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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다. 가까운 과거에 ‘노잼 시티’라는 별명이 붙었던 그곳이다.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 한다. 어느덧 대전은 꽤나 매력적인 도시가 됐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몇몇 대전 출신 지인에게 물어보면 정작 그들은 대전이 왜 ‘핫’하게 떠올랐는지 이해 못 하겠다는 투로 얘기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원래 이렇다. 내가 잘 알고 있는 무언가가 갑자기 주목을 받으면 왠지 모르게 ‘뚱’해지는 게 인간의 속성 아닐까 싶다. 나도 그렇다. 갑자기 폭증한 외국인 관광객을 바라보면서 “한국에 볼 거 없는데….” 내뱉지만 속으로는 괜히 뿌듯해진 마음을 애써 감추려 한다. 심지어 나는 얼마 전 영국에서 여행 온 영어 회화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이 가고 싶은 동네는 북촌이었다. 어쨌든 명색이 손님맞이 아닌가. 아무 준비도 안 하고 갈 수는 없어서 일주일 동안 맛집과 찻집을 유튜브로 철저히 검색했다. 우리는 명동에서 만난 뒤 지하철을 타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렸다.
나는 서울 사람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심지어 북촌 가까이에는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가 있다. 그러나 유튜브를 보면서 깨달았다. 나는 북촌에 대해 아는 게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유튜브에는 북촌에 대한 정보가 널려 있었다. 영국인 선생님은 3주간의 한국 여행 동안 전주, 부산, 제주도, 경주, 서울을 돌아다녔다. 그녀가 경험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네가 나보다 더 한국인 같다.” 물론 영어로 했다. “You are more Korean than me.” 알아두면 써먹을 데가 있을 것이다. 장담은 못 한다.
아마 여러분은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원래 맛집과 명소는 관광객이 더 잘 알아.” 대전 역시 딱 이런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물론 성심당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내가 빵을 안 좋아하기는 하지만 튀김소보로는 당연히 먹어봤다. 과하게 기름져서 반만 먹고 다른 사람 주긴 했지만 나는 타인의 취향에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어느덧 성심당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빵집이 됐다. 성심당 빵을 사려고 대전에 갈 정도니까 미슐랭으로 따지면 별 세 개인 셈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막내 작가도 얼마 전 대전 여행을 다녀왔다. 대전에 가기 전 이 친구의 기대치는 꽤 높았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우리 때는 대전에 여행 간다는 생각 자체를 안 했어.” 확실히 그렇다. “우리 때는”이라는 수식을 버릇처럼 내뱉는 나이가 되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여는 게 좋다. 여행에 다녀온 후 이 친구는 내가 사주는 떡볶이를 먹으면서 말했다. “완전 재미있었어요.” 그러면서 꿈돌이 키링을 선물로 줬다. 꿈돌이는 내 가방 측면에 걸린 채 나랑 같이 매일 상암동 나들이를 나간다. 막내 작가와 대화하며 다시 한번 절감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이상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느꼈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실수를 연발할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건 아닐걸.”이라고 개똥 같은 단언을 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과거의 나는 이런 실수를 줄여야겠다는 자각조차 없었다.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에 대한 반성 따위 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막내 작가의 저 말을 듣고 “언제 한번 가볼까?”라고 생각 정도는 하는 사람이 됐다. 비단 대전만은 아니다. 세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눈만 장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디서든 영감의 원천이 될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확실히 그렇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각적 자극에 둘러싸인 나머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면서 산다. 당신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건 넓은 풍경이 아니다. 도리어 작고 사소한 틈새다. 주의력 근육만 단련하면 어디서든 의미를 길어낼 수 있다.
1977년생이다. 따라서 대전 하면 이 곡이 바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원곡을 부른 가수는 1956년 안정애. 최치수가 작사하고 김부해가 작곡했다. 내용은 이별 노래다. 노선 및 차량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대전역에서 목포역으로 향하는 호남선 야간열차가 배경이다. 이미 인기 있는 노래였지만 이 곡이 더욱 널리 알려진 건 조용필이 커버하면서부터였다. 이 외에 김추자, 코요태 등의 커버가 유명하다. 그럼에도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조용필의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이 곡은 흑인 블루스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장르를 구분하면 트로트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다 이랬다. 뭔가 서글픈 곡조와 가사가 들어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르스’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혹시 이해가 안 된다면 삼촌이나 부모님께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나이가 최소 50은 넘으셔야 한다. 난 아직 48세지만 음악평론가여서 아는 것뿐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내가 어릴 때 튀김소보로는 없었다. 그냥 소보로만 있었다. 난 소보로 마니아였다. 우유에 소보로 먹는 걸 정말 좋아했다. 아빠는 틈날 때마다 소보로를 사 왔다. 달 표면처럼 울퉁불퉁한 부위만 쏙 빼서 먹고 엄마한테 나머지를 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빵에 대한 노래 중 일착으로 떠오르는 것은 역시 이 곡이다. 놀라지 마시라. 모차르트는 이 음악을 다섯 살 때 작곡했다고 한다. 내가 다섯 살 때 뭘 했는지를 복기해 본다. 거의 틀림없이 별생각 없이 소보로를 맛있다면서 먹고 있었을 것이다. 이 아이는 자라서 배순탁이 된다. 가진 재능의 크기만 놓고 봤을 때 모차르트 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대전을 연고로 하는 한화 이글스의 응원가로 유명한 클래식이다. 통상 ‘캐논 변주곡’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틀렸다. ‘세 대의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캐논과 지그 라 장조Canon and Gigue for 3 violins and basso continuo in D Major’가 정확한 풀 네임이다. 제목 중 캐논은 돌림 노래 형식의 ‘작곡 기법’을 뜻하는 용어다. 주제 선율을 한 악기가 시작하면, 다른 악기가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똑같이 따라 하는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뒤에 있는 지그Gigue는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춤곡이다. 즉 우리가 ‘캐논 변주곡’이라고 알고 있는 건 ‘지그’를 제외한 앞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통주저음Basso continuo’은 곡 전체에 걸쳐 연주되는 낮은 음을 의미한다. 대중음악으로 치면 베이스 연주에 해당하는 셈이다.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 〈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