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모험가는 짙은 빛깔의 꿈을 꾼다

전주연 — 바리스타

2019년, 커피 신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던 한 여성을 기억한다. 낯선 타국 무대에서 경연장을 누비며 이국의 심사위원들에게 커피 한 잔을 대접하던 이의 환한 웃음을. 그건 서비스직 특유의 습관 같은 미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쩐지 꿈을 꾸는 듯한 묘한 떨림이 만면에 어려 있었다.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를 가리는 자리임에도 자신을 내려놓은 채 진심으로 임하던 그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제치고 몸집만 한 트로피를 안아 들었다. 그로부터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커피와 함께하는 삶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까? 궁금해하며 부산에 내려왔다. 5년 전 그날처럼, 행복하게 웃는 그를 보니 변한 것은 흘러간 시간뿐이구나 싶다.

오랜만에 출근하신 거죠? 요즘 육아하느라 바쁘시다고 들었어요. 

이제 출산한 지 50일 정도가 지났네요. 두 달 정도 쉰 것 같아요. 오늘처럼 인터뷰가 있을 때마다 카페에 나와서 직원들이랑 인사를 나누고 있죠. 출산 휴가 중이긴 하지만 제게 온 기회들을 놓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중에 복귀했을 때 경력 단절이 되는 일이 없도록 아기가 잘 동안에는 틈틈이 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죠. 

 

아이 키우면서 일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임신과 출산 이후 어떻게 하면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졌어요. 아무래도 바리스타는 이런저런 제약이 정말 많거든요. 하는 일들을 조율하기가 어렵고, 무엇보다도 카페인 섭취가 불가능하다 보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죠. 커피를 안 마실 수 없는 직업이니까요. 요즘은 커피바에서 벗어나 브랜드 기획팀에 소속되어 사무 일을 하고 있어요. 나름대로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배려를 많이 받고 있지만, 업계 내에서 해결해야 할 사소한 부분들이 제겐 큰 숙제처럼 느껴져요. 주변 동료들도 결혼을 앞둔 친구들이 많아요. 친구들은 저보고 ‘우리들의 미래’라고 하거든요. 첫 타자로서 출발선을 벗어났으니 좋은 선례를 남겨야죠. 

 

유독 앞장서서 걷는 일이 많네요. 무엇보다도 업계 내에서 입지가 있다 보니 더욱 부담감이 클 테지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된 후 많은 주목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여성으로서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였고,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파이널에 선발된 바리스타의 대부분이 남성이다 보니, 제가 하는 일들이 ‘여성’으로서 조명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긴 해요. 여성 바리스타분들이 격려 메시지도 엄청 많이 보내주시더라고요. 임신과 출산은 제 개인적인 일이지만 책임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죠. 이 시기를 최대한 잘 보내고 나서 어떻게 복귀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이 많아요. 

 

무게를 견뎌야겠어요. (북적거리는 공간을 보며) 그나저나 오늘 카페에 사람들 진짜 많네요. 

평일이라 평소보다 없는 편이에요. 주말에는 훨씬 많아요. 예전에는 대부분 해운대나 광안리 쪽에 갔는데, 요즘 영도에 이것저것 들어오면서 많이들 찾아주세요. 카페 주변에 호텔도 여러 군데 생겼어요. 저번에 일부러 오션뷰로 한번 묵어보면서 영도를 감상해보았는데요. 확실히 다른 바다랑은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관광지 쪽 해수욕장은 잔잔하게 파도만 치는데 여기는 항구라서 아침에 일어나면 배가 바다로 나가는 게 보여요. 

 

바다마다 제각기 풍경이 다르잖아요. 영도만의 고유한 특징인 거군요. 

저는 영도가 가장 ‘부산스러운 바다’라고 생각해요. 해운대나 광안리는 만들어진 느낌이 강하잖아요. 영도는 특유의 거친 분위기가 남아 있어요. 한국전쟁 때 피난민이 가장 많이 모이던 공간이다 보니 부산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지요. 영도의 윗동네에는 낮은 집이 굉장히 많이 모여 있어요. 그 공간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무척 애틋하거든요. 그런 자연스러운 풍경들이 부산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곳에 모모스 로스터리 & 커피 바를 오픈하게 된 걸까요? 

관련이 좀 있긴 해요. 모모스 본점은 온천장 쪽에 있어요. 리뉴얼을 하기 위해 생산 시설을 옮겨 놓을 공간을 찾다가 영도를 둘러보는데 이 공간에 도착하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렸어요. 너무나도 부산스러웠거든요. 

 

전에는 영도에 와보신 적이 없나요? 아니면 기존엔 보지 못하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건가요? 

사실 저희 카페가 위치한 곳은 뱃일하는 사람 외엔 올 일이 없어요. 선착장이나 창고가 전부니까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나 봐요. 처음에는 로스팅 공장 정도만 차릴 생각이었는데, 아예 이곳에서 무언가를 해봐야겠다 싶었죠. 자연스럽게 영도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거든요. 영도는 인구 소멸 지역이라 힘 줘서 홍보할 필요성도 있었고요. 

 

부산이 고령화 문제를 겪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영도가 부산 내에서도 제일 심각해요. 이쪽은 배와 관련된 일 하시는 분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분들께서 출퇴근하는 곳이라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요. 다행히 여러 카페와 저희가 이곳에 자리 잡은 이후로 젊은 층이 조금씩 유입되고 있어요. 작게나마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돼 기뻐요.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더 커진 터라 에너지를 많이 쓰긴 했지만요.

영도에 카페만 200개가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요즘 커피가 부산 관광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만큼 좋은 아이템이 된 것 같아요. 

‘카페 투어’라는 단어가 이젠 그다지 낯설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가 2007년에 처음 오픈했는데요. 운영하는 10년 동안은 ‘기술자’의 시선으로 커피 한 잔을 맛있게 만들어 내는 데 많은 공을 들였죠. 그게 저희 최대 관심사였어요. 그런데 영도에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면서는 ‘꼭 커피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공간을 매개로 커피에 담긴 다양한 가치를 전하게 되길 바랐죠. 

 

커피 맛에 자부심이 있기에 그런 선택지까지 염두에 둔 거 아닐까요. 반면 예쁜 외관에 비해 음료나 서비스는 따라가질 못해서 쉽게 없어지는 카페도 많지요. 

저는 그런 카페들도 존중하고,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커피 신이 확장될 수 있는 하나의 장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공간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스타그래머’고, SNS에서 통하는 핫한 카페에 방문해서 공간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음료들을 접하게 되잖아요. 카페에서의 즐거운 경험이 쌓여야지 점점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를 수 있게 되겠죠. 마찬가지로 1-2천 원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저가 시장도 필요해요. 진입 장벽을 없앨 수 있잖아요. 여러 경우의 수들을 배척하기보단 ‘있어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려 해요. 

 

생각해 보니 다들 캔 커피나 프랜차이즈의 저렴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커피에 입문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마시다 보면 어느 시점부턴 맛있는 커피를 찾게 되더라고요. 

와인도 그렇잖아요. 처음부터 비싼 와인을 마시는 건 부담스럽고 리스크가 커요. 그러니 3-4만 원대부터 시작해서 점점 가격대를 올리는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고요. 결국 경험은 계속해서 수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뤄지잖아요. 특히나 미식 쪽이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점에 있어서 앞서 언급한 카페들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도록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요. 모모스 커피는 스페셜티 커피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아직 생소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아요. 시장도 작고요. 어떤 분야가 파급력이 생기려면 향유하는 소비자가 많아져야 하니까 커피 하는 사람들끼리만 움직이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단순히 커피를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파생될 수 있는 이벤트도 열어보려고 해요. 최대한 사람들을 모으려고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하나 있어요. 

 

결정적인 계기요? 

런던에서 가족들과 함께 두 달 정도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요. 세 살 된 조카랑 관광 필수 코스인 대형 미술관에 갔는데요.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갑자기 아이가 한 그림을 가리키며 “저기에 모네 그림이 있어!” 하는 거예요. 

 

세 살인데 벌써 모네 그림을 알아요? 

그러니까요. 저도 놀랐어요. 새언니가 미술을 하긴 해요. 그렇지만 아이가 그 나이에 벌써 모네 그림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죠.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환경을 접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구나, 싶었어요. 청년들이 부산을 벗어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예요. 문화나 콘텐츠가 대부분 서울 쪽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이를 경험할 기회가 많이 없거든요. 성장을 하려면 창조적인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어린 시절에 부산에 살면서 그런 것들을 크게 누리지 못했던 거죠. 그런 결핍된 부분들을 커피 하는 사람으로서 해소해 줄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 카페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뻗어나가게 되었어요. 평소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는 게 쉽진 않잖아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비해 카페는 훨씬 장벽이 낮죠. 

맞아요. 커피를 소비하는 문화가 많은 사람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왕 오신 김에 그림을 관람한다든지, 좋은 가구를 체험해 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시는 브랜드나 크리에이터와 협업해서 신을 조금 더 확장하려 해요. 이 공간이 여러 문화와의 연결 다리 역할을 하는 거죠. 

 

‘오로지 맛 하나로 승부하겠어.’ 같은 고집이 없으시네요. 

지난 10년 동안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달려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저보다 커피를 잘하는 분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커피를 정말 좋아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우연히 바리스타 일을 시작했고,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과 우정을 다지고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거죠. 동료들과 함께 대화하다 보면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가치와 이유’에 대해 되묻게 될 때가 많아요. 그러다 보면 우리가 꿈꾸는 목표가 무엇인지 그려보게 되는데요. 조금 가까운 미래를 생각해 본다면 ‘부산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죠. 우리가 하는 일이 부산의 성장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아직 그 과정 중에 있다 보니,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을 계속해서 연구해야 해요.

커피 공부 차 해외에도 많이 다녀오셨잖아요. 커피 문화가 잘 정착한 도시는 어디예요? 

이탈리아랑 멜버른이요. 이탈리아는 에스프레소가 처음 시작된 도시인 만큼 에스프레소바 문화가 굉장히 잘되어 있어요. 이탈리아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크루아상에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고 출근해요. 멜버른도 마찬가지예요. 그들도 하루를 시작할 때 브런치와 함께 커피를 곁들여요. 

 

사뭇 더 여유로운 느낌이 들어요. 

커피 소비 문화가 정착된 나라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최근에는 엄청 오래된 카페들을 보면 감응하게 돼요. 베니스에는 유서 깊은 카페가 참 많아요. 그중에서 ‘카페 플로리안’이라는 유럽 최초의 카페를 가보았는데요. 그곳에 머무를 때면 공간이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죠. 수많은 카사노바가 그곳에서 핫초코를 즐겨 마셨다는 일화가 있더라고요.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던 공간이기도 하고요. 

 

일종의 살롱 같은 곳이네요. 

그렇죠. 우리의 카페도 이야기를 쌓아나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두 도시에 가면 부산 또한 저렇게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요. 한국 바리스타분들이 커피를 더 배워야겠다거나 워킹 홀리데이 차 호주로 많이 떠나곤 해요. 한국에서는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인정받기가 어렵거든요. 아직도 파트타임 직업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두 나라는 모든 이들이 커피를 소비하다 보니, 나의 음료를 만들어 주는 바리스타에게 고마움을 느끼곤 하죠.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 것 같아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을 거머쥔 후에 계속해서 바리스타에 관한 인식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시간이 좀 지났는데, 변화를 체감하고 있나요? 

엄청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은 해요. 이전에 제가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 전에는 불만을 제기하는 손님이 많았어요. 커피를 주문하시고 몇 분 정도 기다리다 나오질 않으니 “왜 안 나오냐.”고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죠.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난 뒤부터 카페에 손님이 훨씬 더 많아졌는데요.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선 기다릴 수 있다는 인식이 잡힌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스타벅스나 블루보틀 같은 큰 브랜드에서 스페셜티 커피에 관한 목소리를 함께 내주고 있어서 더욱 힘이 생기는 기분이에요. 그렇지만 아직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더 많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일까요? 

외식업에 종사하다 보면 묘하게 차별적이라는 걸 체감하곤 해요. 이를테면 파스타를 만드는 분들은 셰프라고 이야기하는데,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집에서는 이모님이라고 많이 부르잖아요. 앞서 말한 멜버른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따로 없거든요. 그냥 그 자체로 존중을 해주죠. 그런 부분에 관한 인식부터 조금씩 변해야만 업계 문화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아, 멜버른 이야기가 나와서 덧붙이자면 거긴 프랜차이즈가 살아남기가 어려운 생태계예요. 스타벅스도 자리 잡기가 힘들어요. 

 

스타벅스가요? 

작은 브랜드들이 훨씬 더 좋은 커피를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거든요. 그러니 굳이 대형 카페를 방문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죠. 부산도 그렇게 됐으면 해요. 모모스 카페 또한 그런 분위기를 조금씩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쨌든 우리가 좋은 커피를 많이 선보여야 사람들이 찾아줄 테니까요.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고민하고 배려해야 자연스레 질 좋은 외식 문화가 형성이 되겠죠? 

 

안 그래도 부산에서 개최될 예정인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소식에 엄청난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어요. 

제가 스물다섯 살 때 인터뷰한 영상을 보면 커피 도시 부산에 대한 이야기를 엄청나게 많이 했더라고요. 무려 10년 전부터 이런 그림을 꿈꿔온 거예요. 챔피언십 이후에 많은 것들이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대회를 부산에서 개최하게 되면 커피 도시로 자리매김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주최 측에서는 시에서 적극적으로 거드는 것은 처음이다 보니까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렇게 2년 동안 준비를 했어요. 

 

부산에서 개최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주연 씨에게 직접 듣고 싶었어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이 2017년 서울에서 열리긴 했어요. 서울, 도쿄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세 번째 진행되는 건데요. 이 대회가 커피 산업에서는 가장 큰 이벤트이자 쇼이다 보니 약 60개국이 참여해요. 행운인 점은 대회뿐만 아니라 박람회까지 함께 열리게 되면서 어마어마한 축제가 되었어요. 박람회는 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될 예정이지요. 그 덕에 부산에서 커피를 하는 브랜드들 또한 함께 성장할 기회가 될 거예요. 커피는 관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예요. 부산시가 관광 도시로 선정되어 있긴 하지만, 대회가 개최된다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풍경이 펼쳐지겠죠. 정말 많은 사람과 규모 있는 브랜드들뿐만 아니라 기계를 만드는 회사나 농장 사람들, 관련 업체 인력들이 방문하게 될 거예요. 커피 애호가들의 축제가 열리는 거니까요.

최근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을 회고하며, 주연 씨처럼 공들여 준비하고 있을 후배들을 위한 팁을 전해주었죠. 당시 사용하던 파일들을 공유까지 했어요. 

제가 참여한 대회인 만큼 많은 분이랑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매번 계획만 하다 뒤늦게 이야기를 적어보고 있어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되고 나서는 매체 인터뷰 외에는 해외에 나가서 시간을 보냈어요. 보통 우승자분들이 세미나를 진행하며 준비 과정을 공유하곤 하는데요. 저는 따로 구체적인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하지 못한 것에 늘 아쉬움이 남아 있었죠. 

 

당시 1위에 오르기까지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바리스타로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요. 

제가 2019년에 우승을 했어요. 그 전년도에도 세계 무대를 섰는데 부담감이 엄청났어요. 9년 동안 계속해서 마음에 품고 있던 대회이기도 했고, 처음으로 회사와 국가를 대표하여 무대에 선 것이다 보니까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죠. 당시에 아침에 눈뜨자마자 우황청심환부터 들이켰어요. 너무 떨려서 하루에 서너 병을 마시고 몽롱해진 채로 임했죠. 당시 시연 영상을 보니까 말도 살짝 느리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원두 템핑을 뛰어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거예요. 운전으로 비유하자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안 내리고 그냥 간 거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엄청나게 기초적인 실수였어요. 

 

끝나고 나서도 크게 자책했을 것 같아요. 

백스테이지 들어가서 펑펑 울었죠. 제가 평소에 힘든 일을 맞닥뜨릴 때마다 크게 좌절하기보다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되뇌곤 해요. 그때도 이유가 있을 거라면서 애써 저 자신을 위로했어요. 한 시간 가까이 울다 보니까, 정말 이유가 생기더라고요. 

 

어떤 이유였나요? 

한 나라를 대표해 나가는 대회에서 그렇게 기초적인 실수를 한 사람은, 20년 동안 저 하나밖에 없었잖아요. 그건 결국 내가 유일한 존재라는 뜻인 거나 다름없죠. 

 

와…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낼 수 있어요? 

사소한 거에 분노하기보단, 재미있는 일화로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눈물을 그치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스스로 별명을 붙여줬죠. ‘노템핑걸’이라고요. 지나간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내려놓는 자세가 인상 깊었나 봐요. 다음 대회 때 출전했는데 다 저를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심사위원분들 모두 “올해는 템핑만 잘하면 될 거다.”라고 응원해 주셔서 좋은 분위기에서 시작할 수 있었죠. 그때는 모든 기운이 나한테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무수한 실패를 딛고 혼자서 일어났네요. 여유가 생긴 덕에 대담하게 경연을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것 같고요. 

2018년에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2019년에 그만큼 잘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그때 많이 되돌아보았거든요. 18년에 내가 왜 힘들었는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둘 놓았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전보다 욕심도 없었죠. 원래 제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 ‘언젠가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이라는 무대에 서보자!’였거든요. 사실 꿈은 이미 이루어졌던 거죠. ‘0점을 받아도 되고, 꼴찌여도 되니까, 올해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보여주자.’ 싶었고, 훨씬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었어요.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금 그날의 이야기를 되짚어 보니 어땠나요? 

다시 봐도 완벽했던 것 같아요(웃음). 진짜 할 수 있을 만큼 다 했어요. 

 

역시 최선을 다하면 미련이 없군요. 

그 이상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룰이 조금 변경된 부분도 있어서, 이전과는 달리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부분들도 생겼거든요. ‘내가 지금 대회에 참가한다면 잘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하면 확실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새로운 룰들을 확인하면서 나는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상상해 보니 크게 자신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만약 도전한다고 하면 또 최선을 다하겠지요.

바리스타 일은 쇼를 연출하는 감독의 역할에 좀더 가깝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커피 한 잔을 제대로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 다방면을 살펴야 해요. 어떤 잔에 제공하는 게 좋을지, 어떤 트레이에 내어줄지, 어떤 음악이 흐르면 좋을지를 다 계산하죠.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커피를 마신다고 상상해 보세요. 날씨 탓에 사람이 처지게 되잖아요. 그럴 때는 조금 더 묵직한 커피를 찾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니 음악도 조금 더 운치 있는 느낌으로 세팅하게 되죠. 반면에 화창한 날에는 상대적으로 밝은 인상을 주고 산뜻한 커피를 찾고요. 이런 사소한 차이들도 알고 있어야, 그날그날 추천해 주는 원두가 달라져요. 

 

입맛이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데, 그 영향이 커피 고르는 데에도 미치는군요. 

그럼요. 결국 소비자가 커피를 맛있게 즐기기 위해 그들의 오감을 어떻게 자극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해요. 그게 바리스타의 역량이고요. 맛있게 만드는 건 너무나도 기본이니, 탄탄하게 깔린 바탕 위에 어떤 요소들을 더할지부터 시작해야 하죠. 실제로 사람들한테 가장 맛있게 마신 커피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향미를 짚어내기보단 누구와 함께했고 어떤 곳에서 어떤 분위기에서 마셨는지가 결정적으로 맛을 판가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요. 아까 말한 이탈리아나 멜버른이 맛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커피 한 잔을 매개로 많은 대화가 이뤄지다 보니 공간의 개념이 훨씬 더 중요하죠. 그래서 인테리어나 음악 같은 부수적인 요소를 놓칠 수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바리스타가 모든 음악을 컨트롤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영도 모모스 커피는 전문 DJ에게 매달 플레이리스트를 받아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죠. 이런 부분들 때문에 한국에서 커피 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많아요.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도 무척 맛있어요. 함께하고 있는 사람과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맛 자체가 정말 깔끔해요. 

커피 맛은 원두가 결정해요. 재료가 좋아야지 맛 표현이 가능해지거든요. 이건 엘살바도르 산지 커피예요. 바리스타 대회처럼 커피 농장들이 참여하는 생두 대회도 있어요. 커피 농장들이 농사를 지어 키운 열매들을 출품해서 좋은 품질의 원두를 가리는 건데, 이 커피는 2019년에 그래도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어요. 순위는 낮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너무 맛있었어요. 어떻게든 농장과 거래하고 싶어서 엘살바도르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가며 수소문했는데 실패했죠. 그러던 어느 날 커피 산지들을 여행하던 도중에 농장주를 아는 사람을 만난 거예요. 연락처를 받고 나서 직접 찾아가 보았는데, 그 해 생산한 커피는 이미 동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얼굴도장을 찍은 덕에 그다음 해부터 모모스 커피랑 직거래망을 갖추게 되었어요. 

 

주연 씨 SNS를 보면 농장 사람들과 함께 웃는 사진이 참 많아요. 사이가 돈독해 보이더라고요. 

비즈니스도 관계의 연장선인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니 결국 친해져야 하죠. 농장에 직접 가는 것도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예요. 메일로 우리 측에 생두를 보내달라고 계약을 맺으면 정말 비즈니스 관계에서 끝나버려요. 같이 밥 먹고, 손잡고, 부대끼며 잠도 자면서 마음을 나누다 보면 일을 떠나서 좋은 관계가 형성돼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걸 발견하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그분들도 좋은 커피가 생산되었을 때 정을 나눈 저희들을 먼저 떠올리곤 하죠. 이런 추억들이 쌓이다 보면 주기적으로 자연스럽게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요. 10년 넘게 함께한 농장들은 시기마다 방문해서 얼굴을 보지 않으면 미안해지기도 하고요.

항상 인터뷰 말미에 “모모스 커피와 함께 부산을 세계가 인정하는 커피 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덧붙이셨더라고요. 자연스레 모모스 커피에 대한 주연 씨의 애정을 느끼게 되었어요. 단순히 ‘의리’라고 표현하기엔 그보다 더 깊은 유대감처럼 보여요. 

보통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고 나면 회사를 나와서 개인 브랜드를 만드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런데 저는 이곳을 벗어나면 커피를 할 이유가 없긴 해요. 커피보단 회사와 브랜드에 애정을 품고 있으니까요. 스무 살까진 저희 부모님께서 저를 키웠다면, 그 이후는 모모스 덕에 성장할 수 있었죠. 제가 잘되었다고 해서 가족을 버릴 수는 없잖아요.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이 신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 덕에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개최라는 꿈 앞에 한 발 다가섰어요. 오랫동안 기다려 온 대회와 축제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일단 성공적인 개최의 기준을 어디에 둘지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커피 신이 성장하는 것을 목표에 두고 있어요. 그러려면 사람들이 충분히 즐기고 가야겠죠.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개인 브랜드들이 공간을 잘 갖춰 놓아야 해외 인사들이 방문했을 때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거예요. 또한 그들이 한국이라는 공간을 잘 누릴 수 있게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겠죠. 아시아 국가들이 여행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언어가 다르다는 거예요. 방문객들이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안내 시스템도 다듬어야 해요. 사실 지금도 이미 너무 잘하고 있어요. 이대로만 가면 될 것 같아요. 

 

개최 소식을 알리며 함께 적은 “꿈은 늘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고, 늘 생각보다 크게 찾아온다.”라는 문구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뿐만 아니라 어떤 꿈을 그리고 있는지 듣고 싶어요. 

출산 전까지만 해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부산 개최’가 제 오롯한 꿈이었어요. 이젠 조금 더 큰 꿈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요? 저는 커피를 매개로 도시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요. 부산이라는 도시에 커피라는 물결이 퍼져나가도록, 그렇게 ‘커피의 도시’ 하면 자연스럽게 부산이 떠오를 수 있게끔 기반을 마련해 나가고 싶어요. 그렇게 계속해서 달려가다 보면 모모스 커피가 부산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요. 그걸 넘어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커피 기업이 되기를 바라고 있고요. 

 

역시 커피에 대한 사랑이 넘치네요. 모모스 커피, 월드 챔피언 바리스타 같은 수식어 다 떼고, 전주연의 꿈은 무엇이에요? 

우리 아가를 잘 키워야죠. 지금은 개인적인 목표이긴 하지만 나중에는 이 신에 속해 있는 많은 여성분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고 싶어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출전도 처음에는 혼자만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어요. 욕심을 버리고 나아가다 보니 모두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었잖아요. 마찬가지로 커피를 하시는 여성분들께 또 다른 꿈이 되어주고 싶어요. 그게 제 바람이에요.

오랜만에 바에 복귀하여 커피를 내릴 준비를 하는 뒷모습에서 숙련된 자의 우아함이 느껴진다. 그가 이곳에 서서 손님들에게 건넸을 수십만 잔의 커피와 그에 담긴 마음을 상상해 보게 된다. 원두 본연의 향이 서서히 피어오르면 고개를 숙인 뒤 가까이 다가가 향을 음미한다. 하얗게 흩날리는 온기 사이로 꿈결같은 웃음이 떠오를 때, 작은 확신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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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오은재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