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의 민얼굴을 만난 곳

코흔, 마스에마스, 히어리

재료는 물건의 바탕이 된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는 도화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재료의 민얼굴이 잘 드러나는 물건에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인류가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했던 재료를 떠올렸다. 섬유, 가죽, 흙. 각각의 재료를 다루는 세 명의 디자이너를 만났다.

INTERVIEW 디자이너 이정은

코흔 cohn.

A. 서울시 성북구 창경궁로35길 83 1층
H. cohn.kr
T. 02 742 5232

코흔은 직조, 프린팅, 염색, 니팅, 매듭 등 공예적 기법을 차용해 직물을 만드는 브랜드다. 동시에 직접 만들어 낸 직물을 쓰임이 좋은 물건으로 만든다. 코흔의 제품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정교하다. 만져보면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손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말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혜화문 근처의 쇼룸에는 커다란 직기가 놓여있다. 실제로 직물을 짜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손과 발, 사람과 시간이 함께 움직여야만 한다. 어쩌면 직기야말로 코흔과 가장 닮은 물건인지도 모르겠다.

코흔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유학 시절부터 죽 텍스타일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것의 연장이었어요. 직조와 니팅을 적용해 직물의 용도와 무관한 조형적인 작업을 하다가 좀 더 생산적이고 실용적으로 반전시키고 싶었어요. 그러다 ‘home’, ‘clothing’ 라인으로 나누어 샘플링과 브랜딩한 것이 코흔의 시작이 됐어요. 아틀리에에서 ‘cohn. artisanat’ 라인을 만들어 수작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코흔이 여전히 개인 작업의 연속이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브랜드로써 상업적 완성도를 가지려면 체계적인 브랜딩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유로 그래픽 디자이너와 함께 제품 생산 외 프레젠테이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상의하고 있어요.

코흔의 옷을 처음 봤을 때 옷이 몸을 가두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원단 자체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요. 제품의 소재와 가공 방식, 디자인 모두 결합한 것이겠지만, 특히 집중하는 것이 있나요?
공예 기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만듦새에 있어서 전통적인 요소가 대부분이에요. 이를테면, 원단 끝을 정리하거나 단춧구멍을 뚫을 때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일일이 천을 감싸 바느질로 마감한다든가, 부자재를 사용할 때도 동일한 원단으로 만든 끈이나 싸개 단추를 사용하는 등 최대한 수작업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이것은 저희가 계속해서 소량의 제품을 생산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또 원단 자체의 디자인을 해치지 않기 위해 절개가 필요한 턱tuck이나 다트dart를 배제하고 대신 주름을 잡거나 넉넉한 룸room을 주어 입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옷이 몸을 가두지 않는다는 기분’을 만드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섬유의 기준이 있나요? 실제로 섬유를 고르거나, 직물을 짤 때 어떤 점들을 고려하는지도 궁금하고요.
직물의 촉감texture을 중요시하는 편 이에요. 직조할 때는 원사의 소재나 두께의 조화가 직물의 질감을 결정합니다. 부드러운 원단도 좋지만 가공하지 않은 실의 적당한 거침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볼륨도 좋아하는데, 맨살에 닿는 옷의 경우에는 항상 실키한 면 소재를 안감으로 사용해 피부에는 무리가 가지 않게 해요.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앞서 면, 울, 리넨 등의 100퍼센트 자연 소재만 사용하는 것이 생지와 실을 고르는 기본적인 조건이죠.

섬유에 적용하는 다양한 방식 중 재료 그 자체를 드러내기에 가장 매력적인 방법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코흔을 처음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직조를 다루었어요. 아무래도 가장 원초적인 원단 제작 방식이고 씨실과 날실의 배치에 따라 세밀한 조합을 할 수 있어서 여러 가지 변주가 가능하거든요. 색은 물론 질감까지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염색과 다르고, 한 올 한 올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데에서 니팅보다 더 섬세하다고 생각해 여전히 직조를 주로 연구하고 있어요. 유동적인 패턴과 다양한 색을 표현할 수 있는 실크스크린 또한 코흔의 주된 작업이고요.

텍스타일 디자인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섬유는 부드럽고 형태가 유동적이며 다루기 쉽지만 가공 방법은 무궁무진해요. 직물은 생활에 가장 밀접한 물성이기도 하거든요. 공들여 잘 짜인 직물을 보고 있으면 과정이 가지는 공예적 아름다움과 충실히 제 역할을 하는 기능적 아름다움이 동시에 느껴져요. 무엇보다 저는 직접 직물을 짜는 행위 자체가 참 좋아요.

INTERVIEW 디자이너 이은정

마스에마스 mais e mais

H. maisemais.co.kr
T. 070 4082 1013

마스에마스는 포르투갈어로 ‘점점 더’라는 뜻이다. 구두를 이루는 기본적인 선만을 이용하여 디자인한다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 브랜드다. 이은정 디자이너는 새로운 구두를 만들 때마다 긋고 있는 선이 필요한 선인가를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가죽을 자르는 선, 가죽과 가죽을 잇는 스티치의 선, 구두의 모양을 이루는 선 등을 점검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두는 오랜 시간의 모습을 담아 섬세하면서도 편안한 모양이다.

원래 구두 디자이너로 일하셨다고 들었는데, 마스에마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회사에 다닐 땐 계절마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맞춰 새로운 디자인을 했어요. 일 년에 수백 켤레 구두의 디자인을 했지만 그 구두들의 수명은 길어야 3개월이었죠. 빠르게 만들어져 빠르게 사라져가는 구두는 불편한 점을 수정할 기회도 없이 사라져버려 항상 아쉬웠어요. 이런 고민을 갖고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 도쿄의 구두 가게에서 곡물 빵처럼 생긴 구두를 만났죠. 지퍼나 부속품을 사용하지 않아 일일이 끈을 풀어 신고 벗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가공을 최소한으로 한 소가죽은 시간이 갈수록 색이 예뻐지고 발에 잘 맞아 어느새 제게 맞는 구두가 되었어요. 이런 경험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닮아가고 언젠가 헤어지게 될 때, 고마웠고 즐거웠다고 인사할 수 있는 구두를 만들자고 생각했죠. 2010년 겨울, 수첩에 그려 놓았던 다섯 개의 디자인으로 마스에마스가 시작된 거예요.

마스에마스의 구두를 보면 가죽인데도 불구하고 종이처럼 가벼운 인상이었어요. 보통 가죽이라고 하면 무겁고 진중한 느낌이 있잖아요.
마스에마스가 추구하는 건 비워 내는 디자인이에요. 작업할 때도 필요하지 않은 부분의 작업 공정은 없애버리죠. 뭔가 저 자신과도 닮은 느낌이에요. 저는 필요 없는 물건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잘 주거든요. 이렇게 없애고 주고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인 것 같아요(웃음). “이게 없어도 될까?” 하는 물음에 “응!”이라고 답을 하려면 나름의 노하우가 있어야 하니까요.

좋은 가죽은 어떤 가죽인가요?
도쿄의 가죽 판매점에서는 기본적인 가공만을 한 좋은 가죽들을 많이 찾을 수 있어요. 가격은 높은 편이지만 그런 건 관계없을 만큼 좋은 가죽이죠. 좋은 가죽은 많은 가공을 거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있는 그대로도 멋지니까요. 그런데 더 눈에 띄는 가죽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가공을 하기도 해요. 가죽 윗면에 에나멜 처리를 해서 가죽인지 고무인지 알 수 없게 만들거나 진한 색을 내기 위해 염료를 잔뜩 넣어 염색하기도 하죠. 그런 가죽에 물이 닿으면 염료가 피부에 흡수가 되는 일도 있어요. 저는 있는 그대로 최소한의 가공만 한 가죽을 좋아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다양한 종류의 가죽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아쉽게도 아직 제가 원하는 가죽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마스에마스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디자인이 좋고 만드는 사람이 잘 만들더라도 제일 중요한 건 재료라고 생각하니까요. 많이 부족하지만 자신이 없어서 그만둬버리기보다는 자신 없는 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 안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스에마스의 뜻처럼 점점 더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생고무창을 사용하고 접착제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등, 만드는 사람과 신는 사람에게 모두 좋은 작업 방식을 추구한다고 들었어요. 이런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접착제 사용을 최소화하자’는 생각은 구두공장에 가서 하게 됐어요. 샘플을 넘기는 시간은 길어야 한 시간 남짓인데,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아팠어요. 구두를 만드는 분들은 머리 아픈 냄새와 하루 열시간 넘게 일하고 있어요. 사람을 위해 만드는 구두로 인해 사람이 불행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접착제 사용을 최소화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발과 직접 닿는 구두에 접착제를 사용하면 어느 정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거든요. 만드는 사람을 위해 시작했지만 신는 사람에게도 좋다고 생각해요.

INTERVIEW 디자이너 김은지

히어리 herere

A.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31-1
H. ej_o90.blog.me
T. 010 6735 5578

야생화 중에는 그 자체가 순우리말인 ‘히어리’라는 꽃이 있다. 세라믹 디자이너 김은지는 이 공간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herere’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옛날 양옥 구조를 살린 작업실은 히어
리의 제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그녀의 작업실로, 도자기 수업이 열리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이름을 짓던 때의 바람대로 누군가 와서 함께 채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옥상에 올라가면 시선이 차분해지는 낮은 집들이 보이는 이곳은 흙이라는 재료와 가까워지기 충분해 보인다.

세라믹 디자인을 전공하고 개인적으로 도자기 수업을 했다고 들었어요. 히어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서촌에 작업실을 열면서 제 브랜드인 히어리를 시작하게 됐어요. 아직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건 아닌데요, 옅은 빛의 안료를 섞어 만든 마블 트레이나 머그컵은 찾아주시는 분들이 꽤 있어서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으로 주문을 받아 만들고 있어요. 또 개인의 취향에 맞게 제작하기도 해요. 대량으로 뽑아내는 도자기를 만들기보다 제가 만든 물건을 소중하게 사용할 수 있는 분을 위한 하나의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홈페이지를 준비 중인데 판매를 하더라도 시그니처 상품 몇 가지와 주문 제작 방식을 기반으로 이루어질 것 같아요.

도자기가 꼭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해요. 그래서 액자처럼 걸어놓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히어리에서는 어떤 흙을 사용하나요?
저는 흙 본연의 색을 좋아해요. 그래서 화려한 색을 쓰지 않죠. 색을 사용할 때도 흙이 가진 색과 맞는 걸 찾고 디자인과 잘 어우러지는지 봐요. 도제상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흙을 구매할 수 있는데, 도제상도 많고 저마다 만드는 흙의 개성이 있어요.

흙을 만지는 기쁨이라 하면요?
오롯이 형태에 집중할 수 있고, 또 형태를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죠. 제가 만드는 도자기가 복잡한 공정을 거치진 않아요. 질감도 최대한 살리는 편이고요. 그래서 막상 보면 대단한 작업은 아닐 수 있지만, 그게 제가 추구하는 형태에요.

도자기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나요?
우선 디자인에 적합한 흙을 고른 후 형태를 만들어요. 길게는 일주일 정도 바짝 건조하면 색이 변해요. 그 후에 가마 안에서 700~800도로 초벌 소성(열로 점토를 굳히는 과정)을 하죠. 초벌 도자기가 나오면 취향에 따라 사포질을 하고 색을 입히고 유약을 발라줘요. 그 후 1250~1280도에 재벌 소성을 해주면 도자기가 완성돼요. 여기에 전사(스티커) 작업을 하고 싶다면 한 번 더 구워내기도 해요. 온도나 소성의 횟수는 유약이나 작가의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다른 편이고요. 

1일 체험 수업과 정규 수업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궁금해요.
1일 체험은 원하는 도자기 두 가지를 만들어 보는 수업이에요. 친구나 연인들이 와서 많이 듣고 있어요. 완성하기까지는 2~3주 정도가 걸리고요. 정규 수업 최대 정원은 4명인데 한 번에 일정을 맞추기 어려워서 2명씩 듣는 경우가 많아요. 거의 일대일 수업이에요(웃음). 보통 클래스 전에 만들고 싶은 걸 생각해오라고 하는데요, 주로 접시나 컵, 화병을 만드시는 분이 많아요.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라 성격도 차분해져서 좋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요. 만들다 갈라지고 모양이 어그러지면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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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이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