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하는 사람 사진작가

최랄라

전시하는 사람

사진작가 최랄라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사람은 아름다운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지루하고 졸리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자칭 우울한 사진작가 최랄라를 만나고 난 뒤, 어쩌면 그는 아름다운 사진을 찍으며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얻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첫 번째 사진전 <Always boring, Always sleepy>의 전시 마무리를 이틀 남긴 수요일 오후 3시, 텅 빈 그의 공용 작업실에서 우울하지만 어둡지 않은 최랄라를 만났다.

Sitting woman, turned back series 1, 2015

Sitting woman, turned back series 10, 2016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INTERVIEW
사진작가 최랄라

그냥 좋아서
찍은 사진

최랄라가 본명은 아니죠?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거예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인스타그램이든 페이스북이든, 이름을 정할 때 고민하는 사람들이요. ‘이름 뭐 할까?’ 하는 사람들. 저도 그때부터 고민하던 거예요. 그냥 사람들이 제 이름을 부를 때 기뻤으면 좋겠어요. 이름과 관련해서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면 웃긴 게 많아요. “랄라랄라랄라 최랄라최랄라.” 이런 사람도 있고, “<라라랜드>보러 갔다가 ‘최랄라 랜드’ 간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름 딱딱하게 부르는 거 너무 싫어요.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고 들었어요. 군대에서 사진을 찍다 시작하게 됐다는 인터뷰도 보았고요. 취미로 사진을 찍는 것과 일로 사진을 다루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취미가 일이 되었나요?
사진 찍는 사람을 사진가로 봐주니까 제가 사진가로 불리고 있는 것 같아요. 사진을 찍게 된 시기는 군대가 맞고요. 그런데 사진으로 돈을 벌고, 상업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어요. 그냥 찍고 찍다 보니까 제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 사람들 중에 내가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일을 하게 됐어요. 그냥 좋아하는 일만 찾아서 왔는데, 지금 계속 이렇게 뭔가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저도 그게 신기해요. 사진가로서 ‘나는 이걸 꼭 이뤄야 해, 이걸 꼭 해야 해.’ 하는 게 전혀 아니었거든요. 배고플 때도 많았어요. 말도 못하죠. 스물여덟 살까지 일단 집이 없었고, 차비도 없어서 매일 스튜디오까지 걸어 다녔어요. 배는 고픈데, 그냥 찍어댔어요. 그때 찍은 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고요. 처음으로 타인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고 생각해서 진행한 프로젝트였어요. 돈을 벌게 된 건 스물여덟 살 때부턴 것 같아요.

무엇이 랄라 씨를 계속 사진 찍게 했나요?
사진 말고는 제 스스로 ‘나’를 느낄 수 있는 게 없었고, 재미있는 것도 없었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대화를 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물어보고 대답하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본인의 어떤 경험과 지식으로 이걸 다시 해석하고 정리를 하겠죠. 저는 인간관계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이런 모든 상호작용은 저를 움직이게 해요. 요즘에는 어떻게 보면 이것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도 있어요.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만 했던 그 사람의 태도나 이미 끝나버린 관계에서 오는 그런 감정들을 계속 표현하고 싶어요.

타인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나요?
주변 친구들이나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느꼈는데, ‘랄라’라는 이름도 그때 즈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시작은 일단 나로 인해서였어요. 내가 나를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많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집에 가도 컴퓨터 있죠, 먹을 거 있죠, 널브러진 빨래들도 있어요. 근데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생각하게 해주는 게 아니더라고요. 처리해야 할 일인 거죠. ‘생각보다 집에서 나를 생각 안 하네.’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옆에 있는 친구들을 보게 됐는데, 그들 또한 스스로를 생각하는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았어요. 사진가로서 사람들에게 자신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매개체가 꽃이라면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지 않을까, 내 의도를 알아주지 않을까 싶었고요. 만약 제가 자신과 닮은 돌을 가져오라고 했으면 사람들이 못 찾았을 거예요. 그런데 신기하게 꽃은 자신을 닮았다고 느껴요. 나는 아직 안 피었다고 씨앗을 들고 온 사람도 있었고요.

많은 분이 랄라 씨를 ‘Sitting woman, turned back(뒤돌아 앉은 여자)’로 기억할 것 같아요. 그 작품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거기에서 중요한 거는, 그걸 찍게 된 사람들의 스토리예요. 나체로 뒤돌아 앉아있어야만 했던 여자들의 이야기가 있거든요.

전문 모델이 아닌가요?
네. 다 개인이에요.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는 분명 밖에서는 웃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말 못 할 고민으로 끙끙 앓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할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그분들은 어떻게 섭외했어요?
이야기를 퍼트렸죠. 말하고 싶은데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어요. 그래서 찍게 된 사람들이었고, 구성이나 색감, 그리고 뒤돌아 앉은 그 모습들은 당시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치밀하게 잡고 간 건 아니에요. 그냥 빨간색 벽이 있고 모자 하나 있고 뒤돌아 앉아있는 여자였는데, 거기에서부터 제가 찍고 싶은 걸 찍은 거예요. 내가 보는 대로, 좋아하는 구도 대로 툭툭.

이 작품 외에도 대부분 여자가 모델이에요. 여자 모델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남자를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랄라 씨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기준은 뭐예요?
선. 몸의 곡선들이요. 근데 그 이면에 또 뭔가 있겠죠. 사람은 분명 자기가 살아온 환경에서의 어떤 것을 토대로 싹을 틔운다고 생각해요. 내 어린 시절, 불우했던, 유복하지 못했던, 행복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과거가 있기 때문에 여성의 그런 어떤 걸 좇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긴 해요.

사진에 영향을 준 인물이나 작품이 있다면요?
처음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를 보고 되게 절망했어요.

왜요? 하고 싶은 건데 이미 너무 잘한 사람이 있어서요?
그렇죠. 이미 제대로 느끼고 그것을 탁월하게 표현한 사람이 있어서 절망했었고, 마티스Henri Matisse가 색종이를 잘라 표현한 ‘블루 누드’를 보면서 숭고함을 느꼈고, 호크니David Hockney를 보고 재치 있다고 생각했죠. 정서적으로는 음악과, 지슬라브 벡신스키Zdzislaw Beksinski의 공허함과 기괴함 같은 것들에 영향을 받았어요. 음악은 라디오헤드Radiohead나 포티쉐드Portishead, 지금 듣는 ‘녹턴’이나 (우리는 쇼팽의 ‘녹턴’을 듣고 있었다)레퀴엠이요.

음악이 전체적으로 우울해요.
그걸 중학생 때부터 들었어요. 15년 전부터 계속. 처음 접한 게 포티쉐드였거든요. 그들의 음악으로 시작한 게 잘못이었던 것 같아요. 그 밑으로 더 빠지는 음악이 없더라고요.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이름을 ‘랄라’로 지었다고 했는데….
저 밝은 거 없어요.

이름이 유일하게 밝은 거네요.
그것도 되게 불쌍한 거죠. “이름 부르면서 행복하세요.” 하고 말하는 게 약간 처량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내가 우울하다고 해서 그걸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요. 앞으로 사랑을 해서 좀 밝아져야죠.

자이언티나 지코, 크러쉬의 앨범 재킷 사진으로도 많이 알려졌는데요. 자이언티는 원래 알던 사이라고 했어요.
네. 그 친구는 처음 만났는데 “형, 나랑 뭐 좀 해볼래요?” 하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3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어요. “여기 형 써요.” 3년 될 때까지 스튜디오 하나 주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금 안 지 딱 4년째거든요? 1년 전부터 미친듯이 시작하네요, 일을.

4년 전이면 스물여덟, 배고픈 시기였던 거죠? 지금 알려진 작품을 할 시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스튜디오를 내준다는 게 일종의 투자잖아요. 당시 자이언티는 랄라 씨의 어떤 점을 보고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일단 그 친구는 굉장히 현명하고, 앞을 아주 많이 내다보고 움직이고, 굉장히 지혜롭고 성실한 기독교인이에요. 성실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저를 만난 걸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처음 만났던 제 스튜디오가 이태원 보광동 교회 건물을 비우고 만든 스튜디오였거든요. 스테인드글라스도 그대로였어요. 그런 곳에 자이언티가 와버린 거예요. 성실한 기독교인이 온 거죠.

그냥 우연히요?
네. 그런데 하필 내가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와서…. 내가 사진 찍는 걸 보고 얘는 저 방에 가서 눈물을 흘렸고(웃음), 눈물을 흘렸는데, 왜 흘렸냐고 물어보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면서 또 울어버렸고, 그 뒤에 “형, 같이 합시다.” 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당시 저는 삶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워킹 비자를 받아 호주 농장에 가서 일하려고 했거든요. 하늘이 기회를 준 건지 잘 모르겠는데, 딱 그때였어요. 출국하기 5일 전. 5일 전에 얘를 만났는데,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 접고 남았어요.

그때가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났을 때인가요?
제가 스물세 살 때 시작했어요.

필름카메라만 고집한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원래는 디지털로 찍었어요. 그런데 디지털 자체가 일단, 뭐라고 해야 하나, 확인이 가능하잖아요. 확인이 가능한 것은 그 순간순간 더 좋게끔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그건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을 지키지 못하는 행위예요. 그런데 필름은 세팅하고 거기에서 한 번 찍고 끝나버리니까, 더욱 내 생각대로 찍히는 것 같았어요. 그게 너무 좋아서 필름으로 찍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필름이 아니면 못 찍겠더라고요. 디지털의 선명함이 너무 싫어요. 징그럽고 토 나올 것 같아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당신과 닮은 꽃을 가져오세요.” 최랄라가 사람들에게 단 몇 초만이라도 자신을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어서 시작한 사진 프로젝트.

전시가 끝나고
이후의 이야기

아직 이틀 정도가 남았지만, 책이 나오는 시점에는 전시가 끝났을 텐데요. 첫 전시를 마친 소감을 미리 말해주세요.
어…. 사람들이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생각했어요.

이런 게 구체적으로 뭔가요?
보는 것보다 경험하는 것.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에 시간 쏟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보기만 하는 건 별로 재미없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주체가 돼서 빛날 수 있는 그 순간을 경험하는 걸 더 좋아하고 거기에 열광해요.

저도 가봤는데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는 분들이 매우 많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말하는 거죠?
그렇죠.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준비하고 계획해서 살아가는데, 어떤 사진가라는 이상한 놈이 나와서 스튜디오랍시고 차려놓고 ‘네 마음대로 놀아라.’ 해요. 사람들이 전시장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리둥절해 하거든요. 전시는 당연히 이런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게 전시래요. 심지어 모자도 쓰고, 의자에 앉을 수도 있어요. 뭔가 대접받는 느낌도 들죠. 많은 사람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 걸 보면서 ‘사람들은 경험에는 시간을 쓰는구나.’ 생각했죠. 경험할 수 있는 것,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을 어떤 아이콘이나 그런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앞으로 이런 게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음…. 진정성을 전달하려면 이렇게 하면 안 되겠죠?

이것도 충분히 진정성이 느껴지는데요(웃음).
그런데 그거 말고, 소수를 위한, 정말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전시를 할 거면 이렇게 하면 안 되고, 다수를 위해서 밥상을 차릴 거면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전시 자체가 ‘최랄라’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장소 같았어요. 일기장 같은 수첩도 있고요. 자신을 드러내는 데 망설임 같은 건 없었나요?
전혀요. 어차피 저는 사진 찍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이건 전혀 숨길 게 아니잖아요. ‘나는 사진을 찍고 있고 이런 장소에서 이렇게 찍었어.’라고 친절하게 말한 거죠. 사실 오픈한 것도 없어요. 막말로 내가 손에 쥔 게 있어야 숨길 것도 있는데, 그런 게 전혀 없거든요. 심지어 옷도 입고 있는 이거 한 벌이랑 전시장에 걸려 있는 거 한 벌, 두 벌밖에 없어요. 그래서 지금 맨날 하루 입고 하루 빨고, 그렇게 입고 다녀요(웃음).

전시 기획에는 어느 정도 참여했나요?
제가 다 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했어요. 나 이때까지 전시장 다니면서 5분 이상 본 적 없다, 사람들 와서 대충 볼 전시 같으면 안 하겠다,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하게끔 놔둬라. 그리고 애초에 작가에게 맡기는 그런 기획이었던 것 같아요.

‘Always boring, Always sleepy’라는 전시명도 직접 지었나요?
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좀 지루하고, 항상 졸린 놈이에요. 저 문장은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고 쓰기도 하고 남들에게 보여주기도 했어요.

전시장과 랄라 씨의 스튜디오가 정말 비슷해요?
지금 여기 보면 물건이 거의 없어요. 의자도 테이블도 다 전시장에 가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휑하고 깔끔한 거였군요. 여기가 스튜디오인가요?
여기는 몇 명의 사진가와 한 명의 화가가 쓰는 스튜디오예요. 그냥 휴게소로 보시면 돼요. 스튜디오는 지금 문래동에 만들고 있어요. 거기로 갈 예정이고, 또 제가 최근에 이사를 가서 지금 집에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여기에 와있는 거죠.

《노르웨이의 숲》을 보고 노르웨이에 갔다 왔다고 들었어요. 첫 작품명은 밀란 쿤테라Milan Kundera의 소설 제목에서 따왔고요. 평소 책을 즐겨 읽나요?
아니요. 독서 정말 싫어합니다. 그냥 궁금한 것만 봐요.

그럼 두 책은 어떻게 보게 된 거예요?
살던 집에 책이 놓여 있었는데, 커버가 너무 예뻤어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커버가 마그리트René Magritte 그림이었거든요. 그거 보고 반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첫 장을 보자마자 “이거다!” 하고 타이틀로 정해버렸죠.

취미가 독서가 아닐까 했어요.
아니요, 전혀. 저는 혼자 생각하는 거 되게 좋아하고요. 책에 길이 있다고 하는데, 분명히 길이 있을 거예요. 많은 길이 있겠죠. 책을 읽고 달변가가 되고 좀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저는 살아가면서 내가 느끼는 것들로 나를 채워가니까 그걸로 만족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내가 생각하고 스케치했던 것들, 개인 작업을 다시 시작하려고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어요. 상업적인 작업도 재미있는데, 그건 돈이 없어서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하고, 그게 아니면 벌어놓은 걸로 내 작업에 쏟아붓죠.

마지막 질문이에요. 사진을 시작하고 가장 좋았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사진 찍을 때는 다 좋아요. 찍기 위해 생각하는 것도 너무 좋고, 찍을 때도 행복해요. 사진 찍을 때만큼은 해맑고 웃기도 많이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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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혜원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