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지와 다리오의 캠핑

요양캠핑

‘무조건 잘 쉬고, 잘 먹자’라고 생각했다. 단언컨대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무념무상(무아의 경지에 들어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남) 멍 때림이 나를 구원하리라. 지루하기 짝이 없는 회색의 무생물체, 세계를 떠나 드디어 우리는 커다란 나무를 끌어안을 수 있는 녹색세계로 왔다. 자, 이제부터 나의 의무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만 골라 읽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듣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위에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요소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은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염된 감성이 이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이번 여행은 마음이 병든 나를 위해 요양하기로 했다.

‘아침 해가 떴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새 나라의 착한 어린이가 되기를 거부한다. 몸과 영혼이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루시드 드림은 계속 된다. 알람은 필요 없다. 아니 그 어떤 기계도 필요하지 않다. 어차피 전화는 터지지 않고, 나에게 전화를 걸만한 사람도 마땅히 없다. 다만, 이제 곧 쌀쌀한 아침을 맞이해야 하기에 두 사람의 온기로 가득 찬 따뜻한 차 안에 더 있기로 했다. 이쯤에서 우리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한 동반자 ‘라벤다’를 소개하려 한다. 라벤다는 1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 호주 전역을 떠돌았다.

완벽한 동반자였지만 한가지 단점이라면 우리 둘의 식비를 합친 것보다 훨씬 비싼 양의 휘발유 주스를 마셔댄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느긋하게 일어나서 고상하게 앉아 아침풍경을 바라본다. 한참을 앉아 새소리를 듣고,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껴본다. 그리고 커피를 끓인다. 빵도 두 쪽 구워본다. 나의 남편이자 운전수 다리오는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실한 나무딸기를 한 바구니 따와서는 무슬리 요거트를 만든다. 그 위에 귀한 유기농 꿀을 뿌리면 보약 대령이다. 그리고 다시 배가 고파질 때까지 있는다. 책도 읽고 숲에 가서 이상하게 생긴 열매나 나뭇가지, 돌들을 줍기도 하며 그저 놀 뿐이다. 자연과 하나됨을 축하하면서…….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자연에서는 해가 지기 전에 모든 것을 다 처리해야 하지만 우리는 서두르지 않는다. 다리오가 이미 주변에서 마른장작을 수북이 주워다 놓았기 때문에 잠자기 전까지 불은 충분하다. 저녁에도 보양식을 준비한다. 특별한 냉장시설은 없지만, 신선한 토마토, 함께 여행을 하는 바질 화분의 협찬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다. 자연에서 잘 먹고 잘 노니 시들하던 영혼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살아있다고, 숨쉬고 있다고 속삭인다.

캠핑이 가르쳐준 인내

샤워를 하지 않는 것이 점점 익숙해질 무렵, 돈을 아끼기 위해 시작한 캠핑에 어느 정도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남미대륙에서 이뤄진 우리의 캠핑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궁상의 극치였다. 인간의 영역표시가 없는 곳에서의 캠핑은 재미와 여유보다는 생존이었다. 하루 다섯 시간 이상은 길바닥을 헤매어 다리에 힘이 풀리는 일이 허다했다. 

볼리바아의 라파즈La Paz는 평화라는 뜻을 지녔지만 그다지 평화롭지 않은 도시이다. 해발 4000미터 고지에 있어 밤낮의 기온 차가 심했고, 사람들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이고 다녔다. 

감자 두 개, 쌀 한 주먹, 토마토 세 개, 참치 캔 두 개와 손바닥만한 빵 열 개, 코타지 치즈 한 덩어리, 초 한 자루가 준비 됐을 때 우리는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삼박사일의 캠핑여행은, 20명이 있는 봉고차를 타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봉고차는 우리를 하늘 위에 올려놓을 기세로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멈춰요!” 차가 내리막길을 타기 바로 직전에 외쳤다. 운전수는 헐벗은 산봉우리 몇 개가 전부인 곳에 차를 세워 달라는 우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한번 째려보고는 조수에게 차 위에 실은 낡은 배낭 두 개를 내리라고 명령했다. 허허벌판 돌멩이만 가득한 우주행성같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여기서 삼박사일만 걸으면 바나나가 자라는 열대지방에 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척박한 고산지대에서, 내리막길 밑에 정글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는 끼니도 거른 채 걷고 또 걸었다. 달의 표면 같은 이상하고도 신비한 풍경이 나를 사로 잡았지만, 또 다른 나는 이미 짜증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숨쉬는 것조차 벅찬 고산지대를 오르락내리락한 지 다섯 시간만에 집 하나가 보였다. 양치기의 집이었다. 

“도대체 코로이코Coroico(열대마을)까지 가는 길 가장 높은 봉우리는 언제 나옵니까?”

“뭐라구? 당신들은 반대로 왔어! 여긴 라파즈에서 멀지않다구!”

우린 꼬박 반나절을 걸려 원점보다도 더 멀리 돌아온 것이다. 다리 힘이 풀리고 피곤함이 머리를 꽝 내리치는 듯했지만, 온도가 영하 가까이 떨어지는 밤을 맞이해야 했기에 서둘러 폐가 옆에 텐트를 쳤다. 

그날 밤 우리는 텐트 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긴 회의를 했다. ‘이대로 시내로 돌아갈 것인가?’, ‘5시간을 되돌아가서 원점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미 해답을 알고 있었다. ‘더 돌아가더라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자’ 그것이 결론이었다. 걷기만 했던 오늘의 여행에서 우리는 인생에 대한 깊은 명상을 했다. 반대로 왔다고 길이 험하다고 포기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도가 있었다면 길은 잃지 않았겠지만 보지 못했을 풍경을 봤고, 사람도 만났고, 그 안에는 분명 많은 이야기도 있었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지만, 결국 우리는 돌밭에서 시작하여 푸르른 바나나 숲을 두 눈으로 보았다. 역시 후회는 없었다.

창작을 위한 캠핑

자연은 우리를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 주변에 나무 몇 그루만 있어도 피톤치드(숲 속의 식물들이 만들어 내는 살균성의 물질)가 나와 몸에 생기를 주고 정신적 스트레스의 이완을 도울 뿐 아니라 암 예방까지 한다고. 그런데 왜 우리는 모두 숲에 있지 않는걸까? 왜 우리 집은 14층 위에 있고 나는 이 아파트촌에서 언제나 예술적 영감을 받으려 씨름해야 한단 말인가. 세상은 이렇듯 수수께끼이다. 집 없는 서러움을 아는 이에게는 심히 거슬리는 말이겠지만, 난 지붕이 없고 흙을 밟고 살았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 팔자가 그런건지, 불편함이 영감의 원동력이 되고, 꼬질함이 패션의 완성이 되는 요상한 조건을 가졌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건 ‘창작’이다. 모두가 크고 작은 창작의 희열을 기억한다. 아름다운 그 기억을 단시간에 찾기 위한 나만의 방법은 가능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며칠 밤낮을 보내는 것이다. 

커다란 돗자리 위에 잡동사니를 깔아놓고 손에 잡히는 대로 만들기를 한다. 행성같이 동그랗고 오묘한 색의 원석을 꿰서 목에 감아보기도 하고 크레용으로 몸에 그림과 문양을 그려넣고서, 미친 듯이 춤을 추기도 한다. 오래되어 낡은 티셔츠를 잘라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인형을 만들기도 한다.

숲에서 주워온 나뭇가지를 연결하여 탑을 쌓고, 넝쿨을 둘둘 말아 드림캐쳐를 만들어 텐트 문 앞에 달아놓는다. 이 모두가 나의 영혼을 깨우는 작업 중 하나이다. 쓸데없는 것들을 만들고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면 비로소 과정이 행위의 이유가 된다. 창작을 위해 작정하고 떠나는 캠핑, 내 안의 신을 만나는 중요한 의식이다. 

우리는 그날도 가장 싸구려 텐트를 짊어지고 산속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았다. 밤이 되자 갑자기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커다란 나무들이 그나마 보이는 하늘을 가려, 눈을 감으나 뜨나 똑같이 깜깜한 밤이었다.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져, 머리맡에 둔 손전등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다음날 아침 찬란하게 떠오른 태양 앞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빛이 얼마나 찬란하던지……. 우리가 만든 모든 것과 모든 움직임이 태양이 준 선물이라 생각했다. 만드는 모든 것 혹은 행위에 커다란 의미를 두니 평소에 하던 작은 행동마저도 성스러워졌다. 나뭇가지를 주워 원석과 깃털을 붙여 만든 요상한 물건이 태양을 위한 제물이라며 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거대한 지구 안에서 이 사소한 물건을 봤을리 없겠지만 어쩐지 태양은 우릴 향해 더 찬란히 비추는 것 같았다.

쌩야생 캠핑법칙

1. 지도와 머리를 따라가지 말고 발길과 마음을 따라가서 다다른 곳에 그냥 드러눕는다. 새들이 지도가 없어도 멈춰야 하는 곳을 아는 것처럼 영혼이 이끄는 대로 가는 용기를 회복한다.

2. 추울 때는 있는 옷을 모조리 입고 신발도 신고 새우처럼 몸을 쭈그려 본다. 그래도 추우면 숙면은 물 건너갔으니 추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텐트 밖으로 나가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 책을 만들어 본다. 

3. 물이 없는 곳에서는 캠핑을 할 수 없지만 생수가 아니라도 빗물이나 코코넛 물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없다. 하지만 빗물 마시고 배탈나도 책임 못 짐, 코코넛이 머리에 떨어지는 것은 더더욱 책임 못 짐. 

4. 자연에서의 캠핑은 자연과 하나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나무들이 더럽다고 비누칠해서 닦지 않듯이 나도 나무처럼 빗물만으로 닦는다. 

5. 벌레가 다가오면 대화를 시도해본다. 정중히 떠나줄 것을 부탁한다. 그것은 변신한 누군가의 영혼일수도 있으니 죽일 때는 꼭 죽여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대본다. 징그럽다, 무섭다, 물리면 아프다, 간지럽다. 그 외에는 없다. 그것도 철저하게 내 기준이다. 벌레에게는 우리가 더 징그럽고 더 위험하다.

6. 무게를 줄이기 위해 양은 냄비 하나로 요리하고 밥하고 커피도 끓인다. 기름이 둥둥 떠있는 모닝커피가 맛있는 이유는 새들이 지저귀고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르는 야생이기 때문이다.

7. 잠잘 때 외에는 텐트를 철수한다. 잠시 신세 진 곳이지 내 영역이 아니니까. 개미들이 가던 길을 방해 받을 수도 있다.

-『세계가 우리집이다』(지와 다리오 저, 한겨레 휴 발행) 본문 중

‘지’는 스무 살에 여행을 시작해서 여러 언어를 습득하고 역사와 지리를 배웠다. 여전히 여행 중이며, 자아를 배워나가는 중이다. ‘다리오’는 스페인 전역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인도여행 중에 ‘지’를 만나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지와 다리오’는 현재 제주도에서 살고 있고, 여전히 비생산적인 것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내일 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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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혜인

글ㆍ사진 지와 다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