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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원 — 화가
모르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순간 그 말을 내뱉기가 어려워서, 끝끝내 입을 다물거나 애써 아닌 척 굴다 들켰던 날들이 참 많다. 조심스러운 말투로 “잘 모르겠어요.”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최지원은 왠지 모르게 당당해 보였다. 그 한마디에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알아가 보겠다는 태도가 스며 있었으니까. 이토록 신인다우면서도, 신인답지 않을 수가!
우선 자기소개를 먼저 해볼까요?
안녕하세요. 회화 작업을 하는 최지원입니다.
‘작가’ 하면 연륜 있는 분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또래를 만나니 반가워요. 공교롭게도 해가 바뀌는 시기에 마주하고 있네요. 먼저 2022년도를 돌아볼까요?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기에는 항상 생각이 많아지곤 하는데… 2022년에는 ‘진짜 바빴다.’ 싶어요. 8월에 대학원 졸업을 했거든요. 1월부터 졸업 전까지 논문 쓰면서 하반기에 열릴 <KIAF PLUS> 준비를 같이 했어요. 두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려니 정신도 없었고, 와중에 사이사이 그룹전까지 진행했으니 심적으로 많이 방전되었죠. 다 끝내고 나니, 또 개인전이 얼마 안 남아서 (웃음) 달려 나가기 위해서 노력 중입니다. 열심히 틈 없이 살았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도 들어요.
너무 틈이 없어서 힘들진 않았나요?
그렇지만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 더 커요. 작가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단계라, 앞으로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 있을 땐 몰랐던 것들을 체감하고 있거든요.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해선 이런 일들을 계속 해나가야 하는 거구나.’ 생각하니,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책임감도 생기더라고요. 그런 점에 있어서 이번 한 해는 참 알찼어요.
예술 고등학교, 미술 대학교, 미술 대학원 루트를 탔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미술인의 정석적인 행보를 거쳐 온 셈이죠. 인생의 3분의 1이란 시간을 그림을 그리며 살아왔는데, 그 시간을 돌아보면 어때요?
실은 제 친구들 대다수가 다 그런 삶을 살아왔어요. 주변에 미술 한 애들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내가 미술을 안 했다면 뭘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봐도 잘 모르겠다 싶더라고요. 워낙 어릴 때부터 꿈이 화가였고, 미술이 너무나도 좋았거든요. 다행히 부모님께서도 반대하지 않으셨고 충분히 지원을 해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흘러오듯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오히려 다른 길을 가볼 생각조차 하질 않았달까요. 저는 그냥 어떻게든 이 일을 했을 것 같아요.
어릴 때라면, 언제부터 화가가 되길 원한 거예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네 살 무렵부터 화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고요(웃음).
와… 네 살이요?
저는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아요. 보통 유년기 기억은 사진처럼 편집돼서 남아 있잖아요. 그중 유난히 한 장면만 선명하게 기억나요. 어릴 때 심심해서 스케치북에 낙서하며 놀다가 무언가를 그리고 나서 마음이 좋았어요. 순간 차분한 감각을 느꼈달까요. 어떤 일에 몰입했을 때, 마음이 평온해지잖아요. 그런 맥락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일종의 교감 아닐까요?
모르겠어요, 저도. 지금도 사실 작업을 하면서 몰입하는 순간이 제일 좋거든요. 잡념이 사라지고 그림에만 집중하게 될 때가 있는데 어린 시절에도 어렴풋이 느꼈나 봐요. 무엇보다 작품들과 작가들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너무나 좋았어요. 세상에 그림 그리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매번 신선한 작업이 나오는 것을 마주하면 가슴이 뛰어요. 그런 지점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게 된 것 같아요.
그야말로 천직이 아닐까 싶은데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현장으로 나왔을 땐 어땠어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인 게, 대학원 재학 중에 디스위켄드룸 갤러리를 만나게 되었어요. 전속 작가로 활동하게 되는 기틀을 잡아 주셨고, 작업을 확장해 나가게 된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죠. 사람에겐 누구나 다 기회가 찾아오는데, 저에게는 조금 빨리 온 것 같아요. 여러모로 감사한 마음이 크죠.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는 것이 무섭진 않았나요?
늘 그래요. 저는 제가 초반부터 이렇게 많은 주목을 받게 될 줄 몰랐어요. 제가 활동을 시작한 시점이 미술 시장이 활발하게 들끓던 시기였거든요. 그와 함께 찾아온 관심들이 언제든 사라져버릴 신기루처럼 느껴졌어요. 믿기지 않았고, 불안하고, 무서웠죠. 그런 감정을 품은 채로 작업을 하다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작업하는 것뿐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근데 워낙 제가 뭐 하나에 안주를 못 하는 성격이라서….
왜요?
불안함이 많아요. 그래서 좋은 일이 있어도,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이 시기를 거쳐 오고 있는 친구들이 모두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해요.
20대가 특히…. 저는 빨리 30대가 되고 싶어요. 물론 그때 되면 또 힘들겠지만,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요.
이제 한 살 더 먹게 되는 거잖아요. 소감이 어때요?
별생각 없어요. 가끔 제가 몇 살인지 헷갈리거든요. 오히려 열심히 살다 보면 12월 31일이나 1월 1일이나 똑같이 느껴지더라고요. 하루 지나간다고 바뀌는 건 없으니까 크게 의미를 많이 안 두려고 해요. 아니, 더 좋은 것 같기도 해요. 더 많이 부딪히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성숙해지고 싶어요.
불안감이 크면 어떤 일이 닥쳐올 때 회피하게 되는데, 지원 씨는 오히려 직면하며 이겨내려 하나 봐요. 정말 성실한 사람….
“걱정하지 마, 버텨!”라고 말하다가도 “아 어떻게 하냐!” 하는 편이에요(웃음). 저 그리고 별로 성실하지 않아요. 작업할 때만 성실해요. 얼마나 게으른데요. 침대에 누워 있는 거 되게 좋아해요.
근데 하루의 대부분을 작업하는 데 쓰는 거 아니에요?
맞아요. 그게 제가 작업을 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해요. 내가 뭐 하나에 제대로 올인 할 수 있다면 그게 그림 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집중력 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은 이게 전부였으니까요. 이 마음을 대학원 재학 시절에 강하게 느꼈고, ‘이게 내 길인 것 같다.’ 싶었어요. ‘혹시 나중에 잘 안 풀린다고 해도, 후회하진 않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고요. 전 제가 진짜 작가가 될 줄 몰랐거든요.
지원 씨 작업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 싶은데, 매끈한 도자 인형을 통해서 동시대의 장면들을 그려내고 있죠. “아름답고 찬란한 이미지로 각인된 채 익명의 관계망 안에서 고립된 일상을 영위하는, 자신과도 같은 오늘날의 초상을 기록했다.”라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근데 사실, 이 내용들은 이젠 ‘과거의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이 이야기를 많이 하던 때가 20년도쯤이었을 거예요. 작업을 해나가면서 생각이나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졌다 보니, 당시 작업이 한참 전 일 같아요.
그럼, 우리 현재 이야기를 나눠 봐요.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올해 상반기에 열릴 개인전에서 선보일 작업을 하고 있어요. 디스위켄드룸과 함께 기획 단계부터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전시를 준비 중이에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뭔가 해둔 게 없어서 막막했거든요. 그런데 또 시간이 지나면서 작업이 쌓이고 나니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어요. 지금은 진행 중인 작업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예요.
작업실 이곳저곳에 미완성된 작품들이 걸려 있어요. 그림 속 인형들이랑 자꾸 눈이 마주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전까지만 해도 도자 인형의 무감각한 표정을 통해 메시지를 던졌는데요. 지금은 관심사가 그 뒤에 펼쳐진 공간으로 이동했어요.
어째서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전까지만 해도, 제 그림 속에 공간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크게 없었어요. 지금 작업 중인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부터 살펴보자면…. 제가 본가가 용인인데요.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었거든요. 새로운 방에서 지내며 느꼈던 여러 감각들을 작업으로 풀다 보니 작품 군데군데 제 방의 이미지가 녹아 있더라고요. 물론 제 그림 속에선 저 공간은 ‘Room’이라기보단 ‘Chamber’에 가까워요. 보통 ‘Room’은 일반적인 방이나 비어 있는 공간의 이미지가 강한데, 제가 보여주고 싶은 건 그보다는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는 진공의 공간이거든요.
방 안에 있을 때 주로 그런 감각을 느끼는 건가요?
이를테면, 자기 전에 불을 다 끄고 눕잖아요. 제 방에 창문이 많다 보니 방 안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곤 해요. 그때 채도가 낮은 푸른빛이 감도는데, 그걸 보면 되게 묘해져요. 심해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런 감각들을 제 그림 속에 담고 싶었어요.
여운을 주던 장면들을 조금씩 화면으로 끌고 오는 편인가 봐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앞서 삶과 죽음에 관해 언급했는데, 언젠가 이집트 무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거든요. 죽은 누군가와 동물, 가족이 묻혀 있던 공간을 발굴해 보니 오히려 생명력이 넘쳐나는 거예요. 거기에서 큰 아름다움을 느꼈어요. 그렇게 우연히 본 이미지가 제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맞닿으면서 작업으로 탄생하는 것 같아요. 아마 다들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시지 않을까요? 본인이 겪어온 환경과 자라면서 본 것에서부터 촉발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근데 사실 저는 어떤 작품을 구상할 때까지만 해도 당시에는 이거에 왜 관심이 있는지 잘 몰라요. 구체적인 언어로 정의 내리는 것이 늘 어렵더라고요. 실컷 다 하고 나서 돌이켜 본 뒤에야 알아차리게 되곤 해요. 일단 먼저 손을 움직이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이미지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 걸까요?
미술 작가는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이니까, 구태여 말하기보단 그림으로 보여주려 해요. 저는 공개된 장소에 어떤 의견이나 생각 내비치는 것도 조금 조심스럽게 느껴져요. 부끄러움이 많기도 하지만, 무언가가 활자로 남게 되는 일을 경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이렇게 인터뷰하게 될 때도, 제가 저걸 저렇게까지 의도한 건 아닌데 이렇게 부각이 되는구나 싶기도 하거든요. 물론 애초에 염두에 두고서 작업을 한 건 맞지만, 작은 부분에 불과했던 것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예술을 하다 보면 자신의 작업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마주치게 되기 마련이죠.
맞아요. 전 ‘동시대 청춘’에 관한 이야기를 좀 많이 들었어요. 물론 그것도 맞아요! 절대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웃음). 다만 저는 그 단어에만 집중하고 있진 않거든요. 제 그림 속엔 더욱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한 부분에만 초점이 가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기도 했어요. 그리고 저도 아직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작업으로 확장해 보고 싶은 마음도 커요. 아직 너무 젊고, 작가로서 첫 발걸음을 뗀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죠.
계속 같은 결로 읽히다 보면, 자신도 그 해석에 갇히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맞아요. 그걸 되게 조심스러워하고 있어요. 저도 제가 10년 후에 어떤 작업을 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이런 그림을 그리는 일이 지루해지면, 다른 작품을 그리게 되지 않을까요? 물론 아직 그 단계까지 안 가봐서 모르겠어요. 제가 2020년도에 처음으로 개인전을 했거든요.
첫 개인전은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때는 더 몰랐어요. 그럼에도 기회가 왔음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컸죠. 첫 개인전을 치르면서 많이 성장했어요. 처음으로 남들에게 제 작품을 공식적으로 선보이게 되었는데, 관람객들의 피드백도 듣고 내 작업이 그 공간을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 몸소 확인해 보는 시간이었어요. 디스위켄드룸에서 자리를 내어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열심히 해올 수 있었죠.
개인전을 앞둔 지금은요?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나요?
오히려 부담감을 많이 내려놓으려고 하고 있어요. 첫 개인전 때는 조바심이 컸는데, 지금은 생각할 틈 없이 이어지고 있다 보니 현재에 집중하기 바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가짐이랄 건 없고,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주로 어디에서 영감이나 원동력을 얻는 편이에요?
다른 작가님들의 작업을 보면서 감동할 때가 많아요.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작품을 마주하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창작욕이 샘솟곤 하죠. 그 외에도 제가 보는 모든 것들에서 영감을 얻어요. 어릴 때부터 무언가 관찰하는 걸 되게 좋아했거든요.
어떤 것들을 관찰했어요?
오, 제가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것들이 있긴 한데 그게 뭔지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제가 취향이 명료한 줄 몰랐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보고 취향이 올곧다는 거예요(웃음). 아 하나씩 이야기해 볼까 봐요.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 속에 뻐꾸기시계가 등장하거든요. 어릴 때 큰아버지 댁에 있던 시계일 거예요. 그땐 집들이 선물용으로 뻐꾸기시계가 대대적으로 보급이 되던 시절이었잖아요. 어린 제게는 너무 신기한 물건이었죠. 시간 되면 그 밑에 가서 뻐꾸기가 튀어나오기만을 기다리면서도, 막상 그때가 다가오면 무서워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양가감정에 매혹되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지원 씨 작업을 보면서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제가 그리는 도자기 인형이나 조각품도, 어떻게 보면 생명력이 없는 대상이잖아요. 흔히 ‘Still Life’라고 하죠. 그런 대상들에 붓질을 통해 숨을 불어넣는 것이 재미있어요. 저도 제가 그런 미감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죠.
작년 한 해 동안 한국 미술계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지요. 지원 씨도 그 열기 속에서 함께하며 젊은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았어요.
그렇죠. 근데 ‘그렇게까지 이슈가 되었나?’ 싶기도 해요. <FRIEZE SEOUL>같은 대형 페어에서는 주로 유명한 해외 작가들이 거론되거든요. 솔직히 한국의 작가분들도 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멋진 작업들이 크게 주목을 받아야 신진 작가들도 함께 나아갈 수 있거든요. 아직은 미술계 전반으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할 때죠. 주목이라고 하기엔 좀 쑥스럽지만, ‘컬렉터’라는 말을 떠나서 제 작업을 지켜봐 주시는 모든 분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커요. 덕분에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되었고 작업을 지속해 나갈 힘을 얻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직 저는 갈 길이 먼 작가니까요. 열심히 제 작업을 해야죠.
갈 길이 멀다니 궁금해졌는데, 지원 씨는 작업하다 자주 길을 잃는 편인가요?
잘 모르겠는데, 작업 간의 공백이 그렇게 크진 않아요. 저는 작업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연결돼서 나가거든요. 눈앞의 그림을 그리다가 다음에 무슨 작업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곤 해요. 하다 보면 막히는 순간도 당연히 오겠죠?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적은 크게 없었어요.
작품이 잘 안 풀릴 때 한 발 멀리 떨어져서 보게 되는 습관이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그랬어요? 어디에서 그런 말을 했지. 습관이긴 해요. 늘 멀리 떨어져서 전체를 보려고 하죠.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유로 작업실을 좀 큰 곳을 구하고 싶어요. 가시거리가 나오잖아요. 좁은 공간이면 멀리 볼 수가 없거든요.
저는 이번에 대화 나누면서 지원 씨가 어떤 욕망을 가진 사람일지 좀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지금보다 더 큰 곳으로 가고 싶은 욕망이 있군요?
다들 그런 욕망이 있지 않을까요? 제 개인적인 욕망은… (고민한다.) 욕망이라는 단어는 조금 거창한 것 같기도 해요.
그렇다면 꿈?
꿈은 작가가 되는 거요(웃음).
이미 작가잖아요!
아 그럼, 작업 생활을 유지하는 거요. 할머니가 되어도 붓을 잡고 싶어요. 유지를 하려면 많이 노력해야 하고, 또 포기해야 할 것도 생기겠지만, 그래도 하고 싶어요. 그것과는 별개로 자연 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커요.
듣고 나니, 지원 씨랑 욕망이란 단어가 좀 안 어울리는 것 같단 생각도 드네요.
맞아요. 있다 한들 이야기 하지 않는 편이에요. 평소에 잘 안 내비쳐요. 매사에 조심스러운 성향이거든요.
오늘 이야기 나누면서 ‘잘 모르겠다’랑 ‘아직까지는’이란 말을 엄청 많이 한 거 알아요?
정말요? 그랬구나. 왜냐하면, 정말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어서 그런 말을 계속하게 돼요. 언젠가 인터뷰를 하다 슬럼프에 빠질 때 뭘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저 그때도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경험치가 적어서 어려운 지점에 닥친 적이 없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힘은 들지만, 계속 작업실에 나가서 그림만 그려요.”라고 말했거든요. 뭐라 대답하기에 아직 충분치 않은 경력인 것만 같아서 말을 아끼게 돼요.
그 문장에서 지원 님의 조심스러운 마음이 엿보이는 것 같아요. 뭔가 쉽게 예측하려고 한다든가, 정의 내리지 않으려 하는….
맞아요. 아마 평생 이렇게 살 것 같아요(웃음).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저는 제가 50대 쯤엔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궁금해요. 개인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젊은 시절 작업을 보는 걸 되게 좋아해요. 지금은 엄청나게 핫한 슈퍼 할아버지 작가인 호크니가 지금 제 나이 때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확인해 보면 재미있더라고요.
그럼 작업을 벗어나서, ‘인간 최지원’에게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다면 뭐예요?
건강이요. 붓을 쥐고 있는 내내 몸이 경직되어 있다 보니 엄청 힘들더라고요. 저번에 예전 선생님을 뵌 적이 있는데, 보자마자 제발 운동하고 밥 잘 먹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30-40대 되면 손목 나가고 디스크 터져서 그림 못 그린다고요. 운동에 돈 아끼지 말라고 강조하셨던 기억이 나요.
새해마다 작년과 몸이 급격하게 달라지는 게 느껴지지 않아요?
맞아요. 체력이 있어야 뭐라도 하는데…. 나이 들어서도 그림 그리시는 작가님들께선 운동을 꾸준히 하셨더라고요. 그렇게 작업을 계속하는 게 쉽지 않은데 정말 대단해요. 저도 제가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3월에 개인전 시작하고 나면 해야죠.
저희 다시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아 볼까요? 아직 먼 이야기이긴 하지만, 개인전이 끝나고 나면 무엇을 할 계획인가요?
내년 계획이 이미 다 짜여 있어서 조금 쉬고 다시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개인전 끝나고는 그다음을 위해서 돌아보는 시간을 잠시라도 가져보려고요. 근데 제가 또 큰 작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미리미리 해둬야 할 것 같아요. 이 기회가 모두에게 오는 게 아닌 걸 잘 아니까, 최대한 성실히 또 열심히 잘 해내야죠. 진짜 감사해요.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감사하다(웃음). 무던하려고 노력하는 한 해가 되겠네요.
그러겠죠? 저는 그날그날의 작업을 다 기록을 해둬요. 모든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두고 한꺼번에 모아서 보면 되게 뿌듯하더라고요. 정성을 들인 시간들이 오롯이 담겨 있으니까요. 힘들 때마다 그 기록을 보며 위안을 받곤 하는데, 올해도 열심히 남겨보려고요.
에디터 오은재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