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연결되어 나란했던 시간들

에그 2호 — 스탠딩 에그

에그 2호와의 대화에서 자주 오간 단어는 ‘연결’이었다. 각자의 속도로 살아오던 이들이 하나의 음악으로 같은 리듬에 올라서는 순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같은 건축가의 이름 앞에서 시선이 겹치는 시간처럼. 그의 이야기에는 누군가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다가 잠시 나란해졌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음악으로 포개어진 얼굴들

어느 집 방 안에서, 옆에 있는 누군가가 노래를 부를 때
그 감각을 떠올렸어요. 그 감각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가깝게
연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최근 차례로 [무해] 시리즈 앨범을 발매하셨어요. 스탠딩 에그가 말하는 무해함이란 무엇인가요?

이 작업은 저희가 늘 해오는 음악의 연장선이에요. 이전에 [무해]를 발표하고 나서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이, ‘왜 어떤 사람들은 우리 음악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재미없다고 느낄까?’였거든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가 바로 ‘무해함’, 즉 심심함에 있었던 것 같아요.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그 점을 좋게 봐주셨지만, 반대로 한 번에 확 와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렵게 느끼는 분들도 있었고요.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죠. 이 심심함에 뭔가를 더해야 하나, 요즘 방식의 양념을 조금은 섞어야 하나, 싶었는데요. 그러다 오히려 반대로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더 본질적인 쪽으로 음악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요.

 

그 뒤로 발매한 앨범이 [무해 pt. 2 : Home Session]이죠? 이 집에서 녹음을 하셨다고요.

맞아요. 이번에는 녹음실이라는 환경에서 벗어나 집에서 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평소에 생활을 꽤 계획적으로 통제하는 편인데, 일부러 그 틀을 벗어나서 변수나 오류 같은 것들도 음악 안에 담고 싶더라고요. 양념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사람들이 음악을 만들던 방식으로 우리 이야기를 해보면 더 무해한 음악이 될 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 그런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만들고 싶다는 갈증도 있었고요. 또 한편으로는, 세상이 점점 더 화려하고 빠르게 변할수록 그 반대편을 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느꼈어요. 꼭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보는 것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과 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중음악은 결국 혼자만의 음악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과의 접점을 찾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시도에서는 그 접점이 이 방향에서도 한 번쯤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1. [무해 pt.2 Home Session](2025)
2. [무해](2024)

작업 과정은 어땠어요? 몇 분 만에 스르륵 쓴 곡도 있다고 하시던데요.

가장 편한 집이라는 장소에서, 최소한의 방식으로 시작했어요. 후반 작업도 거의 하지 않았고요. 딱히 편곡이라고 할 것도 없이 제가 곡을 쓰고, 옆에서 가사를 같이 쓰는 친구랑 이야기 나누고, 기타 치는 친구가 바로 소리를 내보는 식이었죠. 예전 방식으로 말하면 스케치에 가까운 작업이었어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다 공감하겠지만, 저는 스케치할 때 감각이 정말 좋거든요.

 

어떤 느낌 때문에요?

내 머릿속에만 있었고, 이 세상에 아직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처음 소리로 나오는 순간이잖아요. 아직 드럼도 없고, 편곡도 없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악기와의 앙상블이 딱 일어날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은 곡이 어떻게 확장될지, 어떤 사운드가 더해질지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고요. 저는 그 순간의 쾌감이, 이후에 완성해 가면서 느끼는 만족감보다 더 크게 다가와요.

 

스케치와 최종 결과물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생기나요?

잘 완성된 곡은 대개 처음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 돼요. 그게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고요. 마치 좋은 가구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스케치해서 만들어도, 실제 나무의 결은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것과 다르고, 아무리 정교하게 잘라도 오차는 생기듯이요. 물론 그 차이 속에서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아름다움이 생기기도 해요. 하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그 과정을 거의 건너뛰고, 우리가 처음 만나서 같은 공간에서 소리를 냈을 때 ‘아, 이거야!’ 하고 서로 교감하는 그 순간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편안한 집의 방에서 뮤지션이 연주하는 걸 듣는 기분을 느껴본 지가 너무 오래됐잖아요. 사실 저희 음악은 원래 그쪽에 더 가깝기도 하고요.

 

스탠딩 에그로 활동하신 지 15년이 넘었는데요. 그동안의 청취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세요?

큰 흐름으로 보면,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음악을 ‘내가 원하는 감정을 대신 표현해 주는 존재’로 소비했어요. 뮤지션을 볼 때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대신 말해주는 사람, 감성적으로 나와 비슷하지만 나보다 깊이 있는 누군가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죠. 아직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이별이나 사랑 이야기를 음악으로 미리 경험하면서, ‘나라면 이런 감정을 느끼겠구나.’ 하고 상상해 보곤 했어요. 그래서 음악 감상은 책 읽기와 비슷한 대리 경험이었고, 뮤지션과 정서적으로 친구가 되는 느낌에 가까웠어요. 당시에는 청취 환경도 굉장히 개인적이었죠. 워크맨, C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로 혼자 음악을 듣고 정말 가까운 누군가에게만 “이 노래 너도 좋아할 것 같아.” 하고 추천하곤 했어요.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니면서 꼭 마음이 완전히 맞지 않아도 관계를 맺어야 했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만들어진 연결은 더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좀 더 세심하게 서로의 연결점을 찾는 시대였다는 말씀이군요. 상대와 나의 공통점도 무엇일지 살피고요.

맞아요.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검색하면,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을 바로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됐잖아요. 선택해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고, 힘들게 관계를 찾지 않아도 되니 연결 방식이 조금은 가벼워졌죠. 힘들게 찾은 관계가 아니니까, 무언가를 공유하는 방식도 조금은 피상적으로 바뀌었고, 커다란 연결 안에서 함께 있다가 마음이 맞지 않으면 다른 선택지로 넘어가는 것도 자연스러워졌어요. 이건 좋고 나쁨의 문제라기보다, 분명히 달라진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면서 음악도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바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되었고요. 댓글로 이야기하고,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변해왔죠. 생각해 보면 듣는 사람으로서는 음악 자체보다,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중요했던 건 아닐까 싶어요. 여전히 사람들은 연결을 갈구하고 있지만, 그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 시절에는 연결된 친구가 없을 때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고, 나와 연결된 친구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예전 방식의 연결을 여전히 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지금은 그 방식이 훨씬 다양해졌고, 뮤지션들 역시 새로운 방법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이러한 연결 방식의 변화 속에서 스탠딩 에그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요즘은 시 단위나 정부 차원의 문화 행사에도 참여할 일이 있어서,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많아요. 어떤 자리에서는 스님들을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남녀노소가 섞인 관객을 마주하기도 하죠. 예전에는 그런 자리에서 굳이 접점을 찾으려 하지 않았어요. 이미 제 음악을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들, 팬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들과 함께 음악을 나누는 것으로 충분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과도 연결되는 느낌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모르고, 왜 여기에 앉았는지도 잘 모른 채 있어도, 음악이 줄 수 있는 무언가는 분명히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그래서 어떤 노래를 하고,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죠. 집에서 음악을 녹음한 방식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어느 집 방 안에서, 옆에 있는 누군가가 노래를 부를 때 그 감각을 떠올렸어요. 그 감각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가깝게 연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마치 이 사람의 집 안에 내가 초대된 느낌, 혹은 내 방 안에 이 사람이 와 있는 느낌 같은 경험을 담고 싶었던 거예요.

 

아까 어린 시절 이야기도 잠깐 해주셨어요. 스스로 ‘헤비 리스너’라고 할 만큼 음악에 파묻혀 지냈다고 하던데 학창 시절에는 어떤 모습이었어요?

중학교 시절은 정말 외로운 시기였어요.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때였고,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았죠. 왜 나처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을까, 왜 나랑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은 이렇게 드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저는 남자 중학교를 나왔는데, 제가 하는 말이나 생각이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무리 안에서 약한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아닌 척도 해보고, 억지로 친구들과 어울려보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죠. 저는 굉장히 소심하고 섬세한, 흔히 말하는 ‘남자답지 못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제가 학창 시절 정말 좋아했던 뮤지션이 마이클 잭슨이었어요.

 

왜 그가 좋았어요?

처음엔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백인인지 흑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여리고 가냘파 보이는데,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출 때 그 몸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잖아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춤의 테크닉은 단순할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원초적인 힘이 완전히 달랐어요.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춤추고, 폭발적으로 노래하는 그 모습에 공감했던 것 같아요. 이 사람도 여리고 상처받은 면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걸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싶었죠. 정말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음악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누군가는 분명히 공감해 준다는 것도 느꼈죠. 그렇다고 그때부터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어요. 듣기만 하면서 ‘나도 저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다음엔 어떤 식으로 음악과 더 가까워졌어요?

자연스럽게 음악을 더 많이 듣게 됐어요. 또 저마다 다른 표현 방식을 가진 뮤지션들을 계속 발견하게 됐고요.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자기를 드러내고, 저 사람은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구나 하면서요. 그러다 나랑 비슷한 누군가를 실제로 한두 명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를 나누게 되잖아요. “나는 이 뮤지션을 좋아하는데, 너도 한번 들어볼래?” 이런 대화를 하다 보면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어요. 그 접점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졌고, 그래서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알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헤비 리스너가 된 거죠. 그러다 고등학생 때 전교생이 모인 무대에서 우연히 노래할 기회가 생겼어요. 당시 사람들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요. ‘노래 잘한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것보단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무언가가 누군가에게 전달됐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어요. 그 경험이 너무 좋았어요.

말씀을 듣다 보니까 ‘연결’이라는 키워드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동경하는 뮤지션과의 연결, 나와 비슷한 감수성을 가진 한두 명 친구들과의 연결, 그리고 무대 위에서 노래했을 때 관객과 느낀 연결까지요. 지금까지 해주신 이야기들이 결국은 그런 ‘연결의 순간들’을 지나온 과정처럼 느껴져요.

요즘은 음악도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잖아요. 그런데 추천을 받다 보면, 왜 이 음악을 추천하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네가 좋아할 것 같은 음악’이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그걸 원했던 건 아니거든요. 제가 궁금한 건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였고, 그 음악을 두고 함께 이야기하고 연결되는 경험이었어요. 어느 순간 의문이 들더라고요. 과연 이 추천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좋아해야 한다고 제시된 걸까 하고요. 비즈니스의 관점으로 보면, 특정 플랫폼이 ‘이 콘텐츠를 밀자’고 정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이 음악을 좋아할 거다’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한 구조잖아요. 우리는 지금 가상의 알고리즘 때문에 오히려 그런 연결에서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에그 2호 님이 음악 잡지 《BGM》과 음악 리뷰 신문 《BGM POST》를 만들고 계신 것도, 또 다른 접점을 찾기 위한 이유라고 볼 수 있을까요?

네. 저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텍스트에도 애정이 큰데요. 글은 쓰는 사람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잖아요. 그리고 그 시간을 감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그 글과 제대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하면서 읽게 되고, 잘 이해가 안 되면 덮어두고 기다리기도 하고, 좋다고 느껴지는 문장이 있으면 밑줄을 긋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시간을 들이다 보면, 글 안에서 이 사람과 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천천히 형성되는 느낌이 들어요. 좀 더 아날로그한 방식, 일종의 불편함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요. 내가 접점을 찾기 위해서 조금은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애써서 닿았을 때 비로소 생기는 연결. 그런 것들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됐어요.

 

《BGM POST》의 메인 콘텐츠는 앨범 리뷰 코너죠. 가명의 사람들이 가감 없이 음악에 대한 감상을 남겼더라고요.

맞아요. 한 호에 서른 장 안팎의 앨범을 다뤄요. 대부분 국내 매체에서는 거의 리뷰되지 않는 음반들이에요. 누군가는 꼭 주목해 줬으면 하는 음악들, 해외에서는 의미 있게 다뤄지지만 한국까지는 잘 전달되지 않는 것들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음악 평론가나 몇몇 전문가의 칼럼도 있지만, 나머지는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제가 선별한 음악을 듣고 느낀 반응을 거의 그대로 실어요. 어떤 사람은 “너무 지루해요.”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이상하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제가 이 음악이 좋았던 아주 미묘한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의견이 갈리는 모습이 재미있어요. 리뷰를 읽다 보면 ‘이 사람은 나랑 감각이 비슷하네.’ 하고 느껴지는 순간이 생길 테고,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좋아하는 다른 음악도 궁금해지잖아요. 저는 수익 구조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렇게 음악을 매개로 연결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 영향이 아주 느리게, 단계적으로 확장되더라도요. 저는 그런 방식의 연결을 계속 시도하고 싶어요.

집으로 매듭진 우리의 순간들

나만의 삶의 방식이 있고,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거기에 맞는 집을 고르는 건
행복해지는 데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계속 나를 부정당하는 느낌 속에서 살아야 하거든요.

이 집으로 이사 오게 된 배경에는 풍경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들었어요.

원래는 작업실도, 집도 모두 망원동에 있었어요. 마포구 망원동의 오래된 아파트였는데, 그 집도 지금 집과 비슷한 분위기로 인테리어해서 살고 있었고요. 망원동은 오래된 동네 특유의 느낌이 살아 있는 곳이라 정말 좋아했어요. 한강도 가깝고 시장도 있고,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자기들만의 감각으로 가게를 열고,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계속 변화하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그 안에 나도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그래서 아예 그 동네에서 평생 살 생각으로 집을 샀던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재개발 이야기가 계속 나오기 시작했어요. 단지 전체가 없어지고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기사를 보게 됐고요. 사실 저는 그런 변화가 썩 내키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제가 좋아했던 건 이 동네의 잔잔한 분위기였는데, 모든 게 아파트로 바뀌면 결국 전혀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 살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동네 성격이 달라질 테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도 제가 원하던 모습과는 멀어질 것 같았죠. 이곳은 더 이상 내가 살고 싶은 동네가 아니겠구나 싶었고, 그때부터 ‘그럼 나는 어디에서 살면 좋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어요.

 

고민의 결과는 어땠어요?

자연에 가깝고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었어요. 캠핑도 오래 해왔고, 밖으로 나가 있는 시간을 좋아했거든요. 마침 팬데믹 때 미국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때 아내와 로드 트립을 했어요. 다들 해외에 안 나가던 시기라 정말 사람이 없었고요. ‘이럴 때가 아니면 이런 자연을 보기 힘들겠다.’ 싶어서 일부러 국립공원들을 찾아다녔어요. 정말 거대한 자연이었죠. 서부 해안 쪽에서는 저랑 아내 둘이서 바닷가에 장작을 피워놓고 앉아 있다가 밥해 먹고, 차 타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또 어떤 날은 원시림 같은 숲을 둘이서 계속 걸어 다니고요. 한국에는 이런 규모의 자연은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한적한 곳에서 자연이 변하는 걸 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새로운 집에 대한 키워드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조용하고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곳, 자연과 가까운 곳. 그런 조건들을 놓고 서울 근교를 정말 많이 돌아봤어요.

 

조건에 만족하는 곳을 단번에 찾았어요?

아내가 저보다 훨씬 예민하고 기준도 꼼꼼해서 체크리스트가 굉장히 촘촘했는데, 사실 그 조건을 다 만족하는 곳은 거의 없었어요. 그 언저리에서 가장 근접한 곳이 북한산 근처라는 결론에 이르렀고요. 그래서 북한산을 둘러싼 지역들을 중심으로, 해가 들었을 때 느낌은 어떤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빛이 너무 강하게 들어오지는 않는지 같은 것들을 유심하게 고려했어요. 하나씩 지워 나가다 보니 이쪽밖에 남지 않았고, ‘그럼 여기서 집을 찾아보자.’ 해서 이 일대 전체를 다 훑어보다가 이 집을 발견했어요. 옆쪽으로는 숲이 있고, 집이 남동향이라 해가 떠서 이동하는 동안 하루 종일 빛이 집 안으로 부드럽게 들어와요. 만약 완전한 남향이었다면 빛이 너무 직선적이어서 눈부시고, 풍경도 잘 안 보였을 텐데 이 집은 해가 옆으로 은은하게 돌면서 들어오거든요. 그러다 해 질 무렵이 되면 또 다른 방향에서 빛이 오면서 풍경이 한 번 더 아름답게 보이고요. 하루 동안 계속 다른 얼굴의 풍경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이 집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어요.

 

높은 지대라 볼 수 있는 풍경인 것 같기도 해요. 아까 택시를 타고 오는데 가파른 언덕을 보고 기사님께서 당황하시더라고요(웃음).

아 그래요(웃음)? 여기로 이사 온 뒤에는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님들이 높은 언덕을 오르면서 “여기 어떻게 살아요?”라고 물으세요. 저는 문제 될 게 없거든요. 택시 타고 오면 되고, 마을버스를 타도 되고, 걸어와도 돼요. 이 동네에 사는 70대, 80대 어르신들도 다 걸어서 올라오세요. 사실 아무도 여기를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느낌이 저는 되게 좋더라고요. 여기까지 음식 배달이 되냐고 묻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저는 배달 음식을 거의 안 먹어요. 매일 내가 먹고 싶은 게 꼭 눈앞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느끼고요. 집 안에서 음식을 해 먹으면 되고, 밖에 나갔을 때 슈퍼에서 재료를 사 오면 되니까요. 오히려 그런 것들에서 조금 멀어졌을 때 더 행복해지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어요.

 

이번 호를 준비하며, 집을 경제적 가치로 해석하는 방식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집을 경제적 가치나 재테크 수단으로 보는 시선도 이해해요. 저는 “아직 젊은데 그때 집을 팔아서 더 비싼 데 갔으면 얼마가 올랐을 텐데”라는 말도 들었어요. 일리는 있지만, 저는 그렇게 번 돈으로 다음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렇게 번 자산으로 더 큰 집, 그다음엔 더 큰 집을 사는 이야기로 가게 되더라고요. 끝이 없는 거죠. 자산이 삶을 어느 정도 윤택하게 해주는 건 맞지만, 그 돈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에그 2호 님은 스스로 어떤 질문을 해왔나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같은 생각들을 하나씩 덜어내다 보면, 정말 갖고 싶은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제 아내는 집에서 입는 티셔츠가 두세 벌뿐인데, 저는 그만 버리라고 할 정도예요. 그런데 본인은 그게 가장 편하대요. 그럼 충분하죠. 이 이상 옷이 왜 필요할까 싶어요. 밖에 나갈 때 입는 옷도 몇 벌이면 되고요. 점점 필요한 게 없어져요. 그렇게 하나를 고를 때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오래 곁에 두고 싶은 게 뭔지를 더 생각하게 돼요. 그렇게 고른 것들은 자연스럽게 오래 쓰게 되고요. 저는 그런 안목을 기르고, 그런 삶의 태도를 갖는 게 진짜 저축이자 재테크라고 생각해요. 집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예요. 남들이 좋다는 기준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먼저 아는 것. 매일 장을 보고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면 마트 가까운 집이 맞는 거고, 아이가 있다면 또 다른 기준이 생기겠죠. 저마다 상황과 필요는 모두 다르니까요.

 

또 집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을까요?

중요한 건 집이라는 공간이 결코 혼자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옆집이 있고, 뒷집이 있고, 동네에 들어서는 순간 그곳의 분위기와 커뮤니티 안에서 살게 되죠. 의도하지 않아도 그 공간에서 보고 듣고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가치관이 만들어져요. 결국 나와 이웃의 가치관은 맞닿고 연결될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내가 원하던 감각과 잘 맞는 곳에 가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그곳에 살고 있고, 그 안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더 확신을 얻게 돼요. 반대로 맞지 않는 곳에 가면, 결국 내가 그 환경에 나를 맞추게 되죠. 사람은 그렇게 변하니까요. 그게 괜찮다면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식일 수 있어요.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죠. 하지만 나만의 삶의 방식이 있고,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거기에 맞는 집을 고르는 건 행복해지는 데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계속 내가 부정당하는 느낌 속에서 살아야 하거든요. 내가 편해지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결국 나와 비슷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봐요.

 

실제로 내가 원하는 가치관과 맞지 않은 집에서 산 경험도 있어요?

어릴 땐 대부분 그랬어요. 음악을 하려면 왠지 강남에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중요한 녹음실이나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다 그쪽에 있고, 거기에 있어야만 비즈니스가 일어나고 사람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래서 꽤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어요. 5평, 6평짜리 원룸에서 비싼 월세를 내면서, 내가 있을 자리를 찾으려고 애썼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꽤 고통스러웠던 것 같아요. 마음으로는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다들 그렇게 사니까 이게 맞나 싶어서 계속 버텼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너무 피폐해진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저는 작곡 일을 먼저 시작했는데, 그때는 한국에서 제 곡을 사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럴 때 주변에서는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너 지금 히트곡 작곡가처럼 안 보여. 히트곡 작곡가처럼 보일 필요가 있어.” 외모를 더 가꾸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가방을 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왜요?

그래야 사람들이 ‘아, 이 사람이 작곡으로 돈을 좀 벌었나 보다.’라고 생각할 거래요. 데모 CD를 꺼낼 때도 가방이 좋아야 한다고요.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 신이 계속 저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느낌이었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작곡가는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직업이잖아요. 그 시간이 행복해야 하는데, 당시 서울에서 쓰던 작업실은 6평짜리 오피스텔이었어요. 창문 앞에는 바로 옆 건물이 있어서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았고요. 몸이 계속 아플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일산으로 이사를 가게 됐는데요. 호수공원 바로 앞이었는데, 월세는 비슷한데 집은 세 배쯤 넓어졌죠. 매일 호수공원을 걸으면서 산책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날씨가 좋으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책도 읽고요. 그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걸요.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사람에게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고요.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 길이라도 내가 아닌 것 같으면, 아닌 선택을 해보는 거죠. 그래야 알게 되더라고요.

 

이 집은 아내와 함께 꾸리셨잖아요. 각자 방을 쓰고 공용 공간에서 만나는 생활 방식을 선택하셨다고 들었어요. 이런 구조가 일상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온전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도, 각자가 온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었어요. 물론 쉽지는 않죠. 자는 시간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니까요. 나는 내가 익숙한 방식이 편한데, 상대는 아닐 수도 있고요. 그럴 때 “왜 너는 이래?”라고 묻기 시작하면 끝이 없잖아요. 대신 각자의 방식을 존중한 채, 어디에서 교집합이 생길지를 열어두고 생각해 보자는 쪽이었어요. 너는 이렇게 살아왔구나, 그럼 나는 한번 이렇게 해볼게. 너도 저렇게 해볼래?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각자의 방은 취향대로 쓰고, 공용 공간에서는 우리의 공통점을 찾아보자고 했어요. 그렇게 지금의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어요. 누군가가 양보해서 만들어진 합의라기보다는, 서로가 온전히 100인 상태로 있다가 자연스럽게 어떤 교차점에서는 만나게 되는 거죠.

 

두 분의 교집합 중 하나가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의 스타일인 것이지요?

맞아요. 둘 다 그 건축가의 스타일을 좋아해요.

알바 알토는 어떻게 알게 됐어요?

먼저 각자 좋아하는 이미지를 핀터레스트에 모으면서, 우리가 계속 반응하는 게 뭔지부터 확인했어요. 그 안에서 공통점이 뭔지 생각해 보자는 거였죠. 우리가 좋아하는 건 어떤 이미지일까, 어떤 단어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고요. 이미지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겨요. 이 집은 왜 마음에 들지, 이건 어떤 가구지, 이 공간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 과정을 지나며 저 자신을 더 알게 되기도 했어요. 나는 이런 선에 반응하는구나, 이런 디테일에서 안정감을 느끼는구나. 반대로 어떤 형태는 유독 잘 안 맞는다는 것도요. 그런 이야기들을 아내와 계속 나눴고요. 그렇게 하나씩 솎아내다 보니, 유독 자주 겹쳐 등장한 이름이 있었어요. 알바 알토였죠.

 

어머, 너무 신기해요!

처음에는 그 사람이 만든 공간인지도 모르고, 그냥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은데 왜 이렇게 겹치지 싶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전부 같은 사람이 만든 공간이더라고요.

 

그 스타일을 집에 구현하기 위해 직접 핀란드로 건축 여행을 떠나셨다고요. 가서 어떤 경험을 하고 왔어요?

정말 우리가 좋아하는 그 언어가 맞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핀란드에 가면 알바 알토가 만든 공간이 곳곳에 있고, 그가 디자인한 조명이나 가구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거든요. 그런 공간들을 하나하나 걸어보고 머물러보면서 직접 체험했어요. 핀란드는 추운 나라다 보니 빛이 특히 중요하잖아요. 빛이 들어오는 방식에 따라 공간이 얼마나 따뜻해지는지, 어떤 비율일 때 편안하게 느껴지는지도 계속 관찰했고요.

 

두 분이 발견한 알바 알토의 핵심적인 언어는 무엇이었어요?

첫째는 자연스러움이었어요. 1930년대에 만들어진 공간인데 왜 지금까지 편안하고 아름답게 느껴질까. 분명히 투박해 보이는 요소들도 있는데, 이상하게 투박하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거기에는 ‘자연스러움’이 있었어요. 일부러 멋을 부리거나 눈에 띄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기능과 자연스러움을 토대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하나의 완성된 균형점을 찾아낸 느낌이랄까요. 알바 알토는 이런 개념을 ‘세컨드 네이처Second Nature’, 그러니까 제2의 자연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요. 자연에서 영감을 받되, 그 본질을 다시 공간과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작업, 그 태도가 우리에게 닿았던 거죠. 둘째는 타임리스함이었어요. 쉽게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감각은 결국 너무 뽐내지 않는 데 있더라고요. 디자인이 앞서서 사람을 압도하지 않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불편함 없이 머물 수 있는 상태요. 겉으로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막상 써보면 사용성이 좋고 오래 머물러도 몸이나 마음이 거슬리지 않는 공간이죠. 집은 그런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집은 하루에 열 시간, 스무 시간씩 머무는 곳이잖아요. 마음대로 움직여도 부담이 없고, 아름답지만 스스로 주인공이 되지 않는 공간. 이곳에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중심이 되는 공간. 그런 점에서 알바 알토의 작업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집의 조건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어요.

 

집에 들어왔을 때 여러 가구가 보였지만, 이 8인용 테이블이 가장 먼저 시선에 들어왔어요. 이런 크기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이 공간에서의 삶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사실 둘만 산다면 이렇게 큰 테이블은 필요하지 않죠. 그런데 집이 커진 만큼, 여기서 같이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오래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연말에 처가댁 식구들이나 제 가족이 함께 모여 복작복작하게 시간을 보내는 풍경도 떠올렸고요. 

 

실제로도 자주 초대하고 모이시나요? 

아니요, 잘 못 와요(웃음). 그래도 저한테는 그게 낭만이에요. 예전에 작은 오픈카 피아트를 샀을 때도 주변에서 “1년에 뚜껑 몇 번이나 열겠어?”라고 말렸거든요. 저는 바로 그 몇 번 때문에 사는 거예요. 1년에 몇 번이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과 특별한 시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결국 1년에 그 며칠, 그 몇 번의 시간 덕분에 행복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까 대화 초반에 에그 2호 님은 스스로를 통제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잖아요. 아내 도라 님은 어떤 성향을 가진 분이에요?

아예 반대예요. 초반에는 그런 점들이 조금 힘들었어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삶이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지만, 저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이어서 그 모습이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했죠. 저는 “세상의 모든 빛이 모이면 흰색이 되고, 모든 색이 모이면 검은색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반면 아내는 “이 많은 빛과 색을 어떻게 흰색이나 검은색으로 퉁쳐서 얘기해? 나는 각각의 색을 하나하나 다 보고 싶어.”라고 말해요. 제 아내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데서도 큰 즐거움을 느껴요. 최근에도 외국에 한 달씩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서 오더라고요. 어느 날부턴가 집에 마다가스카르 친구, 브라질 친구처럼 제가 평생 만날 일 없었을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나이도, 배경도, 정서도 다 달라서 저였다면 아마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거리를 뒀을 텐데, 아내를 통해 그런 만남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그 시간이 지금은 즐거워요. 덕분에 저도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요.

 

그런 아내분의 관점이 이 집을 만들어가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아내 덕분에 이 집이 더 사람 냄새나는 공간이 되었어요. 저는 원래 제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집을 떠올렸거든요. 비교적 미니멀하고, 색으로 치면 흰색이나 검은색처럼 모든 걸 담을 수도 있고, 없어도 상관없는 공간이요. 그런데 그런 집은 누군가 들어왔을 때 오히려 압도감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의 집은 온기가 있고, 우당탕 살아가는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공간이에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가 느껴지는 집이랄까요. 아내는 그런 감각을 늘 몸으로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거든요. 그 시선이 이 집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가장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SNS에 “집을 꾸미는 것과 꾸리는 것은 다르다”고 말씀하신 걸 봤어요. 두 가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집은 내가 온전히 행동하고 머무는 공간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집을 ‘꾸며야’ 하기보다 ‘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들 눈에 예뻐 보이기 위한 집,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서 만들어진 공간 안에서는 마음 둘 곳이 없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밖에서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가면을 쓰고 살죠. 때로는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어떤 척을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적어도 가족 앞에서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다음 날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힘도 생기고요. 그래서 예를 들어 청소기 하나를 사더라도, ‘이게 예쁜가’보다 ‘내가 어떻게 청소하는 게 가장 편한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또 먼지 알레르기가 있는데도 보기 좋다는 이유로 카펫을 까는 건 내 생활과는 맞지 않을 거고요. 내가 현실적으로 가꿀 수 있고, 가꾸고 싶은 정도가 어디까지인지를 스스로 알고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게 집을 꾸린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집을 잘 꾸린다는 건, 내 생활을 잘 꾸리는 것과도 같으니까요.

맞아요. 저는 제 집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거짓말이 없고, 꾸며낸 설정이 없는 공간. 내가 더 이상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이 안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존재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집이 집의 역할을 한다고 느껴요. 그래야 그 안에 있는 나도 편안해질 테니까요.

1년에 단 며칠을 위해 들인 8인용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에그 2호의 얼굴에는 뉘엿뉘엿 저무는 해가 비쳤다. 나의 질문에 그는 고심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처음 보는 이에게 기꺼이 가장 사적인 공간을 열어주었다. 나는 그의 흔적 곳곳을 남몰래 흠모하듯 살펴보았다. 이럴 때마다 어떤 값을 지불하고 얻었을 타인의 경험을 너무 쉽게 얻어가는 건 아닌가 고민하다가도, 그래서 애먼 곳으로 흘리지 않도록 두 손에 꼭 쥐고 돌아오게 된다. 나에겐 이런 순간이 낭만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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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