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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재료의 산책
Tangerine
귤
누군가의 귤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사람의 내면을 상상해본다. 껍질을 돌돌 돌려 까서 코끼리를 만드는 사람, 과육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떼어놓는 사람, 흰 껍질을 뜯어내고 속살만 발라먹는 사람. 모두가 다른 숨겨진 행동을 관찰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나 같은 경우 혼자 있으면 귤을 하나만 먹어도 더 이상 손이 안 가는 편인데, 여럿이 모여 이야기하면서 귤을 먹으면 어느새 눈앞에 빈 껍질이 수북해 놀라기도 한다. 여러모로 사람과 함께 먹어야 즐거운 과일이 아닌가 싶다.
날이 추워지면 식탁 위에 늘 귤이 올라와 있다. “귤 좀 나눠줄까?”라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아, 우리 집에도 많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일부러 챙겨먹지 않아도 그 자리에 언제나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존재이다. 귤은 그냥 먹어도 좋지만 즙을 내어 마시거나 껍질을 말려 귤 차를 만들어도 알차다. 날이 많이 추워져 간다. 작년 겨울에는 바짝 건조시킨 귤 칩에 폭 빠져있었는데 올해는 왠지 보글보글 끓이는 귤 잼을 만들고 싶다. 큰 솥에 한 가득 끓여서 함께 귤을 까먹던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좋겠다.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 귤이 참 좋다.
RECIPE 01
귤 향기에 젖은
프렌치토스트를 굽다
나는 만성비염의 둔감한 코를 가졌다. 그런 나의 코도 반응하는 사랑스러운 향들이 있다. 계피빵을 굽는 향기, 모히토 속에서 퍼지는 민트의 향기, 그리고 손끝에 깊게 배인 오렌지나 귤의 새콤 찐득한 향기. 누렇게 변해버리는 손끝이 좋아 종종 오렌지나 귤을 오랜 시간 만지작대곤 한다. 조물조물 만지고 있다가 ‘아, 먹고 싶다!’란 생각이 들면 가차 없이 엄지손가락을 푹 찔러 껍질을 까기 시작한다. 조준 미스로 눈에 몇 방울의 과즙이 발사됨과 동시에 싱그러운 향이 주변을 에워싸는 그 순간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예전에 가게에서 감귤파이를 만들어 팔던 때에는 대량의 귤 즙을 내는 매일의 일과가 너무 행복해서 귤 철이 지나고도 메뉴를 내리지 못했었다. 실제로 귤에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향이 들어있다고 한다. 귤 한아름이 가진 효과는 감히 아로마테라피에 버금간다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재 료
호밀빵/식빵 적당량, 달걀 3개, 귤 1~2개, 버터 1Ts, 소금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만드는 법
빵을 2~2.5cm가량으로 썬다. 귤은 반으로 잘라 즙을 낸다. 볼에 달걀을 잘 풀어 귤 즙을 넣고 소금 한 꼬집을 넣는다. 썰어놓은 빵을 계란 물에 넣는다. 빵에 흠뻑 계란 물이 배도록 담가둔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빵의 양쪽 면을 노릇하게 굽는다. 기호에 따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나 슈가 파우더, 시나몬 파우더 등을 곁들여낸다.
RECIPE 02
차가워진 손을 따뜻하게 데워줄
귤 한 컵을 끓이다
또렷이 기억하고 싶은데 날이 지날수록 윤곽이 점점 흐릿해지는 장면들이 있다. 삶의 여러 기억들 중에서 몇 가지만 골라 언제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 더 부지런히 기록을 해뒀다면 도움이 되었을까. 내일이면 잠시 동안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오랜만에 스마트 폰 용량을 비우는 대신 필름카메라를 꺼내고 좋아하는 볼펜을 챙겨본다. 사진 한 장, 일기 한 장, 나의 하루를 기록하는 시간의 농도는 짙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흐릿한 삶은 후회를 불러올 것만 같아 두렵다. 지난주 할머니 댁에 들렀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두 손에 한 움큼 귤을 쥐어주셨다. 이번 여행에서는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오리인형이 있나 구석구석 뒤져보려 한다.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법은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
재 료
레드 와인 750ml, 귤 2~3개, 계피, 팔각/정향, 시나몬 파우더 1/2ts, 꿀 1~2Ts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만드는 법
귤은 껍질째 넣어도 좋고, 껍질을 까서 넣어도 좋다. 껍질째 사용할 시에는 식초 물에 담가두거나 소금으로 문지른 뒤 잘 씻어서 준비한다. 계피와 팔각 또는 정향을 가볍게 부셔 향이 나도록 한다. 냄비에 모든 재료를 넣고 30~40분 가량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끓인다. 달게 마시고 싶다면 꿀이나 설탕의 양을 조절한다. 잘 식혀서 냉장고에 넣으면 2주 가량 보관이 가능하다.
에디터 김건태
글·사진 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