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의 산책 : Leek

대파

재료의 산책
대파 Leek

왜 모든 그림 속 장바구니 위로는 대파가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있을까. ‘대파’ 하면 닭꼬치의 고깃살 사이에 쉬어가는 징검다리, 라면 위에 어슷하게 얹어진 몇 점의 고명, 생선조림의 무와 생선 사이에 끼워져있는 늘어진 조연 같은 모습이 떠오르는 게 전부인데 장바구니에선 주역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음식의 뿌리 역할을 하는 대파를 상징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한파를 이겨낸 대파는 겹겹의 섬유로 단단하게 둘러싸인 겨울의 달콤한 기둥이다. 푸른 부분이 굵고 짙은 색인 것, 흰 부분과의 이음매 부분을 눌러보았을 때 단단한 것, 뿌리가 더 풍성할수록 좋다. 건강한 대파를 식탁의 주재료로 생각해보자. 요리를 해보면 서서히 우러나오는 단맛에서 추위가 채소를 얼마나 긴장시켰는지 알 수 있다. 

대파를 구우면 특유의 매운맛은 사라지고 단맛이 도드라진다. 내가 처음 이 단맛을 느낀 것은 놀랍게도 대파의 푸른 부분에서였다. 예전에 일하던 가게에서는(보통 그렇듯이) 대파의 흰 부분만을 썼기 때문에 스태프들은 산더미처럼 남겨진 푸른 부분을 버리지 않고 어떻게 요리해 먹을 것인가에 대해 연구했다.

그때 파를 믿어보자는 마음으로 올리브오일에 마늘과 고추로 향을 내다가 푸른 파와 파스타 면을 넣고 볶아 일명 ‘파 파스타’를 만들었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 이후로 파의 푸른 부분이 많이 쌓이기만을 기다리게 될 정도였다. 특유의 단맛과 대파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점성이 파스타 면을 감싸고돌았다. 다른 어떤 재료도 필요하지 않았다. 대파가 요리의 주역으로 충분한 채소였다니. 항상 가까이 있었지만 스쳐지나 보냈던 대파의 매력을 다시 느껴보자.

RECIPE 01
대파의 향을
기름에 옮기다

기름의 열에 의해 가지고 있는 향이 두 배가 되는 채소들이 있다. 샐러리, 양파, 그리고 대파 등이 그렇다. 파를 잘게 썰어 올리브오일과 함께 약불에 올려놓으면 그 향만으로 모든 요리가 맛있게 변할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실제로 향의 힘은 굉장해서 단지 감자 한 알과 볶아도, 생선 한 마리만 넣고 구워도 별다른 조미료가 필요 없을 만큼 만족스러운 맛이 난다. 매번 대파를 손질해 기름에 볶기가 번거롭다면 미리 대파의 향을 기름에 옮겨 담아놓자. 참기름 한 방울보다 대파 기름 한 방울이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른다.

재 료

대파 적당량, 식용유 혹은 올리브오일

만드는 법 

요리에 적합하게 쓰고 남은 대파들을 작은 크기로 썰어 식용유 혹은 올리브오일에 넣고 약불에 올린다. 튀기는 듯한 느낌으로 지켜보다 대파가 갈색이 될 때쯤 불을 끈다. 보관할 용기에 체를 받쳐 대파를 거르며 기름을 붓는다. 튀기는 과정이 부담스러울 때는 대파를 그냥 기름에 담가 보관해 두어도 좋다.

RECIPE 02
대파를 느긋이 볶아
그라탕으로 만들다

지독한 독감에 걸린 친구의 집에 가서 신세를 진 적이 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이불 속에 오므라이스처럼 감겨있는 친구를 보니 감기에 도움이 될 만한 요리를 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감기에 좋다는 양파와 대파를 가지고 평소 우리가 좋아하던 메뉴, 그라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의 집 냉장고는 함부로 뒤질 수도 없는 터라 바깥에 나와 있는 대파와 감자, 마늘만 쓰며 아쉬움을 느꼈는데, 잘게 썬 대파를 조용한 부엌에서 느긋하게 볶는 동안 점점 달콤해지는 향기에 감탄하게 됐다. 생크림도 우유도 없이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한 맛의 그라탕을 만든 것이다. 잠이 덜 깬 상태로도 놀라며 맛있게 먹어준 친구가 감기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또 하나의 비밀을 알게 된 희열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재 료

대파 2대, 감자 1개, 마늘 1쪽, 올리브유 1Ts, 소금, 후추, 바게트 슬라이스 3장, 버터 적당량, 파마산 치즈 적당량, 파슬리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만드는 법 

대파를 얇게 어슷 썰어 올리브유를 두른 프라이팬에서 약불로 볶는다. 어느 정도 대파가 투명해지면 얇게 썬 마늘을 같이 넣고 볶다가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루Roux(소스나 수프를 걸쭉하게 하기 위해 밀가루를 버터로 볶은 것)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어간다. 야채 스톡이 있다면 같이 넣어 볶는다. 감자는 잘 씻어 껍질을 벗기고 삶아둔다. 오븐용 그릇에 만들어둔 대파 소스를 깔고 감자를 얇게 썰어 얹는다. 바게트에 버터를 발라 얹고 기호에 따라 파마산 치즈를 뿌린 뒤 오븐이나 토스터에서 바게트와 감자가 노릇하게 익을 때까지 굽는다. 파슬리를 뿌려 마무리한다.

RECIPE 03
대파를 구워
밥 위에 올리다

가끔 채소가 고기의 맛을 북돋아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가 하는 슬픈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고기만 먹으면 영양소가 부족하니까 곁들여 먹어야 한다든지, 고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갈아 넣는다든지. 다 맞는 말이지만 어쨌든 채소 자체의 맛에 집중할 기회는 흔치 않다는 단점도 간과할 수 없다. 가끔은 한 가지 채소만으로 요리하는 습관을 가져보자. 한 사람을 잘 알기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듯, 한 가지의 채소를 아는 일도 그렇다.

재 료

대파 1 쪽의 흰 부분, 생강 조금, 밀가루 적당량, 참기름 1ts, 미소 1ts, 식초 1ts,미림 2ts, 소금, 후추, 물 80~100cc, 올리브유 적당량, 달걀2개, 밥 한 공기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만드는 법

대파의 흰 부분을 조금 굵게 어슷 썰어 밀가루를 골고루 묻힌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대파의 양면을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표면이 익으면 물을 조금씩 넣고 뚜껑을 덮어 익힌다. 미소, 식초, 미림을 잘 섞어 같이 넣고 풀어준다. 계란을 풀어 넣고 저어가며 반숙의 상태로 익힌다. 따뜻한 밥 위에 올리고 참기름을 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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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전진우

글 · 사진 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