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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는 대학 때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가 눌러앉았다. 가족이 제노바에서 식당을 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식당에서 걸음마를 뗐고 식당 밥만 먹고 자란 터라 로베르토는 식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았다. 덕분에 한국의 이탈리안 식당에서 일자리를 찾긴 쉬웠다.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만 살던 제노바의 생활보다 늘 최신과 첨단을 좇는 서울의 속도가 좋았던 로베르토는 셰프이자 사촌인 알베르토를 설득해 ‘데투치’를 열었다.
둘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알베르토의 종교는 전통인 반면 로베르토는 신앙을 저버린 탕아였다.
“전통을 따를 거면 제노바에 있었지 뭐 하러 서울에 왔겠어?”
“요리의 핵심은 전통이야. 발버둥 쳐봐야 벗어날 수 없어.”
소득 없이 임대료만 내며 시간을 보낼 순 없었기에 둘은 타협점을 찾았다. 홀은 로베르토가, 주방은 알베르토가 책임지되 서로의 영역을 철저히 구분했다. 홀과 주방의 분위기가 따로 노는, 데투치의 기이한 풍경은 그렇게 생겼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메뉴였다.
“팀파노를 내자고? 그게 뭔지 아무도 모르는데 누가 시키겠어? 전에 일하던 식당에서 소 혀랑 본매로를 냈지만 아무도 시키지 않아서 재료만 버리다 결국 메뉴에서 없앴거든. 한국에서 이탈리아 요리는 파스타, 피자, 스테이크야.”
“피자나 빚고 고기나 구우라고? 그건 불을 처음 발견했을 때나 한 짓이지, 내가 야만인이냐? 식당을 짐승 우리로 만들 수 없어. 우리 문명인답게 행동하자. 주방은 내 영역이야. 메뉴 역시 내 영역이란 뜻이지.”
“메뉴는 내 영역이기도 해! 그걸 손님한테 권하고 서빙하는 사람은 나야. 불평을 듣는 것도 나고. 너 대단한 거 알아. 그래서 불렀고. 하지만 넌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몰라.”
“내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알려 줘야지. 진짜 요리가 뭔지.”
“식당은 학교가 아니야! 사람들은 그저 맛있는 음식 먹으며 즐거운 시간 보내러 오는 거라고! 기껏 데이트하러 와서 음식 주문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되고 싶겠어?”
“한 칸 내려가면 다음엔 두 칸 내려가게 될 거야. 우리가 내려갈 게 아니라 사람들을 올라오게 해야지. 그건 배려가 아냐.”
알베르토가 ‘정크푸드’는 만들지 않겠다고 버티니 로베르토가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식당은 잘 굴러가지 않았다. 낯선 메뉴를 보고 그냥 나가는 커플도 많았고 맛있게 먹은 사람도 자주 오기엔 너무 비쌌다. 하나같이 고급 식재료를 쓰고 손이 많이 가는 요리라 가격을 내릴 수 없었다.
“이러다 우리 진짜 망하겠어. 런치 세트 메뉴라도 만들자.”
“런치 세트? 파스타 하나 주문하면 이것저것 같이 내자고? 차라리 공짜로 주는 게 낫지. 내 요리를 모욕하지 마. 로베르토,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만드는 거야.”
“우리의 가치? 우리? 맨날 너 하고 싶은 대로만 하다 망할 판인데 무슨 놈의 가치! 지금까지 네 고집대로 했으니 이제 내 차례야.”
로베르토의 아이디어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를 초대하는 것이었다.
“로베르토, 너 자꾸 왜 이러니. 요리는 눈으로 보고, 냄새 맡고, 소리를 듣고, 입으로 먹는 거야. 사진으론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아.”
“아무도 안 오는데 다 무슨 소용이야? 일단 와야 맛을 볼 거 아냐. 내가 사람들을 오게 할 테니 그때 그 잘난 요리를 실컷 내라구!”
로베르토는 팔로워 수가 20만 명이 넘는 인플루언서에게 연락했고 식당에 활기를 불어넣을 요량으로 친구들을 초대했다.
친구의 친구로 운 좋게 초대받은 나는 그날의 만찬을 잊지 못한다. 뭘 먹었는지 말하고 싶어 미치겠지만 말할 수 없다. 뭘 먹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2미터가 넘는 농어가 배달되는 걸 봤다는 둥 식당 옥상에서 대마초를 재배해 수프에 넣는다는 둥 건물 지하에 전용 방앗간이 있다는 둥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고기로 육수를 우린다는 둥 데투치에 한 번이라도 온 사람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로베르토는 티스푼으로 잔을 울렸다.
“이제 나올 요리는 한 분도 드신 적이 없을 거예요. 제노바 토박이인 우리 가족은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로 식당을 꾸려 왔고 데투치의 요리도 대부분 그 레시피에 기반합니다. 최고의 레시피는 아직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에요. 어떤 정보도 드리지 않을 테니 오직 여러분의 오감으로 느껴 보세요. 미각의 탐험가가 되는 겁니다.”
빵과 식전주가 나오자 환호성이 일었고 그때만 해도 즐거운 분위기로 시끌벅적했다. 전채가 나오자 참석자들은 일대 충격에 빠졌고 1코스, 2코스를 거쳐 디저트와 식후주로 이어지는 동안 말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복잡미묘하게 얽힌 향과 색, 음식이 혀에 닿는 감촉과 씹히는 느낌은 몸에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부위를 일깨우는 듯했다. 그저 앞에 놓인 접시만 비울 뿐이었다. 요리에서 짠맛이 점점 강해졌는데 그건 알베르토의 혀에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라 다들 감격의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모두 각자의 이유로 흐느꼈다. 누구는 어머니의 형편없는 요리를 원망했고, 누구는 평생 쓰레기만 먹었다며 한탄했고, 누구는 함께 오기로 했다가 일이 생겨 못 온 애인을 동정했고, 누구는 앞으로 어떤 음식을 먹어도 아무 감흥이 없으리라고 걱정했고, 누구는 더 살아 무엇 하느냐며 가슴팍을 두드렸고, 누구는 내장이 찢어질 듯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다들 눈물을 쏟았지만 지상 최고의, 아니 천상의 요리를 맛본 기쁨으로 환희에 찼다. 울면서 먹었고 웃으면서 마셨다. 인플루언서는 연락도 없이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데투치는 망했다. 로베르토와 알베르토의 갈등 탓일까?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한 알베르토 탓일까? 귀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뭇사람 탓일까? 먹는 행위란 대체 무엇일까?
글·그림 이기준(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