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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인사를 건네는 ― 소설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스물네 번의 절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쓰다듬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록한다.
겨울에 기다림의 지혜를 발휘하지 않으면 봄을 봄답게 맞이할 수 없으니, 겨울의 지혜는 어쩌면 살아감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제대로 습득하지 않으면 어느 날에는 살아가는 일이 위태롭게 여겨진다. 쉽게 돌아서고 서둘러 마음을 접는 일은 가장 게으른 일, 게으르게 미워하기보다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사랑하고 싶다.
겨울이 왔다. 이제는 분명하게 겨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온도와 바람이 느껴진다. 화려한 옷을 입은 것처럼 단풍으로 풍성해졌던 나무들도 키를 키우고 몸집을 부풀게 했던, 나무라고 여기던 것들을 비 쏟아질 때 우르르, 찬 바람 불 때 또 우수수, 내려놓는다. 나뭇잎이 떨어져 땅으로 돌아오면 흙의 빛깔이 되어 지난날 그렇게 화사한 색이었다는 것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무성해지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나면, 나무는 그제야 올려다보는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고요한 쉼을 맞이하는 것 같다. 플라타너스 곁에 쌓여 있는 낙엽을 밟다가 나도 모르게 뱉어낸 한숨이 하얀 연기로 눈에 보인다. 겨울은 그렇게 전부 다 감추지 못하는 계절, 차가운 공기 속에서는 한숨도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온기도 “하하하” 웃을 때의 소리도 모두 보이고, 나뭇잎으로 가려져 있던 나무의 빈 몸까지도 세상에 다 드러난다. 앙상해진 나무 곁에 쏟아진 지난 계절이 여러 가지 얼굴로 와르르 흩어져 있다. 차가워진 땅에 내려앉은 지나간 날의 냄새가 아쉽도록 다정해서 한참을 서성거린다. 나무가 추워 보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여름철 나뭇잎이 흔들릴 때 그 사이로 일렁일렁 춤추며 흘러내리는 볕뉘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걸 볼 수 있는 계절이 지나가니 이제 한동안 못 보겠구나 싶어 아쉬운 마음이 가득해졌다. 나무 아래에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잎에 가려지지 않은 깨끗하고 시원한 하늘이 보인다. 고개를 숙이니 나무의 오래된 몸도 보인다. 이 몸으로 여기에서 계속 살고 있었구나, 이전에는 매번 잎과 꽃을 올려다보느라 보이지 않았던 아니,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나무의 맨몸을 고개를 숙이며 오래 본다. “정말 아름답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나무마다 다른 몸의 결도, 다양하게 모인 색깔도, 듬성듬성 벗겨진 자리도 저마다 아름다워서 가만히 손을 대어 보니 낮의 빛을 머금어 따뜻하기까지 했다. 잎을 떨구고 몸을 가볍게 한 나무는 추워지는 이 겨울, 자신에게 남겨진 힘을 뿌리에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아 봄을 맞이하겠지.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는 시기에 지켜보는 이들이 보내온 환대와 잎이 커져 나갈 무렵에 받았던 박수, 열매가 맺힐 무렵 들렸던 웃음소리와 기쁨의 목소리, 열매가 무르익어 갈 무렵 기대어 온 이들의 다정함을 나무는 기억한다. 곁을 지키던 이들과 슬쩍 한 번 바라보고 떠나간 이들, 온기를 나눌 수 있었던 고마운 순간과 기대와 다르다며 실망의 빛을 보였던 표정들, 사랑과 슬픔, 불안과 안도를, 우울과 환희까지 모두 하나의 나이테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기억 중에 오래 남겨야 할 것만을 뿌리에 모은다. 그렇게 모아두었으니 나무는 이제 겨울이 두렵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겨울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 하나가 생겨났다. 침잠하는 계절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 오래된 시간 속에 뿌리를 두고 천천히 키워 드디어 싹이 튼 새싹 같은 눈으로 다가온 계절을 바라보고 있다.
‘소설’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절기는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과 큰 눈이 내리는 대설 사이, 첫눈이 내리는 시기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 얼음이 얼면서도 한낮에는 햇살이 따뜻하게 쏟아지고, 아직 꽝꽝 얼지 않은 땅의 기운 덕분에 가끔 봄처럼 느껴져서 ‘소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의 말미, 대설을 앞두고는 꽉 찬 추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옛사람들은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며 소설의 초입엔 월동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막바지에 하려고 하면 이미 매서운 추위가 들이닥친 후라는 걸 전해오는 문장을 통해 알고 있었으니까. 입동에 김장은 해 두었어도 남은 할 일이 많았을 것이다. 시래기와 무말랭이도 말리고, 한겨울에 먹을 곶감도 만들고, 겨울의 몸을 포근하게 안아줄 수 있도록 두툼한 솜을 넣은 누비옷과 솜이불도 마련해 두면서 분주하게 지내는 동안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겨울이 다가오는 것이 기다려졌을까, 미리 장작을 준비하고 창을 바르며 길고 긴 겨울나기가 시작되는 것이 아득하지는 않았을까. 겨울이 다가왔다, 혼잣말하면 겨울이 되어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들부터 자꾸 생각난다. 먼 곳까지 걸어 나가는 긴 산책도 하기 힘들어질 것이고, 달콤하고 경쾌한 맛의 여름과 가을 과일들도 한동안은 못 먹겠지. 아쉬움부터 떠올리는 나를 가볍게 마음으로 어루만지면서 나만의 월동 준비를 시작한다.
더 추워지기 전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준비는 옷장 정리이다. 솜바지도 잘 보이는 자리로 꺼내어 두고, 추운 날 아침, 바로 꺼내어 챙겨 나갈 수 있도록 목도리와 장갑도 옷장 위 칸으로 옮겨 둔다. 여름철 내내 입던 얇고 가벼운 셔츠들은 깨끗하게 세탁하여 깊숙이 넣어두고, 겨울철 내내 입게 될 도톰한 니트들을 다시 옷걸이에 건다. 그렇게 하고 나면 모두 다 잘 보인다. 정리하는 동안 내가 가진 것들의 색과 부피, 질감들이 분명하게 보인다. 모든 것이 다 버겁고 그래서 사는 일이 전부 귀찮아졌던 과거 어느 날, 옷장 정리를 미루면서 대충 아슬아슬하게 겨울을 통과한 적이 있다. 어떤 옷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옷장의 가장자리나 아래를 뒤적거려 겨우 꺼내어 입으면서 지냈다. 어떻게 살아지기는 했으나 한 시절이 지나고 돌아보니 그 겨울에는, 가졌는데도 입지 못한 옷들이 수두룩하고, 이미 가진 것과 비슷한 옷을 여러 벌 사기까지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억이라는 것에는 늘 한계점이 있어서 여름을 온 마음으로 즐기는 동안 지난겨울의 기억 중 몇몇은 자연스럽게 휘발되고 만다.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 몇 가지, 자주 마주했던 풍경 몇 가지, 결국 그 정도만 남겨지는 것 같기도 하고. 지난해에 자주 입던 옷은 당연히 기억나지만 사고도 몇 번 입지 않은 옷들은 정리할 때가 되어서야 ‘아 맞다 이런 옷도 있었지.’를 마음속으로 연발한다. 지난 몇 년간 손이 가지 않던 옷도 잘 정리해 두면 올해의 옷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각자의 나이에 어울리는 옷이 있다. 스무 살 때 잘 입었던 옷 중에 여전히 꺼내어 입는 건 기본 티셔츠 몇 가지 정도, 대부분은 이제 어울리지 않는다. 서른이 되며 샀던 옷 중 그땐 어울리지 않아서 묵히기만 하다가 누군가에게 주어야 하나 싶었던 어떤 옷은 이제야 잘 어울리기도 한다.
시기가 잘 맞아야 비로소 그 빛이 드러난다는 것이 꼭 내가 가진 능력 같기도 하다. 활용될 필요가 없었던 어떤 종류의 능력은 그 자리에 늘 있었으나 있는 줄도 모르고 서랍 가장 아래 칸, 그중에서도 제일 깊은 어둠 속에 있기도 하다. 잊혀질 만할 때마다 한 번씩 먼지를 털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주는 정리 정돈은 있는 것을 정말로 ‘있게’ 한다. 막 다가선 올해 겨울에 나는 어떤 옷을 자주 입게 될까? 사용할 필요가 없어서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능력 중 어떤 것을 꺼내어 들게 될까? 옷장도, 지금의 삶에 흩어져 있는 지난 계절의 기억들도 시간 들여 정리하는 동안 가진 모든 순간을 빛 속으로 꺼내어 가만히 안아본다. 흘러가야 할 것은 빛에 녹아내려 흘러가고 남겨져야 할 것은 빛을 머금으며 깊숙한 뿌리의 자리로 들어가 남겨졌다. 잘 정돈된 겨울의 자리에서 이제는 삶에 호기심이 생긴다.
겨울은 많은 것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언뜻 봄부터 많은 것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리 갈무리해 둔 씨앗을 겨우내 품고 있었기에 봄에 새로운 싹이 돋아날 수 있다. 그걸 눈치채고 나서는 연말에 새로운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학생도 아니면서 삼월까지 기다렸다가 시작하는 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새해까지 미루지도 않고 씨앗을 품에 안는 마음으로 작은 시도부터 해본다. 새로운 수업을 열어 덕분에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해보려던 공부를 겨울 절기와 함께 시작하기도 하는데, 연말에 시작하는 것이 신기하게 안심된다. 조금 서툴고 중도에 포기하게 되더라도 새해에, 혹은 구정 연휴에, 또 다가올 새로운 봄에, 만회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다. 올해에도 연말에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고 있다. 너무 큰 기대 같은 것은 없이 그저 씨앗을 만지작거리는 기분으로 작은 걸음을 걷는다.
멀리 갈 수 없는 날에는 깊은 곳으로 갈 수 있다. 먼 곳을 바라보지 않을 때만 만날 수 있는 깊은 자리가 있다. 겨울에 기다림의 지혜를 발휘하지 않으면 봄을 봄답게 맞이할 수 없으니, 겨울의 지혜는 어쩌면 살아감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제대로 습득하지 않으면 어느 날에는 살아가는 일이 위태롭게 여겨진다. 쉽게 돌아서고 서둘러 마음을 접는 일은 가장 게으른 일, 게으르게 미워하기보다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사랑하고 싶다. 미움보다 사랑에 오늘 분의 몸과 마음, 시간을 쓰고 싶다. 겨울이다. 추운 계절에 우리는 서로에게 좀더 다가가 앉게 될 것이다. 분명 그렇게 하고 싶어질 것이다. 다가가 앉은 자리에서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는 동안 당신의 이야기가 좀더 가까이 들리겠지. 가까이 듣는 동안엔 먼 곳에서 큰 목소리로 말할 때는 들리지 않던 것을 듣게 될 수도 있을까. 작은 흔들림과 서투른 애정을, 주저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가까워지고 싶은 소망을, 두려웠던 여름과 용기를 냈던 가을을 진실하게 서로를 향해 나긋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혼자 남겨진 긴 겨울밤 동안에는 내 안에 남겨진 말들도 좀더 잘 들릴 것이다. 지금 도착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다음의 나이를 살아갈 내가 배워야 할 것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돌아보면 늘 정확한 자리에 도착했다. 그 자리여서 들을 수 있었던 것 덕분에 여기로 밀려왔고, 여기에서 잘 듣는 동안 또다시 정확한 자리로 밀려갈 것이다.
‘인생은 옳은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라는 릴케의 문장을 오래 사랑해 왔다. 그 문장을 믿기 어려워 울던 날에도, 그 문장을 믿을 수밖에 없어서 무너졌던 날과 온전히 믿게 되어 안도하던 날, 그 문장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던 날들이 나에게 있다. 소중하게 모아둔 상자 속 사탕 같은 기억의 파편들, 손때 묻은 사랑의 기억을 뿌리로 보내는 동안 나는 내게 이야기할 것이다.
”삶은 언제나 옳고, 지금 도착한 가장 정확한 자리를 성실하게 사랑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지.“
월동 준비를 마쳤다. 이제 서성거리던 걸음이 춤을 추는 듯한 걸음으로 바뀌고, 그렇게 마주한 겨울에는 생의 뒷면에 쓰인 듯한 마음의 이름 중 어느 것을 사랑하게 될 것만 같다.
*소설(小雪) : 24절기 중 스무 번째로, 기온이 급강하하며 겨우내 먹을 거리와 김장을 준비하는 시기다.
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