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커다란 우리 동네 책방

오후의 책방들

좋아하는 책방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해가 드는 시간에만 잠깐 문을 여는 이 책방들은 동네 한쪽에서 저마다 간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래 머물수록 더 마음이 가는 곳들. 그곳들은 하나같이 오후의 햇빛을 닮아있었다.

그림책을 읽는 오후
책방 피노키오

A.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194-11
T. 070 4025 9186
O. 월~일 14:00~21:00
H. blog.naver.com/pinokiobooks

언제부턴가 연남동은 주말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장소가 됐다. 매일같이 새롭고 멋진 간판이 생겨났다. 이곳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조용한 동네였는데, 이제는 딱딱한 쇠를 연마하는 공사장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릴 만큼 요란스러운 곳이 됐다. ‘책방 피노키오’가 생긴 건 비교적 한적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책방 주인 피노는 원래 회사에 다니던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날 모든 걸 한쪽으로 접어두고 책방을 차렸다. 사람들은 그에게 ‘왜?’라고 물었지만 사실 그건 옳은 질문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책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동경하며 자라왔던 그에게, 책방을 차리는 건 차라리 ‘언제?’라는 질문이 더 어울릴 법한 일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부터 어른들을 위한 그래픽 노블까지 다양한 종류의 그림책을 모았다. 좋은 그림에 순한 이야기들이 어우러지는 그림책들을 하나하나 직접 골랐다. 언젠가는 나이 지긋한 손님이 가게에 찾아와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돌아가기도 했다.

아이를 키울 때는 전혀 몰랐던 그림책의 즐거움을 이곳에서 찾았다는 거였다. 골목 구석에 숨겨진 동네 책방이 작지만 단단한 문화를 만들고, 그것이 그림책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바꾼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책방을 운영하는 일은 바깥에서 보는 것만큼 마음이 편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익이 많이 남지 않는 일이고, 지속 가능함에 대해 늘 고민해야 했다. “지금처럼 문화공간이 많이 없어지는 추세에서 서점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장소라고 생각해요. 학습지만 파는 일반 서점이라도 좋으니 책방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변해버린 동네에 대한 실망감에 조금 어두운 얼굴이 되기도 했지만, 그는 이 일을 끝내 손에서 놓지 않을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을 위한 돈을 조금 덜 쓰더라도 좋은 책을 가져오는 것이 가장 기쁘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더 진짜 마음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시간이 쌓여가는 오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A. 서울시 은평구 서오릉로 18
T. 070 7698 8903
O. 월, 수~토 15:00~23:00
H. 2sangbook.com

오래된 것들을 퍽 좋아하는 편이다. 가끔 그것 때문에 동료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는데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취향이 있는 법이다. 책방을 소개하려 마음을 먹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것도 바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었다. 처음 이 오래된 공간을 찾았을 때만 해도 계단을 따라서 밑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얼마 전 다시 찾았을 때는 계단을 올라야 이상한 나라의 입구가 보였다. 책방 주인과 이야기하며 처음 문을 열고 8년 만에 빛이 드는 곳으로 옮겼다는 사실에 호들갑 떨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장소가 어디건 책방의 본질은 ‘좋은 책’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신뢰를 주는 거예요. 교과서적인 말이긴 하지만 책의 퀄리티가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믿음만 줄 수 있다면 사람들은 분명 다시 찾아오게 되어있는 것 같아요.” 그는 다독가였다. 4천 권이 넘는 책을 하나하나 읽고 분류했다.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은 거기에서 나왔다. 책방에서 뮤지션을 섭외해 공연을 주최하기도 하고, 독서모임이나 강연도 진행하지만 그 목적은 결국 사람들이 책을 만나게 하는 데 있었다

카페나 밥집처럼 매일 가는 장소가 아니어서 더 많이 알리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책방을 운영한다는 건 그에게 분명 가치 있는 일이었다. 신뢰를 쌓고 뿌리를 내리며 동네와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 말이다. “올해가 맥밀런 출판사Macmillan Publishers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초판이 나온 지 150주년이 되는 해예요.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의 일이죠. 놀랍지 않습니까?” 동화 속 앨리스의 나이에 비하자면 책방이 태어나고 자라온 9년이라는 역사가 결코 긴 시간은 아닐 테지만, 인적 드문 동네의 헌책방이 꾸준한 사랑을 받고 그 동네의 얼굴이 되어간다는 것 역시 쉽게 생각할만한 일은 아닌 듯 보였다. “제 기억 속에서 헌책방 아저씨들은 항상 잠을 자거나 바둑을 두고 있었어요. 저게 바로 앉아서 돈 버는 거구나. 생각했죠. 물론 직접 하는 일은 다르긴 하죠.” 그에게는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을 아껴두기로 했다. 평화로운 얼굴을 가진 사람에게는 행복이란 단어마저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는 오후
프렌테

A. 서울시 마포구 독막로6길 30
T. 070 7542 8967
O. 화~토 17:00~20:00
H. instagram.com/frente_shop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 골목 어딘가에 있는 ‘프렌테’는 일반적인 서점의 모습은 아니었다. 빽빽한 책장은 고사하고 진열된 출판물 역시 양이 많지 않았다. 나는 이 작은 공간에 머물며 책이라는 패키지가 반드시 활자와 여백으로만 이뤄진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하나의 책을 둘러싼 음악이 있고, 향초가 있고, 따뜻한 담요가 있으며,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있다. 책을 감싸는 다양한 방식의 포장지들. 반대로 음악을 감싸는 것이 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김경주 시인이 태중에 있던 자신의 두 번째 아이를 위해 쓴 《자고 있어, 곁이니까》와 아르코Arco의 음악, 무릎을 덮을 작은 담요, 아이를 위한 글을 남길 수 있는 엽서를 함께 묶는 식이었다. 뮤직북이라는 이름으로 엮는 패키지였는데,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담은 것이 없어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상자였다.

폭신한 소파에 앉아 직접 내려준 커피를 마시는데 작은 공간 구석구석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보였다. 시집이 꽂힌 책장 한 귀퉁이에 ‘기꺼이 詩들어 가는 시간’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을 때는 기꺼이 미소 지을 수밖에 없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편집숍은 대형 마트나 백화점과는 달라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주인의 취향을 사랑할 테고 또 누군가는 다시는 찾을 일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건 분명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늘 고민되는 일일 텐데, 프렌테를 꾸리는 사람들은 그런 초조한 마음을 갖는 대신 자신의 마음을 헐겁게 만들었다. “잘 팔리는 물건보다는 저희가 좋아하는 것들로 이 공간을 꾸미고 싶었어요. 혹시 팔리지 않고 재고로 남는 물건은 우리가 갖거나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면 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죠.” 그들은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닌 듯 보였다.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은 그 두근거림만으로도 늘 분주한 사람일 테니까 말이다.

함께 어울리는 오후
햇빛서점

A. 서울시 용산구 우사단로10길 84
O. 토~일 14:00~20:00
H. facebook.com/sunnybooks.kr

거리에도 색이 있다면 이태원 우사단길은 코발트색 물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일 것이다. 그렇게 쓰고 다시 생각해 보니 홍시색 물감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팥죽색은 또 어떨까? 그렇게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이 거리는 한 가지 색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닿았다. 그건 아마도 서울에서 가장 생경한 건물, 이슬람 사원을 기점으로 길게 뻗은 거리 가득한 가게들 때문일 것이다. 그것들은 어느 것 하나 닮은 구석 없이 저마다의 기운을 내보이며 사이좋게 자리를 나눠 쓰고 있었다. 무지개색 간판이 달린 햇빛서점은 게이와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그 외의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서점이었다. 만화책과 잡지, 페미니즘 운동가의 책, 외국에서 가져온 그림책 같은 것들을 진열해놓고 팔았다.

서점의 주인은 수줍음이 많은 편이었는데, 대답이 조금 느리긴 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생각 중 가장 공감이 갔던 건 서점 이름에 관해서였다. 술집이나 클럽처럼 게이 문화가 너무 음지에만 몰려 있어 해가 드는 낮에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뜨개질 워크숍이나 게이들의 화장법 같은 것을 햇살이 드는 시간에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의 계획을 듣자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긍정적인 에너지는 바로 옆 사람까지 물들게 만드는 법이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 혹시나 말실수를 할까 조심스러운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그는 생각보다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직 특별히 해코지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주변에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나 어르신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 주변에도 성 소수자가 있고, 이곳은 단지 그것들이 눈에 드러나는 공간일 뿐이니까요.”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이 공간이 모든 성 소수자들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부담감 때문에 소중한 공간이 없어질지도 모르게 될 테니까 말이다. 다만 사람들에게 조금 특색 있는 서점 하나, 햇빛이 유난히 잘 드는 책방처럼 그려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을 꿈꾸는 오후
일단멈춤

A. 마포구 숭문16가길 9
T. 010 2686 2906
O. 월~토 13:00~20:00
H. blog.naver.com/stopfornow

멍하게 있다가 어떤 특정한 소리나 공기에 문득 주파수가 맞는 순간이 있다. 먼 지진을 감지한 영양의 두리번거림, 해바라기하던 강아지의 귀가 멈칫하는 모습, 무서운 영화를 봤을 때 묘하게 달라지는 주변 공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 듯한 착각 같은 것들. 그러니까 라디오에서 디제이가 “일단 멈추고”라며 이야기를 쉬어갔을 때, 그것을 들은 누군가는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오랫동안 그 말의 의미를 곱씹게 됐다. 바로 그 누군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책을 좋아했고 여행을 좋아했으며 이것저것 소품을 모으는 것마저 좋아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욕망이 담긴 공간(실제로 그렇게 표현했다)’이 필요했다. 염리동에 작은 책방을 만들고 거기에 ‘일단멈춤’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네모난 책 위에, 돌 바닥 위에, 알로카시아 넓은 잎사귀 위에 햇빛이 듬뿍 올려져 있었고, 공기 속을 유영하는 작은 먼지들도 여럿 보였다

볕이 드는 오후 시간에만 문을 여는 걸 보면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아마 나무늘보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아니나 다를까 책방 구석에는 돌침대도 하나 있었다). 일단멈춤은 주로 여행에 관련된 것들로 공간을 채웠다. 여행 이야기가 담긴 책이거나 그 주변을 맴도는 것들이었다. 당장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부추기는 건 아니었고 다만 이곳에서라면 조금 내려놔도 괜찮다고 말하는 쪽이었다. 비록 가게를 찾은 그녀의 부모님이 이것도 서점이냐고, 다소 충격적인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이 조그만 책방이 누군가의 작은 기쁨이 되기를 바랐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처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책방. 그녀가 그곳에 일단 멈춘 이유였다.

많은 작은 것들이 그렇듯, 오늘 이야기한 책방들 역시 몇 년 후에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이 글은 다시 들춰볼 필요가 없는 쓸모없는 페이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오후의 책방을 다니면서 나는 그 작은 공간들 속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허물 수 없는 작지만 단단한 목소리들. 오랜 시간이 지나 종이의 잉크가 흐려지고, 귀퉁이가 낡아 찢어진대도 그들의 이야기는 남아있을 것만 같다. 이게 그 작은 책방을 지키는 사람과 거리를 기억하는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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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