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용기를 실어 보내며

파도식물

한 사람의 내면에 용기가 자라나기까진 무수한 시행착오와 다짐이 필요하다. 파도식물은 마음 속 물결치던 숱한 질문들을 거쳐 자신들만의 용기를 피울 자리를 찾아 여정을 떠난다. 씨를 품고선 먼바다를 항해하는 모감주나무처럼 말이다.

반가워요.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해요.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식물로 활동하는 플랜트 크리에이티브팀 파도식물입니다. 현재는 아트디렉터, 카피라이터, 프로게이머 팀 코치, 한국전력공사 출신의 흥미로운 이력을 가진 네 사람이 조합된 크루지요. 저희는 파도식물을 소개할 때 “식물로 활동합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자연을 매개로 장르와 경계 없는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어요. 

 

파도와 식물, 두 단어의 조합이 굉장히 신선해요. 모감주나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검색을 해봤는데 돛단배를 닮아 놀랐어요. 

브랜드명을 고민할 때 식물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모감주나무를 알게 됐어요. 모감주나무의 씨방은 꼭 배 모양을 닮았어요. 가지 끝에 달려 있을 때는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바다에선 안정적으로 물 위를 항해할 수 있도록 디자인이 되어 있죠. 덕분에 서로 다른 대륙의 해안가에서 모감주나무 군락을 발견할 수 있어요. 정착할 수 없는 파도와 떠날 수 없는 식물처럼 너무나도 다른 두 존재가 상호작용하며 펼쳐내는 풍경에 깊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브랜드가 파도와 식물의 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냈지요. 

 

파도식물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우아하고 드라마틱하다기 보단 ‘Think Survival’이나 다름없는 이야기랍니다. 재직하던 광고 회사에서 만난 저희 스승님 김호철 ECDExecutive Creative Director님과 작은 광고 회사를 꾸렸는데요. 당시 살던 집 월세를 직접 충당해야 했고, 마침 회사 차량이 다마스였어요. 뭔가 해보면 좋을 것 같다며 몇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는데 그중 하나가 졸업식 꽃장사였지요. 회사에서 꽃다발을 만들어서 새벽부터 교문에서 장사를 했어요.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재미가 붙어 해방촌 길에서 다마스를 열고선 주말마다 꽃을 팔았죠.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란 시간이 훌쩍 넘어가면서 사람들과 식물로 안부를 묻고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어요. 그쯤부터 우리만의 공간과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지요. 

 

파도식물을 운영하며 ‘단 한 사람도 똑같은 식물을 구매할 수 없게끔 한다.’ 라는 원칙을 세웠다고요. 운영 할 때도 가급적 식물을 추천해 주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추천해 달라고 말씀하시지만 이미 속으로 정해놓으신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오래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절대 안 죽는다는 다육식물을 사다가 ‘툭’ 두고선 있는 듯 없는 듯 한 달에 한 번 물 주는 것보다는 한눈에 마음에 드는 아이를 데려가는 편이 더 좋죠. 예뻐야 궁금해져요. 예쁜 걸 보면 잘해주고 싶은 건 사람이나 식물이나 매한가지니까요. 자주 대화하고 싶어지고, 스칠 때마다 흐뭇해지는 식물들로 골라 가시라고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시간이 지나며 그런 권유가 나름의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잘 안 죽는 식물이 있나요?’는 식물 상점에 갈 때마다 흔히 하게 되는 질문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괜히 반성하게 되네요. 그렇다면 식물 상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듣기 좋았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식물 같으시네요.”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착실히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그렇게 살고 있긴 한 걸까?” 나름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하게 되었죠. 

 

많은 식물들과 이별을 하셨을 텐데, 식물을 보내겠다는 결심은 언제쯤 오나요? 

먼저 양심에 걸리지 않아야 해요. 저희가 상상하던 모습에 가까워진 친구들을 보면 준비를 하게 돼요. 좋지 않은 의도로 구매하시려는 분께도 판매를 거부한 적도 많아요. 반면 이 사람에게는 보내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겨서 가격을 낮춰서라도 “이 아이를 잘 좀 부탁드립니다.” 하고 보내기도 했어요. 그렇게 보낸 아이들을 “이렇게 컸어요!” 하고 사진을 보내주시기도 했는데 덩달아 기쁜 마음이 들었지요. 물론 식물은 무소식이 희소식이지만요.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디어 아마존 : 인류세 2019>에서 참여하신 것이 기억나요. 로봇 청소기를 타고 전시장을 누비며 작품을 관람하는 식물들은 꼭 사람처럼 보이더라고요. 

자연 소재로 작업을 하다 보니 조금 더 유연하게 생각하려는 편인데요. 좀 멍청한 질문으로 시작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디어 아마존 : 인류세 2019>는 전 지구적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인류세*’에 관해 한국과 브라질의 작가들이 이를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표현하여 꾸린 전시였어요. 사람으로 인해 벌어진 세태에 대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메시지를 던지고 이를 또 다른 사람이 관람하며 고찰하는 것이죠. 돌연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환경 문제에 무게를 둔 이 전시를 식물들이 관람한다면 어떨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저희는 관람객들 또한 이런 질문을 하며 부끄러움을 느끼길 바랐죠. “아이고 식물들아 내가 너희들을 볼 면목이 없다.” 하면서요. 

 

그 중에서도 엘리베이터 내부를 화분으로 채워 넣은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그린 허그’는 저희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인데요. 저희는 늘 식물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곤 해요. 손님이 크기가 큰 식물을 구매하면 위치도 봐 드리고 가이드도 드릴 겸 직접 배송을 나가는 편이거든요. 키가 큰 화분들을 싣고 나면 엘리베이터가 꽉 차는데요. 다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는데 사람들로 만원일 때 순간적으로 갈등하게 되잖아요. 만약 그게 사람이 아니라 식물이라면 어떻게 다가올까 싶었어요. 아마 사람들과 부대끼며 한 공간에 갇혀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거예요. 여러 그림을 펼쳐가보고 싶어요. 앞으로의 작품 활동도 꾸준히 지켜봐 주셨으면 해요. 

 

처음 ‘바닷가의 오래된 숍’을 콘셉트로 효창동에 오픈하셨죠. 요즘은 제주도에 자리를 잡고 활동 중이시고요. 모감주나무의 씨앗처럼, 바다를 건너 주변에 자리를 잡았네요. 물론 시내 한복판이므로 해변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조금만 걸으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파도식물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주에 오신 것을 실감하시나요? 

그러게요. 그래서 더욱 말조심을 하려고 해요(웃음). 여전히 작업실은 효창동에 있긴 해요.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서울에서 진행이 되기 때문에 최근 1년 동안엔 서울과 제주를 출퇴근하다시피 오가며 생활을 하고 있죠. 제주에선 꽤 재미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요. 숍에서 백서른여덟 발자국이면 바다 뚝방에 다다라요. 고개를 들면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것이 보이고요. 제주항과 재래시장, 대형 호텔과 마트, 프렌차이즈 버거집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죠. 제주의 정취를 느끼기엔 어렵지만 팀원들과 바람을 체크하고, 매년 태풍을 대비하면서 실감하곤 해요. ‘아 여기 제주도였지!’ 

 

제주에서 본 풍경 중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을 꼽아보자면요? 

아무도 없는 서쪽 해안에서 본, 타오르는 듯했던 노을이요. 아무 생각 없이 바다 향기를 맡고 바람을 맞는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요즘은 바닷가에 나가 노을을 보는 일이 줄긴 했지만,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오늘의 식물들 광합성은 끝났구나.’ 하고 생각해요. 

 

제주도의 산림이 무차별로 훼손되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어요. 

무성하게 잡초가 자란 산소를 보며 어떤 사람들은 저 집은 기본이 안 되어 있다며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식물은 더 반가울지도 몰라요. 벌초를 안 당해도 되니까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산림 개발만큼은 피해 갔으면 해요. 개발을 하더라도 수천 번 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했으면 해요. 느리게, 느리게.

 

식물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인간과 식물이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갈수록 사람이 설 자리가 없어질 거예요. 많은 것들이 AI로 대체되고 있잖아요. 이대로 계속해서 인구가 고령화된다면 많은 곳에 침묵이 찾아올 테고요. 그 와중에 노후화된 건물이나 쇠퇴한 단지 등은 흉하게 두기보다는 자연 친화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더 생기면 어떨까 싶어요. 마치 사람에게도, 식물에도 좋은 공동경비구역처럼요. 사실 사람이 뭔가 하려는 게 환경 파괴가 아닐까요? 요즘 따라 그 생각이 자주 들어 서글퍼지곤 해요. 

그렇다면 파도식물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용기를 내고 있나요? 

음… 지구를 위해 엄마 말 잘 듣고 있습니다. 길에 침 안 뱉고, 분리배출 열심히 하고, 될 수 있음 리필 하려고 하고 장바구니나 텀블러를 쓰죠. 플랜트바 용기는 테이크아웃을 아예 금지했고요. 작은 묘목이라도 자꾸 심고 가꾸면서 지구를 위한 일들을 고민하고 도모하죠. 그렇게 지금처럼 파도식물만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식물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메시지를 제공하고 싶어요. 

 

“자연 앞의 겸손함, 환경에 대한 경각심도 길 아래 핀 작은 풀에 관심을 가지는 일, 친구에게 선물 받은 식물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 있어요. 

땅과 바다가 더 이상 안전한 것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기후가 우리의 명랑한 생활에 위협이 되는 상황 때문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이 아니길 바라요. 그보다는 감사한 순간과 즐겁고 행복한 기억의 레이어가 더 많이 쌓여야 해요. 어느 날 우연히 선물 받은 작은 화초 덕분에 내 책상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겠죠? 이런 소소한 기쁨이 다른 관심으로 이어진다고 믿어요. 내가 다니는 출근길에 이런 꽃나무가 있구나, 공원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이 이런 위로를 주는구나, 나무와 함께 깨끗이 늙어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감사한 것들이 많아지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에 의문이 생길 거예요. 그런 의문들은 나아가 어떤 작고 용감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죠. 긍정의 연쇄 작용은 강력하니까요. 

 

제주 오일장에서 공수한 식재료로 건강한 요리와 주류를 페어링하여 내어주는 플랜트바 ‘용기’를 운영하고 있지요. “나와 내 친구들이 살곰살곰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게 환경 보호든 지구 평화든 크게 이바지하는 것이라 믿어.” 예상치 못한 행보라 생각했는데, 이 문장을 읽고 파도 식물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어요. 

어쩌다 보니 식물과 와인을 소개하는 요식물업을 하고 있네요. 사실 저희는 식물이 아닌 식물과 함께하는 생활을 판다고 생각해요. 파도식물을 식물로 시작했다면 ‘용기’를 통해 식물과 먹고 마시는 것을 묶어보고 싶었어요. 식물로 발 디딜 틈 없던 작업실에서 좋은 사람들과 요리해 먹고 즐겁게 마신 기억이 있어요. 그걸 공유하고 싶어 확장한 거예요. 우리가 지금껏 키워온 식물이 있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따듯한 한 끼를 내어주고, 모두가 좋아하는 다양한 술을 즐길 수 있는 100평 공간 말이에요. 서로 용기를 주고받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도 플랜트바 ‘용기’죠. 건강한 생각을 할 새도 없고 엉뚱한 음식 때문에 배가 더부룩한데 지구 환경이 무슨 상관이겠어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모아두고 근사하게 취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보려 했어요. 내추럴 와인을 취급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죠. 그저 유행을 좇기 위해서가 아닌 땅의 이야기를 듣고 자연과 공존을 고려하는 생산자의 철학과 만들어가는 방식에 공감했기 때문이에요.

Ⓒ 파도식물

처음 파도식물 용기를 오픈했을 때, 임의로 시그니처 메뉴를 정해두는 대신 날마다 다른 요리들을 선보였죠. 메뉴의 일관성이 없는 게 제법 용기답다고 생각했어요. 특히나 첫 메뉴를 감자 사라다빵으로 내놓았지요. 어떻게 사라다빵을 첫 타자로 삼게 되었나요? 

사라다라면 다들 한마디씩 이야기하고 싶을 거예요. 찐 감자, 달걀, 고소한 마요네즈 냄새, 사이사이에 리드미컬하게 씹히는 양파와 오이. 누군가는 설탕이 비법이기도 하지요. 어떤 집에선 콘 옥수수나 햄이 들어가기도 했을 테고요. 집마다 엄마의 레시피가 달라서 더 재미있는 음식이에요. 특별한 맛까진 아니지만 좋았던 기억 덕분에 더 맛있게 느껴지지요. 우리들의 작은 용기는 어쩌면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어수룩한 요리를 용기의 첫 메뉴로 소개해보았어요. 

 

식물을 키우고 소개하는 일과 음식을 만들고 내어주는 일은 어떤 점이 같고 다른가요? 

“꽃을 하는 사람은 정직합니다.” 자주 다니는 도매 시장에 가면 어느 화원 앞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어요. 처음 보았을 때 이 문장의 무게감이 느껴져 한동안 앓았던 적이 있어요. 저 문장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거든요. “젊은 친구, 식물을 하는 사람은 정직해야 합니다.” 본인의 업에 대해 누가 이렇게 과감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겠어요. 그만큼 오래 곱씹게 되는 문장이었어요. 식당 운영도 마찬가지죠. 식물과 음식은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지요. 작은 차이가 있다면, 식당은 반응이 꽤 즉각적이에요. 드실 때의 표정과 가시고 난 후의 잔과 접시를 보면 맛있게 드셨는지 아닌지 알 수 있죠.

 

용기를 가꾸시는 동안 여러 질문을 거듭하셨던 거 같아요. SNS 속 한 게시글에 그간의 고민들을 적어두셨는데요. “왜 식물이어야 할까?”로부터 시작된 물음은 “사람도 식물도 다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과 식물을 구매하는 것이 동시간에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람의 동선이 먼저일까? 식물의 세팅이 먼저일까? 식사하면서 느끼는 아름다운 식물의 모습은 무엇일까?” 등 여러 갈래로 뻗어나갔지요. 그러다가도 다시 “왜 식물이어야 할까?”로 귀결되더라고요. 용기를 운영하면서 이에 대한 답을 조금 찾으셨나요? 

용기를 10년쯤 운영하게 된다면, 그때 저희 팀과 공간의 모습이 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정성과 진심이 담긴, 변하지 않은 접시 하나. 부담스럽지 않은 친절과 공간을 채운 사람들의 미소. 그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쌓여야만 ‘역시 식물이어야만 했구나.’ 하지 않을까요?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요, 저희 공간은 자라고 있다는 거예요.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식물들이 더 자란 장면을 보는 일 또한 용기를 즐기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공존은 이해와 상상에서 비롯되는 일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식물의 마음을 읽고 소통하는 일을 하고 계신 파도식물은 식물의 언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있나요? 

이해와 상상이라는 말에 공감해요. 리처드 파워스Richard Powers의 장편 소설 《오버 스토리》에 보면 이런 비유가 나옵니다. “지구라는 행성의 지금까지 역사를 딱 하루라고 했을 때, 동물과 식물이 나누어지는 것은 하루의 3분의 2가 흘렀을 때쯤, 저녁 9시에 해파리와 벌레들이 나타나고, 식물들은 밤 10시가 되기 직전에 육지로 올라온다. 인간은 자정이 되기 4초 전에 나타난 생명체다. 나무의 세계에 인간은 막 도착했다.” 우리는 딱 화분만큼의 흙에 식물을 앉혀 두고, 주 1회 그에 물을 주며 주인의식을 느끼지요. 인간은 식물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존재지만 사실 식물은 당신이 필요 없을지도 몰라요. 식물에게 우리는 이방인이자 침략자니까요. 저는 공기 정화 식물이라는 말을 정말 싫어하는데요. 사실 공기는 정화될 필요가 없는 편이 더 좋았을 거예요. 식물은 인간보다 더 상위 존재예요. 코로나건 챗지피티Chat GPT건 식물의 언어에는 없는 개념이죠. 지구의 가장 늦은 세입자로서 최소한의 염치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견주인 분들은 반려동물과 육성으로 대화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랑해.”가 아닌 아플 때 “아파.”라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라더라고요. 식물과 대화하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가요? 

잔소리를 하도 많이 들을 것 같아서 대화하고 싶진 않은데요(웃음). 무엇보다 제 마음이 어떠하건 식물은 상관없을 거예요. 식물은 그냥 자기 뜻대로 자랄 테니까요. 

 

식물과 함께하는 동안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나요? 

성장까진 잘 모르겠지만요, 어쩔 땐 이런 생각이 들어요. 풀지 않아도 되는 인생의 문제집을 한 권 더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요. 귀찮기도 하고 단원이 넘어갈수록 어렵기도 하죠. 제3의 외국어처럼 느껴져요. 앞서 말했듯이 파도식물은 먼저 식물을 추천하지 않아요. 모두 알고 있겠지만 식물 따위 안 키워도 사는 데 문제는 없어요. 하지만 운동과 함께 가는 삶이 운동과 함께하지 않는 삶과 전혀 다르듯 모든 게 마찬가지 아닐까요? 저희야 식물이라는 언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보람도 찾고 돈도 벌고 있으니 좋지만요. 

 

용기의 룰 중 여섯째 항목은 “각자 나다운 것이 용기다운 것이다.”지요. 그렇다면 파도식물다운 것은 무엇일까요? 

파도식물과 용기. 저희 팀은 뭐랄까, 구김이 없어요. 씩씩하게 잘 먹고, 잘 마시고, 또 잘 놀아요. 여기에서 나오는 귀여운 에너지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요. 앞으로도 우리다웠으면 하는 게 있다면, “나에게 솔직하고, 나에게 쪽팔리지 않았으면.”

Ⓒ 파도식물

파도식물은 잘 안 죽는 사람 없듯이, 잘 안 죽는 식물도 없다고 당차게 말한다. 인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식물을 필요로 해도, 식물들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이왕이면 식물과 인간이 함께 잘 먹고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그들이 보낸 식물들이 파도를 타고 널리 널리 가서는 누군가의 곁에 잘 정착해 잘 살아가기를 염원하며, 돌아오지 않아도 될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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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오은재

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