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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태양과 씨앗을 지켜보는 ― 동지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스물네 번의 절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쓰다듬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록한다.
동지는 겨울에 이르렀다는 말 그대로 한겨울인데, 추위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계절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 때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밤이 가장 긴, 만물이 잠자고 있는 듯한 날, 깊은 밤 끝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더 깊은 어둠이 아니라 아침이다. 어둠은 빛을 기다리고 있다. 동지를 기점으로 짧아지던 태양의 시간은 다시 길어진다.
영화가 끝났고, 시계를 보니 밤 열한 시가 막 지났다. 에스컬레이터 운행은 이미 종료된 상태, 모두 줄을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연말이라 그런지 수요일 밤에도 영화를 본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다녀오기를 두 번, 세 번째에 하나의 엘리베이터에 겨우 올라탔다. 문이 닫히니 엘리베이터 거울 같은 문에 나와 같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 보인다. 10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짧은 시간, 중요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탄 한 사람이 옆 친구에게 말했다.
“있잖아,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엄마의 관점으로 보여준 거 끝나고 갑자기 ‘저 선생이 나쁜 놈이네, 어휴 답답해서 못 보겠다.’라고 말하면서 나가버렸어.”
그 순간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와, 그분 큰일이네!’ 하는 생각. 모두의 눈이 아주 조금씩 커지거나 흔들렸고, 이야기를 한 사람의 친구가 말했다.
“와, 큰일이다. 그 사람. 호리 선생 나쁜 놈 아니던데 어떡해?”
그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려서 모두들 내렸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잠시 들었을 뿐인데, 나는 들어야만 하는 말을 들은 기분이 들어서 그 순간을 만지작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동지가 가까워져 오자 바람이 점점 더 차가워져 옷깃을 여미고 걸음을 재촉하는 동안에도, 내게 찾아온 씨앗과도 같은 말이 가진 어떤 종류의 희망 덕분에 이마가 환하게 밝아지고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보고 싶었던 영화들이 초겨울부터 하나씩 개봉했는데, 꽤 분주한 한 달을 보내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12월 중순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크리스마스 개봉작에 밀려 모두 종영하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나만의 ‘무비 위크’를 만들어 하루에 한 편씩 영화를 보았다. 오랜만에 매일 봤더니 영화의 주제에 대한 몰입보다 영화 속 인물의 선택에 따라 생의 다음 장면들이 판이해지는 것에 마음을 두게 되어 머릿속이 자꾸 복잡해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 내게는 가장 기대작이었는데, 이번 무비 위크의 마지막이었던 <괴물> 직전까지 여러 영화를 연달아 보느라 중첩되어 버린 감정들, 덧붙여지고 점점 무거워지는 생각의 꼬리 때문에 영화 보기를 관두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예매를 해 둔 터라 꾸역꾸역 보러 갔고, 보는 내내 영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이 오히려 고마웠다. 그리고 영화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영화를 본 후 엘리베이터에서 들은 말을 곱씹어 보니 어느 때보다도 정확한 장소에 도착한 순간이었다고 여겨진다.
요즘의 나는 정말이지 궁금한 게 있다. 요즘 들어서 새롭게 궁금하게 된 것은 아니고, 살아오는 내내 항상 궁금하다고 느끼는 것인데 요즘은 특히 더 궁금해서 자꾸만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 질문은 바로 ‘삶이 이것을 통해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무엇을 가르쳐주려고 이 상황을 만나게 하는 거지?’. 누군가와 가까워질 때, 도무지 노력해도 마음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멀어질 때, 어떤 자리에서 생의 중요한 날을 보내게 될 때, 정이 들었는데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할 때, 삶이 내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어쩌지 못해 두 손 내려놓고 바라보게 될 때. 그럴 때면 멈춰서 질문한다. 삶을 의심하지 않고 배우려는 자세로 질문하는 것, 그거 하나만 기억해도 대부분의 어둠을 건너올 수 있었다. 평소보다 깊고 긴 어둠 속에서는 그 빛 하나에만 의존하는 것으로는 위태로울지 모르지만 작아도 확실한 빛과 같은 그 언어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언어를 창조하고 신뢰하는 것, 그것이 가진 힘을 믿고 있다. 가장 좋은 질문이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나를 살게 하기도 하고, 걷게도, 멈추게도, 또 떠나게도, 다시 돌아오게도 했던, 나에게서 생겨나 창조된 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나의 질문.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도저히 사랑하기가 어려운, 나를 아프게 한 사람 곁에서 ‘그에게’가 아니라 ‘삶’을 향해 질문을 던져본다. ‘해보지 않은 새로운 사랑, 더 넓은 사랑을 배우라고 보내셨어요? 아님 이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으니 천천히 멀어져 더 걸어 나가보라고 이 상황을 보내신 거예요?’ 아무리 질문해도 삶은 금세 답을 해주지 않는다. 어떤 것은 몇 년이 흐른 후 답을 들은 기분이 들었고, 어떤 것은 아직도 묵묵부답. 요즘은 몇 년째 답을 듣지 못한 질문 하나를 손에 쥐고 막막해했는데, 그래서인지 영화를 이어서 보는 내내 삶이 보내온 메시지를 다르게 해석했다면 죽지 않고 살았을 사람들 모습이 내 앞에만 클로즈업되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이 어우러져 만든 커다란 세계가 완전히 바뀌진 않아도 한 개인의 삶 만큼은 완전히 달랐겠구나, 싶어서 더 아득해진 채 <괴물>을 보았다. 영화는 엄마의 시선, 선생님의 시선, 아이들의 시선을 잇달아 보여주는데 그때마다 하나의 상황이 가진 뒷면이나 옆면이 보인다. 앞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뒷면이 보이면 세계에 대한 인식이 순식간에 바뀌게 되고, 진실이라는 것은 대체 뭘까 묻고 싶어진다. 각자의 진실만을 알고 많은 것을 왜곡하며 이해하는 우리는 삶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경험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문재 시인의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라는 시를 좋아한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나를 찾을 때까지, 기어코 만날 때까지 나의 할 일은 되뇌고 또 되뇌는 일 뿐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삶이 보내오는 신호를 오해하지 않고 잘 이해하며 살고 싶은데, 때로 어떤 길에 들어서면 이 길로 들어오게 한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시인의 말대로라면 내가 찾고 싶은 메시지가 나를 애타게 찾고 있을 텐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 밖에 없어서 무릎에 힘이 빠진다.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다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본 영화와, 영화를 보고 나서 들은 말이 나의 내부에 빛나는 씨앗을 남겼다.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러니 서둘러 자리를 뜨지 말고 지켜봐. 할 수 있는 일이 지켜보는 일 뿐이라면 지켜볼 수 있지. 계속해서 바라보며 답을 기다리는 것, 포기하지 않고 질문하는 것은 답답한 일이기는 해도 무력한 일은 아니야.’ 내 안에서 씨앗이 말한다.
현재 상황에 대해 내가 붙여 둔 이름표를 뗀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 답을 기다리는 마음에 대해서도 호명하기를 멈춘다. 이름을 잃고 나면 처음에는 다소 허전한 느낌이 들지만 이내 가볍고 맑은 마음으로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게 된다. 이름을 아는 감정들이 나쁜 건 아니지만 이미 배웠던 것이 내 두 눈을 가리면 지금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수많은 이름을 지우고 드디어 눈이 밝아질 때, ‘지금’이라는 씨앗에게 필요한 것이 물인지 빛인지, 혹은 바람인지 알 수 있으니 파도 같은 마음이 나를 삼킬 것 같을 때는 이렇게 잠자코 몸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
씨앗을 보며 표정을 읽는 것은 씨앗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내게 찾아온 씨앗과도 같은 감각과 감정들, 상황과 관계 안에서 어떤 색을 보고 향을 맡는다면 그건 그저 내가 본 것. 이미지들은 항상 내가 만들어낸다. 어떤 씨앗을 어떻게 자라나게 할지는 내가 어디까지 보고 있는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에 따라 분명 다르게 결정될 테니 씨앗의 표정과 크기를 그저 지켜보기로 한다. 지금은 지켜보고 더듬더듬 만져보며 꿈꾸기에 가장 좋은 ‘동지’니까. 동지는 겨울에 이르렀다는 말 그대로 한겨울인데, 추위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계절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때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밤이 가장 긴, 만물이 잠자고 있는 듯한 날, 깊은 밤 끝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더 깊은 어둠이 아니라 아침이다. 어둠은 빛을 기다리고 있다. 동지를 기점으로 짧아지던 태양의 시간은 다시 길어진다. 옛사람들은 동짓날, 태양이 죽음에서 새로 태어난다고 생각하며 새해를 시작하는 무척 중요한 절기로 보았다. 그래서인지 동지에는 다른 어떤 절기보다 가까운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다양한 풍습이 있다. 함께 걸어 나가보자고 손을 내미는 것 같은 풍속들이 사랑스러워서 하나하나 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무탈하게 새해를 맞이하자는 ‘동지팥죽’을 먹는 일,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지난해의 수고를 칭찬하고 새해에도 백성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하는 ‘동지하례’. 다음 일 년 동안 해와 달이 뜨는 일과 절기, 기후, 때마다 하면 좋은 일과 하지 않으면 좋은 일이 적힌, 지금의 우리식으로는 다이어리 같은 책력을 선물하는 ‘동지책력’도 다 함께 해보고 싶다.
봄이 완연해져 부드러워진 땅에 씨앗을 심어야 할 때, 그제야 “어디 보자, 무슨 씨앗을 심으면 좋지?” 질문하며 골똘히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씨앗을 심기에 가장 좋은 때를 놓쳐버리게 된다. 그때엔 이미 마음 정해 둔 씨앗을 가볍게 움직여 심어야 하는 순간. 때를 놓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아쉬운 일이고, 시기가 지난 다음 그때 해야 했을 일들을 나중에 하려고 하면 아무래도 좀더 힘과 마음을 기울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그저 흐름을 타지 못했기에 더 힘차게 노를 저어야만 해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는 바다에서의 운명 같은 것 아닐까. 이미 지나간 다음에야 어쩔 수 없지만 아직 다음 해의 시간을 온전히 가진 것 같은 동지 무렵에는 다가오는 봄, 어떤 씨앗을 심으면 좋을지 내게 남겨져 있는 어린 씨앗들을 앞에서도, 옆과 뒤에서도 천천히 들여다볼 여유가 있다.
수많은 감각이 씨앗이 되어 내 안에 남겨진다. 투명한 눈으로 오래 바라본다. 씨앗은 빛도 어둠도 아니고, 울고 있지도 웃고 있지도 않다. 색조차 없다. 아무 말도 덧입혀지지 않은 그대로의 씨앗을 바라본다. 씨앗에게 섣불리 어둡고 갑갑한 옷을 입히지 않기로 한다. 아주 빛나는 옷을 서둘러 주지도 않는다. 번쩍거리는 포장지로 멋들어지게 포장하여 세상에 내놓고 싶은 조바심은 이제 사라졌다. 나는 점점 더, 포장지를 벗겨내어 가볍고 투명하게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 바깥의 눈들을 사로잡는 포장지 없이도 충분히 빛나는 씨앗이라고 나 자신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무관심하게 냉대하면 어둡고 무거운 조각밖에 될 수 없는 씨앗에게 온기가 쌓이고 보호와 사랑의 빛이 닿으면 봄이 올 무렵에는 땅속으로 들어가기에 가장 적당한 씨앗이 된다. 좀더 알차게 여물어 가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종종거리는 마음 없이 어느 때보다 여유롭게 내년을 생각한다. 나는 시간을 가졌고, 살아가며 자연스레 만나는 옷을 입거나 벗으며 더 멀리 걷게 되리라 믿는다. 앞서갈 필요도 없이 씨앗의 시간을 기다리기로 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바라본다는 것, 모른 척하지 않는 것이다.
1994년부터 친구였으니 이제 곧 삼십년지기가 되는 가장 오래된 친구가 첫 아이를 낳았다. 친구가 처음으로 사랑하던 모습, 대학에 가고 학보사에 들어가고 외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오고, 회사에 들어가고 그러다가 만난 사람과 결혼하고, 나는 살아보지 못한 동네로 이사하고, 그 집에 놀러 갔을 땐 처음으로 함께 살아보는 고양이 쿠루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 이제 다음 만날 때엔 지구별에 막 도착한 작은 생명을 보여주겠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지켜보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런 오랜 인연에 오랜만에 동지책력을 하듯 신년 다이어리를 선물했다. 찾아온 새날, 새로운 인연이 된 어린 아이 곁에서 친구는 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게 될까. 선물한 다이어리에는 얼마나 서툴고 머뭇거리는 마음들이, 또 얼마나 설레고 신나는 시간들이 기록될까.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경험이 친구를 기다리고 있을 테고, 친구가 상상하지 못한 어떤 경험을 내가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면 지난 30년간 그러했듯 서로에게는 낯선 삶의 면면들에 대해 익숙하게 말할 것이고, 우리의 삶은 그렇게 함께 넓어진다. 아직은 몰라도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것들을 지금 걸을 수 있는 길을 걸으며 기다린다. 씨앗을 가만히 손에 쥐고 아늑하게 데우며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국에는 내가 찾는 답이 나를 찾게 될 것이다. 새로운 책력에 쓰여질 새로운 이야기들이, 알아야할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알게 해줄 것이다.
*동지(冬至) :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로,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