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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 작가·뮤지션
게임 ‘동물의 숲’에선 지나가는 주민에게 손쉽게 안부를 묻는다. 주머니를 기꺼이 펼쳐 보이며 가지고 있는 것들을 선뜻 건넨다. 빵, 과일, 생선…. 필요한 게 있을 땐 ‘그거’ 가지고 있느냐고 넌지시 묻기도 한다. 지은은 전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이 세계에도 만나면 가방을 열어 책을 건네는 환대가 있다는 것을, 만나서 반갑다며 복숭아를 쥐여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지은은 긴 시간 발목에 달려 있던 추들을, 어쩐지 전주로 와 하나씩 떼어내기 시작한다. 마음이 좋아져서 전주로 온 건지, 전주로 와서 마음이 좋아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간결한 보폭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걸음이 한결 굳세고 산뜻하다. 처음 밟는 땅을 걷고 있는 지은은 준비가 되면 이따금 이야기하겠지, “저, 공연합니다. 전주에서요.” 하고. 전라북도 ‘동물의 숲’에서, 간간이 초대장이 도착할 테다.
상상만 해도 아름답네요. 지리산의 품에서 하는 수영이라니….
반려견 ‘흑당이’랑 즉흥적으로 변산 해수욕장에 가서 놀다 오는 것도 좋아해요. 변산반도도 차로 한 시간이면 가는 데다가, 고속도로가 아니라 논밭 뷰이기 때문에 하늘과 밭 색깔을 보며 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확 좋아지거든요. 저는 지금 제 삶이 제가 동경해 온 미국 여성 작가 에세이에서 나오던 이야기 같아요. 대체로 그들은 뉴욕이 아닌 변두리에 살며 어느 호숫가에서 카약을 타고 개랑 한 시간씩 숲을 걷곤 하는데, 그 멋진 걸 제가 사는 데서도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누군가는 마포 래미안에서, 반포 자이에서 사는 게 최고 목표겠지만 저는 전주 구시가지의 두 글자 아파트에 사는 게 좋아요. 현대, 장미 같은 이름을 가진 곳들이요. 그런 곳에 살면서 수영장에 다니고, 이렇게 훌쩍 구례나 변산을 다니는 거. 게다가 서울을 오가기에도 편해요. 전주역에서 용산역까지 KTX로 1시간 40분이거든요. 파주에서 강남 가는 것보다 전주에서 용산 가는 게 쉬워요. 제 세계관에선 지금의 제가 끝판왕이에요(웃음).
지은 씨는 일적으로도 전주를 거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선보인 오지은서영호 공연도 전주에서 시작했고, 앞으로 공연은 되도록 전주에서 먼저 하고 싶다고 하셨죠.
서울에는, 홍대에는 수 개의 라이브 클럽이 있고 매일 공연이 열리지만 전주는 달라요. 지금은 씨앗을 심어야 하는 시기라고 봐요. 싹이 틀지 확신할 순 없지만 제가 할 수 있을 때 뭐라도 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요. 누군가는 자의식 과잉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근데, 저한테는 그냥 의식이에요. 앞으로 제 모든 북토크, 공연의 첫 회는 될 수 있으면 전주에서 하려고 해요. 제 공연만이라도 전주 사람들이 먼저 보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서요.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더 빨리 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전주로 오시겠죠. 타지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공연을 보러 서울로 갔잖아요. 그 거점을 전주로 옮겨보면 어떨까 싶은 거죠.
많은 부분이 그렇지만 확실히 문화·예술 인프라는 서울에 훨씬 더 집중되어 있죠.
서울은 누군가가 숟가락을 들고 이거 먹어라, 저거 먹으라 하면서 떠먹여 줘서 이미 배가 불러 있는 곳이라면, 전주는 누군가가 숟가락을 들고 있으면 “대박! 나 먹어볼래!” 하는 분위기예요. 워낙 자원이 없고, 수요도, 인프라도 적으니까요. 그러니까 여기 남아 문화·예술계를 이끌어가는 이들에겐 어떤 결심이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그들 생각을 100퍼센트 알 순 없지만, 서울에서 일할 수도 있고, 전주에서 문화·예술 일이 아닌 걸로 살아갈 수도 있을 텐데 팍팍한 와중에도 여기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잖아요. 전주는 서울에 비하면 문화·예술 향유자의 비중도 적어서 이쪽 일로는 떼돈을 벌 순 없거든요.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으니 노력도 엄청나게 해야 하고요. 그럼에도 여기를 지키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건, 제 오해일지라도 대단한 결심이었을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전주의 가게 사장님들이 저를 환대해 주실 때 자주 생각해요. ‘나 지금 전주에서 아주 사치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구나.’ 하고요.
에디터 이주연(산책방)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