히 보다가 눈물이 뚝뚝 흘렀다. 둥지를 틀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헤매던 나는 그럼에도 오랜 시간 꾼 꿈이 있었다. 요가를 안내하는 자리, 거기가 어디든 그 순간에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 여기에서만큼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며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세상 어디보다도 이곳이 안전하다고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한 사람이 돌아가야 할 곳이 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곳이라면 아마 그의 이야기는 내 곁에서 본연의 모습으로 숨 쉴 수 있다는 고마운 말일 것 같고, 내가 환영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는 말이겠구나 싶어서 눈시울이 자꾸만 붉어졌다.
잘 도착했구나. 여기가 내 자리구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매번 닫히던 문은 그 당시 열려야만 하는 문을 소개하기 위해 삶이 닫아준 문이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눈이 어둠에 적응하고 나면 그제서야 보이는 작은 빛, 그 빛에 의지하며 걸음을 놓던 시간까지도 모두 예정된 일이 아니었을까. 새롭게 열리던 문으로 들어가는 그 모든 길이 목적지를 우회하는 구부러진 길이라고 여겨졌는데 문득 그 순간, 그게 지름길이었다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 멈추거나 느려진 삶의 속도 속에서도 인생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수많은 머뭇거림은 늘 생의 일부다. 전체에 속하고 마는 멈춤의 순간들이 모여서 삶이 풍성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이 모습으로 여기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모두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아보고 나니 머쓱해진다. 그렇게 선물로 받은 경험이 현재의 내가 되는 가장 중요한 씨앗이었다. 그러니까 삶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축복이라는 것을 배운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일수록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떠오르고 나니 종결되는 문장과 새로운 문장을 이어주는 연결어가 변한다. 잘못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계 속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러므로’ 웃고, 한 번 더 해보고, 사랑한다.
오래전 사람들은 대한 절기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입춘의 전날을 ‘절분’이라고 불렀다. 절분날 밤에는 콩을 마루나 방에 뿌리며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이하는 ‘해넘이’를 하였는데, 나의 해넘이는 ‘그러므로 즐겁게’, ‘그러므로 사랑하며’라는 말을 삶 곳곳에 뿌려 두는 일이 될 것 같다. 그렇게 넘어가 마주한 새봄에는 분명 다가오는 삶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편안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될 것이다.
*대한(大寒) : 24절기 중 마지막 스물네 번째, 한해를 매듭지는 절후로 이후에는 봄의 절기가 시작된다.
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