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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싶어요
“만약 첫 장면에 벽에 총이 걸려 있다면, 그 총은 나중에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
영화나 연극 속에서 극적 장치, 이른바 ‘떡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이 언급하는 문장인데, 찾아보니 유명 극작가 안톤 체호프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총이 발사되어야 한다는 건, 극에 어떤 장치가 등장한다면 그 장치는 반드시 사용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나는 가끔 내 삶이 영화라고 생각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구입할 때 이 문구를 떠올리곤 한다.
“내 인생이 영화라면 말이야… 이 물건은 분명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될 거야.”
40미터 길이의 로프, 애매한 사이즈의 가방, 수중 플래시 등… 수많은 장치를 구입하며 이것들이 언젠가 발사될 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발사된 적은 거의 없다. 쇼핑할 때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저것 사들이는데, 이제는 절대로 발사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구입한다. 그러나 여느 영화적 장치들과는 다르게 요리 관련 쇼핑은 아주 높은 확률로 중요한 순간에 발사된다. 지금은 커다란 전자 오븐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결제를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이 전자 오븐이 나중에 발사될 순간을 나 자신에게 설명하려는 참이다. 사실 나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배달은 조금 처량해서 싫어하고, 반조리 식품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건 많이 처량해서 싫어하는, 그래서 간단한 요리만 종종 해 먹는 사람인데, 그래서 곤란한 점은 가끔 특별한 뭔가를 하려고 하면, 먹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언가 미친 듯이 먹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한데, 그건 뭔가 공들여 요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아니고 가끔 배달비를 쓰고 배달 오기를 기다리고 싶다는 욕구에 가깝다.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 맥주와 함께 벌컥벌컥 마셔 내 몸과 영혼을 파괴시키겠다는 욕구가 가끔 드러날 때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먹고 싶을 때 요리하고 싶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예전엔 먹고 싶은 거 적어놓기, 제철 재료 적어놓기를 하면서 스스로 요리하기를 독려한 적도 있지만, 그것이 화려한 요리의 충분한 동기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귀찮아서인지, 어쩌면 요리를 한다는 생산적인 마음가짐이 이 파괴적인 식욕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식욕만큼이나 파괴적인 행위로 나는 잡다한 쇼핑을 즐긴다. 언젠가는 발사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요즘은 필요한 것들을 거의 쿠팡에서 주문한다. 무언가를 사고 나서도 더 필요한 게 없나 뒤적거리는 시간도 한참을 가져본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리는데, 그곳에서 광고를 접하는 일도 점점 잦아지고 있다. 물론 광고를 보려고 들어가는 건 아니고, 인스타그램에서 남의 사진 기웃거리다 보면 거의 백 퍼센트 확률로 마음을 홀리는 광고를 만나고, 그걸 클릭하고 결제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어 보이는 물건이나 예뻐 보이는 옷을 사는 건 내 인생에서 결코 발사될 리 없는 떡밥을 사는 것이니 조심해야 한다. 그것들이 결코 사용될 일이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잘 참고 견뎌내 쇼핑과의 전쟁을 나의 승리로 끝내는 일은 거의 없다. 돈도 아끼고 쓸데없는 물건도 사지 않아 일석이조인 나의 승리로 끝나는 일은 거의 없다. 인터넷 쇼핑은 대부분 카드 결제 후 사용하지 않을 물건을 쌓아두어 집 안을 좁게 만들어 버리는 나의 익숙한 패배로 끝이 난다. 하지만 결제 내역이 요리와 관련한 것이라면 조금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바닥이 눌어붙지 않도록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프라이팬, 밥풀이 붙지 않는 주걱, 야채 주스용 파워 블렌더, 에어펌프 보온 물병, 예쁜 병에 담긴 올리브 오일…. 최근 주문 내역이다. 오늘은 뭐 먹을까 생각할 때, 이렇게 충동적으로 주문한 것들이 좋은 힌트가 된다. 밥알이 붙지 않는 주걱은 정말 밥알이 붙지 않는지 확인해 봐야 하고, 그러자면 괜히 좀 더 좋은 쌀로 먹고 싶어진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바닥에 재료가 눌어붙지 않도록 하는 프라이팬으로는 자주 저어주지 않으면 눌어붙어 성가신 요리, 이를테면 라구 소스 같은 걸 만들어 본다. 에어펌프 보온 물병은 얼마나 오랫동안 보온 능력이 지속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뜨거운 보리차를 채워 놓는다. 이렇게 하나씩 사들인 장비들은 요리의 동기를 제공해 주고, 운이 좋으면 건강한 습관을 들일 수도 있다! 그렇게 만족하면 쇼핑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엔 심심할 때마다 집 안의 모든 서랍을 하나씩 열며 모든 사물의 위치를 기억해 두었다. 그때 싱크대 아래 서랍은 모든 사물의 무덤과 같은 곳이었다. 요구르트 만드는 기계, 누룽지 만드는 기계, 화장품 만드는 기계, 팥빙수 만드는 기계, 다양한 종류의 믹서. 그곳에서 늙어가던 장치들은 한때 어머니의 동기가 되어주던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요리 기구를 하나씩 사들이는 나의 모습과 비교해 보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하! 엄마가 실험했던 수많은 요리들이 이렇게 탄생한 것이었구나! 삶에서 채 발화되지 못한 욕심이, 호기심이, 때로는 권태가 이렇게 음식으로 만들어져 주변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었구나. 한편으로는 또 깨닫는다. 조리 기구는 다른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살 수도 있겠구나!
내 장바구니에 담긴 전자 오븐을…. 맞아. 그것을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건 엄연히 시나리오 작업이다. 언젠가 발사될 총을 사는 것이다. 2024년 한 해를 날려버릴 총을 사는 것이다.
작년은 나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참 쉽지 않은 한 해였으니까 마땅히 무언가를 해야만 하지. 나와 비슷한 업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주변인들 중에 몸이 많이 아픈 사람도 많았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마음고생한 친구도 있었다. 다른 해와는 다르게 2024년은 특별히 징글징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엔 나와 내 주변인의 불운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라에 더 큰 일이 터졌다. 슬프고 아프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 그치지 않았다.
그렇다. 2024년을 그냥 보내줘서는 안 되겠다고, 아주 시끄럽게 끌어내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올해가 가기 전에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시끌벅적한 요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고 귀여운 음식으로는 안 되겠어! 그래, 그렇다면 마땅히 오븐이 필요하지! 더 큰 오븐이 필요해! 아주 커다란 요리를 해서, 이를테면 닭이나 칠면조처럼 큰 요리를 만들어서, 그걸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모두 발라 먹고 뼈다귀만 남길 거야! 그리고 쓰레기봉투에 뼈를 가득 담아 버릴 거야! 쓰레기차가 멀리 가져갈 수 있도록 쓰레기봉투를 꼭꼭 묶어서 내놓을 거야! 잘 가라, 2024년아. 다시는 보지 말자!
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